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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25 자연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비

시편 104:14 - 24
자연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비
정해빈 목사

 

1. 성령강림절이 끝나고 창조절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창조절 절기는 창조주 하나님과 우주, 자연과 인간에 대해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 동안 구약 성서를 중심으로 창조의 은혜와 신비에 대해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자연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하비 콕스(Harvey Cox)라는 분이 [세속 도시, The Secular City]라는 책에서 구약성서의 첫번째와 두번째 책인 창세기와 출애굽기가 인류에게 3가지 해방의 선물을 주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구약성경이 인류에게 준 첫번째 선물은 자연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창세기는 맨 처음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했습니다. 자연은 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이 신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을 경배할 필요도 없고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사람들이 자연을 무서워하고 자연을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자연에게 제사를 드리고 자연의 진노를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도 산에 가면 산신령이 있고 바다에는 바다 신이 있고 나무에는 나무 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자연은 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이 선언이 있었기 때문에 인류는 자연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연을 연구하고 개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성경은 인류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구약성경이 인류에게 준 두번째 선물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가 이집트 제국의 파라오/바로 황제를 만나 제국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 히브리 사람들은 당신들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본래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집트를 떠나 광야로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고 싶습니다. 조상들의 땅에 가서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우리를 떠나게 해 주십시오.” 바로 왕이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이제껏 어느 누구도 제국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국을 떠나면 죽는다고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히브리 사람들은 제국을 떠나 살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떠나기는 어디를 떠난단 말이냐, 너희들은 제국을 떠날 수 없다, 너희들은 노예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너희들의 운명이다” 바로가 이렇게 말하며 모세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히브리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모세의 지도력을 통해 이집트 제국을 탈출했습니다. 구약성경이 인류에게 준 두번째 해방의 선물은 제국/정치권력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우리들은 제국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어떤 정치권력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미국 교회를 가보면 대부분의 교회당에 미국 국기를 걸어놓았습니다. 캐나다 교회에는 캐나다 국기가 없는데, 미국 교회는 대부분 미국 국기를 교회당에 걸어놓았습니다. 자기 국가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교회당에 국기를 걸어놓은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국가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들은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가 옳은 일을 하면 국가의 뜻을 따릅니다. 하지만 국가가 잘못된 길을 가면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권력을 무서워하지 말아라, 잘못된 세상권력이 있으면 그것에 저항하고 그래도 안 되면 그곳을 과감하게 떠나라, 이것이 구약성경이 인류에게 준 두번째 선물이라고 하비 콕스는 말했습니다.

구약성경이 인류에게 준 세번째 선물은 눈에 보이는 우상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히브리 백성들에게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만들거나 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모든 고대 종교들은 큰 동상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절을 하며 신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오직 구약성경만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에 더 관심을 두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눈에 예쁘게 보이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사람은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물질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눈에 잘 보이는 화려한 옷/보석/음식/돈 이런 것들을 갖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기가 쉽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백성들에게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높은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자유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하비 콕스가 말한 3가지 해방 중에서 첫번째 해방, [자연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창세기는 자연은 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지으셨기 때문에 자연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자연은 두려운 대상도 아니고 함부로 대할 대상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이 들어있는 신비의 세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창세기를 읽다보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세상을 만드셨을까?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분이기 때문에 세상을 안 만드셔도 되는데 왜 굳이 세상을 만드셨을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낳고서 그 자식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세상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기 원하셨습니다. 세상/자연은 하나님이 낳은 자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을 때 이전보다 더 사랑이 많아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창조하심으로 더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기 원하셨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도 외로우셔서 대화하고 사랑할 상대가 필요하셔서 자연을 만드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에게 말을 걸어오신 것입니다. 말을 했다는 것은 말을 듣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을 지어다, 해와 달과 별이 있을 지어다, 자연을 부르셨습니다. 자연을 하나님의 자녀/대화 상대/파트너/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만드신 두번째 이유는 사람에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연을 필요로 합니다. 자연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자연과 더불어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가나안 땅 주변에는 창조 이야기가 많았는데 고대 근동의 창조 이야기를 보면 신이 인간을 만든 목적은 인간을 종으로 부려먹기 위함이었습니다. 신이 자신들을 시중들 종이 필요해서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대화하고 교제하기 위해서 사람을 지으셨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창조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째로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 세상/자연을 만드셨고 둘째로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자연을 만드셨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담이 동물과 식물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말은 사람과 자연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두가지 친구를 주셨습니다. 첫번째 친구는 사람 친구이고 두번째 친구는 자연 친구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사랑을 나누고 교제할 사람 친구가 필요합니다. 아담에게 하와가 있었듯이 우리들에게는 사랑을 나눌 사람 친구가 필요합니다. 함께 신앙생활하는 우리들이 바로 사랑을 나눌 친구들입니다. 한국을 떠나 캐나다 토론토에서 같이 사는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닌데,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서로가 서로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친구 외에 자연 친구를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집 안에 있는 작은 화초, 풀 한포기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자연 친구들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은 아름답고 풍성해집니다. 만일 우리 주변에 아름다운 자연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외롭고 쓸쓸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삶의 풍성함을 위해서 사람친구와 자연친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LA에 100년 만에 가뭄이 와서 잔디에 물을 주지 못하게 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3년 전에는 저렇게 물이 많았는데 3년 후에는 저렇게 물이 말라 버렸습니다. 유전을 개발하는데 물을 너무 많이 쓰고, 사람들이 집집마다 수영장에서 물을 너무 많이 쓰고, 거기에 100년만의 가뭄이 겹쳐서 저렇게 물이 다 말라버렸다고 합니다. 우스개 소리로 한국에서 캘리포니아로 이민 간 사람들이 캐나다로 한 번 더 이민가야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자연을 하나님의 신비로운 자녀로 여기지 않고 마음대로 사용하였더니 저런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자연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해와 달과 별, 산과 바다, 낮과 밤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자연을 무서워하는 것도 잘못이고 반대로 함부로 대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풍성한 삶을 위해서 사람친구와 자연친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나에게서 가까운 이웃/옆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나에게 가까운 풀 한포기, 꽃 한송이, 나무 한그루를 소중히 여길 때 우리들 모두는 이 땅에서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자연의 신비를 찬양하며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이 땅에서 복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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