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네번째 주일 / 청년주일

3.1절 기념주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시편(Psalms) 37:34 - 40

정해빈 목사

   



1. 우리 교회는 매년 3월 첫째 주일을 3.1절 기념주일/청년주일로 지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 이야기 대신 역사와 영화 이야기를 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여 인류 평등의 대의를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고하여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유하게 하노라.” 독립선언서의 첫 번째 내용입니다. 3.1 운동이 일어난 지 40일이 지난 1919410일 중국 상해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모여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만들었습니다. 500년간 지속되었던 조선 왕조를 끝내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포했습니다. 한반도 5000년 역사에 최초로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이 아니라 국민이 다스리는 민국, 군주가 주인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을 선포했습니다. 3.1 운동의 열기가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출발은 19193.1절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두 편의 영화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영화는 일본군 성 노예 위안부로 끌려갔던 10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귀향이라는 영화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귀향(鬼鄕)은 귀신 귀자 고향 향자를 써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영혼을 가리킵니다. 최대 20만 명의 조선 처녀들이 성 노예로 끌려갔는데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정부에 정식 등록된 위안부 여성은 238명에 불과하고 그 중에서 현재 45명이 살아 있습니다. 일반 시민 73천명이 영화 제작 비용을 후원했고 주요 배우들이 재능 기부로 참여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해 1-2개의 스크린에서 상영했는데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지금 현재 한국 Box Office 1, 8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상영하고 있습니다. 젊은 영화감독이 2002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사는 나눔의 집을 방문했다가 강일출 할머니가 미술심리치료 과정에서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을 보게 됩니다.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이 산속 구덩이에서 불타는 것을 목격한 할머니가 그때의 기억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영화감독이 그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아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 후 14년의 노력 끝에 2016224일 영화를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영화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충격을 받아서인지 몸도 많이 아팠어요. 그리고 새벽에 꿈을 꿨죠. 구덩이에서 불에 타 죽은 소녀들이 어느 순간 일어났는데 피로 얼룩진 옷들이 흰옷으로 바뀌고 상처도 없어진 거예요. 발을 살짝 들더니 소녀들이 하늘을 나는데, 뭐랄까 장관이었죠. 돌아가신 분들이 지금 고향으로 너무 돌아오고 싶어 하는구나,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때부터 이걸 영화로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복수나 심판보다 슬픔을 잘 표현해서 좋았다, 너무 아름다웠고 너무 슬펐다고 말했습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영화의 첫 대사는 숨바꼭질 노래로 시작합니다. 남의 눈에 뜨일까봐 숨어야만 하는 어린 소녀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시대에는 국가와 사회가 그리고 어른들이 어린 소녀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19412차 대전 때 캐나다 정부가 BC 주에 살고 있는 일본계 케네디언 22천명을 내륙 지방으로 강제로 이주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캐나다 정부는 300 Million의 배상금을 일본 정부에 주었고 일인당 21,000불을 배상했습니다. 1870년부터 1990년까지 120년 동안 캐나다 정부가 15만 명의 원주인 자녀들을 강제로 기숙학교에 살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2008년 정부는 진실과 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을 만들어 진상을 조사했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350 Million을 배상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20만 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고작 10 Million을 주기로 합의했습니다.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1970년 독일의 수상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참회했던 그런 행동을 일본 정부는 할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이번 합의에 분노하는 뜻에서 이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 요즘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두 번째 영화는 동주라는 영화입니다.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2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했던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북간도 명동촌은 함경북도 회령 북쪽, 두만강 너머에 있는 땅을 가리킵니다. 일제 시대에 많은 애국지사들이 명동과 용정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도 명동마을 뒷산에서 사격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윤동주, 문익환, 송몽규는 명동소학교와 캐나다 선교사님들이 세운 용정 은진중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특히 윤동주와 송몽규는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 연희전문학교, 일본 유학,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까지 일생을 함께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윤동주와 문익환은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가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바람에 학교가 폐교당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가운데가 문익환, 오른쪽이 윤동주, 왼쪽이 송명규, 밑에 앉은 사람이 정일권입니다. 주는 19452월 해방을 몇 개월 앞두고 일본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일본군들이 죄수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한 것이 사망의 원인이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할 수 있을까요, 인류 역사상 가장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군대가 바로 일본 군대였습니다. 이 세상에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군대가 사라지고 생체 실험이 사라지고 성 노예가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영화 귀향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소녀들의 아픔을 다루었고 영화 동주는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소년들의 아픔을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귀향동주모두 복수와 증오와 심판을 주제로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100년 전 고난의 시대를 살아갔던 젊은이들의 고뇌와 아픔을 담담하게 잘 묘사했습니다.

 

어떤 분이 영화 평을 하면서 동주와 몽규도 감동적이었지만 동주와 몽규를 취조하던 일본 순사가 조서에 사인을 거부하며 절규하는 동주를 바라보면서 살짝 눈물이 고이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런 시대에 태어나 시인으로 살고자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며 오열하는 동주의 마지막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주는 살면서 부끄럽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하루하루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창씨개명을 미루고 미루다가 일본 유학을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을 하고는 <참회록>을 썼습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滿) 이십 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동주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용기 있고 정직한 사람만이 참회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지 못하면 자신이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동주는 참 여리고 착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582장은 김재준 목사님이 작사하신 곡인데 가사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습니다. 어둔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여기서 말하는 어두운 시대는 일제 시대를 가리킵니다.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한국을 가리키고 빛 속에 새롭다는 광복을 가리킵니다. “이 빛 삶 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탑 놓아간다.” 원래는 1-2절로 되어 있는데 나중에 문익환 목사님이 옥중에서 3절을 쓰셨습니다. “맑은 샘줄기 용솟아는 고향 북간도의 용정을 가리키고 거칠은 땅에 흘러적실 때는 그의 고향 마을 앞을 흐르던 해란강을 가리킵니다.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 트인다.” 찬송가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찬송가 582, 하나님께서 한민족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실 것을 염원하는 찬송가가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37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의 법도를 지켜라. 주님께서 너를 높여 주시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니 악인들이 뿌리째 뽑히는 모습을 네가 보게 될 것이다. 악인의 세력을 내가 보니 본고장에서 자란 나무가 무성한 잎을 뽐내듯 하지만 한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흔적조차 사라져 아무리 찾아도 그 모습 찾아볼 길 없더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으나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할 것이니 악한 자들은 미래가 없을 것이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부끄러워할 때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 그런 나라와 민족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오늘 청년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지금부터 100년 전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청년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들의 삶은 생사를 넘는 삶이었을 것이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청년의 삶이 그때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요즘 같은 경쟁 시대에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100년 전 가장 어두웠던 시대를 살면서도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던 그 시대의 젊은이들을 기억하십시다. 아무리 세상이 거칠고 어려워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 땅에 정의와 평화의 생명탑을 쌓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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