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열네번째 주일 / 8월 세번째 주일

해방주일, 혐오를 넘어 환대와 화해로

예레미야서 31:1 - 6 

정해빈 목사



1. 지난 815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1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910829일부터 1945년까지 815일까지 35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요즘은 일제가 강제로 조선 땅을 점령했다고 해서 일제 강점기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부끄러운 역사 중 하나가 제국주의 역사입니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프랑스는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독일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주장하면서 유럽을 차지하려고 하였고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 동아시아를 한 나라로 만들자는 명분하에 조선과 중국을 차지하려고 하였습니다. 큰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려는 것을 제국주의라고 부릅니다.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는 너희가 미개하니까 우리가 너희를 도와주려 왔다고 말을 합니다. 자기가 최고이든 아니든 그냥 자기 나라에서 살면 모두가 행복합니다. 각자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기 땅에서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하지만 제국들은 더 큰 나라를 만들려는 욕심으로 약한 나라를 쳐들어갔습니다. 많은 유럽 제국들이 아프리카에 가서는 흑인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아메리카에 쳐들어가서는 거기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다 죽였습니다. 흑인들과 원주민들은 무식하니까 이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제도 조선 사람들을 이등 국민으로 취급했고 무식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몇 백 년 동안 인류는 이런 제국의 시대를 겪었습니다. 제국은 하나님의 뜻에 역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고 모든 민족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여라 말씀하셨습니다. 자손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땅에 퍼져서 행복하게 살아라 말씀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의 반대는 정글입니다. 정글에서는 강한 동물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습니다. 거기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제국을 반대하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평화의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11장에서 에덴동산/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힘이 있다고 해서 상대방을 해치거나 파괴하지 않는 세상,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을 때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도 있었고 독립 운동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일제가 계속 통치하니까 일제가 영원할 줄로 알고 일제에 협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독립 운동을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에서 제일가는 부자 중 하나였던 이회영, 이시영 6형제는 급하게 재산을 처분해서 당시 금액으로 40만원, 현재 가치로 6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들고 만주로 이주해서 독립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노비문서를 불태워서 노비들을 해방시켰고 나머지 식솔들을 데리고 만주로 가서 독립군을 양성하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습니다. 6형제 중에서 5명이 객사하고 1명만 살아서 해방을 볼 수 있었습니다. 8.15 해방이 우리 노력이 아니라 연합군에 의해서 저절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냥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회영, 이시형 선생 같은 분들이 헌신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실이었습니다. 후세대들이 그 당시 유력한 집안 중에서 독립운동을 열심히 한 집안이 있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이런 분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나마 이런 집안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얼굴을 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구약 성경을 보면 히브리/이스라엘 사람들이 북쪽 앗시리아/바벨론과 남쪽 이집트 사이에서 고통 받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땅 자체가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지나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주변 나라들이 항상 이 땅을 차지하려고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북쪽 앗시리아/바벨론이 쳐들어오고 어떤 때는 남쪽 이집트가 쳐들어옵니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북쪽 나라와 남쪽 나라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서 위기를 벗어났지만 어리석은 지도자는 국제 정세를 잘못 판단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바람에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북쪽 나라와 남쪽 나라가 서로 잡아당기다 보면 가운데 있는 나라는 두 쪽으로 나누어지기가 쉽습니다. 이스라엘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남북이 서로 경쟁하다 보니 한쪽에 위기가 와도 다른 쪽이 도와주지 않습니다. 남북이 하나이면 다른 나라들이 침략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싸우니 주변 나라들이 보기에 그 땅을 차지하기가 더 쉬었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이 먼저 멸망하고 나중에 남유다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남과 북이 갈라졌을 때 서로 정통성을 주장했습니다. 남유다는 우리는 다윗/솔로몬의 후손들이다, 우리에게는 예루살렘과 성전이 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정통성은 남쪽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북이스라엘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10지파가 우리에게 속해 있고 인구도 우리가 더 많으니 이스라엘 정통성이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서로 자기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싸우다가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한국 땅도 이스라엘 땅처럼 북쪽 나라와 남쪽 나라 사이에 끼어 있어서 끊임없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한국 오천년 역사를 보면 4번 크게 침략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고려 시대 몽골의 침략,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강점기. 그 중에서 몽골의 침략과 병자호란은 북쪽 나라가 쳐들어 온 경우였고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는 남쪽 나라가 쳐들어온 경우였습니다. 북쪽 나라와 남쪽 나라가 간섭을 하고 영향력을 행세하니 조선 땅도 이스라엘처럼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한 것처럼 남과 북도 서로 정통성을 주장합니다. 북쪽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은 변절했지만 우리들은 끝까지 독립운동을 했으니 민족의 정통성이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남쪽 사람들은 너희들은 굶어 죽지만 우리들은 경제를 발전시켰으니 민족의 정통성이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를 비방하고 증오하고 신무기를 개발하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차례차례 멸망한 것처럼 남과 북도 그렇게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혐오의 문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혐오의 문제입니다. 특정한 소수를 대상으로 혐오하고 조롱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비정상이고 나는 정상인 것처럼 행세합니다. 백인은 흑인을 혐오하고 이성애자는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정상인은 장애인을 혐오하고 시민권자는 난민을 혐오합니다. 숫자가 적은 사람들, 가장 약하고 만만한 사람들을 혐오하고 조롱합니다. 혐오와 증오가 아니라 낯선 사람을 환영/환대하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서 3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주의 말이다. 때가 오면 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로 다시 사마리아 산마다 포도원을 만들 수 있게 하겠다. 포도를 심은 사람이 그 열매를 따 먹게 하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고 특히 사마리아를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쪽 정통 유대인들은 북쪽 사마리아 사람들을 혐오하고 증오했습니다. 사마리아를 부를 때 마다 꼭 그 앞에 부정적인 별명을 붙였습니다. 더러운 사마리아인, 피가 섞인 사마리아인, 혼혈 사마리아인, 배신자 사마리아인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강도만난 자의 비유를 통해서 정통 유대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만난 자를 지나쳤지만 소위 더럽다고 멸시받는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자를 치료해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더러운 사마리아인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더러운 배신자 사마리아인으로 불렀는데 예수님 이후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형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낯선 사람을 환영하고 소수를 배려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형제를 용서하는 삶이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혐오와 증오를 넘어서 민족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From hatred to hospitality and reconciliation

Jeremiah 31:1 – 6


The LORD said: Israel, I promise that someday all your tribes will again be my people, and I will be your God. In the desert I was kind to those who escaped death. I gave them peace, and when the time is right, I'll do the same for you. I, the LORD, have spoken. Some time ago, the LORD appeared to me and told me to say: Israel, I will always love you; that's why I've been so patient and kind. You are precious to me, and so I will rebuild your nation. Once again you will dance for joy and play your tambourines. You will plant vineyards on the hills of Samaria and enjoy the grapes. Someday those who guard the hill country of Ephraim will shout, "Let's go to Zion and worship the LORD our God." (Jeremiah 31:1-6)


The poor and the needy will be treated with fairness and with justice. His word will be law everywhere in the land, and criminals will be put to death. Honesty and fairness will be his royal robes. Leopards will lie down with young goats, and wolves will rest with lambs. Calves and lions will eat together and be cared for by little children. Cows and bears will share the same pasture; their young will rest side by side. Lions and oxen will both eat straw. Little children will play near snake holes. They will stick their hands into dens of poisonous snakes and never be hurt. Nothing harmful will take place on the LORD's holy mountain. Just as water fills the sea, the land will be filled with people who know and honor the LORD. (Isaiah 11:4-9)


Celebrating the 71st National Liberation Day of Korea, on August 15th we pray to God for the reconciliation and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 It commemorates victory over Japan Day, in which the Korean Peninsula was liberated from Imperial Japanese colonial rule by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We oppose so called colonialism, the establishment of a colony by a political power from another territory and the subsequent maintenance, expansion, and exploitation of that colony. As Jeremiah proclaimed that someday all the tribes will again be God’s people and they will plant vineyards on the hills of Samaria and enjoy the grapes, we also pray and sing that someday North Korea and South Korea will be united with peace and reconciliation. As the parable of a Good Samaritan shows, Jesus taught people to get rid of hatred and prejudice and welcome all the people who are alienated. We pray that we all overcome hatred and revenge and live the life of hospitality and reconciliation.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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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열세번째 주일 / 8월 두번째 주일

히브리서, 역경과 시련을 넘어서

히브리서 11:29 - 12:2 

정해빈 목사




1. 요즘 브라질 리우에서 2016년 하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손으로 하는 경기를 잘합니다. 양궁, 펜싱, 사격, 골프, 어려서부터 젓가락질을 해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이 손재주, 손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인상적인 두 가지 장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난민 팀의 입장입니다. 전쟁을 피해서 고국을 떠나 난민이 된 사람들 중에서 올림픽 출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난민 팀을 만들어서 올림픽 깃발을 들고 행진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성화 최종 주자로 뛴 리마 선수입니다.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37km 까지 1위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5km만 가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는데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던 중 한 괴한이 갑자기 공격해서 경기 리듬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달려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2년이 지난 후 자기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성화 최종 주자가 되었습니다. 난민이 되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도 대단하고 뜻하지 않은 불행을 만났지만 끝까지 달려서 동메달을 목에 건 선수도 대단합니다. 리마 선수의 용기와 긍정적인 자세가 브라질 국민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리마 선수처럼 화가 나고 억울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만나면 분하고 억울해서 잠을 자지 못할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이 일만 일어나지 않았어도 성공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이 이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끔씩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하지만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인생이 편안하고 아무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어려움이 있지만 그 어려운 일을 극복하는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극복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영어 표현 중에 “against the odds” 라는 말이 있습니다. “odds”는 승산이 높다, 우세하다, 가능성이 높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against”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쪽은 힘이 세고 나는 힘이 약합니다. 상대방은 강하고 유리한데 나는 약하고 불리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고 도전하려고 할 때 “against the odds”라고 표현을 합니다. 우리 말에도 역경(逆境)”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이할 역(), 지경 경().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을 역류한다고 말하고 상대방이 도망가다가 반대로 뒤돌아서 공격하는 것을 역습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역경이라는 말은 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삶에 역경과 시련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매우 불리한 환경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역경과 시련을 넘어서,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도전하고 씨름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신앙생활도 against the odds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붙잡고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지금 미래가 보이지 않고 어렵고 힘들지만, 상황과 환경이 어렵고 불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도 모두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 중에서 한평생 아무 어려운 일 없이 인생을 마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만났지만 그 어려운 환경을 믿음으로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편안한 환경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을 만났을 때 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십니다. “against the odds” 불리한 환경/역경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불리한 환경/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참다운 신앙인의 삶입니다.


2.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1장 말씀이 이러한 신앙생활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과거 믿음의 조상들도 우리와 같이 박해와 시련을 받았지만 약속을 바라보고 견뎠던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지금의 시련을 견디자고 말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겪었던 시련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불의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 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같은 믿음의 조상들을 예로 들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예수님을 따른다는 이유 때문에, 정의를 실천한다는 이유 때문에 수없이 많은 시련과 위험을 겪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우리가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옛날에는 이렇게 억울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수 없이 많은 박해와 시련을 받았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킨 신앙의 선배들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시련을 견디자고 히브리서는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기생/창녀 라합 이야기가 나옵니다. 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들을 호의로 영접해 주어서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애굽을 탈출해서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라합은 그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바로 황제가 통치하는 땅이었고 가나안 땅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땅이었습니다. 마치 옛날 개척자들이 꽉 막힌 유럽 대륙을 떠나서 신대륙으로 이주했던 것처럼, 히브리 사람들도 애굽의 종살이를 떠나서 자유롭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난민에 해당하는 히브리 사람들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합은 외부인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 위험한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환영하였습니다. 라합은 여성으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생/창녀가 되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마도 라합은 히브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유롭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같이 꿈꾸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런 라합의 행동이 바로 믿음의 행동이라고 보았습니다. 라합과 비슷한 이야기가 캐나다에도 있습니다. 캐나다 오타와 국회 의사당에 가면 “Women are persons”(여성도 사람이다) 라는 글자를 들고 있는 다섯 명의 여성 동상이 있습니다. 캐나다 헌법에 의하면 총리가 자격이 있는 사람을 상원의원에 임명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다섯 명의 여성들이 자격있는 사람에 여성도 포함되는지 대법원에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1928년 대법원에서 여성은 자격있는 사람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다섯 명의 여성들이 영국 최고 법원에 항소해서 영국 법원으로부터 자격 있는 사람에 여성도 포함된다는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여성 지도자들의 이런 노력도 라합과 같은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사람을 인종이나 성에 따라서 차별하면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도 그들처럼 참고 인내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자고 말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이른바 사랑 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에 대한 표현이 참 많은데 제일 처음으로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말했습니다. 왜 사랑의 첫 번째 특징이 오래 참는 것일까요? 뜨겁고 요란하게 사랑하지 않아도 오래 참으면 그것이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니까 오래 참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오래 참고 인내합니다. 오래 참고 인내하는 사람에게 믿음의 열매가 주어집니다. 상황이 힘들어도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고 인내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더 좋은 미래를 열어 주실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자유와 평등과 정의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위해서 참고 인내하며 앞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들도 역경과 시련을 넘어서 끝까지 참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Against the odds

Hebrews 11:29 12:2


Because of their faith, the people walked through the Red Sea on dry land. But when the Egyptians tried to do it, they were drowned. God's people had faith, and when they had walked around the city of Jericho for seven days, its walls fell down. Rahab had been a prostitute, but she had faith and welcomed the spies. So she wasn't killed with the people who disobeyed. What else can I say? There isn't enough time to tell about Gideon, Barak, Samson, Jephthah, David, Samuel, and the prophets. Their faith helped them conquer kingdoms, and because they did right, God made promises to them. They closed the jaws of lions and put out raging fires and escaped from the swords of their enemies. Although they were weak, they were given the strength and power to chase foreign armies away. Some women received their loved ones back from death. Many of these people were tortured, but they refused to be released. They were sure that they would get a better reward when the dead are raised to life. (Hebrews 11:29 35)


Others were made fun of and beaten with whips, and some were chained in jail. Still others were stoned to death or sawed in two or killed with swords. Some had nothing but sheep skins or goat skins to wear. They were poor, mistreated, and tortured. The world did not deserve these good people, who had to wander in deserts and on mountains and had to live in caves and holes in the ground. All of them pleased God because of their faith! But still they died without being given what had been promised. This was because God had something better in store for us. And he did not want them to reach the goal of their faith without us. Such a large crowd of witnesses is all around us! So we must get rid of everything that slows us down, especially the sin that just won't let go. And we must be determined to run the race that is ahead of us. We must keep our eyes on Jesus, who leads us and makes our faith complete. He endured the shame of being nailed to a cross, because he knew that later on he would be glad he did. Now he is seated at the right side of God's throne! (Hebrews 11:36 12:2)


Endurance consistently features throughout the Epistle to the Hebrews. This author passionately desires his audience to hold fast, endure, remain strong until the end. In other words, they need to continue trusting God, to remain in faith. Hebrews 11 teaches them the nature of faith through word and story. For example, Rahab, the Canaanite woman, hid the spies of Israel as they were preparing to attack Jericho. Because she received them and kept them in peace, because she did not allow them to fall into the hands of their pursuers, she did not perish along with those who failed to believe in the power of Israel’s God. As runners enter the stadium, they are surrounded by the crowd all around. Sometimes life is full of challenges. Yet we are aware that this is not what really matters. Today’s passage shows that we are called to endure and remain strong until God’s promise is accomplished. As people persevered against the odds, We are called to do the same too.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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