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후 일곱번째 주일 / 2월 세번째 주일
주현절, 가정의 결핍을 치료하시다
누가복음 7:11 - 17
정해빈 목사
몇 주 전에 “주현절, 사회적 결핍을 치료하시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사람들의 병을 고치신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사회적 결핍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꼭 갖추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부족할 때 우리는 “무엇이 결핍되었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건강의 반대말이 결핍이고 결핍의 반대말이 건강입니다. 사람은 우선 신체적인 결핍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은 의식주, 입어야 하고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합니다. 좋은 음식과 깨끗한 물을 먹고 마셔야 하고 따뜻한 햇빛을 쬐어야 하고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아야 합니다. 잘 입고 잘 먹고 잘 자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신체적인 조건, 의식주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집이 없는 사람도 쉼터에 가면 최소한의 의식주 혜택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은 신체적인 결핍이 채워질 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또한 사회적인 결핍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속한 사회가 편안하고 안전해야 나도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회가 위험하고 공격적이고 차별적이면 사람은 불안해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전쟁과 테러가 없어야 하고 인종차별과 폭력과 억압이 없어야 하고 여성과 노인과 장애인들과 어린이들이 보호받아야 합니다. 인종, 성, 신분, 빈부격차에 상관없이 누구나 존중받고 보호받을 때 사람은 이 땅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신체적으로 건강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속한 사회가 불안하고 위험하면 나는 온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나와 사회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또한 영적인 결핍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사랑과 보호 속에서 살아야 온전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내가 가정으로부터 사랑받고 있고 이웃으로부터 사랑받고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람은 온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선포함으로서 사람들의 영적인 결핍을 채워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교회 신앙생활을 통해서 이런 영적인 결핍을 채움 받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고 말씀으로 변화받기 원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받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런 영적인 결핍을 채워주는 곳이 되어야지 반대로 사람을 억압하거나 겁 주거나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강요해서도 안 되고 무서운 하나님, 벌 주는 하나님을 증거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사람을 자유하게 하고 감사하게 하고 기쁘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주시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신체적인 결핍이 없어야 하고 사회적인 결핍이 없어야 하고 영적인 결핍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전하고 행복한 삶을 이 땅에서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신체적인 결핍, 사회적인 결핍, 영적인 결핍 뿐만 아니라 가정의 결핍을 치료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결핍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정의 결핍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나고 가정을 통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가정을 통해서 인생을 마칩니다. 가정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근원이요 보호처 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의 삶에 중요한 가정이 결핍되면 우리의 삶은 파괴되고 병들게 됩니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가정에 사연이 있고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습니다. 나의 가정뿐만 아니라 부모와 형제까지 포함해서 생각해 보면 모든 가정에 어려움이 있고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가정의 결핍을 치료해 주심으로 사람들을 일으켜 주셨고 사람들의 삶을 온전하고 풍성한 삶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7장 말씀을 보면 나인 성에 사는 과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장례 일행이 성문 앞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예수께서 그 장면을 보시고 가엾게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가엾게 여기셨다, 불쌍히 여기사”라는 말을 헬라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splagcnivzomai)라고 하는데 이 말은 애간장이 녹는다,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자식을 잃은 과부의 아픔을 보시고 같이 슬퍼하셨습니다. 남편 없이 홀로 아들을 키우는 과부 입장에서는 외아들이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관에 손을 대시고 죽은 아들을 향해서 “젊은이야,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심으로 그 죽은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나인 성 과부의 가정에 큰 결핍이 생긴 것을 보시고 그 가정의 결핍을 채워 주셨습니다. 이 과부의 아들이 왜 죽게 되었는지 성경은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서 죽었을 수도 있고 병들어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신학자들 중에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아들을 향해서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들이 어머니의 과보호 속에서 자라서 젊은이답게 청년답게 살지 못하고 어린 아이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습니다. 남편 없는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자식을 남편처럼 여기면서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자식을 밤낮으로 끼고 살면 아들은 청년으로 자라지 못하고 영원히 어머니의 어린 아들로만 살게 됩니다. 이 아들은 어머니의 지나친 보호와 울타리에 갇혀서 청년으로 자라지 못하고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일찍 죽게 된 아들도 불쌍하고 아들에게 의존해야만 했던 과부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가정을 보시면서 창자가 끊어지듯이 심히 슬퍼하셨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심으로 그 가정의 결핍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가정 결핍에 대한 이야기는 이 외에도 성경 여러 곳에서 많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예수께서 병들어 죽게 된 회당장 야이로의 열두 살 된 딸을 고쳐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 야이로가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내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옛날에 열두 살이면 소녀인데, 아버지는 열두 살 된 딸을 “어린 딸”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인 성 과부가 아들을 과보호해서 문제가 된 것처럼, 이 아버지는 열두 살 된 딸을 새장 속에 가두고 강요와 통제 속에서 딸을 키웠는지도 모릅니다. 옛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딸들을 그렇게 키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인생을 꽃 피우지 못하고 죽게 된 딸을 향해서 “소녀야 일어나라” 말씀하심으로 그 딸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어린 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소녀로서 그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주님께서는 신체적인 결핍, 사회적인 결핍, 영적인 결핍을 채워주실 뿐만 아니라 가정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정의 결핍 때문에 고통받는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결핍이나 건강의 결핍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정이 있습니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과보호로 인해 자녀들이 숨 쉬지 못하고 병 드는 가정도 있습니다. 사회가 억압적이면 가정도 억압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 한국에서 군사 문화가 나라를 지배할 때는 군사 문화가 학교와 가정과 모든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결핍된 가정에 찾아오셔서 우리들의 가정을 고쳐 주셨습니다. 아픈 자녀들을 고쳐 주셨고 아픈 부모를 고쳐 주셨습니다. 사랑이 필요한 가정에는 사랑을 주셨고 자유가 필요한 가정에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경직된 가정을 사랑의 가정으로 바꾸어 주셨고 억압된 가정을 자유로운 가정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가정의 상처를 치유해 주셔서 그 가정이 사랑이 충만하고 자유와 기쁨이 충만한 가정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가정을 회복시키시고 자유하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가정의 결핍을 채움받고 해결받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Epiphany Jesus healed family’s deficiency
Luke 7:11 - 17
Soon Jesus and his disciples were on their way to the town of Nain, and a big crowd was going along with them. As they came near the gate of the town, they saw people carrying out the body of a widow's only son. Many people from the town were walking along with her. When the Lord saw the woman, he felt sorry for her and said, "Don't cry!" Jesus went over and touched the stretcher on which the people were carrying the dead boy. They stopped, and Jesus said, "Young man, get up!" The boy sat up and began to speak. Jesus then gave him back to his mother. Everyone was frightened and praised God. They said, "A great prophet is here with us! God has come to his people." News about Jesus spread all over Judea and everywhere else in that part of the country. (Luke 7:11 – 17)
Today’s gospel shows that many families in Rome’s empire experienced varying degrees of physical, spiritual, and social stress and death. Jesus’ healings are acts that repair imperial damage and enact God’s life-giving empire in restoring people’s lives. Jesus healed their families with proclamation of the Kingdom of God where the blind receive their sight, the lame walk, the lepers are cleansed, the deaf hear, the dead are raised, and the poor have good news brought to them. Jesus healed physical, social, and spiritual deficiency. The healing power of Jesus flowed down from God to those in need. The spirit of God always runs down to fill up our wound and deficiency. We pray that God heals physical, social, and spiritual deficiency in the world.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