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후 여섯번째 주일 / 2월 두번째 주일
창립50주년, 열린 세계를 가진 나그네
히브리서 11:1 - 10
정해빈 목사
이상철 목사님께서 쓰신 자서전 [열린 세계를 가진 나그네] 출판 기념회가 2011년 우리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그 책을 보면 이 목사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어떤 분이 이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장례식 내내 마음이 슬펐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캐나다 사회의 지도자 일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선구자로서 인생을 훌륭하게 사셨습니다. 하지만 이 목사님의 개인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본래 이 목사님 가정은 함경북도 명천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1910년 일제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세우고 땅을 빼앗는 바람에 이 목사님 할아버지께서 가족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크 다보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없었더라면 이 목사님 할아버지가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서 7살 때까지 살다가 소련 공산군이 아이들을 데려다가 공동수용소에서 키운다는 소문을 듣고 중국 북간도 용정으로 피신해서 거기서 부모는 소작농을 하고 이상철은 초등학교와 은진중학교와 중앙사범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일제에 징집되기 직전에 해방을 맞아서 징집을 피할 수 있게 되었고 교사 생활을 하던 중에 중국 공산당이 기독교를 핍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서울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 인생은 힘센 나라들에 의해서 짓밟힌 지난 100년간의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잘 보여줍니다. 일제를 피해서 러시아로 갔다가, 소련을 피해서 중국으로 갔다가, 중국 공산당을 피해서 조선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자서진 책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평생 [열린 세계를 가진 나그네]로 사셨습니다. [열린 세계를 가진 나그네]가 우리에게 주는 세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나그네 인생을 산 사람은 자기처럼 떠돌아다니는 사람들, 자기처럼 고난받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나그네는 나그네인데 열린 세계를 가진 나그네가 됩니다. 자신이 고난받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고난받는 이웃을 보면 내 일처럼 아파하고 그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나라도 없고 집도 없이 떠돌아다녀 본 사람은 떠돌이/나그네의 서러움을 잘 압니다. 이 목사님은 어린 시절 그런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에 한평생 나그네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셨습니다. 이번 장례식 때 캐나다연합교회 조단 캔트 총회장께서 이번 장례식에 이런 내용의 조사를 보내주셨습니다. Jordan Cantwell, Moderator of the United Church of Canada sent us this letter, “Dear Korean United Church leaders and members, Rev. Lee was deeply revered in The United Church of Canada. As Moderator from 1988 to 1990, he lifted up the voices of the isolated and oppressed, tackling issues relating to the ordination of homosexual persons, racial equality, indigenous, and other human rights issues. Although I never had the chance to meet Rev. Lee, I admire him for providing leadership in a time of great discord in our church. As a committed and compassionate pastor, he worked tirelessly to build bridges between The United Church and other immigrant communities in Canada. The United Church of Canada’s “intercultural vision” owes much to him."
이 목사님께서 총회장 하실 때인 1988년-1990년에 캐나다는 크게 3가지 논쟁을 겪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과 백인들과의 관계 문제였고, 둘째는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 문제였고, 셋째는 백인들과 원주민들과의 갈등 문제였습니다. 이 목사님께서는 총회장을 하시면서 이 3가지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셨고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셨습니다. 아시아 사람이 최초로 총회장이 됨으로서 백인들이 아시아 사람들을 존중하는 계기를 마련하셨고, 성적 소수자들이 교회 내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지도력을 발휘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주민 지도자들을 찾아가 캐나다연합교회를 대표해서 사과하셨습니다. 캐나다 역사를 보면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부끄러운 점이 하나도 없는데 다만 한 가지 과거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 자녀들을 기독교가 운영하는 기숙사에 강제로 보내서 자녀들을 가르치게 한 것이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백인 지도자가 원주민들을 찾아가도 원주민들이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 문을 열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들과 비슷하게 생긴 수염 난 사람이 자신들을 찾아와서 캐나다연합교회를 대표해서 사과를 하니까 원주민들의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께서 원주민 문제를 다 해결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목사님께서 원주민 문제에 상당한 공헌을 하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 목사님께서 인종문제, 소수자 문제, 원주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어린 시절 고난 받으며 살았던 나그네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 마음을 여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나그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열린 마음을 갖고 다른 이웃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둘째로 나그네는 겸손하고 검소하고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나그네는 무거운 짐을 들고 여행을 떠나지 않습니다. 짐을 단순하고 가볍게 해야 인생이라는 먼 여행을 쉽게 떠날 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나그네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그네는 이 세상의 물질과 권력과 명예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응답해야 하고 있으라면 있어야 하고 가라면 가야하기에 나그네는 무엇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무엇에 묶여 있어서도 안 됩니다. 나그네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인생을 따라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그네는 순례자가 되기도 하고 선구자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기 때문에 순례자이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가기 때문에 선구자입니다. 이 목사님께서는 한평생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가라고 하시면 그곳으로 가셨고 이곳으로 가라고 하시면 이곳으로 가셨습니다.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겸손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셋째로 나그네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사람은 하루하루 살아있는 것이 기쁘고 감사하게 여겨집니다. 인생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 기쁘고 감사해야만 힘든 인생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영적인 나그네는 고난 중에서도 감사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참된 나그네요 순례자요 선구자입니다. 이 목사님께서는 많은 고난을 겪으시면서도 항상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인생을 사셨습니다. 하나님 덕분에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고 고백하셨고 어렵고 힘든 일들을 수행하시면서도 항상 웃음과 유머가 넘치셨습니다. 어느 교인이 왜 수염을 기르냐고 질문하니까 목사님께서 교인들이 평소에는 양 같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늑대처럼 달려들 때가 있는데 그 때를 대비해서 사자처럼 보이기 위해서 수염을 길렀다고 농담하셨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고난 중에서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참된 나그네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1장에는 저 유명한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더 나은 제물을 드렸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노아와 아브라함 모두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인생을 살았습니다.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들도 믿음의 선배들과 이상철 목사님을 따라서 열린 세계를 가진 나그네가 되어 이웃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겸손하고 단순하게, 그리고 기쁘고 감사한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