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아홉번째 주일 / 7월 세번째 주일

새로운 신앙, 야곱의 우물을 넘어서

요한복음 4:12-19

정해빈 목사





1.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2장에는 저 유명한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 혼인 잔치에 가셨다가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시고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몇 달 전에 이 말씀을 가지고 2주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가 나오고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대화한 우물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도 굉장히 상징적이고 감동적이어서 지난 주일에 이어서 오늘 한 번 더 설교하려고 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와 우물가 이야기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이야기 모두 갈등으로 시작했다가 기쁨으로 끝이 납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가 나중에 더 좋은 포도주가 나왔고 예수님을 경계했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나중에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두 이야기 모두 결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는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였고 우물가는 옛날에 신랑 신부가 처음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참 기쁨을 주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대에게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같이 사는 사람도 남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들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 이야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사마리아 여인이 부정한 여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물가 이야기의 주제는 회개가 아니라 깨달음입니다. 여기 말하는 다섯 남편은 다섯 종교를 가리킵니다. 앗시리아/바벨론/페르시아/그리스 같은 나라들이 쳐들어와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종교를 믿도록 강요했습니다. 이렇게 다섯 남편은 다섯 제국의 종교를 가리킬 수도 있고 또는 사마리아 땅에 살았던 다섯 민족의 종교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1724, 이스라엘 자손을 사마리아에서 쫓아낸 앗시리아 왕은 바빌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으로부터 사람들을 데려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성읍에 살게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사마리아를 자기들의 소유로 삼았으며 이스라엘 성읍들 안에 정착하여 살았다.” 앗시리아 왕이 사마리아 땅을 정복한 후에 다섯 민족을 사마리아 땅에 살게 했습니다. 다섯 민족이 사마리아 땅에 들어올 때 자신들의 종교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다섯 민족이 가지고 온 종교들을 섬겨야만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일제 시대에 억지로 신사 참배를 해야만 했습니다. 신사는 일본 민속 신앙을 말합니다. 제국들은 늘 이렇게 자신들의 종교를 식민지 백성들에게 강요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여러 종교들을 섬겨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참된 자유와 기쁨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종교가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제국을 위한 종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슬픈 역사를 정확하게 보시고 당신들에게 여러 종교가 있었지만 당신들은 아직 참된 기쁨을 만나지 못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자신들의 아픔을 정확하게 말씀하시자 사마리아 여인이 당신은 우리에게 우물을 파 준 야곱보다 더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슬픈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야곱의 후손들입니다, 우리들은 야곱이 파 준 우물을 먹고 이제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누구이기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까?” 사마리아 여인이 지금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과 야곱이 판 우물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았습니다. 자신들이 야곱 10지파의 후손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야곱이 판 우물에서 오랫동안 물을 길러 마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물은 영적인 가르침/종교를 가리킵니다. 당신이 야곱보다 큰 자입니까? 야곱의 우물보다 더 좋은 물을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까? 우리들은 예루살렘에 가지 않고 이 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런 말들을 통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오랫동안 식민지 지배를 당하면서도 자신들의 전통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쪽 사람들에게 다윗과 다윗의 전통/우물이 있었다면 북쪽 사람들에게는 야곱과 야곱의 전통/우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전통에 대해 자부심이 너무 강하면 다른 전통과 충돌하기가 쉽습니다. 나의 전통이 최고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전통을 무시하기가 쉽습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이런 갈등을 겪어 왔습니다. 유대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과의 갈등,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갈등, 개신교와 카톨릭과의 갈등, 기독교와 이슬람교와의 갈등, 흑인과 백인과의 갈등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야곱의 전통이 당신들에게 자부심을 가져다 줄 수는 있지만, 지금 당신들이 직면하고 있는 갈등/반목/남쪽 사람들과의 충돌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그 전통이 참된 기쁨과 자유를 주지 못하고 반대로 갈등과 반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의 우물보다 더 깊고 넓으신 하나님, 모든 생명을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 남쪽도 사랑하시고 북쪽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요한복음이 말하는 우물은 종교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종교라는 우물에서 영적인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에 의지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를 영적으로 우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신라/고려 시대에는 불교라는 우물에 의지해서 살았습니다. 악을 행하지 않고 선행을 닦고 마음을 깨끗이 하면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려 시대 땅의 대부분은 불교가 차지했고 승려가 너무 많아서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유교가 영적인 우물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유교/성리학을 공부한 젊은 학자들이 함경도 변방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이성계를 찾아서 지금 고려는 불교도 타락했고 귀족들도 타락했으니 새로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조선은 유교의 가르침을 따라서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平天下) 나를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유교도 조선 말기에는 양반들이 횡포를 부리고 시대의 변화에 둔감해서 사람들에게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일제 시대에는 기독교가 새로운 우물이 되었습니다. 서양 종교를 통해서 보호받고 싶어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기독교의 사랑/평등/박애의 가르침이 일제 시대에 마음이 허전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큰 은혜를 주었습니다. 조선 시대 천시받는 여성들, 백정들, 평민들이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받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제 시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람들은 기독교(개신교/카톨릭)라는 우물에서 일상 생활에 필요한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타락하고 교만해서 저 옛날 불교와 유교가 시들해진 것처럼, 기독교도 점점 우물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 기독교인이 10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들을 가리켜서 가나안 교인이라고 부릅니다. “가나안을 거꾸로 말하면 안나가가 됩니다. 왜 그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을까요? 그것은 교회가 영적인 우물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목사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교회는 고통받는 국민들의 아픔을 모른 체하고 교회 성장에만 몰두합니다. 교회가 폐쇄적이고 상식에 맞지 않는 설교를 하니까 많은 현대인들/지성인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현상은 기독교가 참 우물의 역할, 삶이 힘든 사람들에게 참 기쁨과 자유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개의 우물/종교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종교를 통해서 진리를 깨닫고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우물/종교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자신이 믿는 우물/종교가 세상에 기쁨과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세계 여기저기서 계속 테러가 일어나고 있고 종교간의 갈등, 국가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자기의 전통/종교/우물을 집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자기의 우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갈등을 일으키는 우물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를 일으키는 우물을 만나야 합니다. “당신은 야곱의 우물보다 더 큽니까? 그렇다면 나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십시오사마리아 여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나의 신앙이 세상의 갈등을 해결하고 목마른 사람에게 생수를 주는 그런 신앙이 되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야곱의 우물보다 더 깊고 넓으신 하나님, 모든 생명을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New faith, beyond Jacob’s well

John 4:12 - 19


Are you greater than our ancestor Jacob who gave us the well and with his sons and his flocks drank from it?’ Jesus said to her, ‘Everyone who drinks of this water will be thirsty again but those who drink of the water that I will give them will never be thirsty. The water that I will give will become in them a spring of water gushing up to eternal life.’ The woman said to him, ‘Sir, give me this water so that I may never be thirsty or have to keep coming here to draw water.’ Jesus said to her, ‘Go, call your husband and come back.’ The woman answered him, ‘I have no husband.’ Jesus said to her, ‘You are right in saying, “I have no husband”; for you have had five husbands and the one you have now is not your husband. What you have said is true!’ The woman said to him, ‘Sir, I see that you are a prophet. (John 4:12-19)


In John’s gospel, this woman symbolizes all the Samaritans. That the woman had five husbands means the Samaritans had to serve five empires’ religion. Jesus does not say “Go and sin no more!” as he does to the woman accused of adultery (8:1-11). Instead Jesus speaks to her of worship in spirit and truth; not worship confined to an exclusionary zone based on gender, or ethnicity, or even geography and conventional morality, but worship including her: “God is Spirit, and those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in spirit and truth” (4:24). Five husbands do not mean real people but symbolize five empires and religions who had occupied their lands in the past. They had to worship the gods of empires whenever these countries controlled their lands. Spiritually speaking, they were isolated, rejected, and discriminated. They had been thirsty for not only political freedom but also spiritual comfort and joy for a long time. So Jesus reached out directly to the people of these land who had been suffering from oppression and discrimination, and showed to them God's unconditional love.


In the scriptures, the well has been the place in which people meet and give hospitality to those in need. In the Gospel of John, Jesus met a woman in the well, the place of deep dialogue and reconciliation. “Are you greater than our ancestor Jacob who gave us the well and with his sons and his flocks drank from it?” This question shows that the Samaritans were very proud of the well of Jacob. Whereas the people of Judea were proud of David and his tradition, the Samaritans were proud of Jacob and his heritage. But Jesus said to them, “Everyone who drinks of this water will be thirsty again but those who drink of the water that I will give them will never be thirsty.” Each religion has their wells, teachings, and wisdoms. People get spiritual water, grace and wisdom, from their own religions/wells. But Jesus warns that once we are attached to our own wells, we feel thirsty again and find ourselves having trouble with other people. Jesus teaches us that God loves all the people including Judea and Samaria and God of love is bigger than the well of Jacob in history. We are encouraged to welcome God of love and grace beyond our own historical religion.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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