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두번째 주일 / 12월 첫번째 주일

대림절, 용서는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마태복음 3:1-12

정해빈 목사 




1. 대림절 두번째 주일에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 말씀은 마태복음 3장에 나오는 세례요한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 세계 교회들이 매주일 공통적으로 읽는 성서일과 말씀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 시편에서 하나, 복음서에서 하나, 서신서에서 하나, 이렇게 4개의 말씀이 매주일 주어지는데 대림절 기간에 꼭 등장하는 복음서 말씀이 세례요한에 대한 말씀입니다. 대림절 기간에는 반드시 세례요한이 하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의 말씀을 듣고 몸과 마음을 회개해야 한다, 세례요한을 만나 먼저 회개한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이것이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집안에 귀한 손님이 오면 식구들이 집안 청소를 하는 것처럼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 기간에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성탄절은 일 년 중에 가장 기쁜 날이지만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은 조금 엄숙하고 진지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들 모두가 조금 진지하고 차분하고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의 사역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회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가 오실 터인데 메시야를 만나려면 먼저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이 세상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자들/종교인들을 향해서 회개하여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쳤습니다.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도끼를 이미 나무뿌리에 갖다 놓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실 것이다.” 소리높이 외쳤습니다. 정의를 외치는 말씀이 부담스럽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은혜롭고 따뜻한 말씀만 들을 것이 아니라 불의를 고발하는 이런 말씀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유대교 율법에 의하면 회개를 하려면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서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로 불로 태우는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제사장들, 서기관들, 귀족들이 살고 있었고 제사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헤롯이 지은 성전은 겉으로 보기에 크고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겉으로는 화려했으나 속으로는 부패하고 타락한 성전을 찾아가지 않았고 반대로 광야에 사는 세례요한을 찾아가서 그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곳에 가서 회개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 성전 제사장들 입장에서는 백성들이 동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려야 자기들 할 일도 생기고 수입도 생기는데 백성들이 세례요한을 찾아가니 세례요한이 많이 미웠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타락한 것은 성전이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치이든 종교이든 사람과 돈이 몰리면 그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서 타락하기가 쉽습니다. 회개의 첫걸음은 성전을 찾아가지 않고 광야로 가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려면 광야로 가야 합니다. 광야에는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큰 건물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고 땅과 하늘과 별만 있는 곳, 하나님과 나만 있는 곳, 홀로 떨어진 외딴 곳, 조용한 곳, 골방으로 가서 욕심을 내려놓고 우리의 지난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한의 말을 듣고 물속에 들어가 회개하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이 회개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스스로 바르고 깨끗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깨끗한 삶을 살아야 다른 사람에게도 깨끗한 삶을 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본래 제사장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제사장직을 마다하고 광야에서 살면서 메뚜기와 꿀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이런 단순하고 깨끗한 삶을 살았기에 회개를 외칠 수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요한이 깨끗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가 요단강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요단강은 옛날 이스라엘 조상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목욕을 하고 죄를 씻고 회개하는 곳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옛날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요단강 물속에 들어가서 과거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기 원했습니다. 물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과거의 내가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광야로 가서 옛날의 처음 순수했던 신앙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었던 그때의 순수한 마음, 순수한 감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2. 회개를 가리키는 헬라어 Metanoia(메타노이아)는 단순히 죄를 고백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냥 단순히 잘못했습니다 말만 하면 안 되고 이제는 더 이상 과거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삶의 자세와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세례요한은 회개를 말했고 예수님은 용서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회개와 용서 사이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회개가 먼저이고 용서가 그 다음입니다. 회개해야 그 다음에 용서가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려면 먼저 세례요한을 만나서 회개하고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서 용서받는 것이 신앙의 순서입니다. 회개를 하려면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회개하는 사람만이 철저하게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은 사람을 쉽게 용서해 주면 그 사람은 똑같은 죄를 저지르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어린아이가 무엇을 크게 잘못했는데 아빠 엄마가 너무 쉽게 괜찮아 이렇게 용서해 주면 아이는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는 예를 들어서 1시간 의자에 앉게 해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닫게 해 주어야 합니다. 너무 쉽게 용서해 주면 안 되고 진심으로 깨닫고 반성할 때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가끔 뉴스를 보면 유명한 정치인/기업인들이 죄 짓고 감옥에 갔다가 너무 쉽게 사면이 되어서 풀려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쉽게 용서받은 사람은 나중에 똑같은 죄를 저지르기가 쉽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 있는 사람은 죄가 없고 돈 없는 사람은 죄가 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가 나중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의 범죄를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너의 가정에 비극이 많을 것이다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범죄 때문에 생긴 비극을 보면서 철저하게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용서도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같다.” 프랑스의 사상가 알베르 카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프랑스는 톨레랑스/관용으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너그럽게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하지만 범죄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벌을 합니다. 그래야 똑같은 범죄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용서는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예수께서는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들에게 용서를 선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면 누구든지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다만 용서받으려면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간혹 사람들 중에는 진정으로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용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충분한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깊이 만나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기억이 납니다. 어느 부부가 새해 파티를 마치고 새벽에 운전하다가 어린 소년을 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부부는 이 사건에 대해서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고 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다졌습니다. 죽은 소년의 부모들도 이 부부를 용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부부는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자신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생활이 무기력했고 매일매일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부부는 이혼하게 되었고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이 부부를 용서해 주어도 이 부부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부부는 나중에 교회 기도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고 그 만남을 통해서 용서함을 받고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용서의 선물을 내려 주십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성탄절은 기쁜 날이지만 대림절은 무겁고 진지하게 반성하고 회개하는 기간입니다. 대림절에는 세례요한을 만나고 성탄절에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 신앙의 바른 순서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세례요한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우리가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외쳤을 때 세례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속옷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도 나누어 주십시오. 세리들은 정해 준 것 이상으로 세금을 걷지 마십시오. 군인들은 남을 협박하여 억지로 빼앗지 마십시오.“ 대림절 기간을 보내면서 우리들의 죄악과 탐욕, 이 시대의 죄악과 탐욕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Advent, forgiveness comes form repentance

Matthew 3:1-12


Years later, John the Baptist started preaching in the desert of Judea. He said, "Turn back to God! The kingdom of heaven will soon be here." John was the one the prophet Isaiah was talking about, when he said, "In the desert someone is shouting, <Get the road ready for the Lord! Make a straight path for him.>" John wore clothes made of camel's hair. He had a leather strap around his waist and ate grasshoppers and wild honey. From Jerusalem and all Judea and from the Jordan River Valley crowds of people went to John. They told how sorry they were for their sins, and he baptized them in the river. (Matthew 3:16)


Many Pharisees and Sadducees also came to be baptized. But John said to them: You bunch of snakes! Who warned you to run from the coming judgment? Do something to show that you have really given up your sins. And don't start telling yourselves that you belong to Abraham's family. I tell you that God can turn these stones into children for Abraham. An ax is ready to cut the trees down at their roots. Any tree that doesn't produce good fruit will be chopped down and thrown into a fire. I baptize you with water so that you will give up your sins. But someone more powerful is going to come, and I am not good enough even to carry his sandals.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fire. His threshing fork is in his hand, and he is ready to separate the wheat from the husks. He will store the wheat in a barn and burn the husks in a fire that never goes out. (Matthew 3:7-12)


John in Matthew’s Gospel is an end-time prophet whose message is that the time has come to repent because Jesus through whom God will affect the transformation from this age to the next is now revealed. The root meaning of “to repent” is “to turn” or to have a dramatic change of mind and direction. To repent is turn away from the values and practices of the old age (e.g., idolatry, violence, injustice, exploitation, slavery, and scarcity) and to turn towards the values and practices of the Realm of God (e.g., love, peace, justice, dignity, freedom, and abundance). John offers listeners a choice. They can repent, and join the movement toward the Realm, or they can continue to collude with the old age and face eternal condemnation at the final judgment. Finally we can learn from the scripture a very crucial lesson that absolute forgiveness comes from absolute repentance. Without repentance without forgiveness! John makes us preparing for seeing Jesus by helping us repent our past. Today’s scripture invites us to realize once again that only those who repent are able to meet Jesus.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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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첫번째 주일 / 11월 네번째 주일

대림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이사야서 2:1-4, 로마서 13:11-14

정해빈 목사 




1. 오늘부터 대림절/대강절(Advent)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상 달력은 11일부터 시작하는데 교회 달력은 1달 일찍, 11월 네 번째 주일부터 시작합니다. 1225일 성탄절 전 4주 동안 예수님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기간을 대림절/대강절이라고 부릅니다. 대림절부터 새로운 교회 달력이 시작되는 것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신앙이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있으신 분은 성경의 맨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주님께서 내가 다시 올 것이다약속하셨고 성도들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고백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데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희망의 신앙입니다. 주님께서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셔서 아픔과 갈등이 많은 이 세상, 불의와 불공평과 갈등과 다툼과 전쟁이 많은 이 세상을 평화의 세상으로,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온전한 세상으로 회복시키시고 완성시켜주시기를 우리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새로운 미래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오늘이 힘들어도 힘든 오늘을 견딜 수 있습니다. 새로운 미래, 더 좋은 미래의 약속이 없다면 우리들은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 하나님 나라의 미래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약속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미래를 가리키는 2개의 영어 표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Future인데 futureto become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되는 미래, 저절로 이루어지는 미래,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시간이 future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고 2016년이 지나면 2017년이 옵니다. 하지만 future와 전혀 다른 미래가 있는데 그것이 Advent입니다. adventto come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 먼 곳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는 미래입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않았던 미래,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미래가 advent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미래가 갑자기 다가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해방이 오지 않아서 모든 사람들이 포기하고 있을 때 1945년 갑자기 해방이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미래가 advent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미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할 수 없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강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불의와 악이 횡행하는 이 세상을 회복시키시고 이 세상을 온전한 세상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만드실 새로운 미래를 기다리면서 동시에 우리들도 이 땅에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신앙이 참된 기독교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2장 말씀을 보면 메시야를 기다리는 히브리/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망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캐나다 노바스코샤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땅이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고 서로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항상 전쟁의 위험에 시달렸습니다. 두 제국, 남쪽에는 이집트, 북쪽에는 메소포타미아 제국 사이에 끼어 있어서 항상 침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전쟁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전쟁 중이거나 아니면 전쟁과 전쟁 사이에 긴장 속에 살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야가 오셔서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으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세상을 만들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2. 정의와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신앙은 로마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가 두 번째로 읽은 로마서 13장에서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로마제국의 권력에 취해서 연회와 사치와 음행과 방탕에 빠져 살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면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자고 말했습니다. 로마의 권력이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할지라도 때가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에는 식민지에서 가지고 오는 것들이 많아서 모든 것이 차고 넘쳤습니다. 사치와 방탕이 유행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문화에 취해서 살지 말고 깨어서 주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실 그 날을 기다리고 준비하자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권력의 힘이 크다고 할지라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다 드러나고 밝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50년 전 1960년대 1970년대에는 대통령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돈을 빼앗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 감옥에 집어넣고 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총칼로 국민과 언론을 꼼짝 못하게 하니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옛날 아버지 하던 식으로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사치하고 방탕하고 타락하면 안 됩니다. 요즘 독일 메르켈 총리가 유럽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메르켈은 나이가 들어도 주름살을 감추지도 않고 옷도 검소하게 입고 공과 사를 분명히 하고 국민들과 대화하기 때문에 유럽의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세상 권력에 취해서 살면 안됩니다. 권력을 휘두르고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권력이 좋아서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후손들이 드라마를 통해서 자기 아버지/할아버지가 부끄럽고 추한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알면 후손들의 마음은 참으로 비참할 것입니다.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는 나의 자유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후손들이 내 삶을 평가할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내 삶을 평가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을 온전하게 회복시키시고 완성시켜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사야서가 고백한 것처럼 주님께서 이 땅의 모든 전쟁을 그치고 평화를 만들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마서가 고백한 것처럼 세상 권력이 영원한 것처럼 권력에 취해서 살지 말고 사치와 타락과 방탕함에 취해서 살지 말고 자기를 돌아보며 깨어 근신하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억울한 자들의 아픔을 들어 주시고 세상의 모든 시시비비를 바로 잡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기독교 신앙은 미래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신앙입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주님께서 만드실 새로운 미래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Advent, night is far gone, day is near

Isaiah 2:1-4, Romans 13:11-14


This is the message that I was given about Judah and Jerusalem: In the future, the mountain with the LORD's temple will be the highest of all. It will reach above the hills; every nation will rush to it. Many people will come and say, "Let's go to the mountain of the LORD God of Jacob and worship in his temple." The LORD will teach us his Law from Jerusalem, and we will obey him. He will settle arguments between nations. They will pound their swords and their spears into rakes and shovels; they will never make war or attack one another. (Isaiah 2:1-4)


You know what sort of times we live in, and so you should live properly. It is time to wake up. You know that the day when we will be saved is nearer now than when we first put our faith in the Lord. Night is almost over, and day will soon appear. We must stop behaving as people do in the dark and be ready to live in the light. So behave properly, as people do in the day. Don't go to wild parties or get drunk or be vulgar or indecent. Don't quarrel or be jealous. Let the Lord Jesus Christ be as near to you as the clothes you wear. Then you won't try to satisfy your selfish desires. (Romans 13:11-14)


War was common in ancient Israel, primarily because of the nation’s small size and valuable location. Ancient Israel was surrounded on all sides by nations who wanted to own it. Biblical scholars remind us that in the lives of ancient Israelites, there was only “war time” and “preparing for war time.” in Isaiah 2:1-4, Isaiah announces that the Messiah would settle arguments between nations. When the Lord comes, they will never make war or attack one another. The word for peace here means more than an absence of conflict. Peace is the presence of conditions that make for life. In Romans 13:1114, Paul writes with urgency, telling us the time is near and to wake from the various ways we find ourselves numbed or distracted. As we seek to understand and live into God’s deep vision of peace this Advent, we get a sense that we need to engage our whole selves, mind, heart, and body. Paul reminds us that It is time to wake up. The day when we will be saved is nearer. Night is almost over and day will soon appear. Starting the season of Advent, we long for the coming of the Lord who will judge the world with justice and righteousness and bring peace to us.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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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열번째 주일 / 11월 첫번째 주일

창조절,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십시오

신명기서 15:4 - 8

정해빈 목사



1.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시고 특히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배려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백성들을 해방시키시고 그들을 자유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백성들을 히브리 백성이라고 부르는데 히브리라는 말은 떠돌이/나그네/노예를 가리킵니다. 이 히브리 백성들이 모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단일 민족이 아니라 삶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집트는 왕과 총리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독점 사회였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든 것을 독점하면 일반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들의 고통을 들으시고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광야에서 보편 복지의 선물을 내려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시는 것을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사회, 은혜가 넘치는 보편 복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만나를 거두는 과정을 보면 이집트와 광야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광야에서는 음식을 쌓아둘 필요가 없습니다. 이집트의 왕과 총리는 양식을 독점하기 위해 전국의 양식을 다 사들이고 곳간에 쌓아두었습니다. 하지만 광야에서는 매일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양식을 쌓아둘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 광야에서는 강제 노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나를 모으기 위해 노동을 해야 했지만 그 노동은 강요된 노동이 아니라 자발적 노동이었습니다. 셋째, 광야에서는 음식을 먹을 때 빼앗길까봐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이집트에 있을 때 주인이 던져주는 고기 국물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권력자들에게 빼앗길까봐 항상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광야에서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빼앗길까봐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먹을 것이라고는 만나와 메추라기뿐이지만 서로 나누어 먹으니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나눔과 감사가 넘쳐납니다. 이집트 사회가 소수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독점 사회였다면 광야는 모든 사람이 해택을 누리는 보편 복지 사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될 터이니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10가지 계명을 주셨는데 이 십계명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히브리 백성들에게 보편 복지가 실현되는 새로운 사회의 모델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켜라,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남의 것을 빼앗지 말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 할 때는 안식일이 없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일만 하다보면 사람은 물질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서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죽어라고 일하지 말아라, 물질에서 자유로워져라,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 안식일에는 돈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가족을 돌보아라, 말씀하셨습니다. 땅을 6년 경작했으면 7년째 되는 안식년에는 땅을 1년 쉬게 하여라, 혹시 누군가가 너의 종이 되어서 그 종을 6년간 부려 먹었으면 7년째 되는 안식년에는 종을 풀어 주어라, 말씀하셨습니다. 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함부로 사고팔지 말아라, 땅을 팔 때는 친척에게 팔아라, 그리고 안식년이 일곱 번, 50년째가 되는 해에는 그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라, 말씀하셨습니다. 토지를 매매할 때는 희년을 기준으로 희년이 많이 남았으면 농사를 많이 지을 수 있으므로 땅 값을 비싸게 쳐주고, 희년이 가까우면 농사를 몇 년 밖에 지을 수 없으므로 땅 값을 싸게 쳐 주어라. 말씀하셨습니다. 50년째가 되는 해를 기쁠 희자를 써서 희년(喜年)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산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했으니까 땅을 돌려받은 사람은 마음이 기쁩니다. 그래서 희년입니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 모두가 보편 복지를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의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나라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안식일/안식년/희년이 지켜지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접받는 보편 복지 사회가 대략 200년 정도 유지되었습니다그런데 다윗/솔로몬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사회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우리들은 보통 솔로몬 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으로 기억을 합니다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솔로몬은 이집트의 바로 왕처럼 온 나라의 부와 재물을 독점했습니다솔로몬이 가진 재산을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솔로몬은 인류 역사상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지혜로운 사람은 권력과 재물 두 가지를 다 갖지 않습니다조선 시대 가장 깨끗한 부자로 알려진 경주 최씨 집안은 두 가지 가훈이 있었다고 합니다첫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여라둘째 높은 벼슬을 하지 말아라재물이 있으면 권력을 멀리하고 권력이 있으면 재물을 멀리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권력과 재물 모두를 갖으려고 합니다. 이번 화요일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지만 미국도 그렇고 한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도 그렇습니다. 권력이나 재물을 가졌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권력과 재물을 다 갖으려고 합니다. 솔로몬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재물을 다 소유하려고 하였습니다솔로몬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솔로몬이 죽었을 때 12지파의 지도자들이 아들 르호보암을 찾아가서 호소를 합니다당신 아버지 솔로몬은 나라의 모든 재물을 다 독차지 했는데당신도 그렇게 할 것입니까제발 당신은 아버지를 본받지 말고 나라를 공정하게 다스리십시오요청을 했습니다하지만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결국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죽고 나서 두 나라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서 9장 23절에서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나 주가 말한다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용사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라부자는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지 말아라오직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이것을 자랑하여라나를 아는 것과 나 주가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하나님인 것과 내가 이런 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 만한 지혜를 가지게 되었음을 자랑하여라나 주의 말이다.” 솔로몬을 꾸짖는 말씀입니다자기의 지혜와 힘과 재산을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 뉴스를 보다 보면 기본 소득이라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몇 달 전에 스위스에서 전 국민에게 기본 소득을 실시하자는 안을 가지고 국민 투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계와 컴퓨터가 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사람들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앞으로는 택시나 버스 운전도 사람 대신 기계가 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기계는 정확하고 졸음운전을 할 필요도 없으니 사람보다 운전을 더 잘할 것입니다. 시대가 가면 갈수록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직업이 있든지 없든지 모든 국민에게 50만원/100만원 돈을 주자는 안이 기본 소득 제도입니다. 사람은 직업이 없어도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옷도 사 입어야 하고 휴지나 비누도 사야 합니다. 회사가 제품을 많이 만들어도 국민이 그것을 살 돈이 없으면 제품을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무능하니까 복지 혜택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능하니까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니까 복지 혜택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백성들이 불평등하게 살지 않도록 이미 수천 년 전에 여러 가지 제도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물질에 집착하지 않도록 안식일을 만들어 주셨고, 땅이 휴식을 얻고 종이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안식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잠시 땅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50년마다 땅을 되찾을 수 있도록 희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독점 사회가 아니라 보편 복지 사회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이런 제도를 만들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서 15장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십시오. 당신들은 반드시 손을 뻗어 당신들의 땅에서 사는 가난하고 궁핍한 동족을 도와주십시오. 그렇다고 하여 당신들이 사는 땅에서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내가 당신들에게 내리는 명령입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가난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손을 뻗어서 그들을 도와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과 율법, 제도와 정신을 기억하고 하나님 나라의 꿈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reation, No one in Israel should be poor

Deuteronomy 15:4 – 8


Every seven years you must announce, "The LORD says loans do not need to be paid back." Then if you have loaned money to another Israelite, you can no longer ask for payment. This law applies only to loans you have made to other Israelites. Foreigners will still have to pay back what you have loaned them. No one in Israel should ever be poor. The LORD your God is giving you this land, and he has promised to make you very successful, if you obey his laws and teachings that I'm giving you today. You will lend money to many nations, but you won't have to borrow. You will rule many nations, but they won't rule you. (Deuteronomy 15:1 6)


After the LORD your God gives land to each of you, there may be poor Israelites in the town where you live. If there are, then don't be mean and selfish with your money. Instead, be kind and lend them what they need. Be careful! Don't say to yourself, "Soon it will be the seventh year, and then I won't be able to get my money back." It would be horrible for you to think that way and to be so selfish that you refuse to help the poor. They are your relatives, and if you don't help them, they may ask the LORD to decide whether you have done wrong. And he will say that you are guilty. You should be happy to give the poor what they need, because then the LORD will make you successful in everything you do. There will always be some Israelites who are poor and needy. That's why I am commanding you to be generous with them. (Deuteronomy 15:7 - 11)


Brueggemann talks about in his book [Journey to the Common Good] the Exodus story as a journey from a culture of anxiety to a practice of neighbourliness. God heard the cries of the enslaved Hebrew immigrants in Egypt and provided abundant food as God led them on a journey through the desert. Neighborliness became the antidote for scarcity and anxiety. Later Pharoah’s injustices were duplicated by Solomon, whose wealth, power, and political wisdom were never enough. Brueggemann sees the Bible as “an imaginative narrative of God’s staggering care for the world, a narrative thatbuilds community precisely by respect for the liberty of all persons.” He says that the great crisis among us is the crisis of “the common good,” the sense of community solidarity that binds all in a common destiny. We face a crisis about the common good because there are powerful forces at work among us to resist the common good, to violate community solidarity, and to deny a common destiny. Today’s scripture says that “Since there will never cease to be some in need on the earth, I therefore command you, Open your hand to the poor and needy neighbour in your land.” We are called to work for the common good envisioned by God, the life of justice and solidarity.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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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아홉번째 주일 / 10월 다섯번째 주일

창조절, 하나님의 정치와 복지

출애굽기 16:11 – 21

정해빈 목사





1. 연합신앙강좌 강사로 오신 김경재 목사님께서 지난 토요일 강연에서 이런 예화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께서 미국 한인 교회에서 강연을 하려고 강대상에 올라와 보니 미국 성조기가 예배당에 걸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함 선생께서 강연하기 전에 깃발을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알기로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예배당에 국가 깃발이 걸려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국가를 섬기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곳입니다.” 캐나다는 그렇지 않지만 미국을 가면 대부분 예배당에 미국 깃발이 걸려 있습니다. 예배당에 국가 깃발이 있는 것이 좋을까요 없는 곳이 좋을까요? 장공 김재준 목사님께서도 교회를 가리켜서 땅에 있지만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땅에 있기 때문에 땅의 영향을 받습니다. 나라의 법과 제도를 지켜야 하고 국가 질서에 협조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지 국가를 섬기는 곳이 아닙니다. 정부가 하나님 뜻에 맞게 일을 하면 교회는 정부에 적극 협력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하나님 뜻에 맞지 않게 일을 하면 교회는 정부에 반대하고 저항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땅 위에 있지만 하늘에 속한 곳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관점에서 국가와 정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당에 국가 깃발이 걸려 있는 곳은 옳지 않습니다. 참다운 교회는 세상 권력에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 권력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에서 국가 권력에 협조할 수도 있고 때로는 충고할 수도 있고 때로는 불의한 권력에 저항도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가 적극적으로 세상 일에 대해서 의견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세상 권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교회가 국가가 너무 가까운 것은 좋지 않습니다. 교회는 정부가 바른 길을 걸어 가도록 협력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 발짝 떨어져서 국가 권력이 하나님 뜻에 맞게 잘 운영되고 있는지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감시도 해야 합니다. 


구약 성경 39권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책에서 왕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들이 하나님 뜻에 맞게 나라를 운영했는지를 기록한 책이 구약 성경입니다. 열왕기상, 열왕기하 같은 책들은 조선 시대의 조선왕조실록처럼 왕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일을 했는지를 연대기 순으로 기록을 했습니다. 특히 예언자들의 책을 보면,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같은 책들을 보면 예언자들은 왕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잘못된 길을 갔을 때 왕들을 꾸짖었고 왕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때로는 왕들의 미움을 받아서 쫓겨나기도 했고 옥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구약 성경 대부분의 책들이 그 시대의 정치 상황을 기록했습니다. 정의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왕들이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기록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정의를 부르짖는 예언자들의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위로하시는 말씀들, 부드럽고 달콤한 말씀들만 찾아서 읽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의 정의를 부르짖는 말씀들을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높은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부가 하나님 뜻에 맞게 국가 권력을 사용하는지를 잘 살펴보고 감시해야 합니다. 때로는 정부를 위해 기도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정부를 비판하고 잘못된 정부에 저항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그렇게 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 뉴스를 보면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한국 정치 사회가 선진국처럼 되면 좋겠는데 자꾸 이상한 뉴스가 들려옵니다. 대통령은 허수아비이고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을 조종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개성 공단 폐쇄하는 것도 자기가 결정하고 장관 임명하는 것도 자기가 결정합니다. 대통령 연설문을 빨간 펜으로 교정을 합니다. 하얀 옷 입어라 그러면 대통령이 하얀 옷 입고 빨간 옷 입어라 그러면 대통령이 빨간 옷을 입습니다. 자기 딸을 부정 입학시킨 것이 탄로 나서 대학 총장이 사퇴하기도 했습니다. 메모 한 장도 청와대 바깥으로 빠져 나가면 안 되는데 외교/안보 문건을 거의 매일 받아보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직원들이 수백 명인데 그 사람들은 다 허수아비였습니다. 대통령은 대기업 회장들을 숙소로 불러서 재단을 만들었으니 돈을 내라고 협박했고 그렇게 해서 모은 800억 원이 최순실에게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버지 최태민, 딸 최순실은 최면술을 거는 사이비 종교 무당들입니다. 명색이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이 지금 무당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정신이 허약하면 무당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도 나와 있지만 정신이 나약한 사람은 귀신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도 무당을 찾아서 이사를 언제 갈까요?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국가 지도자는 사람이 무당 꼭두각시 노릇을 했으니 기가 막입니다. 국가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합니다. 불쌍해서 뽑아주고 같은 지역이니까 뽑아주면 안됩니다.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정신과 능력이 되는지를 잘 살펴보고 뽑아야 합니다. 한국이 상식이 통하고 민주주의가 통하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20세기를 대표하는 성서학자 중에 왈터 부르거만(Walter Brueggemann) 이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콜롬비아 신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쳤습니다. 이 분이 몇 년 전에 [보편적 복지를 향한 여정] (Journey to the Common Good)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받던 히브리/이스라엘 사람들 해방시키시고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키셨다, 우리들을 구원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사회경제학의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편적인 복지를 베푸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 가면 피라밋이 있는 것처럼 사회 구조가 피라밋처럼 되어 있습니다. 제일 밑에 가장 숫자가 많은 노예들이 있고 제일 위에 파라오/바로 왕이 있습니다. 이집트 사회는 바로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노예들을 다스리는 사회였습니다. 창세기/출애굽기를 보면 요셉이 총리가 된 후에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대비하기 위해 곡식을 사 모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곡식을 사 모은 후에 기근이 들자 사람들이 곡식을 사기 위해 이집트로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떨어지자 곡식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 바로의 종이 되었습니다. 결국 온 세상의 돈이 다 요셉에게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요셉이 흉년을 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집트 경제가 바로와 총리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476절을 보면 요셉은 밭에서 거둔 것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바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요셉은 총리직을 이용해서 자기 동포들을 잘 먹여 살렸지만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요셉이 만든 법 때문에 요셉의 후손들은 땅을 잃어버리고 이집트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만든 독점 법이 결국 동포들에게 부메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로 고통당하는 히브리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집트와 광야의 차이점을 잘 보아야 합니다. 바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곳이 이집트라면 광야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혜택을 보는 곳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히브리 사람들은 광야에서 누구나 똑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빵을 먹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편 복지입니다. 만나를 먹을 만큼만 광주리에 담아라, 내일 먹을 것은 내일 줄 터이니 따로 저장하지 말아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만나를 저장하고 그 다음날 보았더니 저장한 것이 다 썩었습니다. 나 혼자 많이 먹으려고 저장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몰래 쌓아두지 말고 다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억압받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여라, 이것이 하나님의 정치입니다. 굶주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여라, 이것이 하나님의 복지입니다. 구약 성경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정치와 복지를 기록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치, 하나님의 복지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완성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캐나다가 지금도 복지가 잘 되어 있지만 지금보다 더 보편 복지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지구촌 전체에 하나님의 정치와 복지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복지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reation, God’s common good

Exodus 16:11 21


Moses turned to Aaron and said, "Bring the people together, because the LORD has heard their complaints." Aaron was speaking to them, when everyone looked out toward the desert and saw the bright glory of the LORD in a cloud. The LORD said to Moses, "I have heard my people complain. Now tell them that each evening they will have meat and each morning they will have more than enough bread. Then they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their God." That evening a lot of quails came and landed everywhere in the camp, and the next morning dew covered the ground. After the dew had gone, the desert was covered with thin flakes that looked like frost. (Exodus 16:9-14)


The people had never seen anything like this, and they started asking each other, "What is it?"Moses answered, "This is the bread that the LORD has given you to eat. And he orders you to gather about two quarts for each person in your family that should be more than enough." They did as they were told. Some gathered more and some gathered less, according to their needs, and none was left over. Moses told them not to keep any overnight. Some of them disobeyed, but the next morning what they kept was stinking and full of worms, and Moses was angry. Each morning everyone gathered as much as they needed, and in the heat of the day the rest melted. Amen. (Exodus 16:15-21)


In his recent book, [Journey to the Common Good], Brueggemann presents a very different view of the Joseph story than the one we usually hold to. Joseph solidified Pharaoh’s power and enslaved the people, manipulating the economy to concentrate wealth and power in the hands of a few. The situation deteriorates and God intervenes. The divine alternative comes into being through Moses’ dream of a people no longer exploited or suffering but living in the abundance of shared generosity which is the centre of God’s dream. The bread of the wilderness, the bread that God gives us to eat, is a very different sort of bread. It is the bread of God’s generosity, a gift of abundance that breaks the deathly pattern of anxiety, fear, greed and anger, a miracle that always surprises because it is beyond our capacity of expectation. Brueggemann points out that is this bread that fills the Israelites as they stand at Mt Sinai to receive God’s commands, commands that voice God’s dream of a neighbourhood and God’s intention for a society grounded in the common good.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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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일곱번째 주일 / 10월 세번째 주일

창조절, 주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시편 119:105 - 117

정해빈 목사




1. 창세기 12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 창조 이야기가 제일 처음 나오는 성경 구절이 창세기 127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똑같이 동등하게 지으셨습니다. 또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진흙과 하나님의 숨이 합쳐져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었다는 말씀과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말씀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숨이 들어가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능력이 우리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사람에게 양심이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양심을 불어넣어 주셨다는 말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동물에게는 양심이나 도덕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동물들은 그냥 본능대로 행동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양심이 있어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해야 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내가 남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남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다가도 양심에 찔려서 도저히 그것을 할 수 없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양심에 전혀 가책을 받지 않고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형상//양심이 죽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자비로운 마음, 너그러운 마음, 사랑의 마음이 내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본능을 따라 살지 않고 양심에 따라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동물처럼 본능에 따라 살지 않도록 하나님의 형상//양심을 우리 마음 안에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양심이 살아 있어서 양심대로 바르게 사는 사람이 있지만 어떤 사람들 중에는 양심이 죽어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 예를 들면 트럼프 라든지,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가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여성을 상대로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악을 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주신 형상//양심대로 살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법을 만드셨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산다면 법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양심대로 살지 않으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주는 법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원래 법은 양심을 보완해주고 사람들이 양심대로 살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양심을 따라가는 법이 좋은 법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보면 법이 양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위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집권을 한 후에 유대인/집시 같은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게르만 민족이 제일 똑똑하니까 우리들이 세상을 지배해야 하고 유대인이나 집시들은 국가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해가 되니까 따로 격리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가 만든 법에 찬성했습니다. 히틀러는 불법으로 유대인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유대인들을 죽였습니다. 가만히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이 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양심에 따라 이 법에 반대했을 뿐 대다수 국민들은 히틀러의 선동에 속아서 히틀러가 만든 법에 찬성했습니다. 과거 인류 역사를 보면 여성을 차별하는 법도 있었고 노예를 인정하는 법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대다수 사람들이 그 법을 만드는 것을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법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아니 그 당시에도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 법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양심과 일치해야 합니다. 양심에 가까운 법이 좋은 법이고 양심에 먼 법이 나쁜 법입니다. 가만히 귀를 귀울여 보면 내 마음 안에서 조용하게 말하는 양심의 목소리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목소리입니다.


2.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형상//양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형상//양심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말씀에 기초해서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는 신앙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모든 종교가 말씀과 양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대 종교들 중에는 도덕과 윤리가 없는 종교들도 많았습니다. 옛날 고대 종교들은 대부분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제사를 드렸습니다. 도덕이나 윤리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신을 노엽게 하지 않고 기쁘게 해야만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양심을 따라 사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미가서 66절 말씀,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살진 고기와 기름을 바쳐야 합니까? 내 몸을 바치면 기뻐하시겠습니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은 고기와 기름으로 제사를 많이 드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의을 실천하고 자비롭게 살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있다고 미가서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하나님 형상을 따라 양심에 맞게, 정의롭고 자비롭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형상//양심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내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지켜라,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그런데 이 십계명 말씀을 자세히 보면 무엇을 하여라, 무엇을 하지 말아라, 이렇게 간단하게 끝이 납니다. 왜 이것을 해야 하고 저것을 하면 안 되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이것을 하면 복을 받고 저것을 하면 벌을 받을 것이다 이런 말씀도 없습니다. 십계명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것은 그것이 양심에 비추어 보았을 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 계명들, 예를 들면 함무라비 법전 같은 것을 보면 이것을 행하면 복을 받고 이것을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설명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법을 지킵니다. 마치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어린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왜 안 돼지요이렇게 물었을 때, 어떤 아이가 거짓말하면 엄마한테 혼나니까 하면 안되요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 아이는 거짓말 하면 엄마한테 혼나니까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벌 받지 않으려면 이 법을 지켜라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것이 우리 양심에 옳기 때문에 이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심이 법이고 법이 양심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양심대로 정직하게 산다면 이 세상에는 법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무서워서, 벌 받지 않기 위해서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숨/양심대로 살기 위해서 십계명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을 힘들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우리들에게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들이 동물처럼 본능에 따라 살지 말고, 말씀을 따라, 양심을 따라 수준 높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벌 받지 않기 위해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주님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려고 나는 맹세하고 또 다짐합니다. 주님, 내가 기쁨으로 드리는 감사의 기도를 즐거이 받아 주시고 주님의 규례를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내 생명은 언제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만, 내가 주님의 법을 잊지는 않습니다.” 진실로 주님의 말씀이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우리가 어둠에 빠지지 않도록, 동물처럼 본능에 따라 살지 않도록,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길을 비추어 줍니다. 주님의 말씀을 등불 삼아서 하나님의 형상 답게, 양심에 맞게,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reation, your word is a lamp

Psalms 119:105 117


Your word is a lamp that gives light wherever I walk. Your laws are fair, and I have given my word to respect them all. I am in terrible pain! Save me, LORD, as you said you would. Accept my offerings of praise and teach me your laws. I never forget your teachings, although my life is always in danger. Some merciless people are trying to trap me, but I never turn my back on your teachings. They will always be my most prized possession and my source of joy. (Psalms 119:105-111)


I have made up my mind to obey your laws forever, no matter what. I hate anyone whose loyalty is divided, but I love your Law. You are my place of safety and my shield. Your word is my only hope. All of you worthless people, get away from me! I am determined to obey the commands of my God. Be true to your word, LORD. Keep me alive and strong; don't let me be ashamed because of my hope. Keep me safe and secure, so that I will always respect your laws. (Psalms 119:112-117)


As Christians, we believe that God created humankind in the image of God, male and female at the same time. We also believe that God formed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ccording to the scriptures, we, human beings, were made through the image of God and the breath of God. The image of God and the breath of God may indicate conscience in our mind. God put the inner voice in our heart so that we know instinctively what we should do and not. But while some people live according to our conscience, others do not. So we believe that God gave us the word in order to enlighten and strengthen our conscience. Truly, the word of God is a lamp that gives light wherever we walk. The laws of God are fair and we are called to respect and follow them all. We confess that your word is my only hope.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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