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 4월 두번째 주일
마가복음 14:3 - 9
사순절, 사랑은 거룩한 낭비
정해빈 목사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보내신 마지막 일주일을 묵상하는 종려주일/고난주일이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14장에는 수요일에 있었던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께서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머무실 때, 한 여자가 나드 향유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 이 향유를 팔면 300 데나리온 정도 되는데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1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니까 300 데나리온은 1년 품삯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를 괴롭히지 말아라. 이 여자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인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말씀 중에서 최고의 칭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 중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한 일도 같이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한 경우는 이곳이 유일합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이 사람의 이야기도 같이 전파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복음,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파될 때마다 복음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예가 필요한데 이 여인이 한 행동이 가장 좋은 예로 소개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여인의 행동에 크게 기뻐하시고 감동받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주목할 만한 사실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이름없는 한 여인이 예수님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권위있는 남자 예언자가 다른 사람 머리에 기름을 부어서 그 사람을 왕이나 제사장이나 예언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권위있는 남자 예언자가 아니라 한 이름없는 여인이 그동안 모아두었던 기름을 예수님 머리에 부었습니다. 남자 예언자만이 기름을 붓는 것이 아니라 “여성 예언자”도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향해서 권위있는 남자 예언자만 기름을 부을 수 있는데 네가 왜 나에게 기름을 부었느냐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 여인의 행동을 인정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를 히브리어로 “메시야”라고 부르고 헬라어로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한 번도 당신이 메시야/그리스도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가복음 14장 바로 이 순간 이 여인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기름부음 받은자, 메시야/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야/그리스도”가 되려면 누군가가 자기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글자 그대로 “기름부음 받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예수님 머리에 기름을 붓지 않으니까 예수님이 “기름부음 받은 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이 여인만이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메시야/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고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드렸습니다. 이 여인의 헌신을 통해서 비로소 예수님은 글자 그대로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야/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왕이나 대제사장이 취임할 때 성전에서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전통이었습니다. 보통 왕이나 대제사장은 화려한 성전에서 크고 웅장하게 취임을 하고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문둥병을 앓았던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중에 이름없는 한 여인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야 기름부음은 왕이나 대제사장의 기름부음과 달랐습니다. 왕이나 대제사장은 취임할 때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장례식을 앞두고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메시야는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길 때, 자기 목숨을 내어줄 때 진정한 메시야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주님,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는 주님, 바로 이 주님이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야/그리스도/구세주”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직 이 여인만이 주님이 영광의 메시야가 아니라 고난과 섬김의 메시야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고난을 거부하였다가 책망받았고 다른 남자 제자들도 마지막에는 다 주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오직 이 여인만이 잡히시기 전날 밤, 주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이 메시야/구세주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기름을 부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기름을 부었습니다. 레위기를 보면 곡식 제사(소제)를 드릴 때 곡식을 가루로 만든 다음 가루에 기름을 부었고 또 옛날에는 장례를 치를 때 시신에 기름을 발랐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제물로 바쳐질 것이라는 것을 미리 내다보고 주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다른 제자들이 저 향유를 팔면 300 데나리온인데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제자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셨습니다.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고난이 닥쳐올 것을 알고 계셨던 주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신 주님이야 말로 가장 가난한 분이셨고 가장 고통받는 분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여인이 자신의 머리에 기름 붓는 것을 보시며 큰 위로와 용기를 얻으셨습니다. 행동하지 않고 입으로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사랑과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이 여인도 같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인데 무엇이 기쁜 소식일까요? 섬기는 사랑, 자기를 주는 사랑이 기쁜 소식입니다. 주님은 자기 몸을 우리들에게 주셨고 이름없는 여인은 그동안 모아두었던 비싼 기름을 마지막 길을 가시는 주님께 드렸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고 기쁜 소식은 사랑이며 사랑은 아낌없이 자기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은 낭비입니다. 낭비는 낭비인데 거룩한 낭비요, 아름다운 낭비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거룩한 낭비를 실천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여인이 주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가는 심정으로 그동안 모아두었던 기름을 붓는 것을 보시고 이 여인이 복음의 정신을 삶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이야기도 같이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딱 한번쯤 아낌없이 주는 사랑, 거룩한 낭비를 실천하는 사람은 복음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도 행복할 것이고 사랑을 받는 사람도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런 사랑을 실천할 때, 거칠고 삭막한 세상은 조금씩 변화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 아낌없는 사랑을 실천하셨고, 이 여인은 귀한 기름을 부음으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과 여인을 따라 자기를 주는 사랑, 거룩한 낭비를 실천하는 사랑,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Lent, love is holy waste
Mark 14:3 - 9
While he was at Bethany in the house of Simon the leper, as he sat at the table, a woman came with an alabaster jar of very costly ointment of nard, and she broke open the jar and poured the ointment on his head. But some were there who said to one another in anger, ‘Why was the ointment wasted in this way? For this ointment could have been sold for more than three hundred denarii, and the money given to the poor.’ And they scolded her. (Mark 14:3-5)
But Jesus said, ‘Let her alone; why do you trouble her? She has performed a good service for me. For you always have the poor with you, and you can show kindness to them whenever you wish; but you will not always have me. She has done what she could; she has anointed my body beforehand for its burial. Truly I tell you, wherever the good news is proclaimed in the whol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be told in remembrance of her.’ Amen. (Mark 14:6–9)
The woman in Bethany anointed Jesus' head to proclaim Jesus as the Messiah/Christ, which means the one anointed, and to prepare for the funeral of Jesus. She poured expensive oil on his head because she knew that Jesus was the Messiah of suffering and service. Jesus was so much touched by her dedication that he said wherever the good news is proclaimed in the whol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be told in remembrance of her. Just as Jesus showed us his generous love by giving himself to us, the woman also showed us sacred waste along with the Lord. Self-giving love and sacred waste save the world. Jesus invites us into this holy love.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