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네번째 주일 / 4월 세번째 주일

주님의 나타나심을 믿습니다

요한복음 20:24 - 29

정해빈 목사


  



1. 4월에 눈도 오고 그랬는데 오늘은 날씨가 화창합니다. 오늘이 4월 17일인데 아직도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나무 가지는 나왔는데 잎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캐나다에서는 봄이 늦게 옵니다. 하지만 일주일만 기다리면 모든 나무와 꽃들이 활짝 피게 될 것입니다. 마치 운동경기 하는 선수들이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일제히 앞으로 달려가듯이 모든 나무와 꽃들이 하늘에서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재경 목사님이 쓰신 “봄”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봄은 거저 오는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설 ‘立’에 봄 ‘春 ’ 일어서는 것이다. 봄은 사방에서 일어서는 것이다. 모두 함께 일어서는 것이다. 어느새 버들강아지는 단단한 껍질을 밀치고 온몸을 부풀리며 일어서고 산골짜기 여울물은 차가운 얼음장에 부딪쳐 부르르 몸서리치며 일어선다... 깨어나지 않고 볼 수 있는 봄은 없느니 일어서지 않고 맞을 수 있는 봄은 없느니... 봄은 거져오는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봄은 일어서는 것이다. 봄은 사방에서 한꺼번에 일어서는 것이다. 모두 다 함께 손잡고 일으키는 것이다. 일어서라 봄! 일으켜라 봄!” 입춘(立春)이라는 말이 봄을 일으킨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절의 봄, 역사의 봄은 가만히 기다린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함께 손잡고 일어나야만 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은 우리보고 일어나라고 따뜻한 날씨를 내려줍니다. 땅은 그 따뜻한 날씨를 받아서 두꺼운 껍질을 깨고 올라옵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서 봄을 만듭니다. 우리의 부활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부활을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스”(anastasis), “에게이로”(egeiro) 라고 부르는데, “일어선다, 일어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봄이라는 말이 일어선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부활 신앙도 함께 손잡고 같이 일어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러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무덤에서도 나타나시고 길에서도 나타나시고 다락방에서도 나타나시고 산에서도 나타나시고 호숫가에서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 주님이 그렇게 많이 나타나셨는데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는데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것이 너무 슬프고 실망스러워서 고향으로 내려갈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길동무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언제 예언자가 고난을 받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까? 그리스도가 고난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야 영광도 받을 수 있습니다.” 길동무가 이렇게 성경을 풀어서 설명하였고 여관방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길동무가 빵을 떼어서 축복하시고 그들에게 떼어 줄 때 그들의 눈이 열려서 바로 이 길동무가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일곱 명의 제자들이 고향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를 낚고 있을 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무얼 좀 잡았습니까” 말씀하셨습니다. “못 잡았습니다.” “그물을 오른쪽에 던지십시오 그리하면 잡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그물을 오른쪽에 던지니 153 마리의 고기들이 올라왔습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말을 거는 이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동산지기를 만났는데 마리아는 그 동산지기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지고 갔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의 시신을 어디로 가지고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동산지기가 “마리아야” 부르는 순간에 비로소 그 동산지기가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셨는데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왜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부활 이전과 부활 이후의 예수님 얼굴이 똑같았다면 제자들은 당장에 예수님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부활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야 부활의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성경의 이런 말씀들은 부활 이전과 부활 이후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부활 이전 육체 그대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존재로, 새로운 얼굴로 부활하셨습니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부활의 주님은 다른 얼굴로 우리들에게 나타나시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부활의 주님은 오늘날에도 때로는 아이의 모습으로, 때로는 여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노인과 나그네의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2.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단편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는 기독교 신앙, 부활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가난한 구두수선공 마르틴이라는 사람이 지하실의 작은 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가난해서 아내도 죽었고 아이들도 병으로 죽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고향 노인이 마르틴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성경을 전해줍니다. 마르틴은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꿈에서라도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 “마르틴, 내일 내가 너에게 가겠다”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다음날 마르틴은 두근거리며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 창밖을 보니 늙은 노인이 문 앞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르틴은 노인을 안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에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몸을 녹이게 한 다음에 돌려보냈습니다. 조금 있으니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한 여인이 밖에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르틴은 그 여인을 안으로 불러서 빵과 스프를 먹이고 몸을 녹이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죽은 아내의 오래된 외투를 주어 보냈습니다. 조금 있다가 창밖을 보니 어떤 아이가 사과 파는 할머니의 바구니에서 사과를 훔쳐 달아다나가 붙잡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르틴은 밖으로 나가 아이의 사과 값을 대신 계산할 터이니 아이를 놓아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가 지났지만 예수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이런 음성이 나타났습니다. “마르틴, 오늘 내가 너를 여러 번 방문했는데 그 때마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어 고맙다.” 이런 음성이 들리고 노인의 얼굴과 아기 엄마의 얼굴과 아이의 얼굴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음성이 들렸습니다. “마르틴 그들이 바로 나였다.” 꿈에서 깬 마르틴은 침상에서 일어나 성서를 펼쳤습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쓰여 있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25:40) 이 이야기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옛날과 다른 모습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얼굴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보고 슬퍼서 무덤 앞에서 울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예수님의 유품, 옷,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옛날 육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체가 없어지면 예수님도 없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활은 육체 소생, 즉 과거 육체가 그대로 다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을 주님은 마리아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20장 말씀에는 저 유명한 도마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자들이 도마에게 “우리가 주님을 보았다”고 말하니까 도마는 “내 눈으로 예수님의 못자국을 만져 보아야만 부활을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못자국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이 말씀 속에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눈에 보여야만 믿는 사람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믿는 사람이 더 복되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어디 있느냐? 눈에 보이는 증거를 가지고 와라,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때, 초대 교인들은 주님께서 옛날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바람, 공기, 햇살,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는데 민심이라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민심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람들이 이심전심으로 느끼는 민심이 있습니다.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민심이 선거 때가 되면 잘못된 정부와 지도자를 심판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초대 교인들은 부활의 주님께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때로는 예배를 통해 나타나시고 때로는 성찬식을 통해 나타나십니다. 때로는 가난한 이웃을 통해 나타나시고 때로는 고통받는 이웃을 통해 나타나시고 때로는 역사를 통해 나타나십니다. 어제 노스욕센터에서 세월호 2주기 추모 예배가 있었는데 어쩌면 부활의 주님은 그 자리에 나타나셨는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다음에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고향으로 내려가는 엠마오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용기를 주셨고, 고기를 잡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시신이 없어져서 슬퍼하던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매일 만나는 옆 사람이 부활의 주님일 수도 있고 가난한 이웃이 부활의 주님일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주변을 돌아보시면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셨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서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The risen Christ reveals differently

John 20:24 - 29


When it was evening on that day, the first day of the week, and the doors of the house where the disciples had met were locked for fear of the Jews, Jesus came and stood among them and said, ‘Peace be with you.’ After he said this, he showed them his hands and his side. Then the disciples rejoiced when they saw the Lord. Jesus said to them again, ‘Peace be with you. As the Father has sent me, so I send you.’ When he had said this,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to them, ‘Receive the Holy Spirit. If you forgive the sins of any, they are forgiven them; if you retain the sins of any, they are retained.’ (John 20:19 - 23)


But Thomas (who was called the Twin), one of the twelve, was not with them when Jesus came. So the other disciples told him, ‘We have seen the Lord.’ But he said to them, ‘Unless I see the mark of the nails in his hands, and put my finger in the mark of the nails and my hand in his side, I will not believe.’ A week later his disciples were again in the house, and Thomas was with them. Although the doors were shut, Jesus came and stood among them and said, ‘Peace be with you.’ Then he said to Thomas, ‘Put your finger here and see my hands. Reach out your hand and put it in my side. Do not doubt but believe.’ Thomas answered him, ‘My Lord and my God!’ Jesus said to him, ‘Have you believed because you have seen me?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yet have come to believe.’ (John 20:24 - 29)


The four gospels in the Bible say in the same way that the risen Christ revealed himself to his disciples but his people could not recognize him. The Christ went in company with his disciples when they walked down to Emmaus from Jerusalem. But they did not know that their traveling companion was the risen Christ. When the disciples went back to their home village and tried to catch fish, the Christ appeared to them saying, "Cast the net to the right side of the boat, and you will find some." But they did not realize at first that this man was the risen Christ. In John 20, Mary Magdalene wept since she thought that someone has taken away the Lord's body. She thought that resurrection is something to do with a earthly body. But the scripture says that Jesus’s resurrection is not about Jesus’ old body. Jesus was risen with a new and glorified body. Later she realized that the man who said to her, was not a gardener but the risen Christ.


All the witnesses of the resurrection confessed that Jesus appeared to them with a different figure. They realized that the risen Jesus are with them whenever they gather, remember him, and do the mission of Jesus. They confessed that they “saw” him in the road, in the river, and in the table. They said that the Christ “appeared” to them although he was not visible. When Thomas said, “I cannot believe in resurrection, unless I see the mark of the nails in his hands, and put my finger in the mark of the nails and my hand in his side,” the risen Christ said to him, “Have you believed because you have seen me?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yet have come to believe.” This story shows how early Christians understood resurrection. They believed the risen Christ is always with us with a new spiritual body. We also believe that the risen Christ is with there where people weep and people are working together for God’s justice.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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