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여덟번째 주일
예레미야서 7:1 - 13
종교가 타락할 때
정해빈 목사



1. 많은 교회들이 10월 마지막 주일을 교회개혁기념주일(Reformation Sunday)로 지킵니다. 지금부터 497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로마 교황청의 타락을 비판하면서 교회개혁이 시작되었고 개신교가 만들어졌습니다. 3년 후인 2017년이 되면 교회개혁 500주년이 됩니다. 청년들에게 10월 31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할로윈(Halloween)라고 말할 것입니다. 할로윈은 성인의 날 전야제(All Hallows' Eve)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마틴 루터는 성인 유적을 만지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미신들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로마 카톨릭과 성자의 날에 반대하는 글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교회개혁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종교가 기독교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이라고 불렀는데 타 종교인들이 들으면 기분나빠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은 다종교 사회이고 종교 전체를 개혁한 것이 아니고 교회를 개혁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개혁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루터, 칼빈, 쯔빙글리, 낙스와 같은 많은 신앙인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중세 카톨릭을 비판하면서 개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개신교를 가리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부릅니다. Protest 라는 말에는 저항한다, 개혁한다 라는 2가지 뜻이 들어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불의에 저항하고 안을 향해서는 스스로 개혁하는 것이 개신교의 정신입니다.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는 교회, 세상의 질서/논리를 따라가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예할 때 예 하고 아니오 할때 아니오 하는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또한 동시에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 자기를 반성하는 교회, 진리 앞에서 겸손한 교회, 하나님 앞에서 정직되고 진실된 교회, 세상과 삶에 대해 성실하고 책임을 다하려는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종교가 타락할 때(When a religion becomes evil)” 이렇게 정했습니다. 본래 종교는 가장 높은 가르침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가장 높은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종교는 우리들에게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고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줍니다. 뿐만 아니라 욕심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을 자유하게 합니다.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는 평안과 위로를 얻고, 욕심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종교 생활을 깊이 하면 할수록 우리의 인격은 높아지고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종교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자유롭게 합니다. 모든 종교들이 처음에는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가 변질되고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맑고 순수했던 종교의 가르침이 시간이 지나면서 딱딱해지고 변질되고 심지어는 본래의 가르침과 정반대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런 변질된 종교를 믿게 되면 우리의 삶도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본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믿는 종교의 어느 부분이 변질되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종교의 본래 가르침을 믿어야지 변질된 종교의 가르침을 믿으면 안 됩니다. 자신의 삶이 신앙생활을 통해서 더 진실해지고 풍성해졌는지 아니면 더 억압적이 되었는지를 보면 자신의 신앙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17세의 말랄라 유사프자이라는 학생이 2014년 최연소 노벨 평화상을 받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말랄라는 파키스탄 이슬람 탈레반이 여성의 외부활동을 금지하고 여학교를 폐쇄한 것을 BBC 방송 블로그를 통해 세계에 알렸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탈레반의 총격으로 치명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또 최근 이라크에서는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라는 조직이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여성들을 첩으로 삼겠다고 선언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라크에 거주하는 기독교 소수민족 야지다족을 노예로 만들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런 예들은 종교가 타락하면 가장 끔찍한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어느 종교이든지 극단적인 근본주의 신앙이 문제입니다. 며칠 전에 오타와에서는 이슬람을 믿는 청년이 총을 들고 국회 의사당에 난입해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본래 종교는 삶을 풍성하게 하고 의미있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종교가 변질되면 삶을 풍성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억압하게 됩니다. 이슬람교는 말할 것도 없고 힌두교에는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있어서 사람을 차별합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가장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종교전쟁, 노예무역,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제국주의 침탈 등의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2. 종교가 타락했는지 안했는지를 알 수 있는 몇 가지 지표가 있습니다. 첫째로 자신들이 남들보다 우월하고 하나님이 자신들만을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 종교는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신들만을 특별하게 사랑한다고 믿는 신앙을 종족주의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나와 우리 가족과 우리 민족만을 특별하게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신앙이 종족주의 신앙입니다. 이 신앙을 믿게 되면 나와 신앙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게 되고 그 사람들은 벌을 받거나 죽여도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히브리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이집트의 모든 장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어린아이와 가축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을 다 죽이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집트 백성들이나 가나안 백성들은 다 죽어야 한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을 아멘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본래 성경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떠돌이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키시는 이야기들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만 사랑하시고 자신들만이 특별하게 선택받았다는 종족주의/선민주의, 하나님 믿지 않는 민족들은 죽여도 좋다는 배타주의 신앙이 성경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진실된 이야기가 변질된 이야기가 같이 들어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어떤 것이 진실된 이야기이고 어떤 것이 변질된 이야기인지를 잘 가려서 읽어야 합니다.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을 고백한 부분을 잘 찾아서 읽어야 합니다. 종족주의/선민주의/배타주의 신앙이 기록된 부분은 가려서 읽어야 합니다.

종교가 타락했는지 안했는지를 알 수 있는 두 번째 지표는 종교가 자기 욕망과 자기 이익을 추구할 때입니다. 자기 욕망을 추구하고 부추기는 종교, 돈과 권력과 힘을 추구하는 종교는 거짓되고 타락한 종교입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 낮아지고 겸손해집니다. 자기를 비우게 됩니다. 자기 욕망을 낮추고 나누는 삶을 살게 됩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들은 모두 나누는 삶, 비우는 삶, 겸손한 삶을 살았습니다. 반대로 타락한 종교는 욕망을 부추깁니다. 권력과 힘을 갖으려고 하고 예수 믿으면 복 받고 부자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자기를 비우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에 자기 욕망을 채워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저 유명한 믿음 장이 나옵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정의와 자비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다가 고난과 시련을 받았습니다. 믿음 장에 나오는 많은 신앙의 선배들 중에 자기 욕망을 위해서 살아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서 7장을 보면 예레미야가 살았던 시대상이 나옵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할 때 소명을 받았습니다. 남 유다가 망한 이유는 정치와 종교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종교가 타락하면 그 사회에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습니다.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람들 사이의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정치인데 정치가 타락하니 억울한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사람들 사이의 문제와 갈등은 점점 심해집니다. 정치가 타락하는 것은 늘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종교마저 타락하면 백성들이 기댈 곳은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 하고 속이는 말을 하지 말아라. 너희가, 모든 생활과 행실을 바르게 고치고, 이웃끼리 서로 정직하게 살면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으면, 내가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 하도록 준 이 땅, 바로 이곳에서 너희가 머물러 살도록 하겠다.” 크고 화려한 성전을 자랑하지 말아라. 바른 삶을 살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신교(Protestant)의 정신이 저항과 개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불의에 저항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전통이나 구습에 얽매이지 않고 잘못된 세상 질서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개혁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바깥세상을 비판하기는 쉬우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이 부책임이나 방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참 신앙인은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겸손하고 성실합니다. 불의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살아갑니다. 교회개혁을 외쳤던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로마 카톨릭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저항했습니다. 동시에 검소하고 겸손하고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는 저항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하고 성실한 삶을 사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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