빌립보서 3:5 - 11
바울의 전향, 약자와 함께
정해빈 목사

 

 

1.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다스리던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 북쪽 시리아 다소(Tarsus)라는 도시에서 사울이라는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다소는 지중해 연안의 부유한 도시였는데, 소아시아에서 아테네,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학문과 문화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다소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나름대로 부유한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태어났다는 것을 가리켰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스라엘 땅에 사는 사람들보다 해외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50만이 살고 있었다면 해외에 사는 교포들은 200만에서 500만에 이를 정도로 해외에 사는 교포들이 본토에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대부분이 해외에서 산 것은 700년 전부터 나라가 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BCE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BCE 587년에 남 유다가 망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망한 후 남쪽 이스라엘이 150년을 더 버텼지만 BCE 587년에 남쪽 이스라엘도 망하고 말았습니다. 나라가 망하면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700년 전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해외에 흩어져 살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이라는 사람도 예루살렘에서 700km 떨어진 북쪽 시리아 다소에서 해외 교포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유한 해외 교포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이스라엘 12 지파 중에서 베냐민 지파에 속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사울인 것도 베냐민 지파와 관련이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저 옛날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이었던 사울이었습니다. 아마도 그가 태어날 때 아버지가 우리 집안에서 제일 유명한 “사울”같은 사람이 되어라 하는 뜻에서 그의 이름을 사울로 지은 것 같습니다.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정통 엘리트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저 옛날 다윗과 솔로몬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졌을 때, 12지파 중에서 10지파는 북이스라엘을 세웠고 2지파,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는 남유다를 세웠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갈릴리와 사마리아 중심으로 발전했고, 남유다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남유다를 세운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사울의 집안을 가리키고 유다 지파는 두번째 왕인 다윗의 집안을 가리킵니다. 12개 지파 중에서 10지파가 북이스라엘을 세웠으니 처음에는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보다 훨씬 더 강했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망할 때는 북이스라엘이 먼저 망하고 말았습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이 망한 후 150년이 지난 후에 망했습니다. 이 남유다 사람들을 가리켜 유대인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말도 “유다,” 유다 지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보통 12지파 전체를 가리킬 때는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부르고, 남유다 사람들,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 사람들을 가리킬 때는 유대인이라고 부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할 때, 가장 늦게 망한 남유다 사람들,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가 유대인 중의 유대인, 정통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첫번째와 두번째 왕인 사울과 다윗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신앙생활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바로 이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정통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사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빌립보서 말씀처럼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율법 교육을 받았고 일상생활에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더러운 것을 멀리하는 정통 바리새인이 되었습니다. 한국 문화로 따지면 조선 왕조를 세운 전주 이씨, 혹은 김해 김씨나 밀양 박씨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비록 해외 교포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유대인 중의 유대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사울은 자연스럽게 정통 유대교 신앙을 지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잘 유지하고 보존하고 후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교육을 받고 있을 때, 스데반이라는 해외 교포가 성전을 모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울은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스데반에게 돌을 던져 그를 죽였습니다. 같은 해외 교포 출신이었지만 사울은 성전을 보호하는 정통 보수 유대인 편에 섰고 예수를 믿은 스데반은 성전을 비판하는 진보적인 입장에 섰습니다. 젊은 시절의 사울은 율법과 성전과 유대교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는 유대교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출세가 보장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람의 일생을 보면 살아가는 방식이 저마다 다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사람의 일생은 저마다 다양합니다. 한평생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일관되게 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또는 저쪽에서 이쪽으로 큰 변화를 겪으며 산 사람도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방탕하게 산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도덕적으로 바르게 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젊은 시절에는 바르게 살았는데 나이가 들어서는 타락하며 산 사람도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정의롭게 살고 약자 편에서 살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는 강자 편에 서서 돈과 권력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강자 편에서 서서 돈과 권력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약자 편에 섰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현실과 타협하며 강자 편에 사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젊은 시절에는 강자 편에 섰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약자 편에 서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람이 젊은 시절에는 정의롭게 살아도 나이가 들면 현실과 불의에 타협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놀랍게도 젊은 시절에는 강자/기득권 편에 섰다가 나이가 들어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약자 편에 섰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전향’(傳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전향이라는 말은 이쪽 삶에서 저쪽 삶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이름도 히브리어 사울에서 헬라어 바울로 바꾸었습니다. 히브리어 사울이 아니라 헬라어 바울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말은 자신이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보통 사울의 전향을 회심/개종이라고 부르는데 사울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삶을 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심”한 것이 아니었고, 종교를 바꾼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개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울 당시에 기독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사울은 회심이나 개종을 한 것이 아니라 전향을 했습니다. 삶의 기준과 가치관을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의 과거 특권/기득권을 버렸습니다. 강자 편에 서지 않고 약자 편에 섰습니다.

 

사울이 전향한 첫번째 이유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내 생각이 변합니다. 스데반과 예수님과 초대 교인들을 만난 것이 사울의 생각을 변화시켰습니다. 스데반이 성전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죽임당했을 때, 사울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이 사울에게 무언가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3번 나오는데, 그 내용이 조금씩 다릅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맨처음 나오는 사도행전 9장 말씀을 보면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갑자기 예수님을 만나 말에서 떨어져 눈이 잠깐 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 바울이 죽은 후에 누가가 썼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쓴 편지에서 사도행전과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 대신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셨다고 간단하게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타나셨다” (Apokalupto/아포칼룹토)는 말은 사도행전 기사처럼 환상을 통해 나타나셨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예수께서 말씀으로 나에게 나타나셨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과 예수님과 초대 교인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배타주의자/율법주의자/우월주의자 사울이 바울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사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순식간에 변한 것이 아니라, 스데반과 예수님과 초대 교인들을 만나면서 서서히 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예수님을 만난 후에 3년간 아라비아 사막으로 갔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는 생각이 바뀌는 변화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출신 고향과 집안과 배경을 자랑스러워하며 기득권 편에 섰던 사울이 약자 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갈릴리 사람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전향한 두번째 이유는 그의 약한 몸 때문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3절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몸이 건강할 때는 천하에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엘리트 종교 권력을 마음껏 누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병을 겪으면서 비로소 약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신이 아파 보아야 아픈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신이 신체적으로 약자가 되어 보니 사회와 종교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수께서 가난한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일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2가지 사건, 영적인 사건과 육체적인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첫째로 신앙의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둘째로 육체의 약함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득권/강자 편이 아니라 약자 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전향,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사울의 전향은 우리들에게 참 신앙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강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약자 편에 서는 것입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향의 삶이 우리들에게도 일어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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