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여섯번째 주일 / 7월 첫번째 주일
욥기, 선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욥기 19:25 - 27; 23:1 - 7
정해빈 목사

 

 

 


1. 세상을 살다보면 이해 안 되는 일들이 많을 때가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자연재해, 생로병사, 사고와 질병을 겪을 때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원인없는 일이 벌어질 때 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일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세상일을 아는 지식이 많아졌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지구 끝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어서 바다 끝에는 절벽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지구가 동그랗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과학자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말했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교황으로부터 심문을 받고 자기 소신을 취소했던 갈릴레오는 법정을 나가면서 혼자말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과학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사실들이 밝혀질 것입니다.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진실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 우리는 과거의 무지와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나중에 이해되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성경을 많이 읽어도 여전히 이해 안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신앙은 영적이고 신비적인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종교에는 반드시 영적인 것과 신비적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덮어놓고 믿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일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머리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가슴이 믿을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 안 되는 것을 가슴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믿는 것을 머리로 이해할 때 더 잘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묻고 질문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은 더 풍성해 질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가장 이해 안 되는 본문 중의 하나가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이 맨 처음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어떻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자식을 죽여서 불로 태워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 본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아들은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너는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 나를 더 사랑하느냐 아니면 자식을 더 사랑하느냐? 너는 나를 위해 하나뿐인 자식을 바칠 수 있느냐? 이렇게 시험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물질, 재물, 건강,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잘 통과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본문이 고대 중동 지방에 있었던 자식을 신에게 바치는 악습에 대한 히브리 사람들의 신앙 고백을 기록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식을 바치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록 아브라함을 시험해서 자식을 바치라고는 했지만 자식을 죽이려는 순간에 등장해서 자식을 살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 대한 약간 다른 관점을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2장 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종들과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 산에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3일을 걸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이런 요구를 하실까? 내가 자식을 너무 사랑하니까 질투가 나셨나?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식을 죽여 불로 태워 바치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을까? 이런 하나님을 내가 믿어야 하나? 하나님은 잔인하신 분인가 아니면 선하신 분인가? 아마도 아브라함은 이런 갈등을 하면서 3일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어느 집에 아주 자비롭고 인자하신 아버지가 한분 계셨습니다. 평생 자식들에게 아쉬운 소리나 싫은 소리 한번 하신 적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자식들을 불러놓고 “이유를 묻지 말고 내가 돈이 필요하니까 천만원 내 앞으로 가지고 와라” 말을 합니다. 자식들이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저럴 분이 아닌데 왜 저런 말을 하실까? 이제껏 한 번도 저런 요구를 하신 적이 없는데 왜 저런 요구를 하실까? 아버지가 갑자기 변하셨나? 나이드시더니 노망이 드셨나? 자식들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와 비슷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런 요구를 하실 분이 아닌데 왜 저런 요구를 하실까? 왜 갑자기 선하신 하나님이 잔인한 하나님이 되셨을까? 아마도 아브라함은 이런 고민을 하면서 3일을 말없이 걸어갔을 것입니다.

2. 우리가 욥기서에 보는 욥의 질문도 이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실까? 내가 누구보다도 의롭고 바르게 살았는데 왜 이런 고난을 주실까? 욥의 질문도 아브라함의 질문과 비슷했습니다. 욥기와 관련하여 3가지의 주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번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는 주장이고 2번은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주장이고 3번은 욥이 의인이라는 주장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3번이 틀렸다고 주장했습니다. 욥이 죄인이기 때문에 고난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욥이 당대의 의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욥이 지은 죄가 많아서 고난을 받았다면 욥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욥도 이와 비슷한 말을 친구들에게 했습니다. 나의 고난이 죄 때문이라면 내가 무슨 죄를 얼마나 크게 졌다고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항변했습니다. 욥은 이 세상에서 가장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욥의 고난이 죄 때문이라는 친구들의 주장 3번은 틀린 것이 됩니다.

욥은 2번이 틀렸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선하시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힘은 세지만 착하지 않고 잔인한 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선한 분이라면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힘은 세지만 선하시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욥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내가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욥을 한번 시험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으셨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고난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착한 분이 아니라 힘센 분이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내가 억울하다고 외쳐도 하나님은 피조물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욥의 마음이 더 괴로웠습니다. 하나님, 정말 당신은 잔인한 분이 맞습니까? 당신은 이제 보니 피조물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분이셨습니다. 욥은 마지막에 내 육체가 없어질지라도 꼭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이 정말 잔인한 분인지 하나님이 정말 어떤 분인지 대답을 듣겠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욥의 주장대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지만 선하지 않기 때문에 욥이 고난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하나님은 선하시지만 전지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욥이 고난받을 수도 있습니다. 욥의 고난을 설명하려면 1번을 부정하거나 2번을 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1번과 2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선택해야 할까요? 힘은 세지만 착하지 않은 하나님? 아니면 힘은 없지만 착한 하나님? 이렇게 질문하면 힘도 세고 마음도 착한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되냐고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 다 선택하면 욥의 고난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힘이 세거나 마음이 착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욥의 생각과 정반대로 2번을 선택하고 1번을 부정할 수는 없을까요? 하나님은 힘이 세고 괴팍한 분이 아니라 착하신 분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까요?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잔인하고 난폭한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로우셔서 우리의 고통을 보며 함께 아파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선하신 하나님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선하신 분이십니다. 다른 것은 포기해도 이것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전지전능하고 힘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처럼 힘을 갖으려고 합니다.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억누르려고 합니다. 나는 힘이 있고 너는 힘이 없으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년 전에 유럽의 기독교가 아프리카에서 1000만 명의 흑인들을 노예로 잡아서 아메리카로 끌고 갔습니다. 힘 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전지전능하고 힘 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도 힘 센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도 하나님처럼 선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고 할 것입니다.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자비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 고통받는 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Job, God is good and righteous
Job 19:25-27; 23:1-7

My best friends and loved ones have turned from me. I am skin and bones-- just barely alive. My friends, I beg you for pity! God has made me his target. Hasn't he already done enough? Why do you join the attack? I wish that my words could be written down or chiseled into rock. I know that my Savior lives, and at the end he will stand on this earth.  My flesh may be destroyed, yet from this body I will see God. Yes, I will see him for myself, and I long for that moment. (Job 19:19-27)

Job said: Today I complain bitterly, because God has been cruel and made me suffer. If I knew where to find God, I would go there and argue my case. Then I would discover what he wanted to say.  Would he overwhelm me with his greatness? No! He would listen because I am innocent, and he would say, "I now set you free!" I cannot find God anywhere-- in front or back of me, to my left or my right. God is always at work, though I never see him. But he knows what I am doing, and when he tests me, I will be pure as gold. (Job 23:1-10)

When God spoke to Abraham, "take your Son Isaac to the land of Moriah and you must sacrifice him to me on the fires of an altar," Genesis 22 says that Abraham got up early the next morning and chopped wood for the fire. He put a saddle on his donkey and left with Isaac and two servants for the place where God had told him to go. Three days later Abraham looked off in the distance and saw the place. Although he responded to the order of God instantly, God's message would be a big shock to him. How could God say to me like this? What kinds of God do I believe? What kinds of God could say to kill my only son? Abraham would be in great confusion while he walked up to the mountain for three days. These questions seized him for 3 days. Abraham wanted to know what types of God he believe.

When Job faced the tragedy that he had never experienced before, he had the same question about God as Abraham had in mind. Where did this severe suffering come from? According to the Book of Job, we are invited to deny one out of three points to explain the hardship of Job. First, God is powerful; second, God is good; third, Job is a righteous person. Job's three friends negate the third points whereas Job denies the second points. According to their perspective, Job suffers because Job is a sinner or God is not good but powerful and omnipotent. They thought that the suffering came from Job's sinfulness or God's free will. But We cannot deny the second point that God is good. The scripture says repeatedly that God is good and generous. Job's suffering comes from neither Job is sinful nor God is cruel and powerful. Rather God is with us when we weep and cry. Do not think that everything comes from God. Rather God is always here to help us. Amen.

Posted by 정해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