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여섯번째 주일 / 10월 두번째 주일

추수감사절, 신앙은 감사와 존경입니다

시편 136:1 - 9

정해빈 목사




김현승 시인은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감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언제나 은혜의 불빛 앞에 있다... 받았기에 누렸기에 배불렀기에 감사하지 않는다... 허물어진 마을에서 불 없는 방에서 빵 없는 아침에도 가난한 과부들은 남은 것을 모아 드리었다. 드리려고 드렸더니 드리기 위하여 드렸더니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 마음만을 받으시고 그 마음과 마음을 담은 그릇들은 더 많은 금은(金銀)의 그릇들을 보태어 우리에게 돌려보내신다. 그러한 빈 그릇들은 하늘의 곳집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주인(主人)이 누구인지를 깊이 아는 마음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아는 마음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마음이다, 시인은 감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진실로 감사는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넉넉하고 풍성하게 지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따뜻한 햇빛, 맑은 공기, 풍성한 열매와 곡식을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하루하루 살 수가 있습니다. 종교는 감사와 존경이다, 어떤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종교는 존경이다, 우리 한글말도 말이 비슷한데, 영어도 말이 비슷합니다. Religion is reverence. 종교생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감사하고 존경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물론 일반 사람들도 감사하고 존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더 적극적으로 더 분명하게 창조주 하나님을 감사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입니다. 서양 속담에 전쟁터 참호 속에서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전쟁터에서는 누구나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우리 자녀들이 왜 교회에 가야 되냐고, 왜 추수감사예배를 드려야 하냐고 묻는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존경하고 감사를 고백하기 위해 교회에 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길을 걷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들입니다.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지혜로 하늘을 만드신 분께 감사하여라. 물 위에 땅을 펴 놓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큰 빛들을 지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낮을 다스릴 해를 지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밤을 다스릴 달과 별을 지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신앙은 감사와 존경입니다. 종교와 존경은 같은 말입니다. 존경이 발전해서 종교가 되었습니다. 감사는 마중물과 같습니다. 우리가 감사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고 더 큰 감사를 내려주십니다. 시인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그릇을 받으시고 그 그릇 위에 많은 것을 채워서 우리에게 보내 주십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언제나 은혜의 불빛 앞에 있다. 지금 농부들이 기쁨으로 거두는 땀의 단들보다도, 지금 파도를 헤치고 돌아온 저녁 항구의 배들보다도, 지금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주택가의 포근한 불빛보다도, 더욱 풍성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것들을 모두 잃는 날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록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를 드릴 때 감사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줍니다. 감사는 우리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고 더 큰 감사를 불러일으킵니다. 진실로 신앙은 감사와 존경입니다. 감사와 존경이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합니다. 진실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감사와 존경을 고백하며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By singing, praying, confessing, and sharing, we express our gratitude to God today. Many people take for granted everything they can do, eating, walking, seeing, listening, and speaking. But these things do not come from our achievements. Rather these things come from God who loves us and gives us as free gifts. One famous theologian said, “religion is thanksgiving, reverence, and respect.” He said, the term “religion” came from “reverence.” Religion begins with a sense of reverence, the recognition of God’s greatness and our limitations. That is why there are no atheists in foxholes and few atheists in hospitals. There are no atheists in foxholes because times like those bring us face to face with our limitations. We who are usually so self-confident, so secure in our ability to control things, suddenly learn that the things that matter most in our lives are beyond our control. Having religion and believing God means to honour God and to show reverence and respect to God. Truly religion is reverence. As christians, we honor God for God’s wonderful deeds. We pay respect to God as our Creator. If our children ask, why do we go to church?, why do we give thanks to God? I think we can say, we go to church to express our respect and reverence to the Creator, our God.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for his steadfast love endures for ever. Give thanks to the Lord who alone does great wonders, who by understanding made the heavens, who spread out the earth on the waters, for his steadfast love endures for ever.”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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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다섯번째 주일 / 10월 첫번째 주일

창조절, 거룩과 경이로움

시편 8:1 - 9

정해빈 목사





1. 창조절 다섯 번째 주일을 맞아 거룩과 경이로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 말에 경이롭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놀랄 경(), 다를 이(), 놀랍고 신기하고 평소와 다른 것을 보았을 때 경이(驚異)롭다는 말을 씁니다. 경이를 영어로 표현하면 wonder가 됩니다. 어떤 것이 놀랍고 신기하고 평소와 다를 때 wonder, wonderful이라고 말하고 어떤 것이 놀랍지 않을 때는 no wonder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순간순간 경이로움을 체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꽃 한송이와 나무 한그루, 풍성하게 열린 열매를 보면서 창조의 경이로움을 체험하고 어떤 사람은 산과 바다와 호수, 밤하늘의 별과 높은 하늘을 보면서 창조의 경이로움을 체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선한 공기와 따뜻한 햇살을 보면서 창조의 경이로움을 체험하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생명이 출산하는 순간 창조의 경이로움을 체험합니다. 캐나다에서는 한국과 같은 골목 시장이 없어서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농부들이 농산물을 파는 Farmer’s Market이 있습니다. 골목 시장에 가보면 가을을 맞아 풍성한 과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과//오렌지/호박, 모든 과일들이 아름답고 신기하고 예쁘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무덤덤하게 만들지 않으시고 놀랍고 신기하고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보면서 창조의 경이로움을 체험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사람이 만든 제품은 시간이 지나면 질리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만든 제품들, , 자동차, 핸드폰, 컴퓨터는 처음에는 예쁘고 신기하고 경이롭게 보입니다. 디자인이 이쁘구나, 이런 기능이 있구나, 참 편리하다 감탄을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물건이 더 이상 신기하거나 경이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물건이 여전히 쓸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지겹기 때문에 사람들은 새로운 옷을 사 입고 새로운 물건을 구입합니다. 신기하게도 사람이 만든 제품은 금방 질리고 지겹게 느껴집니다. 쉽게 유행을 타기도 하고 쉽게 구식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은 질리지 않습니다. 사람들 중에 산이 너무 지겹다, 호수가 너무 지겹다, 나무가 너무 지겹다, 잔디밭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답고 신기하고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자연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자연을 만드시고 자연 속에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제품은 쉽게 지겨워지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은 지겹지 않고 계속 경이롭게 보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발전하고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생명의 신비, 자연의 신비를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창조의 경이로움 보다는 인간의 능력을 더 강조합니다. 자연을 보면서 감탄하고 놀라기 보다는 빨리 정복하고 개발하려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아름다운 산을 보면서 저 산이 참 신비롭고 예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저 산을 빨리 개발하고 정복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옛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보면서 신비롭고 두려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저 산 속에 하나님의 기운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에는 산에는 산신령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생각하면 유치하게 보이지만 자연을 경외하고 신비롭게 생각하는 옛날 사람들의 자세가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예전에 나이드신 사마리아 회원들하고 히말라야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에 올라갔다가 죽은 동료를 찾기 위해 산을 등정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데 이 영화를 보면 히말라야 산에 올라갔다가 조난당해서 얼어 죽은 사람들이 지금도 곳곳에 그대로 있는 것이 보입니다. 너무 높아서 시신을 가지고 내려 올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산이 있으면 무작정 산을 정복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올라가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저 높은 산을 두렵고 신기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좋을 텐데,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좋을 텐데, 사람들은 높은 산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너무 많이 등산을 하니 산이 망가지고 사람이 죽고 쓰레기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2.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시대를 가리켜서 거룩을 잃어버린 세대, 경이로움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거룩과 경이로움을 잃어버린 세대는 불행합니다. 놀랄 것도 없고 신비로운 것도 없고 감사할 것도 없고 모든 것이 다 지식과 과학으로 설명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은 딱딱하고 메마른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다. 자연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자연 과학 앞에서 경이로움을 체험하고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우주 앞에서 경이로움을 체험합니다. 거룩과 경이로움을 잃어버리면 사람은 딱딱하고 메마른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다. 신앙이 언제 어느 순간부터 시작되느냐 질문한다면, 인생을 살면서 어느 날 갑자기 거룩과 경이로움을 체험하는 순간, 신앙생활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 신비롭고 경이로운 것을 만났을 때 사람은 영적인 체험을 하고 종교적인 인간이 됩니다. 영적인 존재 앞에서 감사하고 감탄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이 됩니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Rudolph Otto)1917년에 쓴 [성스러움의 의미, The Idea of the Holy]라는 책에서 사람은 거룩한 존재를 만날 때 두려움과 신비로움을 체험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보다 더 크고 위대한 거룩의 체험을 할 때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자연을 통해서 거룩을 만날 수도 있고 신앙 체험을 통해서 거룩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거룩을 체험했다는 측변에서 볼 때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거룩한 존재가 너무 크고 위대하기에 나라는 존재가 너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이러한 거룩과 경이로움의 체험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의미있게 하고 기쁘고 감사하게 만들어 줍니다.


최근에 토론토 동쪽 스카보로 West Hill United Church, 그레타 바스퍼(Gretta Vosper) 목사 이야기가 신문 방송에 여러 번 나왔습니다. 나는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대신 생명, 정의, 평화, 희망, 사랑을 믿는다 이런 비슷한 주장을 했습니다. 토론토 연회에서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목회자로는 부적절하니 목사직을 박탈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총회에다가 최종 결정을 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바스퍼 목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목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많이 찾아왔고 교회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목사가 목회를 못하게 하느냐 이렇게 말을 하고, 토론토 연회 결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 목사 한 사람 때문에 교단이 오해를 받으니까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을 합니다. 바스퍼 목사의 주장 중에 들어볼만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얼굴에 수염이 난 할아버지 같은 하나님이 하늘에 앉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벌을 주려고 천둥/번개를 보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바스퍼 목사의 주장 중에 옳은 부분이 분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주기도문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시작하니까, 자신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지 않으니까 주기도문을 고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주기도문을 없애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주기도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 속에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 분이 너무 경솔하구나,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은 본래 상징적이고 영적입니다. 상징을 다 빼버리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여러분 이 중에서 어느 말이 귀에 잘 들어오고 은혜가 되십니까? “사랑이 하나님이다이 말보다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다이 말이 더 귀에 잘 들어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을 친밀하고 따뜻하게 고백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8편 말씀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과학의 눈으로 보면 사람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오 하나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귀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십니까?”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감사하는 것이고 놀라는 것이고 경이로움을 고백하는 것이고 거룩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거룩함, 경이로움, 감사함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항상 감사하고 항상 감탄하고 항상 주님의 거룩함을 찬양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reation, holy and wonder

Psalms 8:1 – 9


O Lord, our Sovereign,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You have set your glory above the heavens. Out of the mouths of babes and infants you have founded a bulwark because of your foes, to silence the enemy and the avenger. When I look at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that you have established; what are human beings that you are mindful of them, mortals that you care for them? (Psalms 8:1 - 4)


Yet you have made them a little lower than God, and crowned them with glory and honour. You have given them dominion over the works of your hands; you have put all things under their feet, all sheep and oxen, and also the beasts of the field, the birds of the air, and the fish of the sea, whatever passes along the paths of the seas. O Lord, our Sovereign,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Psalms 8:5 9)


In 1917, the German theologian Rudolph Otto said in his book, [The Idea of the Holly], that there is an overwhelming, almost frightening aspect to encountering the Holy. To meet it is to meet a reality so much greater than ourselves that we feel small in comparison, not because we are in fact small but because the Holy is great on a scale we have never known before. We feel that we are important enough to be invited to encounter the Holy but in its presence we are overwhelmed and made aware of our own smallness. This insight shows us the fact that the journey of faith begins with realizing the reality of awe and wonder. Religion is reverence! As christians, we do not think that the world is made of just basic materials and by scientific rules. Rather we believe God created the world with beauty, mystery, and wonder. So we confess as the Psalmist say, “what are human beings that you are mindful of them, mortals that you care for them?”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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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네번째 주일 / 9월 네번째 주일

창조절, 땅의 풍성함과 튼튼함

창세기 1:9-12, 누가복음 12:22-28

정해빈 목사





1. 9월부터 창조절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자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에는 땅과 물이 나오고 누가복음에는 까마귀와 백합꽃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으냐?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도 먹이시고 백합꽃도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를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이 말씀이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고 입히실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말씀이 나와 상관없는 말씀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이 말씀과 정반대입니다. 하루하루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로 들립니다. 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학교 성적과 시험 때문에 걱정을 하고 직장과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비즈니스 때문에 걱정을 합니다. 건강이 좋지 못한 분은 건강 때문에 걱정을 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분은 돈 때문에 걱정을 합니다.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서 먹고 사는 것을 가지고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사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많은 갈릴리 농민들이 높은 세금으로 인해 땅을 잃어버리고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농민들은 3곳으로부터 수탈을 당했습니다. 제일 먼저 로마 제국이 세금을 걷어가고 두 번째로 헤롯 왕이 세금을 걷어 가고 세 번째로 예루살렘 성전이 세금을 걷어 갑니다. 그렇게 로마와 헤롯과 성전이 세금으로 빼앗아가니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갈릴리 농민들을 향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까마귀도 먹이시고 백합꽃도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를 먹이고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는 사람이 예수님 말씀을 들었다면 예수님을 향해서 지금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힘든데 걱정하지 말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하고 따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농민들의 고통을 모르셨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아셨기에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고 가난한 사람들과 사랑의 식사를 자주 나누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는 이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들꽃과 까마귀도 살 수 있는 좋은 세상, 풍성한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백합꽃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을 가리키고 까마귀는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새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꽃과 평범한 새도 걱정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하나님께서 광야로 도망쳐 나온 여종 하갈의 눈을 밝게 뜨게 해 주셔서 주변에 있는 우물을 보게 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갈 같이 약하고 힘 없는 사람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 들꽃도 꽃을 피우고 까마귀 같은 보잘 것 없는 새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1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여라"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식물이 풍성하게 열리고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는 세상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뜻에서 하나님께서 들꽃도 입히시고 까마귀도 먹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만드신 세상은 무엇이든지 풍족하고 여유있는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실 때 부족하게 만들지 않으시고 무엇이든지 풍성하고 충분하게 만드셨습니다. 햇빛도 충분하게 만드셨고 공기도 충분하게 만드셨습니다. 물도 충분하게 만드셨고 열매도 충분하게 만드셨습니다.


2.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풍성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는 이런 풍성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 주신 풍성함이 없다면 그것은 왜 그런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풍성하게 살고 어떤 사람은 빈곤하게 삽니다. 이 세상이 그렇게 된 것은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잘못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셨는데 우리들이 그 풍성함을 잘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풍성함을 누리고 어떤 사람은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인류가 쓰고 남을 만큼의 에너지와 식량이 있습니다. 태양에서 1년 동안 지구로 오는 에너지는 인류가 1년간 사용하는 에너지의 7000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에너지를 쓰고 나면 쓰레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써도 되는 에너지, 태양, 바람, , 지열 같은 에너지를 재생 에너지(Renewable Energy)라고 부릅니다. 만약 인류가 이런 재생 에너지를 개발한다면 인류는 석유가 없어도 충분할 정도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식량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식량보다 인구가 더 많아서 사람들이 굶주린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사실 이 지구상에는 모든 인구가 먹을 만큼의 충분한 식량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곡식을 잘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배부르고 어떤 사람은 굶주리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쌀 재고량이 130만 톤 이상 남아서 2012년에 생산한 쌀이 아직도 창고에 있다고 합니다. 남아도는 쌀을 창고에 보관하고 관리하는 비용만 연간 2600억 원에 이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번에 함경북도에서 큰 홍수 피해가 났는데 그 남아도는 쌀 북한에 전달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주고 받아야 주는 사람도 마음이 풍성해지고 받는 사람도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햇빛도 풍족하게 주셨고 물과 바람도 풍족하게 주셨고 곡식과 열매와 쌀도 풍족하게 주셨습니다. 서로 나눠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을 풍족하게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나의 것을 이웃과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 옛 말에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풍족하면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풍성하게 주셨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이웃과 물질을 나누고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풍성하게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튼튼하게 만드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은 드러나거라"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뭍을 땅이라고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하셨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물이 땅을 침범하는 것이었습니다. 물이 땅위로 범람하면 사람은 살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이집트 나일 강이 불어나서 땅 위로 범람하고 바벨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불어나서 땅 위로 범람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들은 고백하기를 바다가 땅 위로 쳐들어오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바다와 땅의 경계를 지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가 땅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바다와 땅의 경계를 지으시고 땅을 안전하고 튼튼하게 지으셨습니다. 땅이 안전하고 튼튼해야 우리가 그 땅 위에서 살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 경주에서는 지진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많이 놀라고 있습니다. 지진은 어떤 면에서는 땅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100년에 한번 씩 숨을 쉰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서 사람이 죽는 것 보다 땅 위에 있는 위험한 건물 때문에 죽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부산-울산-경주-울진에 이르는 동남 해안에 원자력 발전소가 20개가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많은 발전소가 좁은 지역에 밀집되어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없애고 있는데 한국은 반대로 계속 새로 짓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핵 폐기물을 생각하면 원자력이 만들어 내는 전기는 싼 것이 아니라 가장 비싸고 위험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이 세상을 풍성하고 튼튼한 곳으로 만드셨습니다하지만 우리들은 그 풍성함을 서로 나누지 못해서 진정한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또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튼튼하게 만들어 주신 이 땅을 핵무기/핵발전소로 인해 위험한 곳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한반도 북쪽에는 핵무기가 있고 남쪽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모여 있으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창조절 절기를 묵상하면서 이 세상을 풍성하고 튼튼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만드신 이 땅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더 튼튼하고 안전하게 가꾸어 나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멘.


Creation, the earth abundant and strong

Genesis 1:9-12, Luke 12:22-28


God said, "I command the water under the sky to come together in one place, so there will be dry ground." And that's what happened. God named the dry ground "Land," and he named the water "Ocean." God looked at what he had done and saw that it was good. God said, "I command the earth to produce all kinds of plants, including fruit trees and grain." And that's what happened. The earth produced all kinds of vegetation. God looked at what he had done, and it was good. (Genesis 1:9-12)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 tell you not to worry about your life! Don't worry about having something to eat or wear. Life is more than food or clothing. Look at the crows! They don't plant or harvest, and they don't have storehouses or barns. But God takes care of them. You are much more important than any birds. Can worry make you live longer? If you don't have power over small things, why worry about everything else? Look how the wild flowers grow! They don't work hard to make their clothes. But I tell you that Solomon with all his wealth wasn't as well clothed as one of these flowers. God gives such beauty to everything that grows in the fields, even though it is here today and thrown into a fire tomorrow. Won't he do even more for you? You have such little faith! (Luke 12:22-28)


Celebrating the fourth Sunday of the Season of Creation, we meditate on the abundance and safety of creation that God had made for us in the beginning. Today’s scriptures say that God made the world rich and abundant, sunlight, water, air, trees, and fruits, full enough for us to use in the world. God made everything that is enough to share with others. If we feel that everything is not enough to share with others, this thought would not come from God’s incompleteness but from our greed and self-oriented mind. In this perspective, Jesus said, “Don't worry about having something to eat or wear. God gives such beauty to everything that grows in the fields, even though it is here today and thrown into a fire tomorrow. Won't God do even more for you?” Today’s passages also say that God made the earth safe and strong. God ordered the earth to come from the ocean and not to be shaken up so that we can settle down in the ground. Although God made the world abundant and safe, we feel that we live the world of insufficiency and danger. Today’s message reminds us how we are blessed in the world. We are called to share with others all the abundant gifts from God and to make this world safe.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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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세번째 주일 / 9월 세번째 주일

창조절, 하갈의 눈을 뜨게 하시다

창세기 21:8 - 19

정해빈 목사





1. 9월부터 창조절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세상 달력이 있듯이 교회에는 교회 달력이 있습니다. 대림절/성탄절/주현절/사순절/부활절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갈릴리, 예루살렘, 십자가, 부활, 하나님 나라, 예수님의 가르침, 죄용서, 병고침, 식사,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묵상합니다. 성령강림절은 성령체험과 성령의 열매, 교회의 탄생을 묵상합니다. 9월부터 11월까지 계속되는 창조절은 하나님과 피조 세계의 관계를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창조절이 가을철에 있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고 생각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하나님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원칙을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셨을까, 세상 창조의 원리는 무엇일까, 이 우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간은 누구인가, 사람이 하나님 뜻대로 이 세상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런 주제를 묵상하는 절기가 창조절입니다. 


오늘은 창조절 세 번째 주일을 맞이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기 위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옛날 50년 전, 100년 전만 해도 서양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골목마다 교회당이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어른들과 아이들로 예배당이 꽉꽉 찼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보다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닌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은 착하고 하나님 믿지 않고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착하지 않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 믿지 않고 교회 다니지는 않지만 바르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바르고 착하게 살 확률은 높지만 반드시 하나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더 착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고 하나님 믿지 않고 교회 다니니 않는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것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교회를 병원처럼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매주일 병원에 가지 않고 필요할 때만 병원에 갑니다. 마찬가지로 요즘 젊은 사람들은 교회를 매주일 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만 갑니다. 결혼식/장례식, 자녀 세례받을 때, 부활절/추수감사절/성탄절에만 교회에 갑니다. 우리 한인 1세대들은 이민자로서 어렵고 힘들게 이 땅에서 살기 때문에 교회가 중요합니다. 예배와 친교를 통해서 이민자로서의 외로움도 해결하고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 나갑니다. 한국 말로 예배드리고 한국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삶을 나눕니다. 매주일 교회 예배를 통해서 은혜 받고 용기를 얻어야 이 땅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태어난 우리 자녀들은 영어도 잘하고 돈도 잘 벌기 때문에 1세대만큼 아쉬운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삶에 교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좋은 곳, 가끔 필요할 때 가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하나님 안 믿으면 벌 받고 지옥에 갈까봐 무서워서 교회 다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교회 안 다닌다고 해서 우리를 벌주는 분이 아닙니다. 부모는 교회 다니고 자녀들은 교회 다니지 않는 가정들도 많은 데 그럼 하나님께서는 부모는 천국에 보내고 자녀는 지옥에 보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교회 다니는 것은 하나님 안 믿으면 벌 받을까봐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무서워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무도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나옵니다. 


2.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시각에 있습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은 우연히 만들어졌고 이 세상은 냉정하고 무서운 세상이기 때문에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고 지금도 이 세상을 정의롭고 아름답게 만들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정글과 같은 세상으로 생각해서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악착같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정글과 같은 잔인한 세상이 아니라 살만한 세상, 좋은 세상, 아니 살만하고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바로 여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21장 말씀을 보면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집에서 쫓겨나서 광야로 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난 6월 달에 하갈에 대해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하갈이 아이를 갖자 하갈과 사라 사이에 갈등이 생겨서 하갈이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갈을 부르셔서 아브라함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갈은 팔레스타인/이슬람을 상징하고 사라는 유대/기독교를 상징합니다. 하갈과 사라가 갈라져서 원수가 되면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이 원수가 되고 이슬람과 유대/기독교가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갈에게 하갈아, 돌아가거라, 서로 원수가 되면 안 된다, 힘들어도 서로를 인정하면서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집으로 돌아온 하갈은 이스마엘을 낳았고 사라도 이삭을 낳았습니다. 각자가 아브라함의 자식을 낳으니 또 갈등이 생겼습니다. 하갈은 이스마엘을 데리고 아브라함 집을 또 떠나기로 결심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에게 물과 식량을 주고 떠나보냈지만 얼마 못가서 물과 식량이 떨어지게 되었고 하갈과 이스마엘은 죽게 되었습니다. 하갈이 슬퍼 울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갈아 무서워하지 말아라, 내가 저 아이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갈의 눈을 더 밝게 뜨게 하셔서 근처에 있는 샘/우물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갈은 맨 처음에 이 세상이 냉정하고 차갑다고 생각했습니다. 물과 식량이 떨어져서 죽을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습니다. 자기는 세상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같이 힘 없는 사람은 죽어야만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눈을 밝게 뜨게 하셔서 근처에 있는 우물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갑자기 우물을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물은 본래부터 거기에 있었습니다. 다만 하갈은 그 우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밝게 해 주시자 비로소 그 우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물을 보지 못한 하갈처럼, 이 세상을 잔인하고 차가운 세상으로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하갈이 눈을 떠서 우물을 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드셨고 살만한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적인 눈을 떠서 가만히 주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많은 것들을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죽지 않도록 햇빛과 공기, 물과 양식을 주셨습니다. 힘 없고 약한 사람들이 죽지 않도록 곳곳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영적인 눈을 떠서 세상을 보면 세상 모든 것이 신비롭고 감사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잔인하고 차가운 세상이 아니라 하갈 같은 사람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설교 후에 부를 찬송 366장을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진리를 보게 하소서. 진리의 열쇠 내게 주사 참빛을 찾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눈을 뜨게 하소서, 성령이여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좋은 세상이 눈에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갈 같이 힘 없는 사람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라도 하갈 같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주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우물이 보일 것입니다.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고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감사드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reation, God made Hagar’s eye open

Genesis 21:8 19


The time came when Sarah no longer had to nurse Isaac, and on that day Abraham gave a big feast. One day, Sarah noticed Hagar's son Ishmael playing, and she said to Abraham, "Get rid of that Egyptian slave woman and her son! I don't want him to inherit anything. It should all go to my son." Abraham was worried about Ishmael. But God said, "Abraham, don't worry about your slave woman and the boy. Just do what Sarah tells you. Isaac will inherit your family name, but the son of the slave woman is also your son, and I will make his descendants into a great nation." (Genesis 21:8 - 13)


Early the next morning Abraham gave Hagar an animal skin full of water and some bread. Then he put the boy on her shoulder and sent them away.They wandered around in the desert near Beersheba, and after they had run out of water, Hagar put her son under a bush. Then she sat down a long way off, because she could not bear to watch him die. And she cried bitterly. When God heard the boy crying, the angel of God called out to Hagar from heaven and said, "Hagar, why are you worried? Don't be afraid. I have heard your son crying. Help him up and hold his hand, because I will make him the father of a great nation." Then God let her see a well. So she went to the well and filled the skin with water, then gave some to her son. (Genesis 21:14 19)


Celebrating the Season of Creation, we meditate on love and grace that God put in the world. We are not living in the jungle like world in which everyone should survive by themselves, but we are living in the world that God made with love and grace. We believe that God cared for every creatures, even the most weak life. In Genesis 21, God did not make a miracle happen for Hagar. God did not create any life-giving resources that were not there before. God opened her eyes so that she saw the well that she had not previously noticed, and all of a sudden the same world which had looked so hopelessly cruel to her a moment before was now seen as a livable and life-sustaining place. God made our eyes open to see how graciously God made the world and how carefully God provided essentials for those in need. Believing God means opening our eyes. When we open our eyes, we can notice how graciously God created the world as a livable and life-sustaining plac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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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열네번째 주일 / 8월 세번째 주일

해방주일, 혐오를 넘어 환대와 화해로

예레미야서 31:1 - 6 

정해빈 목사



1. 지난 815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1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910829일부터 1945년까지 815일까지 35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요즘은 일제가 강제로 조선 땅을 점령했다고 해서 일제 강점기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부끄러운 역사 중 하나가 제국주의 역사입니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프랑스는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독일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주장하면서 유럽을 차지하려고 하였고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 동아시아를 한 나라로 만들자는 명분하에 조선과 중국을 차지하려고 하였습니다. 큰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하려는 것을 제국주의라고 부릅니다.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는 너희가 미개하니까 우리가 너희를 도와주려 왔다고 말을 합니다. 자기가 최고이든 아니든 그냥 자기 나라에서 살면 모두가 행복합니다. 각자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기 땅에서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하지만 제국들은 더 큰 나라를 만들려는 욕심으로 약한 나라를 쳐들어갔습니다. 많은 유럽 제국들이 아프리카에 가서는 흑인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아메리카에 쳐들어가서는 거기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다 죽였습니다. 흑인들과 원주민들은 무식하니까 이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제도 조선 사람들을 이등 국민으로 취급했고 무식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몇 백 년 동안 인류는 이런 제국의 시대를 겪었습니다. 제국은 하나님의 뜻에 역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고 모든 민족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여라 말씀하셨습니다. 자손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땅에 퍼져서 행복하게 살아라 말씀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의 반대는 정글입니다. 정글에서는 강한 동물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습니다. 거기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제국을 반대하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평화의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11장에서 에덴동산/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힘이 있다고 해서 상대방을 해치거나 파괴하지 않는 세상,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을 때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도 있었고 독립 운동에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일제가 계속 통치하니까 일제가 영원할 줄로 알고 일제에 협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독립 운동을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에서 제일가는 부자 중 하나였던 이회영, 이시영 6형제는 급하게 재산을 처분해서 당시 금액으로 40만원, 현재 가치로 6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들고 만주로 이주해서 독립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노비문서를 불태워서 노비들을 해방시켰고 나머지 식솔들을 데리고 만주로 가서 독립군을 양성하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습니다. 6형제 중에서 5명이 객사하고 1명만 살아서 해방을 볼 수 있었습니다. 8.15 해방이 우리 노력이 아니라 연합군에 의해서 저절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냥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회영, 이시형 선생 같은 분들이 헌신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실이었습니다. 후세대들이 그 당시 유력한 집안 중에서 독립운동을 열심히 한 집안이 있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이런 분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나마 이런 집안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얼굴을 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구약 성경을 보면 히브리/이스라엘 사람들이 북쪽 앗시리아/바벨론과 남쪽 이집트 사이에서 고통 받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땅 자체가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지나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주변 나라들이 항상 이 땅을 차지하려고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북쪽 앗시리아/바벨론이 쳐들어오고 어떤 때는 남쪽 이집트가 쳐들어옵니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북쪽 나라와 남쪽 나라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서 위기를 벗어났지만 어리석은 지도자는 국제 정세를 잘못 판단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바람에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북쪽 나라와 남쪽 나라가 서로 잡아당기다 보면 가운데 있는 나라는 두 쪽으로 나누어지기가 쉽습니다. 이스라엘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남북이 서로 경쟁하다 보니 한쪽에 위기가 와도 다른 쪽이 도와주지 않습니다. 남북이 하나이면 다른 나라들이 침략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싸우니 주변 나라들이 보기에 그 땅을 차지하기가 더 쉬었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이 먼저 멸망하고 나중에 남유다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남과 북이 갈라졌을 때 서로 정통성을 주장했습니다. 남유다는 우리는 다윗/솔로몬의 후손들이다, 우리에게는 예루살렘과 성전이 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정통성은 남쪽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북이스라엘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10지파가 우리에게 속해 있고 인구도 우리가 더 많으니 이스라엘 정통성이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서로 자기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싸우다가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한국 땅도 이스라엘 땅처럼 북쪽 나라와 남쪽 나라 사이에 끼어 있어서 끊임없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한국 오천년 역사를 보면 4번 크게 침략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고려 시대 몽골의 침략,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강점기. 그 중에서 몽골의 침략과 병자호란은 북쪽 나라가 쳐들어 온 경우였고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는 남쪽 나라가 쳐들어온 경우였습니다. 북쪽 나라와 남쪽 나라가 간섭을 하고 영향력을 행세하니 조선 땅도 이스라엘처럼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한 것처럼 남과 북도 서로 정통성을 주장합니다. 북쪽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은 변절했지만 우리들은 끝까지 독립운동을 했으니 민족의 정통성이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남쪽 사람들은 너희들은 굶어 죽지만 우리들은 경제를 발전시켰으니 민족의 정통성이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를 비방하고 증오하고 신무기를 개발하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차례차례 멸망한 것처럼 남과 북도 그렇게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혐오의 문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혐오의 문제입니다. 특정한 소수를 대상으로 혐오하고 조롱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비정상이고 나는 정상인 것처럼 행세합니다. 백인은 흑인을 혐오하고 이성애자는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정상인은 장애인을 혐오하고 시민권자는 난민을 혐오합니다. 숫자가 적은 사람들, 가장 약하고 만만한 사람들을 혐오하고 조롱합니다. 혐오와 증오가 아니라 낯선 사람을 환영/환대하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서 3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주의 말이다. 때가 오면 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로 다시 사마리아 산마다 포도원을 만들 수 있게 하겠다. 포도를 심은 사람이 그 열매를 따 먹게 하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고 특히 사마리아를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쪽 정통 유대인들은 북쪽 사마리아 사람들을 혐오하고 증오했습니다. 사마리아를 부를 때 마다 꼭 그 앞에 부정적인 별명을 붙였습니다. 더러운 사마리아인, 피가 섞인 사마리아인, 혼혈 사마리아인, 배신자 사마리아인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강도만난 자의 비유를 통해서 정통 유대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만난 자를 지나쳤지만 소위 더럽다고 멸시받는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자를 치료해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더러운 사마리아인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더러운 배신자 사마리아인으로 불렀는데 예수님 이후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형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낯선 사람을 환영하고 소수를 배려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형제를 용서하는 삶이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혐오와 증오를 넘어서 민족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From hatred to hospitality and reconciliation

Jeremiah 31:1 – 6


The LORD said: Israel, I promise that someday all your tribes will again be my people, and I will be your God. In the desert I was kind to those who escaped death. I gave them peace, and when the time is right, I'll do the same for you. I, the LORD, have spoken. Some time ago, the LORD appeared to me and told me to say: Israel, I will always love you; that's why I've been so patient and kind. You are precious to me, and so I will rebuild your nation. Once again you will dance for joy and play your tambourines. You will plant vineyards on the hills of Samaria and enjoy the grapes. Someday those who guard the hill country of Ephraim will shout, "Let's go to Zion and worship the LORD our God." (Jeremiah 31:1-6)


The poor and the needy will be treated with fairness and with justice. His word will be law everywhere in the land, and criminals will be put to death. Honesty and fairness will be his royal robes. Leopards will lie down with young goats, and wolves will rest with lambs. Calves and lions will eat together and be cared for by little children. Cows and bears will share the same pasture; their young will rest side by side. Lions and oxen will both eat straw. Little children will play near snake holes. They will stick their hands into dens of poisonous snakes and never be hurt. Nothing harmful will take place on the LORD's holy mountain. Just as water fills the sea, the land will be filled with people who know and honor the LORD. (Isaiah 11:4-9)


Celebrating the 71st National Liberation Day of Korea, on August 15th we pray to God for the reconciliation and peace in the Korean Peninsula. It commemorates victory over Japan Day, in which the Korean Peninsula was liberated from Imperial Japanese colonial rule by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We oppose so called colonialism, the establishment of a colony by a political power from another territory and the subsequent maintenance, expansion, and exploitation of that colony. As Jeremiah proclaimed that someday all the tribes will again be God’s people and they will plant vineyards on the hills of Samaria and enjoy the grapes, we also pray and sing that someday North Korea and South Korea will be united with peace and reconciliation. As the parable of a Good Samaritan shows, Jesus taught people to get rid of hatred and prejudice and welcome all the people who are alienated. We pray that we all overcome hatred and revenge and live the life of hospitality and reconciliation.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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