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두번째 주일 / 9월 두번째 주일

창조절, 폭력의 하나님과 자비의 하나님

요나서 4:9-11, 마태복음서 16:1-4

정해빈 목사

 

 


 

1. 창조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성경은 히브리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고백을 기록한 책인데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하나님을 만났는지를 잘 기록해 놓았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히브리 사람들이 고백한 두 종류의 하나님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메시야 하나님 이미지이고 두 번째는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불행하게도 성경에는 두 번째 이미지보다 첫 번째 이미지가 훨씬 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보다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이미지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메시야 하나님이 아니라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메시야 하나님을 따르면 안 됩니까? 이렇게 질문하실 수 있습니다.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메시야 하나님을 따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힘과 능력을 좋아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폭력적인 하나님을 따르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쉽게 남을 정죄하고 이웃에게 말과 행동으로 폭력을 행사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이미지가 여러 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출애굽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노예로 고통받는 히브리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 사람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 재앙으로 인해 이집트의 첫 번째 자식/동물들이 죽임을 당했고 각종 자연재해와 전염병이 닥쳤습니다. 물론 이 일들은 바로 왕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메시야가 되셔서 상대방을 향해 폭력을 휘두른 것은 분명합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하나님이 전쟁 용사가 되셔서 상대방을 폭력으로 부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폭력을 써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폭력을 메시야 하나님의 구원하는 폭력이라고 부릅니다. 옛날에도 그렇고 오늘날에도 이런 하나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에게 무서운 벌을 내려 주십시오. 그들을 모두 전멸시켜 주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선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두 번째 이미지는 우리를 처벌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지켜주시기 때문에 절대로 나라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바벨론이 남유다를 멸망시켰을 때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해석해야 할 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때 일부 사람들은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외적의 힘을 빌려서 자신들을 처벌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이미지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미지라면 두 번째 이미지는 우리를 처벌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했을 때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젊은이들은 포로가 되어 다른 나라로 끌려갔습니다. 이 모든 끔찍한 일들이 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해석을 하게 되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처벌하는 무서운 하나님이 됩니다. 일제가 35년 동안 한국을 지배한 것도,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강제로 군인으로 끌려가고 노동자로 끌려가고 수많은 어린 딸들이 종군 위안부로 끌려간 일도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처벌하신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폭력으로 처벌하시는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세 번째 이미지는 마지막 종말에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마지막 종말에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진노의 포도주 틀에 가두어넣고 다 죽이는 이야기가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 제국 치하에서 끝까지 핍박을 견디는 사람은 영광의 면류관을 받지만 로마 제국은 심판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는 이런 부분을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세상에 악인들이 득세하고 의인들이 고난받는 것을 보면서 이런 신앙이 생겨났습니다. 너무 세상이 불공평하니까 하나님께서 지금은 참고 계시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 폭력을 행사하셔서 악인들을 다 죽이고 심판하실 것이라는 신앙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신앙 이미지를 가리켜 폭력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미지라고 합니다.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출애굽기), 당신의 백성을 처벌하시는 하나님(바벨론 포로), 마지막에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요한계시록), 이 3가지 신앙은 모두 폭력을 행사하시는 하나님 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이미지를 좋아하다 보면 이런 3가지의 하나님 신앙을 갖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뜻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아픈 자들을 일으키시고 우리에게 새 힘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시다는 것을 폭력을 행사하신다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어느 날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기적을 보여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날씨의 징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기적을 요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기적밖에는 아무 기적도 받지 못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쓰실 때가 언제입니까? 구원하는 폭력이든지, 처벌하는 폭력이든지, 아니면 마지막 때 일어날 심판하는 폭력이든지,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셔서 저 원수들을 다 쳐부수고 악인들을 심판하실 날이 언제입니까? 사람들이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요나의 기적 밖에는 보여줄 기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통 요나의 기적이라고 하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견디다 다시 살아난 것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요나 한사람이 죽었다 살아난 것도 기적이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요나서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큰 성읍 니느웨” 사람들을 용서하신 것이 더 큰 기적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심판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요나의 기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품에 안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기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적 중의 기적은 사랑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기적이지만 저 원수, 원수가 가족(남편, 아내)일 수도 있고 가까운 이웃일 수도 있고 다른 민족일 수도 있지만, 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원수를 쳐부수자가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자가 되어야 합니다. 악에 저항하되 폭력이 아닌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폭력의 하나님을 믿지 말고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따라 자비로운 삶을 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가끔 신문 방송을 보면 나이 드신 노인들이 군복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면서 원수를 쳐부수자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막상 전쟁나면 자기들이 전쟁터에 나갈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꽃다운 청년들이 죽습니다. 보통 청년들은 젊어서 그런지 인생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사고도 안 나고 죽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차 보험회사가 청년 운전자들에게 가장 높은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청년들이 겁이 없어서 사고를 많이 내기 때문입니다. 군인들 나이가 20살, 21살 인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때 나이는 용감해서 그런지 물불을 안 가립니다. 전쟁이 나면 아직 피어나지도 못는 우리 아들들이 제일 먼저 죽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경을 들여다봅니다. 비록 성경에는 폭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미지가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바로 본래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면 그것은 폭력을 사용하셔서가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새 힘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창조하시는 하나님,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상한 갈대를 꺼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인줄로 믿습니다. 연약한 생명을 붙드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따라 사랑과 자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God of violence and God of compassion

Jonah 4:9-11, Matthew 16:1-4


During the day the LORD sent a scorching wind, and the sun beat down on Jonah's head, making him feel faint. Jonah was ready to die, and he shouted, "I wish I were dead!" But the LORD asked, "Jonah, do you have the right to be angry about the vine?" "Yes, I do," he answered, "and I'm angry enough to die." But the LORD said: You are concerned about a vine that you did not plant or take care of, a vine that grew up in one night and died the next. In that city of Nineveh there are more than a hundred twenty thousand people who cannot tell right from wrong, and many cattle are also there. Don't you think I should be concerned about that big city? (Jonah 4:8-11)


The Pharisees and Sadducees came to Jesus and tried to test him by asking for a sign from heaven. He told them: If the sky is red in the evening, you say the weather will be good. But if the sky is red and gloomy in the morning, you say it is going to rain. You can tell what the weather will be like by looking at the sky. But you don't understand what is happening now. You want a sign because you are evil and won't believe! But the only sign you will be given is what happened to Jonah. Then Jesus left. (Matthew 16:1-4)


God of violence and God of compassion, they are the images of God mainly confessed in the scripture. Both images are incompatible and opposite in terms of character and nature. But the scripture shows both images as if God is sometimes violent and sometimes compassionate. God of violence is expressed in three images in detail; first is messianic violence. God uses God's power to save God's people. According to the book of Exodus, God slaughtered Egyptian people to set God's people free from slavery. Second is punishing violence. When Hebrew people were conquered by the foreign Empires, they thought that it was God's punishment because they did not follow God's law. Third is apocalyptic violence which God will do in the final day of the world. According to the book of Revelation, God is supposed to come down to the world to judge the evil with violence.


Jesus preached, taught, and healed people based on God of compassion, not of violence. When people asked Jesus for a sign from heaven, probably saying, "when will God punish the evil? is it the right time to anticipate God's messianic violence?," Jesus mentioned the miracle of Jonah. According to the book of Jonah, God forgave and spare more than a hundred twenty thousand people who cannot tell right from wrong and many cattle in the city of Nineveh. Loving enemies and resisting evil with nonviolence, Jesus said that is the true miracle that God wants to give us. We are called to believe in God in Jesus who has created and is creating the world, loves all lives, raises those in despair, and reconciles all the creatures with God.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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