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세번째 주일 / 3월 세번째 주일
사순절, 섬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마태복음 20:20 – 28
정해빈 목사
사순절을 맞이해서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몇 주 동안 묵상하려고 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걸어가시면서 제자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길을 걸어가면서 제자들과 대화하시고 제자들의 생각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길을 걸어가면서 진리를 깨닫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도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길을 걸어가면서 주님을 만났고 사도 바울도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영적인 순례, 진리를 향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영적인 진리를 어느 순간 한 번에 다 깨닫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인생이라는 순례 길을 걸어가면서, 주님과의 영적인 대화를 통해서, 예배와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면서 대화를 통해서 제자들의 생각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내가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번 말해가지고는 제자들이 잘 이해를 못하니까 주님께서는 3번에 걸쳐서 십자가의 길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20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세번째로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자마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과 어머니가 예수께 와서 “나의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부탁을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주님이 왕이 되시면 내 아들이 우의정과 좌의정이 되게 해 달라고 로비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대답하셨습니다. 주님과 제자들 모두 똑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지만 주님이 생각하는 것과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달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고난이 닥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누가 주님의 오른쪽과 왼쪽을 차지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경쟁을 했습니다. 주님은 고난의 잔을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높은 자리를 이야기했습니다. 주님은 고난, 섬김, 희생, 십자가, 선과 악, 빛과 어둠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자들은 권력, 명예, 영광, 높은 자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늘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하고 주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과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과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간다고 해도 만약 주님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걸어간다면 진정으로 주님을 따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같은 길을 걸어갔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고 주님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주님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걸어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항상 누가 명예와 영광을 차지할 것이냐, 누가 2인자가 될 것이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명예와 권력과 재물을 얻고자 하는 욕구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높은 자리에 앉아서 남을 지배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사회일수록 남을 지배하려는 욕구가 더 강합니다. 서양에서는 직장에서 높은 분을 만나도 그냥 하이 하면 끝입니다. 토론토 시장도 출근해서 직원들에게 하이 인사하고 캐나다 수상도 친구처럼 인사합니다. 높은 사람이 왔다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 숙여 인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양 문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끔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직장에서 제일 높은 분이 출근하면 현관에 직원들이 나와서 거의 90도로 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복종하고 자기에게 머리 숙이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일도 없습니다. 그럴 때 사람은 우월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런 맛에 출세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출세 지향적인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출세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합니다. 세상 살기가 더럽고 치사하니까 나도 어서 빨리 출세해서 다른 사람들을 부려먹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광야에서 힘과 권력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엎드려 절하면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사탄이 이렇게 유혹했을 때 주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말씀하심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힘과 권력의 길을 걸어가지 않으시고 섬김과 순종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나의 제자가 되려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병을 고치셨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몰려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마다 주님께서는 그 자리를 피하시고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주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합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신이 났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면 나도 한자리 차지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럴 때마다 제자들에게 “내일 일찍 다른 마을로 가자, 나는 오늘도 내일도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영광을 받고자 하지 아니하셨고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백성들을 억압하는 세상 통치자들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헤롯 왕은 세례 요한을 죽였고 빌라도 로마 총독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어쩌면 하나님 앞에서 가장 먼저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인지도 모릅니다. 트럼프, 푸틴, 시진핑, 아베, 박근혜, 김정은,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가장 먼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새로 바뀌고 나니까 이민자들이 두려워하면서 살고 있는 것처럼,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나라가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고 평화로울 수도 있고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국가는 하루 24시간 오직 나라를 위해서 일하라는 뜻에서 통치자에게 수백 명의 비서들을 붙여주고 최고의 봉급을 주고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나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 줍니다. 그렇게 최고 수준으로 대우를 해줘도 통치자들은 대부분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고 권력을 남용합니다. 나의 제자가 되려면 이 세상의 악한 통치자들을 본받지 말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경쟁하지 말고 나를 따라서 섬김과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빌립보서 2장을 보면 초대 교인들이 예배 시간에 불렀던 “그리스도 찬가,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가 나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맨 처음 교인들은 예배 시간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주님,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끝까지 순종과 섬김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따라서 세상 통치자들을 본받지 말고, 힘을 숭배하고 과시하고 남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우리들,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Lent, be the servant of all others
Matthew 20:20 - 2
Then the mother of the sons of Zebedee came to him with her sons, and kneeling before him, she asked a favour of him. And he said to her, ‘What do you want?’ She said to him, ‘Declare that these two sons of mine will sit, one at your right hand and one at your left, in your kingdom.’ But Jesus answered, ‘You do not know what you are asking. Are you able to drink the cup that I am about to drink?’ They said to him, ‘We are able.’ He said to them, ‘You will indeed drink my cup, but to sit at my right hand and at my left, this is not mine to grant, but it is for those for whom it has been prepared by my Father.’ (Matthew 20:20 – 23)
When the ten heard it, they were angry with the two brothers. But Jesus called them to him and said, ‘You know that the rulers of the Gentiles lord it over them, and their great ones are tyrants over them. It will not be so among you; but whoever wishes to be great among you must be your servant, and whoever wishes to be first among you must be your slave; just as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 ransom for many.’ (Matthew 20:24 – 28)
Today’s scripture shows that although disciples went along with Jesus, they thought about something different from Jesus. They argued about who would sit next to Jesus in Jerusalem, while Jesus talked about crucifixion and resurrection. It indicates that just walking with Jesus is not enough to be his disciples and all followers of Jesus must accept the way of serving others. Insteand of acknowledging Jesus’ anticipation of suffering and death, they imagined regal scene sitting in positions of honor and power at King Jesus’ right and left. So Jesus described how the dominion of God is different than the dominions of the world. He refers to those who are regarded as rulers in the pagan world of the Roman Empire. They “lord it over” their subjects. Their great ones exercise authority as tyrants, an authority that stands in contrast to the edifying and restorative authority displayed by Jesus. Once again Jesus emphasizes that he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