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다

누가복음(Luke) 1:30 38

정해빈 목사




누가복음에 의하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아라, 그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는 위대하게 되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성령이 그대에게 임하시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대를 감싸 줄 것이다.” 성령이 그대에게 임하여 아기를 낳을 것인데 그 아기는 거룩하고 위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성령으로 태어나셨고 거룩하게 태어나셨으며 위대하게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태어나셨고 거룩하게 태어나셨으며 위대하게 태어나셨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님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화려한 궁궐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나지 않으시고 가장 가난하고 초라하고 불안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다면 당연히 화려한 궁궐에서 태어나야 하는데 예수께서는 화려한 궁궐 대신 가장 낮고 천하고 더러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장 낮고 천하고 더러운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예수께서는 가장 낮고 천하고 더러운 장소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누가복음 224절에 기록된 대로 양 대신 비둘기를 제물로 드렸을 정도로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마리아와 요셉은 출산할 장소를 찾지 못해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출산을 해야만 했고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 일일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또 마태복음에 의하면 아기 예수는 헤롯 왕의 핍박을 피해서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만 했습니다. 아기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위험 인물이 되었고 난민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성탄 이야기를 서로 다르게 기록했습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마리아와 요셉은 처음부터 남쪽 베들레헴에서 살았지만 누가복음에 의하면 마리아와 요셉은 북쪽 갈릴리에서 살다가 출산할 때 베들레헴으로 내려왔습니다. 마태와 누가의 성탄 이야기가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마태와 누가 모두 아기 예수께서 초라하고 불안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태어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께서는 금수저가 아니라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셨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아기 예수께서 가난하고 불안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태어날 것이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성령으로 태어나시고 거룩하게 태어나시며 위대하게 태어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를 통해 이 땅에 오시기 때문에 아무리 가난하고 불안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아기 예수님은 거룩하고 위대하다고 말했습니다.

 

성령으로 태어나고 거룩하게 태어나고 위대하게 태어난 것은 아기 예수뿐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다 성령으로 태어나고 거룩하게 태어나고 위대하게 태어납니다.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역사입니.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 딸 이요 거룩하고 위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 아기는 성령으로 태어날 것이다. 이 아기는 거룩하고 위대하다. 이 아기가 나의 일을 할 것이다. 이 아기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이 아기는 나의 아들이다. 내가 이 아기를 키울 것이다말씀하셨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가난하고 불안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태어나셨듯이 오늘날 아기 예수처럼 가난하고 불안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있습니다. 시리아 같은 전쟁터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있습니다. 약한 몸으로 태어난 아기들이 있습니다. 고통 중에 태어난 아기들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상태로 태어난 아기들이 있습니다. 사회의 엄격한 기준으로 볼 때 무언가 부족한 상태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아기들을 축복하시고 그 아기들을 통해 새 역사를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명의 아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동네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위험하고 불안하게 태어난 아기들을 기억하고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를 키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대를 통해 태어날 아기가 나의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집안이나 헤롯이나 로마 귀족의 아들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불안하고 위험한 가정에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실 때 언제나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제일 먼저 찾으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게 태어난 아기 예수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가난하게 태어난 아기들이 바로 오늘날의 예수이고 위험하게 태어난 아기들이 바로 오늘날의 예수입니다. 가장 가난하고 위험하게 태어난 아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는 날이 성탄절입니다. 오늘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을 영접하고 기뻐하고 찬양하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낮은 곳에서 태어나시니 낮고 천하고 더러운 곳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낮은 곳에서 새로 태어난 생명들을 기억하고 보호하고 축복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들을 통해 새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낮고 추한 곳이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다.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 더럽고 추한 곳을 거룩한 곳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성탄의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The Child to be born will be holy

Luke 1:30 - 38


Every year in Christmas season, we hear many wonderful stories about love, peace, and hope. Today once again we hear the beautiful Christmas Story about baby Jesus in the Bible. Today we are blessed and glorified because God came down to the world to save us. The Word became flesh. But this is not the all stories about Christmas. In a sense, Christmas story is not all dreamy or ideal. It is rather radical, social, and dangerous. God came down to the low and humble world through baby Jesus. According to the Gospels of Luke, when Jesus was born, Mary and Joseph couldn't find a place to deliver a baby. They were like homeless and refugees. A manger, a bed of hay, a long box or container for animal feed, and a trough were the things that they could barely find. Jesus was born in a manger. According to Luke, Jesus was born in the lowest place in the world, and Shepherds, the lowest people in the world, first greeted baby Jesus. Jesus was born to be our friend and neighbour of the people who lived in a miserable world. God came down to us to save and raise us up who feel alone and miserable. Whenever we hear the Christmas story that Jesus was born in manger, we remember God's grace and love that cares the most vulnerable people in the world. Luke proclaims that not the Roman Emperor Augustus, but Jesus born in manger are our true saviour and liberator. As Jesus was born in anxiety and danger, we remember many babies who were born in poverty and danger. We believe as Jesus was born with the Holy Spirit, all the babies are also born with the Holy Spirit. We believe that as God took care of baby Jesus, God will also take care of all babies in the world. One of the African proverbs says, “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 As it says, It takes all of us to take care of one child. We are called to take care of baby Jesus in our heart. When we cherish and take care of vulnerable baby Jesus, when we accept the gifts of baby, peace and grace, and when we support the peace of Jesus to grow in this world, Go's vision will come true. “The Holy Spirit will come down to you, and God's power will come over you. So your child will be called the holy Son of God.”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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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네번째 주일 / 12월 세번째 주일

성탄주일,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축복하다

누가복음 1:39 - 45

정해빈 목사





오늘 성경 말씀은 가장 아름다운 성탄절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제일 먼저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마리아는 자기에게 일어난 이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해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더 나아가 마리아는 자기에게 닥친 이 일을 이해하고 축복해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당황스러운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상황을 설명해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위로해주고 축복해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옛날 시대에 남자를 알지 못하는 나이 어린 여성이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위험하고 불미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나이 많은 엘리사벳은 나이 어린 마리아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을 의미하지는 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았고 그대의 태중의 아이도 복을 받았습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오시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그대의 인사말이 내 귀에 들어왔을 때에 내 태중의 아이가 기뻐서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여자는 행복합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일어난 놀랍고 당황스러운 일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대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임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설명과 환대를 받고 나서 마리아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엘리사벳의 따뜻한 설명과 환대가 있었기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예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엘리사벳 같은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가 힘들고 당황스러운 일을 만나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는 그들을 영접하고 환영함으로 엘리사벳이 될 수 있습니다. 어려움 당한 사람을 말씀과 성령으로 위로하고 신앙의 언어로 축복해 줄 때 그 사람은 큰 위로와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또한 우리에게 마리아 같은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을 살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당황스러운 일을 만날 때, 우리는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달음으로 마리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새역사를 이루실 것임을 믿을 때 우리는 마리아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또한 오늘날에도 마리아와 같이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 마땅히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 인생에서 만난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사람들을 기억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고 축복하며 하나님께서 낮은 자들을 통해서 새 역사를 이루실 것임을 증언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갑작스러운 일을 만나거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대를 통해서 메시야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통해서 새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낮고 천한 사람들을 통해서 새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두려움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환영하고 위로하고 축복하였듯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hristmas Sunday, when Elizabeth blesses Mary

Luke 1:39 - 45


Today's passage is one of the most beautiful Christmas stories in the Bible. Two women, Elizabeth and Mary, met together and Elizabeth, an old woman, blessed Mary, a young woman. Having learned from the angel that she will give birth to the Son of God, Mary hurried to visit her pregnant relative Elizabeth in the hill country. As an unmarried pregnant woman, Mary might have expected social judgment and shame from her community. So Mary had to flee to somewhere for help. When Mary hurried to visit her cousin, Elizabeth greeted May with honor and respect. Elizabeth overturned social expectations. Mary was honored rather than shamed for bearing the child. Elizabeth opened her arms and her home to a relative whom her neighbors would expect her to reject. Instead of shaming Mary, she welcomed and blessed her, saying Blessed are you among women. Blessed is the fruit of your womb. Blessed is she who believed that there would be a fulfillment of what was spoken to her by the Lord.’ Today's story tells us to be Elizabeth. When someone is seized with fear and scare, when someone faces unexpected things in the life, when someone feel frustrated and hopeless, we can be Elizabeth by welcoming, blessing with honor, and encouraging those in need. Today's story also tells us to be Mary. When something unexpected happens to us, we can be Mary by remembering the fact that God will do wonderful things with this life-changing matter. May we, like them, give thanks that God has taken away our shame and then respond to God’s love by welcoming the shameful. May we, like them, become a community that supports each other as we hope and wait.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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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세번째 주일 / 12월 두번째 주일
대림절, 공평과 진리의 메시야
이사야서 59:9 - 16
정해빈 목사

 


 

1. 대림절 세번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대림절은 기다림의 계절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립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우리들을 평화로 인도하시기를 기다립니다. 주님은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십니다. 메시야와 그리스도는 같은 뜻인데 기름부음 받은 자를 가리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들, /제사장/예언자들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고 세상을 구원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메시야 중의 메시야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유는 우리가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세상이 좋아졌습니다. 교통과 과학 기술이 발전해서 옛날 왕들도 누리지 못했던 편리한 생활을 우리가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살기 편해졌지만 사회 곳곳에 불공평과 불의와 빈부격차가 가득합니다. 세상은 편리했지만 동시에 세상은 더 불안해지고 위험해졌습니다. 사람들의 이기심과 욕심과 증오가 세상을 점점 더 수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편리한 세상을 만들었을지 몰라도 좋은 세상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들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실패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메시야를 기다립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이 세상을 좋은 세상,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으로 바꾸어 주기를 기다립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세가지 과제가 있다면 첫째는 기후변화, 둘째는 종교 간의 갈등, 셋째는 빈부격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점점 살기 어려운 곳이 되고, 종교 간의 갈등을 막지 못하면 이 세상은 테러와 전쟁터가 되고, 소득불평등을 막지 못하면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에 갈등이 커지게 됩니다. 통계를 보니까 한국 상위 10%의 사람들이 전체 부의 66%를 차지하고 하위 50%의 사람들이 전체 부의 2%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한국의 빈부격차가 저렇게 크지 않았는데 어느 새 한국이 남미 같이 소득격차가 큰 나라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더 심해서 상위 10% 인구가 전체 부의 76%를 차지합니다. 소득격차가 크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 모두 불행합니다. 남미 같은 나라에서는 부자들이 밖에 나갈 때 경호원들이 총을 들고 경호합니다. 밖에도 마음대로 나가지 못해서 경호원을 데리고 나가야 한다면 부자들도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자는 존경받고 가난한 사람은 보호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존경받아야 합니다. 서로서로 존경받고 보호받는 사회, 소득격차가 크지 않는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요즘 뉴스에 트루도 캐나다 수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파리 기후변화회의에서 캐나다가 기후변화을 막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약속하고, 공항에 나가서 가장 먼저 도착한 시리아 난민들을 환영하고, 상위 1% 고소득층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고 중산층의 세금은 깎아 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장관을 임명하는데 남자와 여자 수를 똑같이 임명하고 이슬람 출신, 장애인 출신, 원주민 출신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Toronto Star 신문이 캐나다가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기사를 쓴 것을 보았습니다. 캐나다는 소득격차가 크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소득불평등과 차별은 심각합니다. 부자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금수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유행어가 만들어지기까지 했습니다. 마침 페이스북의 창업자 저커버그가 딸을 낳은 기념으로 자기 재산의 99%를 사회에 기증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재산의 99%를 기증한 것도 감동적이지만 막 태어난 딸에게 쓴 편지가 더 감동적입니다. 모든 부모들처럼 우리는 네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란다. 그 세상은 모든 인류가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하고 평등해야 한다. 질병을 치료하고 배움의 기회를 갖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위한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딸 가진 아빠로서 내 아이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트루도나 저커버그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두 사람의 힘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이 살기 편한 세상은 만들었지 몰라도 정의롭고 안전한 세상은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메시야가 오셔서 이 세상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 이사야서는 구약 성경 중에서 가장 많이 메시야를 예언했습니다. 이사야는 세상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메시야를 더 고대하고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주님을 부정하였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물러가서 포학한 말과 거역하는 말을 하면서 거짓말을 마음에 품었고 또 실제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공평이 뒤로 밀려나고 공의가 멀어졌으며 성실이 땅바닥에 떨어졌고 정직이 발붙이지 못합니다이사야가 가만히 보니 사람들이 죄를 짓고 악을 행하고 거짓말을 합니다. 세상에 꼭 있어야 할 4가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첫째 공평이 뒤로 밀려나고 둘째 공의가 멀어졌으며 셋째 성실이 땅바닥에 떨어졌고 넷째 정직이 발붙이지 못합니다. 공평과 공의와 성실과 정직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점점 악한 세상이 되어 갑니다. 우리는 앞을 못 보는 사람처럼 담을 더듬고 눈먼 사람처럼 더듬고 다닌다. 대낮에도 우리가 밤길을 걸을 때처럼 넘어지니 몸이 건강하다고 하나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우리 모두가 곰처럼 부르짖고 비둘기처럼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지만 공평이 없고 구원을 바라지만 그 구원이 우리에게서 멀다.아무리 공평과 구원을 부르짖어도 공평과 구원이 오지 않습니다. 공평과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몇몇 사람의 힘만 가지고는 세상이 바르고 공평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탄식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메시야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공평이 없는 것을 보시고 슬퍼하셨다. 압박받는 사람을 도우려는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중재자가 없음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놀라셨다. 주님께서는 직접, 억압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반드시 공의를 이루시려고, 당신의 능력을 친히 발휘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공평이 없는 것을 보고 슬퍼하셨고 압박받는 사람을 도우려는 중재자가 없는 것을 보고 놀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직접 억압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능력을 친히 발휘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가 이런 메시야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주실 때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한두 사람의 마음과 생각만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 모두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한국 교육부가 서울 동대문에 있는 어느 학교의 비어 있는 교실을 이용해서 장애인 직업학교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청회가 열렸는데 장애인 부모들이 서울에 장애인 직업학교가 부족해서 매일 2-3시간씩 운전해서 멀리 있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야 합니다. 장애인 직업학교를 허락해 주십시오무릎을 꿇고 사정을 합니다. 그러자 일반 학부모들도 무릎을 꿇고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학교가 세워지면 장애인 수십 명/수백 명 몰려올 텐데 싫다는 것입니다. 학교 이미지나 동네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고 말합니다. 장애인 직업학교를 환영합니다 현수막을 내걸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저렇게 반대할 수가 있을까, 장애 아이를 둔 부모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 모두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들 모두를 깨우쳐 주시고 변화시켜 주실 때 이 세상은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내가 그들과 맺은 나의 언약은 이러하다. 너의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너의 입에 담긴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너의 입과 너의 자손의 입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과 말씀을 우리들에게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영과 말씀이 우리들 위에 임할 때 우리들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의 오심을 선포하면서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입을 옷과 먹을 것이 많은 사람은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세리들은 정해 준 기준보다 세금을 더 걷지 말고 군인들은 다른 사람의 것을 협박하거나 속여서 빼앗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대림절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절입니다. 이사야가 말한 대로 시대는 달라졌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세상에 공평과 공의와 성실과 정직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얼마나 공평한가, 나는 얼마나 공의로운가, 나는 얼마나 성실한가, 나는 얼마나 정직한가 우리들 자신을 돌아보는 계절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실패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도 실패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고 우리를 새로운 미래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성령과 말씀으로 내 안에 오셔서 나의 마음을 밝혀 주옵소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공평과 진리의 주님, 이 땅에 오셔서 이 땅을 공평과 평화의 땅으로 바꾸어 주옵소서. 우리들의 마음을 공평과 공의, 성실과 정직의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Advent, Messiah for justice and truth

Isaiah 59:9 - 16


No one has come to defend us or to bring about justice. We hoped for a day of sunshine, but all we found was a dark, gloomy night. We feel our way along, as if we were blind; we stumble at noon, as if it were night. We can see no better than someone dead. We growl like bears and mourn like doves. We hope for justice and victory, but they escape us. How often have we sinned and turned against you, the LORD God? Our sins condemn us! We have done wrong. We have rebelled and refused to follow you. Our hearts were deceitful, and so we lied; we planned to abuse others and turn our backs on you. (Isaiah 59:9-13)


Injustice is everywhere; justice seems far away. Truth is chased out of court; honesty is shoved aside. Everyone tells lies; those who turn from crime end up ruined. It disgusted him even more to learn that no one would do a thing about it. So with his own powerful arm, he won victories for truth. Justice was the LORD's armor; saving power was his helmet; anger and revenge were his clothes. The LORD has promised to rescue the city of Zion and Jacob's descendants who turn from sin. The LORD says: "My people, I promise to give you my Spirit and my message. These will be my gifts to you and your families forever. I, the LORD, have spoken." (Isaiah 59:16-17, 20-21)


The word Advent means "coming" or "arrival." The focus of the entire season is preparation to celebrate the birth of Jesus the Christ in his First Advent, and the anticipation of the return of Christ the King in his Second Advent. Thus, Advent is far more than simply marking a 2,000 year old event in history. It is celebrating a truth about God, the revelation of God in Christ whereby all of creation might be reconciled to God. That is a process in which we now participate, and the consummation of which we anticipate. Scripture reading for Advent will reflect this emphasis on the Second Advent, including themes of accountability for faithfulness at His coming, judgment on sin, and the hope of eternal life.


Isaiah was one of the prophets in the Old Testament who prophesied the coming of Messiah, the one anointed by God, the saviour of justice, truth, and honesty, who will fulfill God’s good will. Isaiah describes people’s sins inequity, injustice, violence, and corruption. Their sins have left them blind and hopeless. The Lord will judge their sins but, as always, offers hope to those who repent by promising the coming of Messiah. God saw that there was no one, and was appalled that there was no one to intervene. So God’s own arm brought God victory, and God’s righteousness upheld God. John the Baptist also said to those who asked the way of repentance, “Whoever has two coats must share with anyone who has none; and whoever has food must do likewise. Collect no more than the amount prescribed for you. Do not extort money from anyone by threats or false accusation, and be satisfied with your wages.” We repent our wrong way of life and lament the injustice and violence of our society. So we long for the coming of Messiah who will bring justice and truth into the world. We yearn for the Messiah who makes the world renew and leads us into the new way of lif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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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두째 주일 / 12월 첫번째 주일

로마서,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로마서 1:28-32, 12:1-2

정해빈 목사

 

 

 

1.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지난 주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예레미야서 말씀을 설교했는데 오늘은 로마서 말씀을 설교하려고 합니다. 지지난 주일에 이 세상에 의인은 없고 모든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는 로마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먼저 유대인들의 악을 지적했는데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잘못 믿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사회에 무슨 악을 행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보기에 사회에 실제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로마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고 했는데 이 시대는 로마 시대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 사람으로서 로마 제국의 제도/규칙을 따르는 것은 좋으나 로마 시대의 풍조/문화/습관은 따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겉으로는 로마 제국 백성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 방식대로 살아야지 세상 방식대로 살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안에서 살지만 세상을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제도/규칙은 따르지만 세상 풍조/문화/습관은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무조건 로마 제국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종말을 믿었기 때문에 머지않아 주님이 다시 오시면 로마 제국은 자연스럽게 무너질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바울은 그때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로마 제국의 제도/규칙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박해를 받을 때는 자신이 시민권자임을 밝히고 로마법에 따라서 자신을 대우해 달라고 말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로마의 발달된 도로를 이용해서 선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로마 제국의 제도/규칙을 인정하고 이용했지만 그 시대의 잘못된 풍조/문화/습관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 세상의 규칙/제도는 따르지만 이 세상의 잘못된 문화는 따라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자본주의/소비문화가 주인 행세를 합니다. /자본/소비/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과소비/무절제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경제정의, 나눔에는 관심이 없고 더 많은 부를 쌓고 소비를 즐기는 데에만 관심을 갖게 됩니다. 11월 넷째 주 목요일 미국 추수감사절 다음 날을 Black Friday라고 부릅니다. Red는 적자, Black은 흑자, 이날부터 가게가 흑자로 바뀐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또 성탄절 다음 날은 Boxing Day라고 부릅니다. 이런 식으로 이 날은 가격이 싸니까 물건을 사라고 광고를 합니다. 우리들은 이런 세상 문화를 무작정 따라갈 것이 아니라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근검절약하고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물질을 이웃과 나누는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기독교 전통을 계승해야 합니다. 최근에 저희 아이 바지 무릎이 달아서 천을 대서 꿰매 주었습니다. 사각형으로 예쁘게 꿰매면 보기 좋습니다. 아마 한국에서는 바지 꿰매 주면 주변에서 무시한다고 싫어할 것입니다. 기독교 문화가 오래된 서양 사람들 중에는 돈이 많아도 검소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삶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고 예수님을 닮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비우고 변화받아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자본주의/소비문화/욕망의 문화를 따라가지 않고 깨끗하고 검소한 삶, 사랑과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를 보면 복음/구세주/평화 같은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 말들은 본래 로마 제국이 즐겨 쓰는 말들입니다. 복음은 복될 복(), 소리 음()자 기쁜 소식을 가리키는데 로마에서는 새로운 식민지를 정복한 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전령이 황제에게 와서 황제 폐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로마 장군이 어느 나라를 정복했습니다나라를 정복한 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것이 기쁜 소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세주(救世主)는 세상을 환난에서 구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로마에서는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구세주였습니다.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싸워 이겨 내전을 종식하고 로마에 평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로서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존귀한 자)라는 구세주 칭호를 얻게 되었고 그가 가지고 온 평화를 가리켜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황제가 구세주가 아니라 예수님이 구세주이고 로마 황제가 평화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참 평화를 가지고 왔다고 선언했습니다.

 

2.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지 말아야 할 로마의 첫번째 풍조/악은 폭력입니다. 로마는 항상 미개한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는 이유를 대고 폭력으로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 정복했습니다. 항상 정복자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할 때 당신 나라가 미개하니까 우리가 들어가서 문명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합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서 식민지로 삼고 사람과 물자를 빼앗았습니다.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는 이제 이 땅에 평화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로마가 만든 평화는 총칼로 억누르는 평화이고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한 평화입니다. 식민지를 정복하고 총칼로 억누르면 겉으로는 평화스럽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평화는 억지로 만든 평화이지 참 평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평화는 정의에 기초한 평화입니다. 총칼로 억누르고 찍소리 못하게 하는 평화가 아니라 정의에 기초하기 때문에 모두가 행복해 하는 평화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폭력/정복의 문화, /군사 문화를 본받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며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지 말아야 할 두 번째 풍조/악은 쾌락입니다. 로마의 시민/귀족들은 다른 나라에서 빼앗은 것으로 사치와 쾌락을 즐겼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두 종류의 노예가 있었는데 주인 집에서 태어난 노예와 식민지에서 데리고 온 노예가 있었습니다. 주인 집에서 태어난 노예는 대우가 좋았지만 식민지에서 태어난 노예는 글자 그대로 노예 생활을 해야 만 했습니다. 당시 자료를 보면 로마시의 20%가 노예였고 집집마다 노예가 있어서 노예들이 목욕/청소/음식/조경/공부 등의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귀족들은 마음에 드는 노예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기도 했습니다. 오늘 말씀 로마서 127절을 보면 남자들도 이와 같이 여자와의 바른 관계를 버리고 서로 욕정에 불탔으며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로마 귀족들의 성적 타락/동성애를 지적한 말씀입니다. 물론 사람들 중에는 선천적으로 이성에는 관심이 없고 동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통계를 보면 100명이 모이면 3명에서 5명은 이성에는 관심이 없고 동성에 관심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로마 시대에는 귀족들이 성적 쾌락을 위해서 동성애를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 사람들의 노예제도나 성적 타락을 본받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초대 기독교는 처음에 박해받았지만 나중에는 로마에서 제일 큰 종교가 되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자기들과 같이 방탕하게 살지 않고 깨끗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로마에 천연두 같은 큰 전염병이 들어서 전체 인구의 1/4이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역사학자 W. McNeil은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전염병을 무서워하지 않고 병에 걸린 성도들을 정성으로 돌보았다는 기록을 보면서 바로 이런 삶이 로마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염병이 돌면 일반 사람들은 버림받아서 빨리 죽는데 그리스도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병에 걸린 다른 성도님들을 정성을 다해 돌봐줍니다. 전염병이 돌아서 로마 인구가 줄어들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으니 저절로 기독교인 인구가 많아졌습니다. 성도님들이 서로서로 간호해주고 돌봐주면 병이 빨리 낫을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가 사회복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나서서 환자를 돌보고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뤄 주었습니다. 로마 시대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라 살았던 성도들의 삶이 로마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저렇게 서로 사랑하며 돌보며 사는 구나, 교회 나가면 외롭지 않겠구나, 교회 나가면 병 걸려도 버림받지 않고 돌봄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로마 사람들이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어제 한카치매협회 후원회를 다녀왔는데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에 한카치매협회, 성인장애인공동체에서 봉사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사랑과 돌봄의 삶, 검소하고 깨끗한 삶이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이 가르쳐 주신 복음의 정신을 가지고 바르고 진실된 삶, 사랑과 돌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Don't be like the people of this world

Romans 1:28-32, 12:1-2

 

Since these people refused even to think about God, he let their useless minds rule over them. That's why they do all sorts of indecent things. They are evil, wicked, and greedy, as well as mean in every possible way. They want what others have, and they murder, argue, cheat, and are hard to get along with. They gossip, say cruel things about others, and hate God. They are proud, conceited, and boastful, always thinking up new ways to do evil. These people don't respect their parents. They are stupid, unreliable, and don't have any love or pity for others. They know God has said that anyone who acts this way deserves to die. But they keep on doing evil things, and they even encourage others to do them. (Romans 1:28-32)

 

Dear friends, God is good. So I beg you to offer your bodies to him as a living sacrifice, pure and pleasing. That's the most sensible way to serve God. Don't be like the people of this world, but let God change the way you think. Then you will know how to do everything that is good and pleasing to him. I realize how kind God has been to me, and so I tell each of you not to think you are better than you really are. Use good sense and measure yourself by the amount of faith that God has given you. A body is made up of many parts, and each of them has its own use. That's how it is with us. There are many of us, but we each are part of the body of Christ, as well as part of one another. (Romans 12:1-5)

 

"We are not to be conformed to this world." Paul is using the word "world" here to refer to the popular worldview that rejects God and God's revelation. For him this world indicates the Roman society who conquered the world with violence and ruled over the world with pleasure and prosperity. "They were filled with every kind of wickedness, evil, covetousness, malice. Full of envy, murder, strife, deceit, craftiness, they are gossips, slanderers, God-haters, insolent, haughty, boastful, inventors of evil, rebellious towards parents, foolish, faithless, heartless, ruthless." (1:29-31). As believers, Paul said, we are no longer conformed to this world because we no longer belong to the spirit of this age. We have been translated from the kingdom of darkness into the kingdom of God’s beloved Son. Therefore, rather than continuing to conform to this world, we are to be transformed by having our minds renewed.

 

Although Paul used the legal rights of citizenship and transportation system when he went on a mission trip, he never accepted the ideology or culture of the Roman Empire, since it violates the will of God. For Paul's perspective, the Roman Empire brings peace through victory and violence, whereas God brings peace through justice and distribution. Anticipating that this world will be collapsed soon, Paul urged his people not to follow the culture of corruption and violence, rather to live a life of piety and love. Paul also admonished Christians to rejoice with those who rejoice and to weep with those who weep, living in harmony with one another and be associate with the lowly, "Do not repay anyone evil for evil, but take thought for what is noble in the sight of all." (12:17). We are called to live a different life while dwelling in the world. When we live as Christ lived, people in the world will follow us.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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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첫번째 주일 / 11월 다섯번째 주일

대림절,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는 주님

예레미야서 31:31 - 34

정해빈 목사





1.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인생을 편안하게 산 사람들 보다는 어렵고 힘든 인생을 산 사람들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나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욥 같은 사람들 모두 어렵고 힘든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브람과 이삭은 정착할 땅이 없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 했고 아버지 야곱과 아들 요셉은 젊은 시절 종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모세도 궁궐에서 쫓겨나 광야 생활을 했고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욥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비참한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젊은 시절에는 고생했지만 마지막에는 잘 되었습니다. 요셉은 젊은 시절 종살이/감옥살이를 했지만 나중에 이집트 총리가 되었고 모세는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욥은 과거의 잃어버렸던 재산과 가족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생하지만 나중에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그 사람은 처음 고생을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고생만 하고 보상이나 영광이 없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견디기가 힘들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끝까지 고생만 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예레미야나 신약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심판의 말씀을 전하다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니까 권력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백성들도 예레미야를 박해합니다. 개인적인 인생으로 보면 외롭고 힘든 인생이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따돌림 받고 온갖 종류의 굴욕과 모욕과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는 그런 고통을 받으면서 예레미야서를 썼습니다. 예레미야서를 읽어보면 세상의 불의를 고발하고 세계정세를 예리하게 지적한 예언자, 모든 사람이 듣기 싫어하는 심판에 대한 말씀을 전한 예언자, 그 시대 권력자들과 불화한 예언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고통 중에 쓴 예레미야서는 후세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예레미야서를 읽고 감동받았다는 분들도 많고 예레미야서를 연구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예레미야가 받은 고통에 비하면 내가 받은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분 한번 시간 내서 예레미야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1시간, 저녁에 1시간 읽으면 하루에 다 읽을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전한 예레미야에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 마을에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나돗 마을은 솔로몬에 반대하던 아비아달 제사장의 후손들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중앙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중앙에서 쫓겨난 변두리 유배지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중앙에 있는 사람에게 임하지 않고 변두리 유배지에 사는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남 유다 말기에 살았는데 당시 남 유다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바벨론 제국의 침략을 받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남 유다는 영적으로 썩어 있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권력을 남용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고 종교 지도자들은 재물을 탐하면서 제사만 잘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짓된 예언자들은 평안하다, 평안하다만 외치며 정치/종교 지도자들과 한통속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니까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영적인 눈으로 세계정세를 보니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치/종교 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세상정세를 보지 못하고 권력과 물질의 향락에 취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백성이니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을 영원히 지켜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대로 가면 유다가 무너질 것이라는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유다가 망한다면 그것은 외적이 쳐들어와서가 아니라 정치/종교 지도자들과 일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백성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정의로운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정치/종교 지도자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제사장들은 그를 매로 때리기도 하고 구덩이에 집어넣기도 하고 감옥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2.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서 31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서 돌판에 기록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10가지 계명 중에서 1번부터 4번까지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계명이고 5번부터 10번까지는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잘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십계명의 정신을 지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야훼 하나님 대신에 물질과 쾌락의 우상을 섬깁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이웃의 것을 빼앗고 불의를 저지릅니다. 예레미야는 아무리 돌판에 십계명이 쓰여 있어도 그것을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그 계명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계명을 마음에 새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에 성경책이 아무리 많아도 그 성경책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돌판이나 책에 기록하는 것보다 내 마음에 기록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국가와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헌법을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의 내용이 너무 좋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헌법 좋아도 지도자가 헌법의 정신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캐나다 헌법 중에 인권과 자유 헌장(the Charter of Rights and Freedoms)이 있습니다. 여성과 원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아야 하고 어떤 국민도 인종, 출신국가, 민족, 피부색, 종교, 성별, 연령과 정신, 신체적 장애로 인해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정신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인권과 자유 헌장이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고 지킬 때만 우리의 삶이 바로 세워지고 나라가 바로 세워질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성탄절을 한 달 앞두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마음에 말씀을 새겨 주시고 우리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기록된 말씀을 잊어먹고 안 지키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직접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돌판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밭에 말씀을 새겨주기 위해서 오십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우리 마음에 넣어줄 때 우리 삶이 바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 내 안에 말씀을 넣어 주셔서 내가 말씀을 잊지 않고 살게 해 주세요. 내 안에 말씀을 넣어 주셔서 내가 변화받아 더 좋은 남편, 더 좋은 아내가 되게 해 주세요. 부모 말 잘 듣지 않는 우리 아이 마음 안에 말씀을 넣어 주셔서 우리 아이가 더 좋은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이 땅에 주의 공의와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게 해 주세요. 이 땅에 불의와 폭력이 사라지게 해 주세요.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의 말씀이 돌판이나 종이에 있으면 안 되고 내 안에 살아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기도하고 묵상해서 주의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는 그 말씀이 내 안에 살아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대림절을 맞아 주님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 마음 안에 말씀을 넣어주실 때 우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우리 사회가 망하지 않도록 이 땅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Advent, the LORD changes our mind

Jeremiah 31:31 - 34


The LORD said: The time will surely come when I will make a new agreement with the people of Israel and Judah. It will be different from the agreement I made with their ancestors when I led them out of Egypt. Although I was their God, they broke that agreement. Here is the new agreement that I, the LORD, will make with the people of Israel: "I will write my laws on their hearts and minds.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will be my people. "No longer will they have to teach one another to obey me. I, the LORD, promise that all of them will obey me, ordinary people and rulers alike. I will forgive their sins and forget the evil things they have done." (Jeremiah 31:31-34)


Jeremiah was one of the major prophets of the Hebrew Bible. About a year after King Josiah of Judah had turned the nation toward repentance from the widespread idolatrous practices of his father and grandfather, Jeremiah's sole purpose was to reveal the sins of the people and explain the reason for the impending disaster, destruction by the Babylonian army and captivity. He accused the political and religious elite in Jerusalem of corrupting the covenant made at Sinai and social injustices and turning away from God. Faced with a Babylonian invasion, the elite of Judah place their faith in military strategy and political alliances rather than in the radically free god revealed to their ancestors at Sinai. The covenant made at Sinai was not the problem; the problem was the dilution of Judah's Sinai identity.


Jeremiah promises that God will replace their deeply engraved sinful heart with a new heart engraved with God's law, written in God's own handwriting. When God will write God’s law upon the hearts of the people, their hearts will embody and empower the true relationship they share with God and one another. Unlike the old covenant written on stone tablets that can be broken and scrolls that can be lost, the new covenant will be written within the people, on their very hearts. Living the new season of Advent, we are longing for the coming of Christ, the Word made flesh. He will come down to renew our mind, engraving God's law into our mind and leading us to live out the word of God every day. O Lord, come to our mind as the word of God! Help us live in your spirit always, we pray.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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