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세번째 주일 / 6월 첫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불과 바람의 소리
사도행전 2:1 – 4
정해빈 목사




6월 첫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세번째 주일입니다. 1917년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난 정대위 목사님은 토론토대학 임마누엘 신학교에서 공부하시고 미국 예일대학에서 종교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건국대학교 총장을 8년 역임하시고 토론토한인연합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1968년-1969년 2년 목회하시고 오타와 칼튼 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부임하셔서 14년간 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정대위 목사님이 쓰신 책 중에 [그리스도교와 동양인의 세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기독교와 동양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기독교가 동양에 전파되었을 때 아시아 사람들은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중국, 한국, 일본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는데 왜 한국에서만 기독교가 빠르게 전파되고 성장하였나? 하는 질문들을 다루었습니다.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라는 사람은 [문화의 유형, Cultural Patterns]이라는 책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있는 두가지 문화를 아폴로(apollonian) 문화와 디오니소스(dionysian) 문화로 설명했는데 아폴로 문화는 조용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문화를 가리키고 디오니소스 문화는 감정적이고 열광적인 사고를 하는 문화를 가리킵니다. 중국 사람들은 땅이 넓어서 그런지 느긋하고 조용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에 아폴로 문화와 비슷하고 한국 사람들은 감정적이고 열정적이기 때문에 디오니소스 문화와 비슷하다고 보았습니다. 어떤 서양 학자는 중국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하고 비슷하고 한국 사람들은 아일랜드 사람들하고 비슷해서 한국 사람들을 오리엔탈 아이리쉬(Oriental Irish)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영국 사람들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낮게 여기듯이 한국 사람들을 낮게 여기는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동양에 전파되었을 때 왜 한국에서만 빠르게 전파되고 성장하였을까? 정대위 목사님은 그 이유가 한국인들의 풍성한 종교성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수천년 동안 무교의 영향을 받았고 이어서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1000년간 불교의 영향을 받았고 조선시대 500년 동안에는 유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국 사람의 마음 맨 밑바닥에 무교가 있고 그 위에 불교가 있고 그 위에 유교가 있고 맨 위에 기독교가 있습니다. 마치 땅 위에 거름을 많이 주면 식물이 빨리 자라듯이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러 종교들이 수천 년 동안 쌓이고 쌓였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의 맨 밑바닥에는 무교가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아폴로 기질이 아니라 디오니소스 기질이 있어서 감정적이고 열정적이고 노래를 좋아합니다. 이렇게 여러 종교들이 오래 전에 한국 땅에 와서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기독교가 한국 땅에 전파되었을 때 한국 사람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종교성이 풍성하기 때문에 서양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종교성이 풍성해서 서양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도 사실이지만 거기에 더해서 한국 사람들이 고통받을 때 서양 기독교가 큰 힘이 되었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영적으로 힘들 때 무교를 찾아가서 위로를 받았고 불교와 유교에 의지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 기존 종교들은 무력했고 변화를 이끌 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 전파되는 기독교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한자로 기록된 불경과 사서삼경은 일반 사람들이 읽을 수 없었지만 한글로 번역된 성경은 일반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기독교는 신분차별에 반대하였고 여성들을 우대하였으며 학교와 병원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기독교의 가르침에 시대의 변화를 이끌 힘이 있었기 때문에 서양 기독교는 한국 땅에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첫째로 종교성이 풍성했기 때문에 서양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둘째로 고통받을 때 기독교가 큰 힘이 되었기 때문에 서양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한 가지 더 이유를 말씀드린다면 불같은 성령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서양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불같은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임하셔서 제자들을 감동시키시고 그들을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같은 성령께서는 한국 땅에 임하셔서 우리들을 위로하시고 치유하시고 감동시키시고 우리들에게 새 힘을 주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기도할 때 비둘기 같은 성령을 받아서 조용하고 부드럽고 평화스럽게 기도하는 것이 맞는 분이 있고 반대로 불같은 성령을 받아서 방언을 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것이 맞는 분이 있습니다. 3박 4일 침묵기도회를 가시면 말을 못하게 하고 침묵기도를 하게 합니다. 조용히 침묵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침묵기도가 잘 맞는 분은 침묵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하지만 침묵기도만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슴이 뜨거운 분들, 가슴에 아픔과 상처가 많은 분들은 기도원에 올라가서 소리지르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은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하였듯이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해야만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 분들은 불같은 성령을 받아서 가슴 속에 남아있는 죄와 아픔과 상처를 성령의 불로 불태워야 합니다. 그렇게 가슴이 뜨거워져야만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50년 전 200년 전 기독교가 한국 땅에 들어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불같은 성령을 받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 식민지 시대에 육체적/정신적/영적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불같은 성령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진실로 성령께서는 하늘의 불로 임하셔서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시고 우리들의 죄와 아픔과 상처와 원망과 분노를 불태워주시고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것이 불같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는 불처럼 임하시고 바람처럼 임하십니다. 불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임재를 상징합니다. 불은 어둠을 밝히고 더러운 것을 태우고 열을 내줍니다. 불이 하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를 시작할 때 촛불을 켭니다. 불을 켜놓으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거룩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불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 취미생활 중에 야외에 나가 캠핑을 하고 모닥불을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불을 피우는 것은 무언가 마음이 외롭고 허전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불을 피우면 무언가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고 불을 보기만 해도 Healing이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됩니다. 옛날 원주민들은 서로 모여서 가운데 불을 피워놓고 서로의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체의 앞날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불을 피워놓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게 됩니다. 불같은 성령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하늘의 불과 바람은 사람을 살리고 일으켜 줍니다. 불 중에는 좋은 불도 있지만 생명을 불태우는 나쁜 불이 있고 바람 중에는 좋은 바람도 있지만 생명을 파괴하는 잘못된 바람이 있습니다. 잘못된 바람을 만나면 저 사람 바람피운다, 춤바람이 났다고 말하는 것처럼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진실로 불같은 성령, 바람같은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일으켜주시고 새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때로는 침묵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고 불같은 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불같은 성령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있는 슬픔과 아픔과 분노와 원망을 치료하시고 불태워주실 때 우리는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불같은 성령을 받으면 우리 교회가 더 따뜻해지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과 바람을 통해서 새사람, 새교회로 변화받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entecost, the voices of fire and wind
Acts 2:1 – 4


When the day of Pentecost had come, they were all together in one place. And suddenly from heaven, there came a sound like the rush of a violent wind, and it filled the entire house where they were sitting. Divided tongues, as of fire, appeared among them, and a tongue rested on each of them. All of them we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to speak in other languages, as the Spirit gave them ability. (Acts 2:1-4)


Dr. Rev. David Chung has described in his book, [Christianity and the World of East Asians], why Western Christianity had grown rapidly in Korea. First, Koreans was naturally able to embrace western Christianity because they had a rich tradition of religious experience. They have been influenced by Shamanism for thousands of years, Buddhism for 1000 years in Silla and Korean Dynasty, and Confucianism during 500 years of Joseon Dynasty. Because of the experience of these religions rooted in Korea, Christianity has been rooted in Korea. Since many of these religions had been spread to Korea long ago, Christianity was also able to take root naturally in Korea.


Moreover, since the Holy Spirit like a fire touched the hearts of Koreans and transformed them into the people of God, our ancestors were able to accept Christianity positively. When Koreans had suffered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the Holy Spirit comforted them and gave them hope and courage. Just as the fiery Holy Spirit encouraged the disciples of Jesus and made them a church, the fiery Spirit not only healed Koreans but also gave them new strength and power. Truly the Holy Spirit cleanses and burns away all kinds of sins, pains, and wounds that remain in our hearts. Through the Holy Spirit, we can become a new person and a new church. May the grace of the Holy Spirit be with us and with our church. May the Holy Spirit transform us into new beings.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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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두번째 주일 / 5월 네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그들의 말을 세상이 들었다
사도행전 2:22 - 28
정해빈 목사




5월 네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두번째 주일입니다. 성령강림절 사건을 3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첫째 모든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둘째 그들이 말을 하였다, 셋째 그들의 말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들었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오순절에 모든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께서는 부활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여러번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을 가르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주님이 떠나시고 나서 제자들은 흩어지지 않았고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12제자도 있었고 12제자 아닌 제자들도 있었고 여자들도 있었고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도 있었습니다. 대략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고 성경은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고향과 인종과 성별과 나이와 배경을 떠나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출신 배경에 상관없이 한자리에 모여서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양한 사람들이 평등하게 한자리에 모인 사건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2000년 전에는 인종과 성별과 계층의 구별이 분명했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이 같은 자리에 앉지 않았고 남자와 여자가 같은 자리에 앉지 않았고 주인과 종이 같은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인종과 성별과 계층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함께 모였습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먼저 시작된 고대 그리스 아테네를 보면 그리스 출신 남자 시민권자들만이 광장에 모여서 중요한 문제를 결정했습니다. 미성년자, 여성, 노예, 외국인 등은 투표에 참여할 수도 없었고 대표로 선출될 수도 없었는데 30만 명 아테네 주민 가운데서 10%인 대략 3만명 정도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옛날에는 인종과 성별과 계층에 따라서 차별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는 그 모든 장벽을 뛰어넘었습니다.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교회로 올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했는데 옛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이라는 말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진실로 교회는 예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오고 부자도 오고 젊은 사람도 오고 나이든 사람도 오고 건강한 사람도 오고 아픈 사람도 올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누구나 올 수 있는 교회, 차별이 없는 교회,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초대 교회 교인들은 성령 받고 입을 열어 말을 했습니다. 제자들이 말을 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처형당하시고 나서 세상이 무서워 숨었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2장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나사렛 사람 예수는 하나님께서 기적과 놀라운 일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증명해 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시고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고 권력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죽였는지를 말했습니다. 때로는 세상이 무서워서 진실을 말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세상이 무서워서 말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둠의 세력은 진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그래서 희생자들은 이중의 고통을 당합니다. 권력자들에게 희생당할 때 한번 고통당하고 그 희생당한 일을 말할 수 없을 때 두 번 고통당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 중에는 아직 진실이 다 밝혀지지 않은 일도 많고 사실이 왜곡된 일도 많습니다. 최근에 5.18 민주화운동 38주년이 있었는데 5.18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그 당시 사진을 예로 들면서 북한군 특수부대가 침투해서 5.18을 일으켰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짜 뉴스입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방송에 나와서 이 사진에 나오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광주 시민으로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는데 내 얼굴을 가리켜서 북한군 특수부대라고 주장하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셔서 그들이 용기를 내서 진실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제자입니다. 우리들은 주님을 사랑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다가 권력자들에 의해 처형당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제자들이 용기를 내서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는 말해야 하는 사람을 말하게 하시고 억울하고 답답한 사람이 진실을 말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진실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언젠가는 드러나고야 말 것입니다. 성령께서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셋째로, 제자들이 진실을 말할 때 세상 사람들이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알아들었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오순절 날 하늘에서 불같은 성령이 내려와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해외에서 온 유대인들이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자기 지방 말로 알아듣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들이 방언으로 기도했는데 그 자리에 독일에서 온 사람은 독일말로 알아듣고, 프랑스에서 온 사람은 프랑스말로 알아듣고, 중국에서 온 사람은 중국말로 알아듣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000년 전 로마제국 사람들은 헬라어를 사용했는데 만약 제자들이 헬라어로 기도했다면 해외에서 온 사람들은 제자들의 기도를 다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영어로 기도했다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기도를 다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당시 로마제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헬라어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말, 방언으로 기도했고 그 기도를 해외에서 온 사람들은 자기 고향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자들의 기도를 모두가 알아들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한가지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기도가 각 나라의 말로 들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한가지 언어만을 사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한국말 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의 말이 이해되고 들리면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의 다양성을 존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의 말과 글이 통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방언을 말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제자들의 말을 알아들었습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나의 의사가 상대방에게 바르게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의 진심을 진실하고 정직하고 예의바르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취소되었다가 어제 토요일 남북한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면서 북미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한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양쪽이 서로 말을 거칠게 하고 상대방을 자극하면 일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자기 의사를 전달할 때는 상대방이 알아듣도록 말하고 상대방이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말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게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소개할 때, 자기 소개서를 쓸 때, 이력서를 쓸 때, 인도주의 이민을 신청할 때, 상대방이 알아듣게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진심과 나의 말과 글이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상대방을 감동시켜서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순절에 세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로 모든 제자들이 모였고 둘째로 그들이 진실을 말하였고 셋째로 세상 사람들이 제자들의 말을 알아들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제자들을 한 자리로 부르시고 그들이 진실을 말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하늘의 진리를 세상에 알아듣게 전하고 증거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entecost, the world heard their words

Acts 2:22 – 28


You that are Israelites, listen to what I have to say: Jesus of Nazareth, a man attested to you by God with deeds of power, wonders, and signs that God did through him among you, as you yourselves know this man, handed over to you according to the definite plan and foreknowledge of God, you crucified and killed by the hands of those outside the law. But God raised him up, having freed him from death, because it was impossible for him to be held in its power. For David says concerning him,“I saw the Lord always before me, for he is at my right hand so that I will not be shaken; therefore my heart was glad, and my tongue rejoiced; moreover, my flesh will live in hope. For you will not abandon my soul to Hades, or let your Holy One experience corruption. You have made known to me the ways of life; you will make me full of gladness with your presence.” (Acts 2:22-28)


Today’s scripture states that firstly all the disciples gathered together, secondly they spoke the truth, and thirdly the world understood their words. First, Jesus' disciples gathered in one place, beyond identity, race, and social class. it was the church in which everyone gathered in one place beyond discrimination and boundaries. Second, Jesus' disciples received the Holy Spirit and spoke the truth. They confessed that the one who was crucified was the Son of God. The Holy Spirit helps us tell the truth. Third, the people of the world heard and understood what the disciples said. The Holy Spirit helps us to communicate our words to the world. No matter how important our words are, it would be useless if our words are not passed on to the world. May we also gather together, speak the truth, and communicate to the world with the help of the Holy Spirit.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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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 5월 세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6 15

정해빈 목사


 

부활절이 지나고 성령강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장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나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요,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옵니까? 언제 새로운 세상이 옵니까? 언제 통일이 됩니까? 때와 시기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요 다만 너희는 성령을 받고 온 세상에 나의 증인이 되어라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목격자가 된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누군가의 목격자가 되려면 자신이 본 것을 다른 사람에게 상세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증인(witness) 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을 판결할 때 그 사건이 실제로 있었는지를 판결하려면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증인은 자신의 유불리를 떠나서 자신이 본 것을 세상에 그대로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화를 보면 나쁜 사람들이 한 것을 본 목격자/증인이 나오는데 목격자/증인이 자신들이 한 행동을 세상에 알리면 안되니까 나쁜 사람들이 목격자/증인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권력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지만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증언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로마 제국의 권력자들은 예수의 증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예수의 증인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여러분의 힘만으로는 나의 증인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내가 성령을 보냅니다. 성령을 받으면 여러분은 능력을 받을 것이고 능력을 받으면 여러분은 담대하게 세상에 나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는 말은 하나님께로 가셨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에녹과 엘리야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 땅에서의 모든 사명을 다 마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잊어먹지 않도록 40일 동안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시고 떠나셨습니다. 스승은 때가 되면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때가 되면 스승은 떠나고 제자들만 남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스승이 있을 때는 스승이 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모든 일은 스승이 결정하고 제자들은 그 결정을 따라갑니다. 스승은 말씀하시고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습니다. 그것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제 때가 되어서 스승되신 주님께서 떠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일을 제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스승의 시대였는데 이제부터는 제자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스승이 없으니 막막하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스승이 제자들을 이끌어 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스승이 흘륭해도 제자들이 자립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스승의 가르침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제자들이 스스로 자립하고 성장해야만 스승의 가르침이 계속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보더라도 정대위 목사님, 김재준 목사님, 이상철 목사님, 함석헌 선생님, Marion Current(구애련) 선생님 같은 분들이 교회를 이끌어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과거에는 그렇게 큰 스승들이 계셔서 든든했는데 이제는 그런 큰 어른들이 안계시니 때로는 불안하고 허전하기도 합니다. 이제부터는 우리들 스스로가 스승들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주님이 떠나시고 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와 빌립과 도마와 바돌로매와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열심당원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과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한 마음으로 기도했는데 오늘 말씀은 그들의 숫자가 대략 120명쯤 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사마리아에서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어부도 있었을 것이고 세리도 있었을 것이고 부자나 장사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12 제자뿐만 아니라 12 제자는 아니지만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사역을 후원했던 여성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경험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나이도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치료를 받았고 위로를 받았고 새로운 세상을 맛보았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납니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받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부활 체험이 나의 개인적인 체험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부활을 체험한 자들이 함께 모일 때 우리의 믿음은 계속 이어지고 확장됩니다. 때로는 세상이 우리를 박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실패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무서워서 방 안에 가만히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방 밖으로 나와서 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야 합니다. 제자들은 스승이 떠나시고 나서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였습니다. 함께 모여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를 공부하였고 기도하였고 마침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시는 교회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옛날 고사성어에 장삼이사(張三李四)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가 장씨와 이씨인데, 장씨집 셋째아들과 이씨집 넷째아들을 가리킵니다. 김아무개, 이아무개 라는 말처럼 평범한 사람들을 가리킬 때 장삼이사라는 말을 씁니다. 초대교회는 장삼이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되었습니다. 시대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시대를 뚫고 나갈 큰 스승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큰 스승이 언제까지나 시대를 이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두 명의 스승이나 영웅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서 시대를 이끌고 교회를 이끄는 삶이 성령의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고 나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주님의 증인될 수 있도록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 큰 스승들은 떠나셨지만 큰 스승들이 물려주신 가르침을 계승 발전시키는 교회, 장삼이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들과 우리 교회를 진리로 이끌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Pentecost, you will be my witnesses

Acts 1:6 - 15


So when they had come together, they asked him, ‘Lord, is this the time when you will restore the kingdom to Israel?’ He replied, ‘It is not for you to know the times or periods that the Father has set by his own authority.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has come up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When he had said this, as they were watching, he was lifted up, and a cloud took him out of their sight. While he was going and they were gazing up towards heaven, suddenly two men in white robes stood by them. They said, ‘Men of Galilee, why do you stand looking up towards heaven? This Jesus, who has been taken up from you into heaven, will come in the same way as you saw him go into heaven.’ Then they returned to Jerusalem from the mount called Olivet, which is near Jerusalem, a sabbath day’s journey away. When they had entered the city, they went to the room upstairs where they were staying, Peter, and John, and James, and Andrew, Philip and Thomas, Bartholomew and Matthew, James son of Alphaeus, and Simon the Zealot, and Judas son of James. All these were constantly devoting themselves to prayer, together with certain women, including Mary the mother of Jesus, as well as his brothers. In those days Peter stood up among the believers together the crowd numbered about one hundred and twenty people. (Acts 1:6-15)


As the risen Christ ascended into heaven, Jesus told his disciples to receive the Holy Spirit and become hi witnesses. A witness indicates a person who witnesses, advocates and explains the life of the righteous. Being a witness can sometimes be dangerous. The Roman Empire, which executed Jesus, persecuted the witnesses of Jesus. So the Lord told his disciples that the Holy Spirit would help them. After the Lord had left the earth, the disciples had to continue their spiritual journey of life by themselves. Whenever a teacher leaves, disciples would become nervous and scary. But a teacher will not be with us forever. We must stand up again with our own strength. The Holy Spirit will help us to be self-reliant and to be witnesses of Jesus, the risen Christ.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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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다섯번째 주일 / 4월 다섯번째 주일
창립기념주일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며
로마서 12:9 - 17
정해빈 목사

 

창립51주년 및 교회이전감사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토론토 최초의 교회로 시작된 우리 교회는 지난 50년 동안 다운타운에서 한인사회와 지역사회를 섬겼습니다맨 처음 한인들이 정착한 곳이 다운타운 블루어/크리스티 였기 때문에 우리 교회도 한인들과 가까운 곳에 터를 잡았습니다그곳에서 한인들을 섬겼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일했고 캐나다 사회를 위해서 공헌했습니다이제 지난 50년을 뒤로하고 한인들이 많이 사는 이곳 노스욕 영/쉐퍼드에서 새로운 선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우리들이 이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라는 뜻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이곳이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영적인 쉼터와 안식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50년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50년을 바라봅니다저는 우리 교회가 첫째로 신앙의 뿌리가 깊은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신앙의 뿌리가 깊은 교회는 뿌리가 깊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도하고 서로를 의지하고 존중합니다서로를 의지하고 존중하면서 서로의 지혜를 모아서 어려움을 극복합니다차분하게 지혜를 모으고 절차를 지켜서 일을 진행합니다우리 교회가 신앙의 뿌리가 깊고 성숙한 교회모든 절차와 행정과 재정이 투명한 교회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교회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교회자체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우리 교회가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개방적인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랜싱연합교회필리핀연합교회와 함께 신앙생활하도록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우리는 한인교회이기 때문에 한인교회의 문화와 전통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깁니다그러나 동시에 우리들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함께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함께 일하는 교회개방적이고 따뜻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옛날 로마 시대에는 신분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주인과 종이 같은 자리에 앉지 않았고 여자와 남자가 같은 자리에 앉지 않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같은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옛날 사회는 신분과 성과 인종에 따라서 사람을 구분하고 나누는 폐쇄적인 사회였습니다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말씀에서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신분과 성과 인종을 넘어서 비천한 사람들과 사귀어야 한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우리 교회가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는 교회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 교회가 사회적인 약자들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되기를 소망합니다그리스도께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죄인이라 칭함받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우리 교회도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신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을 일으키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연세 많으신 성도님들과 몸이 불편하신 성도님들은 육체적인 약자들이고신분이 해결되지 못해서 나그네와 난민으로 사시는 분들은 신분상의 약자들이고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은 경제적인 약자들입니다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라고 말했습니다우리 교회가 육체적/정신적/신분적/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며 그들과 함께 신앙생활하는 교회되기를 소망합니다우리 교회가 뿌리깊은 나무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이 지역에 전하는 교회되기를 소망합니다저희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아멘. 

Anniversary, joyful and mourning together
Romes 12:9 - 17

For the last 50 years, we were in downtown Toronto, Bloor and Spadina, serving Korean immigrants, visitors, young students, and recently North Korean refugees. When first Korean immigrants came to Toronto, they made the first Korea Town in downtown which was close to our church location. With this Korea Town, we served Korean-Canadian communities for the last 50 years. But since then, a lot of time has passed. We see these days that most Korean-Canadian people are living in North York. To follow this new trend, we moved into Lansing United Church last fall. We are really privileged and blessed to share this new building. We believe that God led us here to serve more people and more communities in this area. On behalf of my congregation, I would like to express sincere thanks to Lansing United Church for welcoming us to share this new building. We pray that this place will be the place of worshiping God, serving neighbours, and building an intercultural ministry.

We know, In ancient society, people from different backgrounds, did not talk or sit or eat together. But Paul said that In Christ, there is no longer Jew or Greek, slave or free, male and female, and all are one in Christ Jesus. He said that the church in Christ should rejoice with those who rejoice, weep with those who weep and associate with the lowly. As Paul encouraged us in his letter, I pray that our church be the church of walking and living together with those rejoice and weep. I pray that our church will be a church that is not shaken by trials, but a deeply rooted church of faith. May God bless our new journey of life with Lansing Unite Church.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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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세번째 주일 / 4월 세번째 주일

부활절, 원주민들의 진실과 화해

신명기 23:3-8, 24:19-22

정해빈 목사





오늘은 “원주민들의 진실과 화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다음 주일에 토론토 북쪽 5개 연합교회들이 모여서 이 주제를 가지고 오전연합예배를 드립니다. “Listening, Learning and Living into Reconciliation, A weekend of indigenous history, culture, food and art, 듣고 배우고 화해를 실천하기, 원주민 역사, 문화, 음식, 예술과 함께 하는 주말 행사” 이런 제목으로 금토일 3일 동안 영화/공연/전시/식사/세미나 등의 행사가 열립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다음 주일에 왜 이런 행사를 하는지, 원주민들의 진실과 화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우리 한인들은 캐나다에서 산지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오랜 기간 동안 캐나다 백인들로부터 당한 아픔을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원주민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원주민들을 만날 기회도 많지 않아서 이 문제가 우리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들도 캐나다 국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캐나다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원주민 문제를 우리들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소수유색인종으로 이 땅을 살고 있기 때문에 동병상련으로 원주민들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또 북미 원주민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이 저 옛날 시베리아 몽골 지방에서 유래되었다는 학설이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들과 우리들이 뿌리가 같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아시아 사람들이 백인들과 원주민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줄 수도 있습니다. 


캐나다는 전 세계에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을 싫어하는 나라는 많아도 캐나다를 싫어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캐나다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도 않았고 제국주의 행세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캐나다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캐나다 정부가 잘못한 것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원주민 문제입니다. 원주민 기숙학교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1870년부터 1990년까지 120년 동안 약 15만 명의 원주민 자녀들이 부모 곁을 떠나 강제로 기숙학교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원주민들이 미개하니까 그들의 자녀들을 캐나다 시민으로 양성한다는 취지 아래 캐나다 정부는 어린 자녀들을 부모에게서 빼앗아 기독교가 운영하는 기숙학교로 보냈습니다. 그 기숙학교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정신적/육체적/성적 학대를 받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살을 하거나 약물 중독에 빠졌고 정상적인 어른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가 그런 결정을 내릴 때 종교가 나서서 그것이 인권 침해, 아동 학대이고 원주민 가정과 사회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반대를 해야 정상인데 오히려 종교 단체가 기숙학교의 운영을 맡았습니다. 기숙학교의 60%을 카톨릭 교회가 운영했고 30%을 캐나다연합교회가 운영했습니다. 캐나다 정부, 캐나다 백인사회, 캐나다 기독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캐나다 정부는 진실과 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를 만들어서 지난 과거에 있었던 원주민 기숙학교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그동안 기숙학교에서 살아남은 7000명의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최종 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원주민 문제는 옛날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6년 8월 사스카추완 시골 마을 농장 주인이 22살 콜튼 부시라는 원주민 청년을 강도로 착각해서 총으로 쏴 죽였는데 1년 6개월이 지난 2018년 2월에 무죄를 선고받아서 크게 뉴스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콜튼 부시와 친구들이 강에서 수영을 마치고 차를 몰고 집으로 가던 중에 타이어 펑크가 나서 근처 농장에 들어갔는데 농장 주인이 강도로 오인해서 총을 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2명의 백인 배심원들이 농장 주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 때문에 캐나다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벤쿠버 다운타운에서 동쪽으로 가면 저소득층이 사는 동네가 있는데 1983년부터 2000년까지 60명 이상의 여성들, 주로 원주민 여성들이 실종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05년 돼지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30년 동안 전국에 걸쳐서 4000명의 원주민 여성들이 실종되었다고 캐나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거리를 떠도는 원주민 여성들이 가장 쉽게 노출되고 피해를 당합니다. 원주민들이 정부 지원을 받으니까 그들이 삶에 의욕이 없고 쉽게 마약과 도박에 빠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 이전에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잘못과 교회의 잘못과 백인 사회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주 금토일에 열리는 행사가 그동안의 잘못을 회개하고 진실과 화해를 앞당기는 행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금토일 행사 중에 토요일 오후 1시에 시작하는 Blanket Exercise(담요 체험) 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원주민들의 역사를 눈과 몸으로 체험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강당에 원주민들의 땅을 상징하는 담요를 붙여놓고 그 위에서 내가 원주민이라고 가정하고 그 땅을 천천히 돌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정착민들이 담요 안으로 들어와서 같이 돌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사회자가 정착민들이 와서 땅을 빼앗았으니 담요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은 담요에서 물러나라고 말합니다. 참가자들에게 카드를 나누어주고는 정착민들이 계약을 체결해서 땅을 차지했으니 특정 카드를 가진 사람들은 담요에서 물어나라고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지난 5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상징적인 행동으로 재현합니다. 1시간쯤 지나면 넓은 담요 위에 몇몇 사람들이 한쪽 귀퉁이에 서 있게 됩니다. 오늘날의 원주민 보호구역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내가 원주민이라고 가정하고 담요 체험을 하다보면 캐나다의 원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이 지난 500년 동안 어떻게 땅을 빼앗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요즘 영어예배를 참석해 보면 이 땅이 원주민들의 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표현을 먼저 하고나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23장 말씀을 보면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옛날에 그들이 히브리 백성들을 박해했기 때문에 그들을 멀리하고, 에돔 사람은 친척이니까 미워하지 말고 이집트 사람은 옛날에 그들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으니까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은 가까이 하고 어떤 사람들은 멀리하라고 쓰여 있습니다. 또 신명기 24장은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추수할 때는 땅에 떨어진 것을 줍지 말라고 기록했습니다. 옛날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때를 기억해서 가나안에 사는 가난한 원주민들을 돌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신명기 말씀을 보면 어떤 말씀에는 가나안 원주민들은 상종도 하지 말고 멀리하라는 말씀이 나오고, 어떤 말씀에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따뜻하게 돌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는 어느 말씀이 참 하나님의 말씀인지 잘 가려서 읽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가나안에 도착한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 원주민들과 가축들, 살아있는 모든 것을 다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너무 배타적이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말씀들이 가끔 나옵니다. 성경이 수천 년 전에 쓰여졌기 때문에 배타주의/우월주의/민족주의 관점에서 원주민들을 적대시하는 말씀들이 종종 나옵니다. 유럽 정착민들이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이런 말씀을 읽고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는 이런 말씀들을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과거 기독교가 이런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기독교는 정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는 신앙이 참된 기독교 신앙입니다. 4년 전에 있었던 세월호에서 희생된 고등학생들, 최근에 있었던 사스카추원 아이스하키 선수단 교통 사고로 희생된 15명의 학생들, 시리아 난민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신앙이 참된 기독교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이 땅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왔던 원주민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땅의 진실과 화해와 평화와 정의를 위해서 노력하는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Indigenous people, truth and reconciliation

Deuteronomy 23:3-8, 24:19-22


No Ammonite or Moabite shall be admitted to the assembly of the Lord. Even to the tenth generation, none of their descendants shall be admitted to the assembly of the Lord, because they did not meet you with food and water on your journey out of Egypt, and because they hired against you Balaam son of Beor, from Pethor of Mesopotamia, to curse you. Yet the Lord your God refused to heed Balaam; the Lord your God turned the curse into a blessing for you, because the Lord your God loved you. You shall never promote their welfare or their prosperity as long as you live. You shall not abhor any of the Edomites, for they are your kin. You shall not abhor any of the Egyptians, because you were an alien residing in their land. The children of the third generation that are born to them may be admitted to the assembly of the Lord. (Deuteronomy 23:3-8)


When you reap your harvest in your field and forget a sheaf in the field, you shall not go back to get it; it shall be left for the alien, the orphan, and the widow, so that the Lord your God may bless you in all your undertakings. When you beat your olive trees, do not strip what is left; it shall be for the alien, the orphan, and the widow. When you gather the grapes of your vineyard, do not glean what is left; it shall be for the alien, the orphan, and the widow. Remember that you were a slave in the land of Egypt; therefore I am commanding you to do this. (Deuteronomy 24:19-22)


From Friday to Saturday next week, five United Churches in North York will gather together with the theme "Listening, Learning and Living into Reconciliation, A weekend of indigenous history, culture, food and art.” As Korean Canadians, we do not know much about the pain that the aboriginal people have been suffering from for a long time in Canada. Yet as long as we live in Canada, we can not turn away from this matter. The Old Testament shows that the Hebrews not only killed aboriginal people but also cared for them depending on the situation. However, if we believe in God of love, God would want us to live together with them in love and respect. We are called to seek justice and peace, and strive for the truth and reconciliation of Indigenous Peopl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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