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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2.15 위험 사회와 아기 예수

대림절 세번째 주일
위험 사회와 아기 예수
마태복음 2:13 - 18

정해빈 목사

 

1.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유명한 책 중에 [피로 사회]라는 책이 있습니다. 독일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한병철 교수가 이 책을 썼습니다. 한 교수는 과거 사회는 [규율 사회]이고 현재 사회는 [성과 사회]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과거에는 규율/통제/억압이 강했습니다. 국가/사회/종교가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자유가 없고 통제와 간섭이 많았습니다. 옛날 한국에서도 1970년 유신 시대 때 머리를 길러도 잡아가고 치마 길이가 짧아도 경찰이 잡아가던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규율이 강한 국가나 사회가 있습니다. 규율이 강한 사회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 억압하기가 쉽습니다. 사회가 규율이 너무 강하면 그 규율에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살던 유대 사회가 바로 그랬습니다. 로마제국과 헤롯왕과 예루살렘 성전이 백성들을 통제하고 감시했습니다. 군사적으로 억압하고 경제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종교적으로 죄책감을 심어 주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귀신들린 사람들과 병자들을 고치신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그 당시에 국가/사회/종교의 억압적인 규율에 견디지 못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 사회가 너무 엄격하고 자유가 없으면 약자들이 견디지를 못합니다. 규율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한 집안에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고 무서우면 자식들이 위축되고 기를 못 펴게 됩니다.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옛날 사회가 [규율 사회]라면 오늘날의 사회는 [성과 사회]라고 한병철 교수는 말했습니다. 규율 사회가 다른 사람이 나를 억압하는 사회라면 성과 사회는 내가 나를 억압하는 사회입니다. 현대 사회는 성과를 요구하고 나는 그 성과를 내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면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를 혹사하게 되고 때로는 자신이 자신을 억압하기도 합니다. “너는 이것밖에 안 되냐, 더 노력해라, 더 성과를 내라, 그래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내가 내 자신을 괴롭힙니다. 그렇게 성과를 내기 위해 달려가다가 생각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낙오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것이 심하면 우울증 같은 병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심하다 보면 쉴 때 쉬지도 못하고 일 중독이 되어서 자기를 학대할 수 있습니다. 성과 사회는 필연적으로 피로 사회로 연결됩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 바쁘게 살다 보니 피로가 쌓입니다. 하루하루가 피곤하다는 말이 현대인들이 자주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요즘 사회는 수없이 많은 정보가 몰려오는 사회입니다. 수시로 정보를 체크하고 몇 분 간격으로 인터넷과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요즘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도 서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각자 자기 핸드폰만 들여다본다고 합니다. 성과를 요구하고 정보를 요구하는 사회에 살다보니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만 갑니다. 옛날 사회가 통제와 억압을 하는 규율 사회였다면 오늘날은 성과를 요구하는 성과 사회, 그래서 피곤이 겹치는 피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오늘날의 사회에 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차별 사회]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옛날과 비교해 보면 오늘날이 더 빈부격차가 늘어났습니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한 사람이 일을 하면 한 가정이 먹고 살 수 있었는데 요즘은 두 사람이 일을 해야만 겨우 먹고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소득격차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고 취직을 하면 정규직이 되었고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절반이 비정규직입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시간당 5불(5천원)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대기업들은 엄청난 돈을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직원을 뽑을 때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정규직 채용을 잘 하지 않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사람을 뽑다가 시간이 지나면 해고하고 다시 사람을 뽑습니다. 대한항공 40세 여자 부사장이 1등석 비행기를 탔는데 왜 땅콩 봉지를 가지고 오냐고 욕설을 하고 가던 비행기를 되돌려서 사무장을 내리게 했습니다. 원래 메뉴엘에는 처음에는 봉지를 보여주고 승객이 먹겠다고 하면 봉지를 뜯어서 접시에 담아서 주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승무원은 규정대로 했습니다. 회장 아버지를 둔 덕분에 젊은 나이에 부사장이 되었으면 겸손하면 좋을 텐데 겸손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위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래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청년들을 3포 세대라고 합니다. 취직,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다고 해서 3포 세대라고 부릅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의 청년들이 참 안됐다는 생각을 합니다. 옛날보다 더 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캐나다에서 공부하고 직장 생활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여기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사회 제도 면에서는 여기가 한국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의 사회에 대해서 하나만 더 이름을 붙인다면 [위험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득 격차와 인종 차별과 종교 갈등이 심하다 보니 사회가 불안해지고 위험해 집니다. 최근 미국 퍼거슨 시에서 흑인을 사살한 백인 경찰에게 무죄가 선고되어서 큰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젊은 흑인 남성이 경찰에 사살될 가능성이 젊은 백인 남성의 21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백인 빈곤층 비율은 10%인데 흑인 빈곤층 비율은 28%에 해당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습니다. 또 요즘 제일 세계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시리아 사람들입니다. 몇 년째 내전이 일어나서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피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위험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위험도 있지만 자연이 주는 위험도 있습니다. 핵발전소 사고, 에볼라 바이러스, 지진과 태풍 등이 우리의 삶을 위협합니다. 물론 옛날과 비교해 볼 때 과학의료기술이 발전해서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로워졌고 수명은 늘어났습니다. 그러면 옛날보다 사회가 더 안전해졌느냐? 꼭 그렇지 많은 않은 것 같습니다. 과거보다 수명이 늘어나기는 했는데, 대신에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위험/재난/사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유독 큰 재난/사고/전쟁/질병이 많았습니다. 성과사회/피로사회/차별사회/위험사회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명에서 볼 때 아기 예수께서 위험 사회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2장을 보면 아기 예수께서 매우 위험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부유한 집안의 왕자님으로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헤롯 왕이 아기 예수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들을 보내서 2살 이하의 아기들을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아기 예수는 부모를 따라 태어나자마자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만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과 모세를 연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집트로 피난을 떠난 것으로 묘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 의하면 아기 예수께서는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태어난 지 40일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아기 예수가 태어나자마자 이집트로 피난을 떠났다고 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태어나지 40일째 되는 날 성전을 방문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태가 맞으면 누가가 틀리고 누가가 맞으면 마태가 틀립니다. 아니 둘 다 틀렸을 수도 있고 둘 다 맞을 수도 있습니다. 마태가 말하려는 바는 이것입니다. 아기 예수께서 위험하고 불안한 사회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의 위협을 피해서 피난을 가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사회를 반영합니다. 실제로 헤롯 왕은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백성들을 아기까지 다 죽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난민이 되었습니다. 불안하게 태어난 다른 아기들과 똑같은 운명을 경험하셨습니다. 누가복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 예수는 좋은 방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손님방/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 목자들은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들이었고 아기 예수 곁에는 소/말/나귀 같은 가축들이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멀리 이집트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연약한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마리아가 안전하게 출산할 방을 찾지 못했을 때, 베들레헴 사람들은 마굿간/손님방을 마련해 주었고 들에서 양을 치는 가난한 목동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했습니다. 베들레헴 사람들/목동들이 아기 예수를 지켜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이야기입니다. 사회가 위험해지면 제일먼저 노인/여성/아기와 같은 약자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약자들을 기억하고 보호할 때 이 사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청년 여러분, 이 사회에는 분명히 차별과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서로를 보호하고 지켜 줄 때, 우리는 위험을 견딜 수 있고 차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쉼터를 마련해 주고 따뜻하게 환영할 때, 위험한 사회는 안전한 사회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위험한 곳에 사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지켜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Danger society and baby Jesus
Matthew 2:13-18

After the wise men had gone, an angel from the Lord appeared to Joseph in a dream and said, "Get up! Hurry and take the child and his mother to Egypt! Stay there until I tell you to return, because Herod is looking for the child and wants to kill him." That night, Joseph got up and took his wife and the child to Egypt, where they stayed until Herod died. So the Lord's promise came true, just as the prophet had said, "I called my son out of Egypt." (Matthew 2:13-15)

When Herod found out that the wise men from the east had tricked him, he was very angry. He gave orders for his men to kill all the boys who lived in or near Bethlehem and were two years old and younger. This was based on what he had learned from the wise men. So the Lord's promise came true, just as the prophet Jeremiah had said, "In Ramah a voice was heard crying and weeping loudly. Rachel was mourning for her children, and she refused to be comforted, because they were dead." (Matthew 2:16-18)

Professor Han, who teaches Philosophy in Germany, said in his recent book [Fatigue Society] that today's society is characterized as a pathological landscape of neuronal disorders such as depression,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borderline and burnout. He claims that they are not caused by the negativity of people's immunology, but by an excess of positivity. The immunological paradigm, or control society which dominated the past century is based on a clear differentiation between friend and enemy or inside and outside. During the cold war, everybody knew who the enemy was. Social and political organization in the past is to defend the inside from outside, regardless of whether they pose a threat or not. The otherness of the outside element is sufficient justification for its expulsion.

Han’'s central claim is that, since the end of the cold war, social formations have moved away from this immunological paradigm or control society. The central categories of immunology, otherness and foreignness, are disappearing, and a new category is taking their place: excess of positivity, or fatigue society. The disappearance of otherness means that we now live in a time bereft of negativity. Hyperactivity or burnout are the result of an excess of positivity. The violence/power of positivity stems from over-producing, over-achieving or over-communicating. It is not based on anything alien to the system, it is immanent to the system. He proposes that we live in an achievement society. Achievement society has replaced the "You shall not" of disciplinary society with the affirmation of "Yes you can."

The entrepreneurial subject of achievement society does not need commandments—-it has projects. Han writes: “Disciplinary society is dominated by the No. Its negativity creates the insane and criminals. Achievement society, in contrast, gives rise to depressives and failures.” In addition to his argument, we may say that today's society is discrimination and danger society. We hear the news that many people are still living under the circumstances of distinction, poverty, and oppression. We remember millions of Syrian refugees and black people in Ferguson city in the United Sates. According to Matthew chapter 2, right after baby Jesus was born, Joseph and Mary took the child to Egypt, to escape King Herod's threat. Baby Jesus was born in danger society. Yet, with the help of parents and other good people, baby Jesus was able to grow safely. The Advent/Christmas story tells us how dangerous Jesus was from the beginning and how people responded to this situation with love and solidarity.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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