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아홉번째 주일 / 10월 다섯번째 주일

창조절, 하나님의 정치와 복지

출애굽기 16:11 – 21

정해빈 목사





1. 연합신앙강좌 강사로 오신 김경재 목사님께서 지난 토요일 강연에서 이런 예화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께서 미국 한인 교회에서 강연을 하려고 강대상에 올라와 보니 미국 성조기가 예배당에 걸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함 선생께서 강연하기 전에 깃발을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알기로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예배당에 국가 깃발이 걸려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국가를 섬기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곳입니다.” 캐나다는 그렇지 않지만 미국을 가면 대부분 예배당에 미국 깃발이 걸려 있습니다. 예배당에 국가 깃발이 있는 것이 좋을까요 없는 곳이 좋을까요? 장공 김재준 목사님께서도 교회를 가리켜서 땅에 있지만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땅에 있기 때문에 땅의 영향을 받습니다. 나라의 법과 제도를 지켜야 하고 국가 질서에 협조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지 국가를 섬기는 곳이 아닙니다. 정부가 하나님 뜻에 맞게 일을 하면 교회는 정부에 적극 협력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하나님 뜻에 맞지 않게 일을 하면 교회는 정부에 반대하고 저항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땅 위에 있지만 하늘에 속한 곳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관점에서 국가와 정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당에 국가 깃발이 걸려 있는 곳은 옳지 않습니다. 참다운 교회는 세상 권력에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 권력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에서 국가 권력에 협조할 수도 있고 때로는 충고할 수도 있고 때로는 불의한 권력에 저항도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가 적극적으로 세상 일에 대해서 의견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세상 권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교회가 국가가 너무 가까운 것은 좋지 않습니다. 교회는 정부가 바른 길을 걸어 가도록 협력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 발짝 떨어져서 국가 권력이 하나님 뜻에 맞게 잘 운영되고 있는지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감시도 해야 합니다. 


구약 성경 39권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책에서 왕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들이 하나님 뜻에 맞게 나라를 운영했는지를 기록한 책이 구약 성경입니다. 열왕기상, 열왕기하 같은 책들은 조선 시대의 조선왕조실록처럼 왕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일을 했는지를 연대기 순으로 기록을 했습니다. 특히 예언자들의 책을 보면,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같은 책들을 보면 예언자들은 왕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잘못된 길을 갔을 때 왕들을 꾸짖었고 왕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때로는 왕들의 미움을 받아서 쫓겨나기도 했고 옥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구약 성경 대부분의 책들이 그 시대의 정치 상황을 기록했습니다. 정의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왕들이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기록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정의를 부르짖는 예언자들의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위로하시는 말씀들, 부드럽고 달콤한 말씀들만 찾아서 읽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의 정의를 부르짖는 말씀들을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높은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부가 하나님 뜻에 맞게 국가 권력을 사용하는지를 잘 살펴보고 감시해야 합니다. 때로는 정부를 위해 기도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정부를 비판하고 잘못된 정부에 저항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그렇게 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 뉴스를 보면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한국 정치 사회가 선진국처럼 되면 좋겠는데 자꾸 이상한 뉴스가 들려옵니다. 대통령은 허수아비이고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을 조종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개성 공단 폐쇄하는 것도 자기가 결정하고 장관 임명하는 것도 자기가 결정합니다. 대통령 연설문을 빨간 펜으로 교정을 합니다. 하얀 옷 입어라 그러면 대통령이 하얀 옷 입고 빨간 옷 입어라 그러면 대통령이 빨간 옷을 입습니다. 자기 딸을 부정 입학시킨 것이 탄로 나서 대학 총장이 사퇴하기도 했습니다. 메모 한 장도 청와대 바깥으로 빠져 나가면 안 되는데 외교/안보 문건을 거의 매일 받아보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직원들이 수백 명인데 그 사람들은 다 허수아비였습니다. 대통령은 대기업 회장들을 숙소로 불러서 재단을 만들었으니 돈을 내라고 협박했고 그렇게 해서 모은 800억 원이 최순실에게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버지 최태민, 딸 최순실은 최면술을 거는 사이비 종교 무당들입니다. 명색이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이 지금 무당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정신이 허약하면 무당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도 나와 있지만 정신이 나약한 사람은 귀신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도 무당을 찾아서 이사를 언제 갈까요?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국가 지도자는 사람이 무당 꼭두각시 노릇을 했으니 기가 막입니다. 국가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합니다. 불쌍해서 뽑아주고 같은 지역이니까 뽑아주면 안됩니다.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정신과 능력이 되는지를 잘 살펴보고 뽑아야 합니다. 한국이 상식이 통하고 민주주의가 통하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20세기를 대표하는 성서학자 중에 왈터 부르거만(Walter Brueggemann) 이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콜롬비아 신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쳤습니다. 이 분이 몇 년 전에 [보편적 복지를 향한 여정] (Journey to the Common Good)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받던 히브리/이스라엘 사람들 해방시키시고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키셨다, 우리들을 구원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사회경제학의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편적인 복지를 베푸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 가면 피라밋이 있는 것처럼 사회 구조가 피라밋처럼 되어 있습니다. 제일 밑에 가장 숫자가 많은 노예들이 있고 제일 위에 파라오/바로 왕이 있습니다. 이집트 사회는 바로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노예들을 다스리는 사회였습니다. 창세기/출애굽기를 보면 요셉이 총리가 된 후에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대비하기 위해 곡식을 사 모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곡식을 사 모은 후에 기근이 들자 사람들이 곡식을 사기 위해 이집트로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떨어지자 곡식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 바로의 종이 되었습니다. 결국 온 세상의 돈이 다 요셉에게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요셉이 흉년을 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집트 경제가 바로와 총리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476절을 보면 요셉은 밭에서 거둔 것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바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요셉은 총리직을 이용해서 자기 동포들을 잘 먹여 살렸지만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요셉이 만든 법 때문에 요셉의 후손들은 땅을 잃어버리고 이집트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만든 독점 법이 결국 동포들에게 부메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로 고통당하는 히브리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집트와 광야의 차이점을 잘 보아야 합니다. 바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곳이 이집트라면 광야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혜택을 보는 곳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히브리 사람들은 광야에서 누구나 똑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빵을 먹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편 복지입니다. 만나를 먹을 만큼만 광주리에 담아라, 내일 먹을 것은 내일 줄 터이니 따로 저장하지 말아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만나를 저장하고 그 다음날 보았더니 저장한 것이 다 썩었습니다. 나 혼자 많이 먹으려고 저장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몰래 쌓아두지 말고 다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억압받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여라, 이것이 하나님의 정치입니다. 굶주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여라, 이것이 하나님의 복지입니다. 구약 성경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정치와 복지를 기록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치, 하나님의 복지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완성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캐나다가 지금도 복지가 잘 되어 있지만 지금보다 더 보편 복지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지구촌 전체에 하나님의 정치와 복지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복지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reation, God’s common good

Exodus 16:11 21


Moses turned to Aaron and said, "Bring the people together, because the LORD has heard their complaints." Aaron was speaking to them, when everyone looked out toward the desert and saw the bright glory of the LORD in a cloud. The LORD said to Moses, "I have heard my people complain. Now tell them that each evening they will have meat and each morning they will have more than enough bread. Then they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their God." That evening a lot of quails came and landed everywhere in the camp, and the next morning dew covered the ground. After the dew had gone, the desert was covered with thin flakes that looked like frost. (Exodus 16:9-14)


The people had never seen anything like this, and they started asking each other, "What is it?"Moses answered, "This is the bread that the LORD has given you to eat. And he orders you to gather about two quarts for each person in your family that should be more than enough." They did as they were told. Some gathered more and some gathered less, according to their needs, and none was left over. Moses told them not to keep any overnight. Some of them disobeyed, but the next morning what they kept was stinking and full of worms, and Moses was angry. Each morning everyone gathered as much as they needed, and in the heat of the day the rest melted. Amen. (Exodus 16:15-21)


In his recent book, [Journey to the Common Good], Brueggemann presents a very different view of the Joseph story than the one we usually hold to. Joseph solidified Pharaoh’s power and enslaved the people, manipulating the economy to concentrate wealth and power in the hands of a few. The situation deteriorates and God intervenes. The divine alternative comes into being through Moses’ dream of a people no longer exploited or suffering but living in the abundance of shared generosity which is the centre of God’s dream. The bread of the wilderness, the bread that God gives us to eat, is a very different sort of bread. It is the bread of God’s generosity, a gift of abundance that breaks the deathly pattern of anxiety, fear, greed and anger, a miracle that always surprises because it is beyond our capacity of expectation. Brueggemann points out that is this bread that fills the Israelites as they stand at Mt Sinai to receive God’s commands, commands that voice God’s dream of a neighbourhood and God’s intention for a society grounded in the common good. Amen.

Posted by 정해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