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다섯번째 주일 / 창립기념주일

부활의 기쁨과 사랑의 섬김

사도행전 9:36 - 43

정해빈 목사

   



1. 오늘은 4월 마지막 주일 우리 교회 창립기념주일입니다. 우리 교회 예배가 보통 경건하고 엄숙한데 오늘은 우리 교회 생일이니까 오늘 예배는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예배를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웃으시라고 몇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여러분 십계명 쉽게 외우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세요? 십계명을 일이삼사오육칠팔구십으로 외우면 쉽게 외워진다고 합니다. =일단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이상한 우상을 섬기지 말라. =삼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지 말라. =사업을 하지 말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오마니 아버지를 공경하라. =육혈포(총의 일종 살인 무기)로 살인하지 말라. =칠보단장한 여인을 간음하지 말라. =팔로 도적질하지 말라. =구차한 변명으로 거짓증거 하지 말라. =십원이라도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신학생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한 후에 어느 교회에 부임을 했습니다. 교회 근처로 이사를 했는데 부인이 열쇠가 달린 자물통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부인이 이것은 나만의 비밀이니까 절대로 열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우연히 부인의 자물통을 발견하고서 너무 궁금해서 자물통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돈 200만원과 계란 3개가 있었습니다. 부인이 말하기를 남편이 졸린 설교를 할 때마다 계란 1개씩 모았다고 대답합니다. “그럼 지난 20년 동안 딱 3번만 졸린 설교했다는 말이네, 그런데 옆에 있는 200만원은 뭐야부인이 대답합니다. “계란 판 돈이에요.” 계란을 몇 개 팔아야 200만원을 모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해서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서양 역사를 보면 교회가 세상에 대해 크게 영향력을 행사할 때가 있었습니다. 서양 중세 시대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 시대에는 세상의 중요한 일들을 교회가 결정했습니다. 나라의 법과 사회의 규칙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중요한 일을 교회가 다 결정했습니다. 그 시대는 교회가 너무 힘이 세고 권위적이고 엄숙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학문활동, 문화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했고 여성들이 조금만 행동이 튀면 마녀로 몰아서 화형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한 나라의 왕도 교회/교황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오직 교회가 허락하는 책만 출판되었고 교회가 인정한 지식만 가르쳤습니다. 자연과학도 성경에 위배된다고 해서 가르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갈릴레오가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말했다가 하마터면 교황 앞에서 화형을 당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던 중세 시대를 가리켜서 [암흑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교회가 막강한 힘을 발휘한 시대는 중세 시대뿐만 아니라 근대 시대를 넘어 최근 100년 전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고 세상에 영향력을 행세하던 시대를 가리켜서 크리스텐돔(Christendom) 이라고 부릅니다. 로마제국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4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대략 1500년을 가리키는데 이 시대에는 국민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고 국가가 교회의 눈치를 볼 정도로 교회의 영향력이 대단했습니다. 국가는 교회의 가르침을 따랐고 교회는 그 대가로 국가 정책을 지지하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국가와 교회가 서로 손을 잡고 세상을 이끌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크리스텐돔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는 부흥했고 사람과 돈이 차고 넘쳤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타락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곳이든지 힘이 너무 세면 타락하기가 쉽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가 세상 권력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교회의 시대는 지나갔고 다문화 사회, 다종교 사회가 되었습니다.

 

캐나다 역사를 보면 캐나다에서도 크리스텐돔, 기독교가 사회를 이끌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1925년 캐나다장로교, 캐나다감리교, 캐나다회중교회가 합쳐서 캐나다연합교회가 만들어졌는데 그때만 해도 캐나다연합교회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총회장이 선출되면 CBC가 중계를 하였고 모든 국민들이 총회장을 국가의 영적 지도자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캐나다가 복지사회, 인권과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광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옛날에는 골목과 사거리마다 교회를 세웠는데 이제는 그렇게 많은 교회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통계를 보니까 캐나다에서 일주일에 1개씩 일 년에 50개의 교회가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과거에 교회를 너무 많이 지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캐나다 사회가 다문화, 다종교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크리스텐돔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다. 이 시대는 교회가 세상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옛날에 교회가 했던 행정/복지/구제 등의 역할을 오늘날에는 국가 기관과 민간 사회단체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을 그리워하지 말고 복음으로 돌아가서 겸손하게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지만 일반 사회를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교회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해야 할 것입니다.

 

2. 리 교회도 맨 처음에는 토론토 한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몇 개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토론토에 이민을 오면 제일 먼저 우리 교회를 찾아오곤 했습니다. 토론토 이민 사회도 우리 교회를 통해서 시작되었고 한인합창단, 노인회 같은 단체들도 우리 교회를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이민 교회들을 보면 교회가 나누어지지 않고 1개가 계속 커지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교회가 계속 여러 개로 나누어지는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후자에 속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큰 교회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를 통해서 여러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예언자의 사명과 제사장의 사명을 균형있게 감당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언자의 사명과 제사장의 사명이 나옵니다. 이 두 가지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많은 이민 교회들이 제사장의 사명은 잘 감당하지만 예언자의 사명은 잘 감당하지 못합니다. 이민의 삶이 힘들기 때문에 성도님들을 축복해 주고 위로하고 치료하고 감싸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성도님들도 일주일에 한번 교회 와서 위로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예언자의 사명도 잘 감당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과거 우리 교회는 1970-1980년대 군사 독재 정권이 한국을 통치할 때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교회가 왜 인권 운동하느냐고 모함을 받기도 했고 그것 때문에 대형 교회가 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제사장의 사명 뿐만 아니라 예언자의 사명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같은 많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공의/정의를 외치다가 고난을 당했고 세례요한도 헤롯의 행동을 비판했다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예수님도 권력자들에게 붙잡혀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기 보다는 세상을 섬기고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다른 기관이 할 수 없고 오직 교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9장 말씀을 보면 베드로와 다비다 이야기가 나옵니다. 욥바라고 하는 곳에 아람어로는 다비다, 그리스어로는 도르가라는 여 제자가 살고 있었는데 착한 일과 구제 사업을 많이 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여 제자들 이름이 여러 명 나오는데 다비다가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비다가 병들어 죽었다는 소식이 베드로에게 들려왔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다비다가 있는 욥바를 찾아왔습니다. 욥바에 와보니 여러 과부들이 다비다가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베드로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여제자 다비다가 과부들을 돌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다비다를 향해서 다비다여 일어나십시오말한 후에 그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부활 사건이 예수님에게만 끝나지 않고 제자들에게 이어졌습니다.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를 살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저 옛날 초대 교회가 무엇을 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부활을 실천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또한 초대 교회는 다비다가 그랬던 것처럼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았고 사랑의 섬김을 실천했습니다. 부활의 기쁨과 사랑의 섬김, 이것이 초대 교회가 행한 두 가지 사역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교회는 세상을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영적으로 육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부활을 선포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죽음의 문화, 죽임의 문화, 폭력의 문화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부활 능력을 선포하는 교회, 사랑의 섬김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꼭 큰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제자 다비다가 그랬던 것처럼 겸손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를 찾아오는 청년들, 젊은 가정들, 어르신들, 새가족 난민들, 방문자들을 따뜻하게 환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선포하고 사랑의 섬김을 실천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Joy of resurrection and service of love

Acts 9:36 43


Now in Joppa there was a disciple whose name was Tabitha, which in Greek is Dorcas. She was devoted to good works and acts of charity. At that time she became ill and died. When they had washed her, they laid her in a room upstairs. Since Lydda was near Joppa, the disciples, who heard that Peter was there, sent two men to him with the request, ‘Please come to us without delay.’ So Peter got up and went with them; and when he arrived, they took him to the room upstairs. All the widows stood beside him, weeping and showing tunics and other clothing that Dorcas had made while she was with them. (Acts 9:36-39)

 

Peter put all of them outside, and then he knelt down and prayed. He turned to the body and said, ‘Tabitha, get up.’ Then she opened her eyes, and seeing Peter, she sat up. He gave her his hand and helped her up. Then calling the saints and widows, he showed her to be alive. This became known throughout Joppa, and many believed in the Lord. Meanwhile he stayed in Joppa for some time with a certain Simon, a tanner. Amen. (Acts 9:40-43)

 

In scripture, we encounter role models of discipleship that is expressed in compassionate words and deeds. The author of Acts identifies Tabitha with a title given to no other person in the New Testament: mathetria, the feminine form of the Greek word for “disciple.” Tabitha’s ministry among the widows of her community is evident in this text. Hebrew and Christian scriptures alike declare God’s desire for widows to be treated with kindness and justice. Tabitha ministers with women routinely overlooked. In so doing, she weaves a community who grieves her death, celebrates her gifts, and witnesses her restoration to life. The Easter season calls us to arise and live in the power of the risen Christ, which can empower us to overcome those things that have harmed us and to take a lead in loving service in the communities in which we live. We, as the church, learn from Tabitha and Peter about showing up seeking the welfare of the community.

 

Celebrating our church’s 49th anniversary, we looked back how we lived faithfully in the world as the people God and how we tried to listen and follow the word of God. We also give thanks to God who has led us from the past to the present. As one of the first Korean-Canadian churches in the GTA, we strived to welcome korean immigrants and helped them settle down and live with other people in Canada. We also worked hard to support democracy movement in the Korean Peninsula. Remembering our past achievement, we confess to continue God’s mission which welcomes all the people and brings God’s justice and peace in the world. Just as Peter raised Tabitha and she cared for the widows, we are called to proclaim resurrection and serve others. We are called to wipe away tears, restore life, and testify to God’s love. Ministry is done when we see a need and show up. Ministry is done in response to experienced grace.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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