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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24 왕의 자유, 제사장의 섬김

창조절 열두 번째 주일
출애굽기 19:5-6, 베드로전서 2:9 - 10
왕의 자유, 제사장의 섬김
정해빈 목사


1. 지난 11월 첫째 주일 평신도 주일 예배를 드릴 때 베드로전서 2장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10절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어떤 사람들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입니다.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첫째로 우리들은 왕 같은 사람들입니다. 왕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은 왕처럼 권력을 누리면서 호화롭게 살라는 뜻이 아니라 이 세상에 굴복당하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통치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왕이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대해서 머리를 숙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 자녀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베드로전서가 쓰여 질 당시 초대 교인들은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인들은 로마 제국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믿음을 지켰습니다.

세상에서 왕처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세상이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세상이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세상에 기가 눌리고 위축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이 왕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온 세상과 우주만물의 왕 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강하고 거칠어도 세상이 하나님의 자녀를 쓰러트릴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자부심/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세상을 소란하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오고,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끌려가지 않고 세상을 뒤흔들고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세상 흘러가는 대로 그냥 끌려가기가 쉽습니다. 요즘 시대를 미디어 시대라고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TV/신문/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TV/신문/인터넷을 보다보면 내가 보는 것에 끌려가기가 쉽습니다. 미국의 Fox TV, 한국에서 낮 시간에 TV를 키면 나오는 종편(종합편성채널)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정부에서 틀어주는 TV 뉴스를 그냥 보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이쪽 뉴스도 들어보고 저쪽 뉴스도 들어보아야 합니다. 신문을 보더라도 정확한 사실이 무엇인지, 이 사건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깊이 생각하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혜안을 가지고 세상을 바르게 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왕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베드로전서는 우리를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왕은 자유를 가리키고 제사장은 섬김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은 세상에 끌려 다니지 않고 왕처럼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세상을 치유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세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왕이고 두 번째는 예언자이고 세 번째는 제사장입니다. 왕은 백성들을 통치하는 사람이고 예언자는 왕과 백성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고 제사장은 제사/나눔/화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세 종류의 사람들 중에서 일반 백성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이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왕은 멀리 떨어져 있고 예언자는 가끔 등장합니다. 하지만 제사장은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도 제사장을 찾아갔고 병들었을 때도 찾아갔고 죽었을 때도 찾아갔고 제사드릴 때도 찾아갔습니다. 본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제사장 나라로 출발한 나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의 근원/통로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복의 근원/통로라는 말은 하나님의 복이 나에게 와서 나에게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거쳐서 세상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오늘 말씀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히브리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건져 내신 다음에 제사장의 사명을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 히브리 백성들 전체를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물론 제사장은 12지파 중에서 아론의 후손 레위 지파가 주로 맡았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는 땅을 분배받지 못했고 백성들을 위해서 제사드리고 병을 고치고 장례를 치르는 대신 백성들로부터 삯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히브리 백성들 전체가 제사장 나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제사장 나라는 돈이 많은 나라도 아니었고 군사력이 강한 나라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거룩한 나라였습니다. 너희 히브리 백성들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 제사장이 해야 할 3가지의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제사/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들은 5가지 제사, 번제/소제/화목제/속죄제/속건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감사를 위해서, 죄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 나눔과 배상을 위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헌신을 가리켰습니다. 구약의 제사를 오늘날로 바꾸면 예배가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제사/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나는 연합의 잔치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고 하나님의 뜻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기뻐하고 은혜받고 소망과 위로를 얻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종말에 있을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지금 여기서 미리 경험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은혜를 만나야만 그 복/은혜를 세상에 나누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의 통로가 되려면 먼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예배를 드려야 우리 영혼이 삽니다. 그런 면에서 예배가 참 소중합니다. 성도님들, 주중에는 교회 안 나오셔도 좋은데, 일주일에 한번, 주일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고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제사장이 해야 할 두번째 사명은 이웃을 축복하고 물질을 나누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뿐만 아니라 이웃을 축복하고 물질을 나누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민수기 6장 24절을 보시면 제사장들이 하는 축복 기도가 나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주시고, 당신들을 지켜 주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고이 보시어서,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오늘날의 제사장입니다. 룻기를 보면 룻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 이삭줍기를 할 때 밭의 주인인 보아스가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여인이 이삭을 주울 때에는 곡식단 사이에서도 줍도록 하게. 자네들은 저 여인을 괴롭히지 말게. 그를 나무라지 말고, 오히려 단에서 조금씩 이삭을 뽑아 흘려서 그 여인이 줍도록 해주게.” 본래 율법에 보면 추수할 때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위해서 밭의 네 귀퉁이를 남겨두도록 했습니다. 보아스는 율법을 충실하게 지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아스는 일꾼들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보아스는 "주님께서 자네들과 함께 하시기를 비네" 하면서 곡식을 거두고 있는 일꾼들을 격려하였다. 그들도 보아스에게 "주님께서 주인 어른께 복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하고 인사하였다.” 보아스는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일꾼이 주인에게 인사하기는 쉬워도 주인이 일꾼에게 인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먼저 다가가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보아스가 한 기도가 바로 민수기 6장 24절에 나오는 제사장의 기도와 같은 기도였습니다.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고 과부 룻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보아스 같은 사람, 이웃을 축복하고 물질을 나누는 사람이 오늘날의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 해야 할 세번째 사명은 평화/화해를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이 히브리 백성들이 지나가는 것을 막은 일이 있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자신들의 친척이 되는 에돔 족속과 싸우지 않기 위해서 먼 길을 돌아서 갔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조카의 후손인 암몬 족속과도 싸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히브리 백성들이 다른 민족과 싸우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주변 민족들과 싸우지 않으려고 노력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다른 사람들과 화해하고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오늘날의 제사장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바로 이런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를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했5습니다. 우리들은 왕처럼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통치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우리들은 제사장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이웃을 축복하고 평화를 선포합니다. 예배/나눔/평화의 삶을 사는 사람이 오늘날의 제사장입니다. 오늘날에도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사람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에볼라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고 있는 의료진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날의 제사장들입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나눔/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왕 같은 제사장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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