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 고난주일 / 3월 세번째 주일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마가복음 14:17 - 26

정해빈 목사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는 오늘 일요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월요일에 예루살렘 성전을 심판하셨습니다. 화요일에 성전 제사장들 및 헤롯 당원들과 토론하셨고, 수요일에 마르다/마리아/나사로의 집에서 식사하셨습니다. 목요일에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로마 병사들에게 붙잡히셨습니다. 금요일 새벽에 대제사장들과 빌라도 총독에게 심문받으시고 금요일 오전 9시 십자가에 매달리셨다가 6시간이 지난 오후 3시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보낸 일주일을 가리켜 종려주일/고난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이 절기가 돌아오면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당하셨네, 예수님, 예수님, 나의 죄 위하여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 주님이 돌아가셨다고 찬송을 부릅니다. 사순절이 돌아오면 교회에서 이런 설교와 찬송을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마땅히 죽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이제 나는 죄에서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리켜서 “대속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랫동안 하나님께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해 동물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면 죄 값을 받고 죽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피를 흘려야만 죄가 용서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죽을 수는 없으니까 나 대신 동물을 죽임으로서 죄 값을 치르게 합니다. 오늘날 동물 애호가들이 들으면 동물이 무슨 죄가 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물을 죽여서 나 대신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처형당하셨을 때 맨 처음 제자들은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예수님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동물 제사 전통을 가지고 예수님의 죽음을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사에 바쳐질 동물은 흠이 없고 깨끗한 수컷이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흠이 없고 완전한 분이시기에 제물로 바쳐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은 다 죄가 있고 흠이 있기 때문에 완벽한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만이 제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기독교인들은 100%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의 죽음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죽이는 잔인한 하나님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셔서 피 흘리지 않아도 우리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무 조건없이 탕자를 껴안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네가 죄를 지었으니까 죄 값을 받아야 한다, 네가 피를 흘리던지 아니면 동물이 피를 흘리던지 피 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그냥 맞아 주었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여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어야만 우리를 용서하는 그런 잔인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시는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사시다가 그 결과로 마지막에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악에 대한 저항입니다. 예수님은 빛을 비추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빛이 이 땅에 오니 어둠이 빛을 싫어합니다.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악한 귀신을 쫓아내시고 악을 책망하시니까 권력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조용히 사셨다면 십자가에 처형당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먹이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성전을 심판하셨기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붙잡히셔서 죽임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의인의 죽음, 불의한 죽음, 억울한 죽음을 가리킵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순교자들/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아파하면서 다시는 예수님과 같은 억울한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소극적으로 생각하면 악한 권력자들에게 처형당하신 것이 되지만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 죽으신 것이 됩니다. 소극적으로 생각해서 예수님이 불의한 권력에게 죽임당하셨다고 생각하는 것도 맞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생각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내어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줍니다. 마가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이 목요일 저녁에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제자들이 질문을 합니다.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고 있는 사람이다.” 내 앞에 지금 빵 그릇이 있는데 그 빵 그릇에 손을 넣어 빵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 나를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빵은 예수님의 몸을 가리킵니다. 가롯 유다가 지금 내 빵 그릇에 손을 넣어서 내 빵을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조금 있으면 가롯 유다가 나를 움켜쥘 것이다, 나를 붙잡을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가롯 유다가 당신을 배신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자기 몸을 붙잡을 것을 아시면서도 자기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내 몸을 줄 터이니 나를 가져라. 나를 먹고 더 이상 굶주리지 말아라. 나를 먹고 더 이상 배고프지 말아라. 내가 나의 것을 다 줄 터이니 나를 먹고 다시 일어서거라,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습니다. 이 빵을 내 몸이라고 생각하고 이 빵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빵이 너희 몸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내가 너희 속으로 들어가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자신을 내어주는 최고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주심으로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마가복음 15장을 보면 예수님과 바라바 중에서 바라바가 풀려나고 예수님은 처형당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명절날이 되면 죄수 하나를 풀어주는 전통이 있었는데 빌라도가 누구를 풀어줄까 물었더니 사람들이 예수 대신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바라바는 풀려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바라바는 무장독립운동을 하다가 붙잡히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 옆에 있는 바라바, 자기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붙잡혀서 죽게 된 바라바, 그런데 바라바는 예수님 때문에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바라바가 살아났습니다. 바라바를 위해서 자기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자기 몸을 내어줌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자기 몸을 내어주는 사랑의 극치가 바로 십자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몸을 내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한평생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시다가 마지막에는 자기 몸을 다 내어 주셨습니다. 빛으로 오셔서 빛을 비추시다가 어둠에게 붙잡히셨습니다. 악에 저항하시다가 악에 붙잡히셨습니다. 삶의 마지막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마지막 한사람까지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 옆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버리는 사랑, 제자가 자신을 배반할 것을 아시면서도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나를 가져라, 나를 먹어라, 나를 먹고 배고프지 말아라, 나를 먹고 목마르지 말아라,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Take it, this is my body

Mark 14:17 - 26


When it was evening, he came with the twelve. And when they had taken their places and were eating, Jesus said, ‘Truly I tell you, one of you will betray me, one who is eating with me.’ They began to be distressed and to say to him one after another, ‘Surely, not I?’ He said to them, ‘It is one of the twelve, one who is dipping bread into the bowl with me. For the Son of Man goes as it is written of him, but woe to that one by whom the Son of Man is betrayed! It would have been better for that one not to have been born.’ (Mark 14:17-21)


While they were eating, he took a loaf of bread, and after blessing it he broke it, gave it to them, and said, ‘Take; this is my body.’ Then he took a cup, and after giving thanks he gave it to them, and all of them drank from it. He said to them, ‘This is my blood of the covenant, which is poured out for many. Truly I tell you, I will never again drink of the fruit of the vine until that day when I drink it new in the kingdom of God.’ When they had sung the hymn, they went out to the Mount of Olives. (Mark 14:22-26)


Many Christians has thought for a long time that Jesus died for "Penal substitution." It is a theory of the atonement within Christian theology. It argues that Christ, by his own sacrificial choice, was punished in the place of sinners, thus satisfying the demands of justice so God can justly forgive the sins. Penal substitution derives from the idea that divine forgiveness must satisfy divine justice, that is, that God is not willing or able to simply forgive sin without first requiring a satisfaction for it. It states that God gave himself in the person of his Son, Jesus Christ, to suffer the death, punishment and curse due to fallen humanity as the penalty for our sin. As opposed to this theory, Athanasius said, “Christ's death enables us to die to sin by our participation, and not as a satisfaction or payment to justice as such.”


Today's scripture shows that Jesus died not for our sin, but for the love for us. When Jesus and his disciples were eating together on Thursday, Jesus said, “One of you, who is dipping bread into the bowl and eating with me, will betray me.” Jesus implied, “Just as one person is grabbing my bread, he will grab me soon.” Although Jesus knew that this happen to him, Jesus took a loaf of bread, blessed it, broke it, gave it to them, and said, “Take, this is my body.” Jesus gave his body to them as the bread of life. Mark chapter 15 also says that Pilate the governor of Judaea was asked by people to free Barabbas, not Jesus. Barabbas, which means the son of father, was able to be released thanks to Jesus beside him. Jesus gave his body to Barabbas to save him. Considering Palm and Passion Sunday, we meditate on the meaning of Jesus. Jesus died, not to be punished in the place of sinners or to satisfy the demands of justice, but to love us and to quench our hunger and thirst by giving out his body to us. We hear Jesus’ voice even today, “I give you everything that I have. Take my body, and rise again. You are not alone. I am always with you.” Whenever taking the bread and the cup, we confess that Jesus is with us.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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