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후 네번째 주일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요한복음 1:43 - 51
정해빈 목사

 

1. 인류 역사를 보면 세상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곳에는 항상 지도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헌신적이고 열정적이고 리더쉽과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가 세상을 주도할 때 사람들은 그 지도자를 따라가게 됩니다. 유능한 지도자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능한 지도자는 감동적인 연설을 잘 합니다. 최근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전 국민의 1%에 해당하는 초고소득자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고 시간당 7달러인 최저 임금을 시간당 10달러로 올리겠다고 발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제는 소신껏 정책을 펴겠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신년 연설을 하고 나서 지지도가 90%까지 치솟았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미국은 세계 선진국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유급병가나 유급출산휴가를 보장하고 있지 않는 나라입니다. 자녀가 아플 경우 부모가 일주일동안 아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유급병가를 실시합시다. 지금 여기 있는 의원들 중에 최저 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 년에 1만 5천불, 최저 임금을 가지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지 한번 살아 보십시오.” 이렇게 연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류 역사 상 최고의 연설을 꼽으라면 1963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님이 한 연설을 꼽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1/19)을 국가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1963년 8월 23일 노예 해방 100주년을 맞아 워싱턴에서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평화행진대회가 열렸습니다. 여러 사람이 연설을 했기 때문에 청중들의 반응이 시들어 질 때, 마지막 연사로 킹 목사님이 나서서 저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는 꿈입니다.” 지도자의 진실되고 호소력 있는 연설은 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감동을 줍니다. 잘못된 현실을 바꾸려는 지도자의 열정과 노력이 있을 때 사람들은 그 지도자가 가는 길을 따르게 됩니다.

리더쉽과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도자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조용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1960년대에 인종차별반대운동을 펼친 두 명의 지도자가 있었는데 한 명은 마틴 루터 킹 목사였고 또 한명은 로자 팍스(Rosa Parks)라는 흑인 여성이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리더쉽과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였다면 로자 팍스는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평범한 흑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흑인 여성을 통해서 인종차별반대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정확하게 60년 전인 1955년 12월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시 백화점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흑인 여성 로자 팍스는 퇴근 버스의 흑인석 맨 앞줄에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버스를 타도 백인이 앉는 자리와 흑인이 앉는 자리가 따로 있었습니다. 로자가 탄 버스에 백인들이 들어왔는데 백인들이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버스 운전수는 흑인석에 앉아있는 로마 팍스에게 백인석이 모자라니 뒷자리로 가라고 명령을 합니다. 하지만 로자는 이를 거부하였고 결국 이 때문에 경찰에 체포 수감되었습니다.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해서 경찰이 흑인 여성을 잡아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옛날에는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하는 버스 승차 보이콧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인종차별반대 운동을 시작한 로자 팍스는 굉장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잘못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용기가 조용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조용한 사람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버스 운전사가 다가와서 백인들이 앉을 자리가 부족하니 뒤로 가라고 말했을 때, 로자 옆에 있던 흑인 남자 3명은 순순히 뒷자리로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자는 조용히 No, I'm tired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했기 때문에 지금 몸이 지쳤다는 뜻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회의 차별에 지쳤다는 뜻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조용한 행동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목소리를 크게 낼 필요도 없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 사람이 바른 마음을 먹게 되면 그것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요즘 영화관에서 Selma(셀마)라는 영화가 상영 중인데 60년 전 당시의 미국 상황을 잘 묘사했습니다.

2.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옛날 고대 종교들은 오직 왕만이 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고 가르쳤습니다. 황제/천황/폐하 다 신의 아들을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바벨론 제국도 왕이 신의 아들이라고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바벨론 창세기를 보면 마르둑(Marduk)이라는 신이 티아맛(Tiamat)을 죽여서 그 시체로 인간을 만들고 인간으로 하여금 신들의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신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서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종교에서는 인간을 존중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히브리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선언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창세기는 히브리 백성들이 바벨론 종교에 저항하는 일종의 인권 교과서였고 대안 평등 교과서였습니다. 지금부터 수 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 남자와 여자를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고 선언했는데 인류는 오랫동안 이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노예가 해방된 것이나 여성과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준 것도 대략 60-10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셀마] 영화를 보면 존슨 대통령이 킹 목사의 요구를 수용해서 흑인들에게 선거권을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장 말씀을 보면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나사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입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과 빌립과 나다나엘은 모두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이고 빌립은 벳새다 출신이고 나다나엘은 가나 출신입니다. 하지만 가나 사람 나다나엘은 자기 동네보다 더 작은 나사렛에서 온 예수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남쪽 예루살렘 사람들은 가장 북쪽에 사는 갈릴리 사람들을 변방에 산다고 해서 오랫동안 무시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서로 자기들끼리 무시하고 차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치가 높은 사람이 위치가 낮은 사람을 차별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작은 차이점을 가지고 서로 차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나다나엘을 향해 “보아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네가 앞으로 더 큰 일을 볼 것이다.” 무화과나무에는 그늘이 있어서 책을 읽거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나다나엘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비록 지금은 생각이 좁고 부정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만 장차 세상을 바꾸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일곱 명의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 그 일곱 명 중에 나다나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제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세상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님처럼 열정과 헌신이 있고 리더쉽과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로자 팍스처럼 조용하지만 용기있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항상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조용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불완전합니다. 때로는 나다나엘처럼 생각이 좁고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제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생각이 바뀝니다. 주님을 만나면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 됩니다. 주님을 만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기를 비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새로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바르게 사는 조용한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반드시 목소리를 크게 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바른 길을 가면 됩니다.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세상으로 펴져서 세상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 조용하게 그러나 바르게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One person changes the world
John 1:43 - 51

The next day Jesus decided to go to Galilee. There he met Philip, who was from Bethsaida, the hometown of Andrew and Peter. Jesus said to Philip, "Come with me." Philip then found Nathanael and said, "We have found the one that Moses and the Prophets wrote about. He is Jesus, the son of Joseph from Nazareth." Nathanael asked, "Can anything good come from Nazareth?" Philip answered, "Come and see." When Jesus saw Nathanael coming toward him, he said, "Here is a true descendant of our ancestor Israel. And he isn't deceitful." "How do you know me?" Nathanael asked. Jesus answered, "Before Philip called you, I saw you under the fig tree." Nathanael said, "Rabbi, you are the Son of God and the King of Israel!" Jesus answered, "Did you believe me just because I said that I saw you under the fig tree? You will see something even greater. I tell you for certain that you will see heaven open and God's angels going up and coming down on the Son of Man." (John 1:43-51)

Rev. Dr. Martin Luther King, Jr. said in his Washington Speech in 1963, "I have a dream that one day on the red hills of Georgia the sons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sit down together at the table of brotherhood.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I have a dream that one day every valley shall be exalted, every hill and mountain shall be made low, the rough places will be made plain, and the crooked places will be made straight, and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Martin Luther King inspired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in the United States into actions against racism, to end poverty, and for peace. Early December 1955, he led the first great non-violent protests of Afro-Americans in a bus boycott in Montgomery, Alabama. The boycott lasted 382 days and ended after the US Supreme Court ruled that segregation in public buses was unconstitutional. In spring 1963, King and the student movement organised mass demonstrations in Birmingham, Alabama. The white police officials responded violently and King was arrested for organizing sit-in demonstrations. In his ‘Letter from the Birmingham jail’, he said, "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

Rosa Parks was an African-American Civil Rights activist, whom the United States Congress called "the first lady of civil rights" and "the mother of the freedom movement". On December 1, 1955, in Montgomery, Alabama, Parks refused to obey bus driver's order to give up her seat in the colored section to a white passenger, after the white section was filled. Parks' act of defiance and the Montgomery Bus Boycott became important symbols of the modern Civil Rights Movement. She became an international icon of resistance to racial segregation.

A charismatic leader, like Martin Luther King Junior, changes the world. But It does not mean that a great speaker always lead the world. Sometimes a quiet and gentle person, like Rosa Parks, can inspire many people to work for social justice. Nathanael said, "Can anything good come from Nazareth?" when he was heard from Philip, "we have found the one, Messiah." But Jesus approved him by saying, "You will see something even greater. you will see heaven open and God's angels going up and coming down on the Son of Man." Jesus changed the person of prejudice and negative thoughts into the person of discipleship. Jesus saw the possibility of one person. Making one person smile can change the world – maybe not the whole world, but their world.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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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두번째 주일
공생애 이전 예수의 삶, 자연, 노동, 기도
마가복음 1:14 - 20
정해빈 목사


1. 우리는 요즘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공생애 이전 예수의 삶]이라고 정했는데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온전히 알려면 공생애 뿐만 아니라 공생애 이전의 삶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한 설교는 많아도 공생애 이전에 대한 설교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1장 말씀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시고 사막에서 40일간 금식하시면서 3가지 시험을 받으신 후에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셨을 때 하늘이 열리고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복음서를 쓴 저자들 입장에서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기 때문에 복음서의 모든 기록이 공생애 이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 이야기가 나온 다음에 바로 30년을 건너뛰어서 30세에 세례 받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태어나셔서 30세까지 30년 동안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는 수없이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헤롯, 종교적으로는 성전 지도자들, 군사적으로는 로마 제국이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예수님이 그런 공생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기간의 기도/연단/훈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3년 사역을 위해서 30년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갑자기 30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이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이해하면 예수께서 공생애를 일관되게 펼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30세 이전의 삶에 대해서 아주 조금만 기록했기 때문에 조금 있는 기록과 예수님 당시의 시대 상황을 서로 연결해서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 삶을 살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 삶을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태어나서 10살 때까지의 유아기, 둘째는 10살에서 20세까지의 청소년기, 셋째는 20세에서 30세까지의 청년기 이렇게 3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유아기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고, 청소년기는 노동과 함께하는 삶이고, 청년기는 기도와 함께하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께서는 유아기 시절에 갈릴리 농촌에서 자연과 함께 사셨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남쪽에는 사막이 있지만 북쪽에는 기름진 땅이 있습니다. 소년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연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는 자연/농사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온갖 영화로 차려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에게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에게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농사꾼이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데 첫 번째 씨는 돌짝밭에 떨어졌고 두 번째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고 세 번째 씨는 좋은 밭에 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과 같고 겨자씨와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 해와 비, 땅에 떨어진 씨앗, 밀과 가라지, 겨자씨와 누룩 이 모든 것들은 자연 농사와 관련된 단어들입니다. 어린 시절 예수께서는 자연을 통해서 자연의 정직함과 순수함을 배우셨습니다. 자연을 통해서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교육학에서는 어린 시절의 환경이 그 사람의 성격을 좌우한다고 말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몇몇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수석 비서관들도 대통령 얼굴 보기가 어렵고 서면으로 보고서를 제출한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폐쇄된 공간에서 자란 사람, 어린 시절 배신과 상처를 당한 사람은 마음이 닫혀 있어서 사람을 쉽게 믿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자기에게 충성한 사람들하고만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어린 시절에 무엇을 보고 어떤 배경에서 자라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요즘은 IQ가 높은 사람보다 EQ(감성 지수)가 높은 사람을 더 나은 사람으로 칩니다. 똑똑하기는 하지만 감성이 메마른 사람보다는 똑똑하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성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 자연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우셨습니다. 자연의 정직함과 순수함,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자연의 너그러움을 배우셨습니다.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셨습니다. 자연치료, 천연치료를 배우셨습니다. 자연에게서 배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죄인들과 병자들을 치료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었다면 예수님의 청소년기는 노동하는 삶이었습니다. 태어나서 10살까지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연과 함께 살았던 예수는 아마도 10살에서 20살까지 거친 노동을 하면서 자랐을 것입니다. 옛날의 10살은 오늘날의 10살과 다릅니다. 옛날의 10살은 오늘날로 하면 20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평균 수명이 짧았고 일찍 성숙했기 때문에 10살만 되어도 집안일을 도왔습니다. 성경은 예수의 아버지가 목수라고 말합니다. 나무를 다루면 목수가 되고 돌을 다루면 석수가 됩니다. 갈릴리 나사렛은 100명 정도 모여 사는 조그만 마을이기 때문에 목수/석수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마침 갈릴리를 지배하던 헤롯 안티파스는 나사렛에서 4마일(6킬로미터) 떨어진 세포리스에서 수도를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소년 예수가 세포리스에 가서 목수/석수로 거친 노동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나사렛에서 4마일(6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서 하루 종일 일했을 것입니다. 청소년 예수는 그렇게 거친 노동을 하면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아마도 불의한 세상 현실을 보았을 것입니다. 당시 사회의 불의와 빈부격차를 보았을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호화스럽게 사는 귀족들을 보았을 것이고 한쪽에서는 고통당하는 식민지 백성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포로된 자를 풀어주고 눈먼 사람을 눈뜨게 하는 하나님 나라가 와야 한다는 것을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에게 있어 이 기간은 고통스러운 육체 노동의 기간이었고 세상의 불의를 체험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소명, 자신이 장차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는 기간이었습니다.

20대가 된 청년 예수는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떠나게 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세례받고, 광야에서 40일간 시험받고, 바로 갈릴리로 가서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면 요한에게서 세례받고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40일간 시험받았다고 했는데 본래 성경에서 말하는 40이라는 숫자는 어떤 중요한 일이 이루어지는 단계를 말합니다. 광야 40일이 아니라 광야 10년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20살에 세례 받으시고 30세가 될 때까지 10년간 긴 기도/훈련의 시간을 거치셨을 것입니다. 이 10년 동안 예수께서는 요한이 이끄는 사막 공동체에 머물면서 깊이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간은 기도하는 기간이었고 본격적인 사역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으며 멘토/스승인 세례요한을 따라다니며 훈련받고 공부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광야에서 3가지 시험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는 광야에 있는 요한의 공동체에 오랜 기간 머무시면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 사역을 시작하실 것인지, 경제/정치/종교의 유혹을 어떻게 이길 것인지 깊이 기도하셨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한국의 도종환 시인이 쓴 유명한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 시처럼 우리들의 삶에는 항상 흔들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으로 흔들리고 어떤 사람은 건강이 흔들리고 어떤 사람은 정신적으로 흔들립니다. 우리의 삶에는 늘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30세가 될 때까지 길고 긴 고난과 훈련의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그 길고 긴 고난과 훈련의 과정을 겪으셨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사역을 열심히 펼치실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어떤 단계가 될 수 없습니다. 길고 긴 과정을 거쳐야만 어떤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노동을 통해서 사회를 만나고, 기도를 통해서 인내를 만났던 예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움과 고난의 시기 앞에서 좌절하지 마시고 흔들림 가운데서도 마침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주님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삶을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Jesus' life before public ministry                              
Mark 1:14 - 20

About that time Jesus came from Nazareth in Galilee, and John baptized him in the Jordan River. As soon as Jesus came out of the water, he saw the sky open and the Holy Spirit coming down to him like a dove. A voice from heaven said, "You are my own dear Son, and I am pleased with you." Right away God's Spirit made Jesus go into the desert. He stayed there for forty days while Satan tested him. Jesus was with the wild animals, but angels took care of him. After John was arrested, Jesus went to Galilee and told the good news that comes from God. He said, "The time has come! God's kingdom will soon be here. Turn back to God and believe the good news!" (Mark 1:9-15)

As Jesus was walking along the shore of Lake Galilee, he saw Simon and his brother Andrew. They were fishermen and were casting their nets into the lake. Jesus said to them, "Come with me! I will teach you how to bring in people instead of fish." Right then the two brothers dropped their nets and went with him. Jesus walked on and soon saw James and John, the sons of Zebedee. They were in a boat, mending their nets. At once Jesus asked them to come with him. They left their father in the boat with the hired workers and went with him. (Mark 1:16-20)

Mark said in his gospel that Jesus was baptized by John the Baptist and then went to the desert for forty days where he was tested three times by Satan. After John was arrested, Jesus went to Galilee and began his public ministry there. He proclaimed the kingdom of God, the good news that comes from God. Although Mark did not say in what age Jesus started his public ministry, many scholars think it would be when Jesus was around at age 30. Since Jesus preached the kingdom of God and healed the sick during his public ministry, most gospels focused only on his public life. That is one of the reasons why we cannot find much about Jesus's early or private life before age 30 in the gospels.

Yet if we look at the gospels carefully and investigate the socio-cultural contexts together, we can get some clues about how Jesus lived during the childhood, and what drove Jesus to live a different life for  God's justice and peace. In a sense, Jesus lived, experienced, and prepared for 30 years for his so called 3 year public ministry. Without his long experience, his public life would not be possible. Probably, Jesus would have lived with nature in Galilee where he was raised. When Jesus was teens, he would have worked with his father as a carpenter or a stone mason. While having worked as a daily worker, young Jesus would have realized the harsh reality of his country colonized by the Roman Empire.

When Jesus was baptized by John the Baptist, I guess Jesus' age would be around 20s. Many people think that Jesus went to the desert to fast for 40 days right after baptized, and then began his public ministry in Galilee. Yet It is not true. Jesus started his own movement only after John the baptist, his mentor, was arrested by the King Herod. Probably Jesus would have joined John's community located in the desert, prayed, and prepared for his future ministry for 10 years. Jesus would go along with John and learned many spiritual things, not a imitation, but a creative succession. In summary, Jesus learned God through nature in early childhood, learned social reality through hard work in teens, and learned spiritual leadership through community in 20s. Jesus prepared for his ministry for 30 years. Too long to prepare? But nature, work, and prayer made Jesus faithful to God's calling. There are no secrets to success. It is the result of preparation, hard work, learning from failure. (Colin Powell).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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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첫번째 주일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
미가서 7:14 - 20
정해빈 목사

 

1. 호주 콴타스 항공의 최고 경영자인 제프딕슨 이라는 사람이 쓴 “우리 시대의 역설(The Paradox of Our Time)"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 글을 언급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부족하고,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한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더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돈을 버는 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은 잊어 버렸고,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우주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자유는 더 늘었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고, 세계평화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마음의 평화는 더 줄어들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잘 지적했습니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작아졌고, 길은 넓어졌지만 시야는 좁아졌습니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적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새해에는 우리의 마음과 삶이 더 여유로워지고 풍성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지식과 지혜가 부족해서 가야 할 길을 잘 알지 못합니다. 이 이야기처럼 때로는 엉뚱한 길을 가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길을 가기도 합니다. 때로는 겉으로 화려한 것을 쫓다가 더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합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우리 앞길을 잘 헤쳐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필요로 합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막대기와 지팡이로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말합니다.

성경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가장 많이 쓰는 비유가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양은 약한 동물입니다. 자신을 보호하는 특별한 무기도 없고 시력도 좋지 못해서 10미터 앞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양들은 질투가 많아서 겨울에는 서로 떨어져서 자고 여름에는 서로 붙어서 잔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양들은 시력이 좋지 않아서 멀리 앞길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삶이 양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멀리 앞길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합니다. 목자들이 양을 데리고 다닐 때 꼭 가지고 가는 것이 막대기와 지팡이입니다. 막대기는 양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양을 깨우치기 위해 사용하고 지팡이는 양이 어려움에 빠질 때 양을 도와주기 위해 사용합니다. 첫째로 주님께서는 주의 지팡이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양이 길을 가다가 웅덩이에 빠지면 목자는 지팡이를 이용해서 양을 구해 줍니다. 또 이리나 늑대가 양을 잡아먹기 위해 쳐들어오면 목자는 지팡이를 이용해서 맹수들을 물리칩니다. 예수께서도 하나님 나라는 양 아흔 아홉 마리 있는 목자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수고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는 지팡이를 들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미가서 7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주님의 지팡이로 주님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어 주십시오. 이 백성은 주님께서 선택하신 주님의 소유입니다. 이 백성은 멀리 떨어진 황무지에 살아도, 그 주변에는 기름진 초장이 있습니다. 옛날처럼 주님의 백성을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여 주십시오.” 미가 선지자는 남유다의 예언자인데 지금 남유다는 앗시리아가 처들어와서 나라가 위태로웠습니다. 미가는 이 모든 일들이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범죄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은 주님께서 선택하신 주님의 소유이오니 이 백성들 불쌍히 여기시고 주의 지팡이로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히브리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라고 말씀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는 못합니다. 저는 힘도 없고 용기도 없고 말할 줄도 모릅니다.” 우리도 종종 모세처럼 나는 가만히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하실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홀로 일하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모세가 말을 못한다고 하자 말을 잘하는 아론을 붙여주셨고 그래도 모세가 주저하자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팡이는 주님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지팡이를 땅에 치니 홍해 바다가 갈라졌고 바위를 치니 물이 솟아나왔습니다. 지팡이를 높이 드니 히브리 백성들이 전투에서 이기고 지팡이를 아래로 내리니 백성들이 전투에서 졌습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어려운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주의 지팡이로 함께 하십니다. 지팡이는 말씀의 지팡이일 수도 있고 성령의 지팡이일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께서 지팡이로 우리를 보호하심을 믿고 모세처럼 담대하게 애굽 세상으로 내려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두 번째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막대기/회초리로 우리를 깨우치십니다. 지팡이는 주님의 보호하심과 능력을 가리키고 막대기/회초리는 주님의 깨우치심과 훈계를 가리킵니다.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타락해서 나라가 흔들리고 제국이 쳐들어오면 선지자들은 그것이 백성들을 깨우치려는 하나님의 막대기/회초리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또 잠언서 13장 24절은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훈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자식을 바르게 키우려면 사랑도 필요하지만 훈계도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을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훈계는 필요하지만 매를 들어서는 안됩니다. 옛날에는 자식이 말 안 들으면 회초리를 들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방 안에서 1시간 동안 반성하면서 앉아 있어라” 이렇게 말해야지 자식이 말 안 듣는다고 옛날처럼 매를 들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막대기는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영적으로 깨닫게 해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 영적인 막대기/회초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을 깨닫고 돌이킬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막대기로 우리를 깨우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더 멀리 잘못된 길을 가고 말 것입니다. 지팡이도 은혜이고 막대기도 은혜입니다.

언젠가 미국의 Duke 대학에서 Type A형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외유형과 내성형,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과 모험을 싫어하는 사람, 여러 가지 Type이 있는데 성취욕과 목표 의식과 도전 정신이 뛰어난 사람들을 Type A형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너무 일만 열심히 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조사를 해보니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일이 재미있고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보다 삶의 만족도가 더 높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Type A형 가운데서 일반 사람들보다 행복하지 못한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행복하지 못한가 보았더니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올라가는 사람은 행복하지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다른 사람들을 짓밟는 사람은 아무리 크게 성공을 해도 그런 삶의 태도가 부메랑이 되어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아무리 크게 성공해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우리 옛날 말에 매 맞은 사람은 편안하게 자도 때린 사람은 편안하게 자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막대기로 우리의 영혼을 깨우시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의 마지막이 좋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막대기로 그 사람을 치시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인생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막대기가 양심을 깨우기 때문에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막대기로 우리를 깨우셔서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바른 길, 의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막대기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들이 힘들고 어려운 인생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의 지팡이를 통해서 우리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주님의 지팡이가 있기 때문에 모세가 애굽으로 내려갔던 것처럼 우리들도 힘든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주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의 막대기로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막대기는 벌주는 것이 아니라 깨우치는 것이 목적입니다. 불교에서 명상을 할 때 잠깐 졸음이 오면 스님이 막대기로 어깨를 두 번 쳐 줍니다. 막대기로 치는 것은 우리를 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깨우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어려울 때 주님의 지팡이가 우리를 도와주고 잘못된 길을 갈 때 주님의 막대기가 우리를 깨워 줄 것입니다. 때로는 지팡이로 때로는 막대기로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과 함께 새해를 반듯하게 시작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The Lord's rod and staff
Micah 7:14 - 20

Shepherd your people with your staff, the flock that belongs to you, which lives alone in a forest in the midst of a garden land. Let them feed in Bashan and Gilead as in the days of old. As in the days when you came out of the land of Egypt, show us marvellous things. The nations shall see and be ashamed of all their might. They shall lay their hands on their mouths. Their ears shall be deaf. They shall lick dust like a snake, like the crawling things of the earth. They shall come trembling out of their fortresses. They shall turn in dread to the Lord our God, and they shall stand in fear of you. (Micah 7:14-17)

Who is a God like you, pardoning iniquity and passing over the transgression of the remnant of your  Possession? He does not retain his anger for ever, because he delights in showing clemency. He will again have compassion upon us. He will tread our iniquities under foot. You will cast all our sins into the depths of the sea. You will show faithfulness to Jacob and unswerving loyalty to Abraham, as you have sworn to our ancestors from the days of old. (Micah 7:18-20)

The Hebrew people have well known how shepherds managed their flocks. They knew the shepherd used his staff not only to lean on as he walked, but to help straying or fallen sheep climb out of the pits they may have stumbled into. They also knew that he used his rod to discipline stubborn sheep that got out of line and wandered into danger. The staff was a symbol of help and support, the rod a symbol of discipline and awakening. When calling out Moses and said, "tell Pharaoh to let my people go," God gave him a staff, a symbol of God's power and help. God not only sustains the fallen, giving strength to the abandoned and hope to the desperate. God but also makes sure that people who have done wrong suffer the consequences of their behaviour.

God rod is consequences rather than punishments. Wrong behaviour carries with it the seeds of its own retribution. Our souls are fashioned so that certain kinds of behaviour nourish the soul and other kinds are toxic to body and soul alike. Human beings were made by God to be honest and helpful. When we act that way we feel better, as we have learned when we have gone out of our ways to do someone a favor. When we deny our humanity by lying, cheating, or acting selfishly, we feel estranged from our true selves, even as we feel in the aftermath of overeating or excessive drinking.

The scripture says, live right and you will be sustained by God's staff; live wrong and you will feel the impact of God's rod. Good people stumble and fall, but God the faithful shepherd is there to help them recover. Bad people who give in to temptation, take things that don't belong to them and hurt others with their thoughtlessness, but sooner or later the bill comes due. Like the author of the Twenty-third Psalm, We believe in the rod as well as the staff to keep us on the straight path. We believe that we are not alone. When we walk out the journey of life, God accompanies us with God's staff which is  encouraging, and rod which is awakening. God's staff sustains the fallen and God's rod strikes those who call it down upon themselves. Thy rod and thy staff, they comfort me.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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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주일 / 주현절
의의 길과 지름 길
시편 92:5 - 15
정해빈 목사

 

유대교 문서인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여행객이 여행을 하다가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서 어떤 아이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예야, 내가 어느 마을을 가야 하는데 그곳을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알고 있니?” 그러자 그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름길이 있는데 그 지름길은 한참을 돌아가야 합니다.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지름길이기는 한데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참을 돌아가야 가는 지름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보통 지름길 하면 직선으로 가장 빨리 가는 길을 생각합니다. 지름길은 무조건 직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멀리 곡선으로 돌아가는 지름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목표에 빨리 가기 위해서 지름길을 택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그렇게 오래 걸린 길이 결과적으로 가장 빠른 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멀리 돌아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길이 옳은 길이었고 가장 빠른 길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절차와 과정을 생략하고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서두르다 보면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나서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부상당한 운동 선수가 충분한 치료와 휴식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고 성급하게 운동 경기에 나갔다가 더 큰 부상을 입는 경우나, 세상에 대한 깊은 고민/경험없이 너무 빨리 성공한 사람이 나중에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다 그런 경우입니다. 재벌 2세 3세들이 좋은 부모를 만나서 일찍 출세하고 사장이 되었지만 삶에 대한 깊은 고민/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물의/범죄를 일으키는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지름길로 너무 빨리 성공한 것이 오히려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한참을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길이 옳은 길이었고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집트와 가나안 땅 사이의 직선거리,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고 광야를 돌아서 가는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에게는 노예 백성에서 자유의 백성으로 변화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만약 광야에서 충분한 시간을 지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받지 않고 몇 달 만에 지름길로 가나안 땅에 도착했더라면 그들은 준비없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기 때문에 다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또 구약 성경 아가서를 보면, 아가서는 남여의 사랑 이야기를 쓴 책인데, 남여의 사랑 이야기가 왜 성경에 들어왔을까 싶을 정도로 아가서에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젊은 여인이 사랑하는 젊은 남자에게 3번에 걸쳐서 사랑을 서두르지 말라고 타이릅니다. 사랑이 충분히 무르익어서 사랑이 변해서 기쁨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타이릅니다. 혹시 지금 사랑하거나 교제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너무 서두르면 안 됩니다. 사랑이 충분히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때로는 참고 기다리는 것이 늦은 것 같아도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시편 23편은 주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빠른 길도 아니고 악의 길도 아니고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시편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히브리인들에게 이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름은 자신의 존재 목적과 명예를 가리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도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름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본질/마음/성품/뜻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이름/마음이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마치 자석이 쇠를 잡아당기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의 길로 잡아당기십니다. 어떤 기술자가 제품을 만들면 품질보증서를 같이 만듭니다. 내가 이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이 제품의 품질을 보증합니다. 이렇게 품질보증서를 만듭니다. 어떤 제품인 경우에는 그 제품을 만든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걸고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의로우신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우리는 의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성품이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지만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의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멀리 돌아가는 것 같아도 결국에 가서는 형통하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의인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고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지만, 세상을 보면 성경 말씀과는 정반대로 의인은 잘 안되고 악인은 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악인이 잘 안되고 의인이 잘되어야 정상인데 의인은 잘 안되고 악인이 더 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시험을 받기도 하고 세상은 하나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92편은 이 문제에 대해서 한 가지 해답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은 악인은 풀과 같고 의인은 백향목과 같다고 말합니다. 악인은 풀처럼 빨리 자라고 빨리 성공합니다. 풀이 빨리 자라는 것처럼 악인은 빨리 달려가고 빨리 성공합니다. 거기에 비해서 의인은 빨리 가지 못하고 천천히 갑니다. 그래서 악인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풀이 빨리 자라지만 또 빨리 시드는 것처럼, 악인은 빨리 자라지만 또 빨리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의인은 백향목 처럼 느리게 자랍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의인은 백향목 처럼 바르고 반듯하게 큰 나무가 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느린 것 같고 길을 멀리 돌아가는 것 같지만 때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 의인은 큰 나무처럼 큰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2015년 신년주일 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시작합니다. 당신의 이름/명예를 걸고 우리를 의롭게 지으신 하나님을 따라 의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새해에 우리들의 삶과 가정과 일터, 우리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지름길로 가서 빨리 성공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의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새해에는 성도님들의 삶에 자비로우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우리 교회는 수백명 모이는 큰 교회가 아니라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큰 교회 다니면 행복하고 작은 교회 다니면 불행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이기 때문에 더 따뜻하고 가족같이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건강하고 개방적이고 진보적으로, 신앙적으로는 은혜롭고 따뜻하게 의의 길을 걸어가면 거기에 우리의 살 길이 있을 것입니다. 풀처럼 빨리 자라고 빨리 시드는 길보다는 백향목처럼 느리지만 반듯하게 의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도님들 한분 한분을 따뜻하게 환영하고 사랑하면서 정직하고 진실되게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면서 의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Straight path and shortcut
Psalms 92:5 - 15

It is wonderful to be grateful and to sing your praises, LORD Most High! It is wonderful each morning to tell about your love and at night to announce how faithful you are. I enjoy praising your name to the music of harps, because everything you do makes me happy, and I sing joyful songs. You do great things, LORD. Your thoughts are too deep for an ignorant fool to know or understand. Though the wicked sprout and spread like grass, they will be pulled up by their roots. But you will rule over all of us forever, and your hateful enemies will be scattered and then destroyed. (Psalms 92:1 - 9)

You have given me the strength of a wild ox, and you have chosen me to be your very own. My eyes have seen, and my ears have heard the doom and destruction of my terrible enemies. Good people will prosper like palm trees, and they will grow strong like the cedars of Lebanon.  They will take root in your house, LORD God, and they will do well. They will be like trees that stay healthy and fruitful, even when they are old. And they will say about you, "The LORD always does right! God is our mighty rock." (Psalms 92:10 - 15)

There is a story in the Talmud about the traveler who asks a child, "Is there a shortcut to such-and-such a village?" The child answers, "There is a shortcut that is long and a long way that is short." Like this story, we have all had the experience of trying to take a shortcut, whether while driving or in other aspects of our lives, and finding ourselves entangled in a mess we would have done well to avoid. We are so often in a hurry to get to where we want to end up that we take shortcuts and end up regretting it. A straight line is the shortest distance between two points in plane geometry. But in life the shortest distance to our goal may be an indirect, roundabout route.

When the Israelites left Egypt, we read that God did not lead them on the most direct route of the Promised Land precisely because it was short. They needed extra travel time to make the transition from having been slaves to being a free people. The young woman who is the narrator of the biblical love poem [The Song of Songs] warned her lover three times not to rush things. Psalms 23 said, "The Lord  guides me in straight paths for God's name's sake." "Straight paths" literally means "roundabout ways that end up in the right direction." These scriptures say that God leads us not in the shortest or evil paths, but in straight paths which seem roundabout but eventually turn out to be in the right direction.

Today's scripture, Psalms 92, says that although the wicked sprout and spread like grass, they will be pulled up by their roots. But good people will prosper like palm trees, and they will grow strong like the cedars of Lebanon. They will take root in God's house and they will do well. They will be like trees that stay healthy and fruitful, even when they are old. Sometimes we see that the evildoer succeeds well while the righteous suffers from the world. But the scripture says that although the wicked sprout and spread like grass at first, they will wither soon. Good people will prosper like palm trees. Although growing slowly, it will eventually grow strong like the big trees. Celebrating new year 2015, we begin new journey of life. When we live out the world this year, we pray that God leads us in straight and righteous paths which seem roundabout ways at first but eventually turns out to be in the right direction.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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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자기 비움의 사랑
마태복음 1:18 - 24
정해빈 목사


성탄절은 기독교 절기에서 가장 기쁘고 의미있는 절기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탄절에 대한 좋은 기억이나 추억을 하나씩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옛날 어린 시절 성탄절 전날이 되면 시골 아이들은 교회로 모여듭니다. 교회에 모여 연극을 하고 밤을 지새웁니다. 다음날 성탄절 이른 새벽이 되면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새벽송을 부릅니다. 때로는 새벽에 눈이 와서 온 동네가 하얗게 눈으로 뒤덮히기도 합니다. 집 앞에 모여 노래를 부르면 어떤 사람들은 계속 자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일어나서 우리들을 환영 하고 과자나 쿠키를 주기도 합니다.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마을 전체가 즐거워합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도 성탄절을 환영하고 새벽송을 기다립니다. 왜 사람들은 성탄절을 기뻐하고 즐거워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세상 어디에나 계시지만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통해 자신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성탄절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저 하늘, 완벽하고 순수하고 깨끗한 하늘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실 때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땅으로 내려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더러운 일이고 하나님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깨끗한 하늘을 버리고 낮고 천한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살기 때문에 때가 묻고 더러워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추한 모습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기쁨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멕시코 히스패닉 신학자인 엘리존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갈릴리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사건이고, 더 나아가 하늘과 땅이 섞이는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백인과 히스패닉 사람들이 만나서 메스티조 혼혈인들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낮은 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스스로 혼혈이 되셨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갈릴리, 여러 민족 사람들이 섞여 사는 갈릴리에서 태어나심으로 스스로 낮아지셨다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단일 문화, 단일 언어가 있는 땅에서 태어나지 않으시고 복합 문화, 혼혈 문화가 있는 갈릴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렇게 태어나심으로 예수께서는 문화차별과 인종차별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문화와 인종이 다른 모든 사람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잉태한 것을 알고 조용히 파혼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태중에 이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아주 엄격했던 옛날 사회, 명예와 수치를 중요하게 여겼던 옛날 사회에서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아이가 태어난 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수치를 영광으로 바꾸셨습니다. “그 아이는 성령으로 태어났다. 그 아이는 나의 아들이다, 내가 그 아이를 키울 것이다, 그가 나의 일을 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고통 중에 태어나는 아기들이 있습니다. 약하고 아픈 몸으로 태어난 아기들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외롭게 태어난 아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품으시고 그들을 당신의 딸/아들로 만드셨습니다. 그들이 내 일을 할 것이고 그들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곳 갈릴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성탄절 이야기는 자기를 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낮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스스로 낮아지셨고 더러워지셨습니다. 외딴 곳, 변두리/경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외딴 곳, 변두리/경계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수치가 영광으로 바뀌었습니다. 외로움이 함께 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낮은 곳에 계신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가장 낮고 소외된 곳으로 내려오셔서 그곳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님들의 삶에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Christmas is one of the most joyful and meaningful day in Christian calender. Probably everyone has a special memory about Christmas. When I was young, all children gathered to the church on Christmas Eve. We played pageant and stayed awake all night. On the early morning of Christmas Day, we marched into the each house in the village. We sang Christmas Carol and said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Some people kept sleeping, but some people woke up and greeted us with some cookies and chips. When Christmas comes close, everyone looks happy. Even those who do not come to church, look happy and joyful. Why is everyone happy on Christmas Day? What do you think makes people happy on Christmas Day? We are happy because God came to us through baby Jesus. Of course God is everywhere. But God revealed clearly through the way Jesus was born in the stable. We believe God is above the heaven where everything is perfect and clean. God becomes God when God is in heaven. But God decided to come down to us. Coming down from the above is risky and dirty, even looks shameful. It may lose God's image. But God wanted to do it to be with us.

Hispanic theologian Elizondo said, Jesus was born as outsider or "mestizo" which means mixed blood between White and Hispanic people. Jesus was born in Galilee where people of mixed origins lived. God did not come to the place where mono race and mono culture dominated. God came to the place of edge, the place of border, to meet those marginalized in the cultural and racial barriers. He said, "In Jesus, God becomes not just a human being, but the marginated, shamed, and rejected of the world." In Jesus, any cultural and racial discrimination lost their powers. Joseph decided to quietly call off the wedding, when he heard that Mary has a baby. But the angel said, "Joseph, the baby that Mary will have is from the Holy Spirit. Go ahead and marry her." In ancient time, having baby without knowing father was shameful and fatal. But the angel said, "the bay is from the Holy Spirit." This story shows how God turned shame to blessing. God favors those suffering from the notion of so called 'honour and shame society.' To those born like Jesus, born seriously weak, poor, and isolated, God said, 'you are my son, I love you. I will work with you." Christmas is the story about God coming down to humans. Whenever Christmas comes to us, we are reminded that God is with us even when we are not noble and pure. We are not afraid of. We are not alone. Even if we are living isolated, living in border and edge, it is not shameful but joyful and creative, because God is with us. Thanks be to God.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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