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열세번째 주일 / 8월 두번째 주일
출애굽기7, 부서진 십계명
출애굽기 32:15-19, 34:1-2
정해빈 목사



8월 두번째 주일입니다. 신약성경의 주인공이 예수님이라면 구약성경의 주인공은 모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있었기 때문에 히브리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수 있었고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하나님 나라,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인생을 보면 그의 인생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히브리 사람 집에서 태어났다가 바로 왕의 양자가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광야에서 양을 치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이집트에서 가나안 까지 히브리 백성들을 40년간 인도했습니다. 힘든 일도 많았을 것이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죽을 때까지 건강했습니다. 신명기 34장 7절,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백 스무살 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 모세가 120년을 살다 죽었는데 마지막 죽을 때까지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제일 나이 많으신 사마리아 성도님들도 모세처럼 120년까지 사시고 눈은 빛을 잃지 않고 기력은 정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들도 모세처럼 밝고 건강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세는 힘든 광야생활을 하고 말 안 듣는 히브리 백성들을 이끌고 가면서도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었을까? 어떻게 모세는 그렇게 힘든 인생을 살면서도 지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모세는 그렇게 힘든 인생을 살면서도 인내할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보통 인생에 고난이 많고 스트레스가 많으면 사람은 건강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힘든 인생을 살면서도, 스트레스 받을 일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마지막까지 사명을 잘 감당하고 건강할 수 있었을까요? 모세라는 사람의 성격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모세는 이런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요?


모세가 끝까지 건강하고 성실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첫번째 이유는 그의 겸손함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자신이 나이도 많고 용기도 부족하고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그의 형 아론이 모세를 대신해서 말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도 없고 자신이 슈퍼맨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내가 못다 이룬 일은 내 뒤를 이어서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종으로 부르셨기 때문에, 모세는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이런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지치지 않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왔는데 모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성들의 송사/재판을 다루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장인 이드로가 그렇게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하면 쉽게 지치고 말 것이니까 십부장/오십부장/백부장/천부장을 세워서 그들이 백성들을 재판하게 하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모세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았습니다. 모든 권한을 혼자 다 갖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혼자서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장인의 말을 듣고 자신의 권한을 내려놓았습니다. 모세는 겸손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를 잘 살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끝까지 지치지 않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로 모세는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양자가 되어서 궁궐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고 고통받는 히브리 백성들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서양사회에서 백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자동적으로 갖게 되는 기득권을 white privilege 라고 부릅니다. 서양사회가 백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세운 사회이기 때문에 백인으로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갖게 되는 우선권/기득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백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인이 아닌 우리들은 백인들에게 우선권/기득권이 있다는 것을 쉽게 경험합니다. 그런데 만일 백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white privilege를 깨닫고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서 일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 여성들의 성차별에 분노하고 여성들과 함께 성차별 철폐를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 남자는 참으로 훌륭한 남자일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되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쉽게 지치지만 자비와 연민과 연대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모세는 히브리 백성들이 불평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도 항상 자비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이 백성들이 아직 깨닫지 못해서 죄를 지었으니 백성들에게 벌을 내리지 마시고 대신 자기에게 벌을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긍휼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끝까지 히브리 백성들과 함께 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모세는 실패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배우는 사람이었기에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젊은 시절에도 실패를 경험했고 출애굽 중에도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젊은 시절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가 광야로 피신한 적도 있었고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들고 내려오다가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십계명을 땅 바닥에 던진 적도 있었습니다.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꿈에 부풀었을 것입니다. 이 계명을 가지고 내려와서 백성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이러한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은 아직 자유인으로 살 준비가 되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40일 동안 안내려오니까 마음이 불안해서 옛날 이집트에서 늘 하던 대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화가 났던지 금송아지에 제사드린 사람들에게 금송아지 동상을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타서 마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장면은 그 다음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시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십계명 돌판 2개를 다시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번 돌판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셨는데 두번째 돌판은 네가 직접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 돌판을 깎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백성들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내가 너무 성급했구나? 어떻게 하면 백성들과 함께 천천히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모세는 두번째 돌판을 깎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목표를 다시 세웠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영어 표현 중에 “tyranny of dream, 꿈의 횡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꿈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책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루어지 못한 꿈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꿈이 횡포를 부리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세상을 살면서 한두 번 쯤은 꿈이 실패하는 경험을 합니다. 나의 꿈이 깨질 때가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 실패를 영양분으로 삼아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두번째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첫번째 사업에 실패한 사람은 두번째 사업을 더 열심히 할 것이고, 첫번째 결혼에 실패한 사람은 두번째 결혼을 잘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첫번째 시험에 실패한 사람은 두번째 시험을 더 열심히 준비할 것입니다. 첫번째 돌판이 깨졌을 때 두번째 돌판을 만드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모세처럼 실패의 순간에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odus7, broken Ten Commandments
Exodus 32:15-19, 34:1-2


Then Moses turned and went down from the mountain, carrying the two tablets of the covenant in his hands, tablets that were written on both sides, written on the front and on the back. The tablets were the work of God and the writing was the writing of God, engraved upon the tablets. When Joshua heard the noise of the people as they shouted, he said to Moses, ‘There is a noise of war in the camp.’ But he said, ‘It is not the sound made by victors or the sound made by losers. It is the sound of revellers that I hear.’ As soon as he came near the camp and saw the calf and the dancing, Moses’ anger burned hot, and he threw the tablets from his hands and broke them at the foot of the mountain. (Exodus 32:15-19)


The Lord said to Moses, ‘Cut two tablets of stone like the former ones, and I will write on the tablets the words that were on the former tablets, which you broke. Be ready in the morning, and come up in the morning to Mount Sinai and present yourself there to me, on the top of the mountain. (Exodus 34:1-2)


Moses was able to live in the palace as a son of Pharaoh, but he chose to live with the suffering Hebrew people. It would not be easy for a person to abandon his or her vested interests and live with those who suffer. For example, in western society, "white people" have long lived with the culture of “white privilege.” While many people do not realize this reality, we, Asian people, easily notice that privilege. If a person, however, born in western culture acknowledges white privilege and works for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 that person would be a good person. If a man chooses to work together with many women to abolish sexism, he would be a good man. Those who live with compassion will be blessed to live the life of joy and gratitude. Moses was such a person. He did not lose his mercy toward the Hebrew people. Because of this kind of compassion, Moses was able to endure his mission to the end without getting tired. Moses was also a man of willing to learn from failure, so he could endure his mission to the end. When Moses came down from Mount Sinai with the Ten Commandments, he saw the people making the golden calf. That made him so angry that he threw the Ten Commandments on the ground. Moses' dream of building a new nation through the commandments had been shattered. However, God called Moses back to Mount Sinai and told him to rebuild the tablets of the Ten Commandments. Like Moses, We also experience that our dream is easily broken. However, a wise person will have a second, more realistic and concrete dream, using the failure as a stepping stone. When the first stone is broken, wise is the person who makes the second stone. Like Moses, we are called not to be tired of the moment of failure but endure the mission to the end.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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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열두번째 주일 / 8월 첫번째 주일

출애굽기6, 예배와 평등

출애굽기 20:811, 23:10-13

정해빈 목사 



8월의 첫번째 주일입니다. 제가 7-8월 출애굽기 설교를 하고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간 안식월을 갖으려고 합니다. 오늘은 출애굽기 여섯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백성들에게 10가지 계명을 주셨는데, 첫번째 계명으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자유와 해방의 하나님 외에,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권력을 멀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 계명으로 우상을 만들지 말라눈에 보이는 큰 우상/동상을 만드는 종교는 가짜다, 그런 종교 멀리하라고 말씀하셨고, 세번째 계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아라자기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말하는 그런 종교 멀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첫번째부터 세번째까지 말씀하신 후에 네번째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말씀하셨습니다. 이 네번째 계명이 계명 중의 계명이요, 가장 중요한 계명이요, 십계명의 핵심 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서 일하고 이렛날은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아들과 딸, 남종과 여종, 집짐승, 너희 집에 머무는 나그네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든 다음에 이렛날 쉬었고 그날을 복 주고 거룩하게 하였으니 너희도 그날을 기억하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 계명이 중요하기 때문에 창세기에도 안식일에 대해서 기록을 해놓았고 출애굽기에도 안식일에 대해서 기록을 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나오는 안식일 계명을 통해서 안식일의 두가지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첫번째 목적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예배하는 것이고, 안식일의 두번째 목적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렛날 쉬신 것처럼 모든 생명에게 쉴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첫째, 일주일에 하루는 우리를 위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모두 함께 기뻐하여라, 둘째,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렛날 쉬신 것처럼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으니 모든 생명이 일주일에 하루 쉴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여라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좀 더 큰 눈으로 바라보면 안식일이 창조의 완성과 회복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세상을 창조하시고 여섯째 날 사람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쉬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첫째 날 둘째 날은 하루 24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창조가 끝나는 영적인 시간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일곱째 날 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따지면 지금 2018년은 창조의 여섯째 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 창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쉬지 못하시고 창조의 완성을 위해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의 세상 창조가 완성되는 그날, 모든 피조물이 안식과 평화를 누리는 창조의 완성, 우주의 안식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2000년 동안 핍박을 많이 받으면서도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세상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안식일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안식일을 지키는 훈련을 하게 되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적인 지혜와 세상의 이치를 배우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안식일을 지킴으로서 어려서부터 시간관념을 배우게 됩니다. 일할 때와 공부할 때와 예배드릴 때를 구분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관념을 배우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법을 배우게 되고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법을 배우게 되면 세상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정신을 두가지 단어로 요약하면 예배와 평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전반부에는 히브리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 후반부에는 예배와 평등에 대한 규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전반부는 역사 이야기이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데 후반부는 예배와 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배를 이렇게 드려라, 천막으로 성막 예배당을 이렇게 만들어라, 제사장은 이런 옷을 입어라, 제사는 이렇게 드려라, 이렇게 예배와 관련된 말씀들이 길게 기록되어 있고 마찬가지로 평등에 관한 이야기가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왜 출애굽기는 예배와 평등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하게 기록을 했을까요? 하나님의 관심사가 안식일,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배와 평등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백성들에게 이제부터 자유인으로 세상을 살 때, 두가지를 잊지 말아라, 예배와 평등의 정신을 잊지 말아라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의 첫번째 목적은 예배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우리가 광야로 3일을 걸어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출애굽기의 첫번째 목적이 예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예배와 축제가 필요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배와 축제 없는 인생은 기쁨도 없고 보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일하면서 돈버는 재미가 있습니다. 재미 중의 재미는 돈버는 재미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일만 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비즈니스와 돈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우리 인생은 새로워지고 풍요로워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해서 모세를 맨 처음 부르셨을 때 네가 선 땅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종의 거룩체험/신비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비체험/거룩체험이 없는 인생은 삭막하고 메마릅니다. 예배를 드리고 거룩을 체험하고 축제를 즐길 때 우리 인생은 풍요로워집니다. 옛날에는 예배와 축제가 하나였습니다. 오늘날 도시마다 축제가 있는데 옛날에는 먼저 신에게 예배를 드린 후에 축제를 즐겼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일주일에 최대 52시간 일하는 법이 통과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하루에 8시간 * 5일이면 40시간이고 초과근무 12시간 포함해서 최대 52시간까지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 사람들은 일주일에 70시간, 80시간씩 일했습니다. OECD 선진국 중에서 두 번째로 근무시간이 긴 나라가 한국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하니 아이들은 아빠 얼굴을 제도로 보지도 못하고 직장인들 중에는 과로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주일에 70시간, 80시간 일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그렇게 일한다고 해서 일의 능률이 오르지도 않습니다. 일 욕심, 돈 욕심을 부리면 인생도 삭막해지고 건강도 해치게 됩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예배를 드리고 휴식을 취하고 축제를 즐길 때 우리의 인생은 아름답고 풍요로워집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첫번째 목적입니다.

 

안식일의 두번째 목적은 평등입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는 모든 생명에게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7년째가 되는 안식년에는 땅도 쉬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6년간 종살이를 한 사람이 있으면 안식년에는 그 사람을 본래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안식년에 땅에서 저절로 자라는 곡식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식년이 7번 지나고 50년째가 되는 해를 희년이라고 부르는데 희년이 되면 땅의 원래 주인에게 땅을 돌려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빈부격차가 일어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50년 마다 한번 씩 본래 땅 주인에게 땅을 돌려줌으로서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가 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배와 축제를 즐길 때, 종을 풀어주고 땅을 돌려줄 때, 우리의 인생은 풍요로워지고 우리 사회는 정의로워질 것입니다. 안식일의 정신을 우리 삶 가운데서 실천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odus6, worship and equality

Exodus 20:811, 23:10-13

 

Remember the sabbath day, and keep it holy. For six days you shall labour and do all your work. But the seventh day is a sabbath to the Lord your God; you shall not do any workyou, your son or your daughter, your male or female slave, your livestock, or the alien resident in your towns. For in six days the Lord made heaven and earth, the sea, and all that is in them, but rested the seventh day; therefore the Lord blessed the sabbath day and consecrated it. (Exodus 20:8-11)

 

For six years you shall sow your land and gather in its yield; but the seventh year you shall let it rest and lie fallow, so that the poor of your people may eat; and what they leave the wild animals may eat. You shall do the same with your vineyard, and with your olive orchard. For six days you shall do your work, but on the seventh day you shall rest, so that your ox and your donkey may have relief, and your home-born slave and the resident alien may be refreshed. Be attentive to all that I have said to you. Do not invoke the names of other gods; do not let them be heard on your lips. (Exodus 23:10-13)

 

God gave the Ten Commandments to the Hebrew people, and in the fourth commandment, God said to keep the Sabbath day holy. The scripture seems to emphasize that the fourth one is the most important commandment of the Ten Commandments. The first purpose of the Sabbath is to worship God with joy. When Moses and Aaron met King Pharaoh for the first time, they told him that they want to walk for three days in the wilderness to worship God. Since human beings are spiritually created by God, we can not live without God. We need, at least one day a week, to keep away from business and money, and worship God. When we worship God with joyful hearts, our lives will be renewed and abundant. When God called Moses for the first time, God told him to take off his shoes because the land was holy. Truly, life without holiness will be dry and barren. When we worship God and enjoy festivals, our lives will become rich. This is the first purpose of the Sabbath. Equality is the second goal of the Sabbath. The rule of Sabbath allows all the living creatures to have a right to rest at least one day a week. Furthermore, in the seventh year, which is called the Sabbath year, the earth should rest and if people have worked as slaves for six years, they should return to their home. If the grain that spontaneously grows from the earth should be taken for the poor to eat. In addition, when it was the 50th year, the Jubilee, all the land should be returned to the original owner. By returning the land to the original landlord once every 50 years, God wanted the Hebrew society to be a fair and equal society. When we worship God, enjoy festivals, and strive for the equality of the land, our lives will be enriched and our society will be justified.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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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열한번째 주일 / 7월 다섯번째 주일
출애굽기5, 약속을 지키십시오

출애굽기 13:1922, 24:4-8

정해빈 목사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백성들을 억압에서 해방시키시고 그들에게 자유와 계명을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자유와 계명을 동시에 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에 계명을 주신 것은 그들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자유를 도와주고 지켜주기 위해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지, 그 자유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히브리 백성들에게 3가지 자유를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잘못된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이고 둘째는 잘못된 종교로부터의 자유이고 셋째는 잘못된 물질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첫번째 자유는 잘못된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첫번째 계명은 자유와 해방의 하나님 외에,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절대권력, /황제를 믿지 말라는 말입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기독교는 정치권력을 멀리해야 하고 그 정치권력이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합니다. 종교가 권력을 가까이 하면 부패하기가 쉽습니다. 중세시대에 기독교가 부패한 것은 부패한 권력과 부패한 기독교가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예언자들의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이들 예언자들은 왕이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하고 불의를 저지를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왕을 꾸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첫번째 자유는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두번째 자유는 잘못된 종교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두번째 계명으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큰 우상/동상을 만드는 종교는 다 가짜니까 그런 종교 믿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피라밋/스핑크스 같은 큰 우상/동상을 만드는 강제노동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이 계명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종교가 참 종교입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이 두번째 계명을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안보이니까 무언가 허전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동상을 만들고 싶은 유혹에 넘어갈 때가 많았습니다.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종교, 자기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이용하는 종교를 멀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내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 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종교, 하나님이 내 편이라고 말하는 그런 종교를 멀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세번째 자유는 물질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십계명을 보면 도둑질하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는 계명이 있는데 이런 계명은 물질의 욕심으로부터 자유하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잘못된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잘못된 종교로부터의 자유보다, 더 어려운 자유가 물질의 욕심으로부터의 자유인지도 모릅니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나만 잘 살려고 하지 말고 이웃을 배려하고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이와 똑같은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나에게 절하면 이 땅의 권력을 주겠다는 말은 권력에 대한 유혹을 가리키고, 높은 데서 떨어져서 죽나 죽지 않나 하나님을 시험해보라는 말은 종교에 대한 유혹을 가리키고, 배가 고프니까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말은 물질에 대한 유혹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이 3가지 유혹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것처럼, 히브리 백성들도 권력과 종교와 물질의 유혹에서 자유하라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십계명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출애굽기 24장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다 기록한 후에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12지파를 상징하는 12 기둥을 세웠습니다. 수송아지를 잡아서 번제를 드린 후에 그 피를 받아서 절반은 제단에 뿌리고 절반은 백성들에게 뿌렸습니다. 모세가 언약의 책을 들고 백성들에게 낭독하니까 백성들이 주님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지키겠다고 서약을 했습니다. 이 언약이 시내산에서 이루어졌다고 해서 시내산 언약이라고 부르는데 하나님과 히브리 백성들 사이에 최초의 언약이 맺어졌습니다. 그 이전에는 개인적으로 아담과 언약을 맺으시고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는데 이곳에서 백성들 전체를 대상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언약은 쉽게 말하면 계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양쪽 당사자가 서로 약속을 지킬 것을 서약하면 그것이 계약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백성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을 예배하고 인류를 섬기는 제사장 민족으로 만들어 주시고 그들을 항상 지켜주고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키겠다고 약속하신 것이고 대신 히브리 백성들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모든 계명을 다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두 당사자가 서약을 하고 그 위에 피를 뿌렸습니다. 피를 뿌렸다는 것은 오늘날의 문화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데 피는 생명을 상징하니까 언약을 소중히 여기고 목숨을 걸고 언약을 지키겠다는 결단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예였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파트너가 되었으니까 히브리 백성들 입장에서는 복 받았고 수지맞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언약을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유인으로서 잘못된 권력과 종교와 물질로부터 자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으로부터 자유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사람들 사이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언약/계약/약속의 종교이기 때문에 약속을 소중히 여깁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라면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자체가 언약/계약/약속의 종교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부부간에도 약속을 지키라는 뜻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결혼식을 할 때 영어 표현 중에 “forsake all others”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한글로 번역하면 다른 이성에 대한 관심을 끊겠다는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결혼반지를 끼고 “forsake all others”라고 서약을 함으로서 결혼이 이루어집니다. 서로가 약속을 지키기 때문에 결혼이 유지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책을 읽다가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의 대부분을 정통 유대교 유대인들이 관리하고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옛날에 핍박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쉽게 이사할 수 있는 보석장사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들은 다이아몬드를 팔 때 손님의 손을 잡고 히브리식 축복을 해 준다고 합니다. 이 다이아몬드가 진짜라는 것을 하나님 이름으로 보증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유대인이 정직하지 않게 다이아몬드를 팔면 그 사람을 업계에서 추방시킵니다. 그렇게 해야만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그렇게 신뢰를 얻어야 장사가 잘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13장을 보면 모세가 출애굽을 할 때에 조상 요셉의 유골을 찾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른 백성들은 이삿짐 싸려고 정신없이 바쁠 때, 하나라도 더 많이 가지고 가려고 정신이 없을 때, 모세는 저 옛날 히브리 백성들을 보살펴 주었던 요셉의 유언을 생각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이집트를 떠나게 되면 나를 이집트에 버리지 말고 꼭 내 유골을 가지고 가라는 요셉의 유언을 생각하고 그 유언을 지켰습니다. 모세는 조상의 유언을 지킴으로서 백성들에게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하나님과 조상과 이웃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언약/계약/약속의 신앙입니다. 우리들도 모세와 같이 하나님과 조상과 이웃 앞에서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백성으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odus5, keep your promise

Exodus5, 13:1922, 24:4-8

 

And Moses took with him the bones of Joseph, who had required a solemn oath of the Israelites, saying, ‘God will surely take notice of you, and then you must carry my bones with you from here.’ They set out from Succoth, and camped at Etham, on the edge of the wilderness. The Lord went in front of them in a pillar of cloud by day, to lead them along the way, and in a pillar of fire by night, to give them light, so that they might travel by day and by night. Neither the pillar of cloud by day nor the pillar of fire by night left its place in front of the people. (Exodus 13:19-22)

 

Moses wrote down all the words of the Lord. He rose early in the morning, and built an altar at the foot of the mountain, and set up twelve pillars, corresponding to the twelve tribes of Israel. He sent young men of the people of Israel, who offered burnt-offerings and sacrificed oxen as offerings of well-being to the Lord. Moses took half of the blood and put it in basins, and half of the blood he dashed against the altar. Then he took the book of the covenant, and read it in the hearing of the people; and they said, ‘All that the Lord has spoken we will do, and we will be obedient.’ Moses took the blood and dashed it on the people, and said, ‘See the blood of the covenant that the Lord has made with you in accordance with all these words.’ (Exodus 24:4-8)

 

According to the second scripture, Exodus chapter 24, God made a covenant with the Israelites. When Moses took the "Book of Covenant" and read it to the people, they vowed to keep all the words which the Lord had commanded. This covenant is called the Sinai covenant because it was made on Mount Sinai. The first covenant was made between God and the Hebrew people. The covenant is a promise. It becomes a covenant when both parties vow to keep one another's promises. God has promised to make them a people of the priesthood and to protect them all the time. In turn, the Hebrews promised that they would only serve God and keep all the commandments. The two parties made a vow and sprinkled blood on it. Spraying blood is not well understood in today's culture. In the ancient time, blood symbolized life. In other words, sprinkling blood indicates a decision that may take a life and keep its promise whatever it may be. Today’s first text, Exodus chapter 13, tells the story of Moses who tried to keep the promise done before. When the Hebrews were busy trying to wrap it up and they were about to take more, Moses thought about the will of Joseph who took care of the ancient Hebrew people. Moses remembered Joseph's testament that if they leave Egypt, take his bones with them. Moses showed an example to the people by keeping the will of their ancestor. Today’s scripture reminds us that we should be a people who cherish the promises of God and of our neighbors. Truly, Christian faith is based on the faith of the covenant. We, like Moses, are called to live the world as a faithful people who keep our promises before God and others.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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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열번째 주일 / 7월 네번째 주일
출애굽기4, 자유인이 되십시오
출애굽기 20:1 – 11
정해빈 목사



기독교 신앙을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성경의 메시지를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창조신앙과 구원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다고 고백하는 신앙이 창조신앙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셨다고 고백하는 신앙이 구원신앙입니다. 창조신앙은 성경의 첫번째 책인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고 구원신앙은 성경의 두번째 책인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만 잘 이해해도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다고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름다운 세상을 지으시고 나를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이렇게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꽃 한송이를 보면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면 내 인생이 풍성해집니다. 그러나 창조신앙이 없는 사람은 놀랄 일도 없고 감사할 일도 없기 때문에 무미건조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신앙은 우리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물론 이 세상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 질병과 사고와 자연재해가 있습니다. 이 세상이 완벽하지 않은 것은 세상 창조가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창조의 완성을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배 시간에 캐나다연합교회 새신조,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창조하시며”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90% 창조하시고 나머지 10%를 우리들에게 맡겨주셨는지도 모릅니다. 너희들이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라 이렇게 말씀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창조신앙을 가진 사람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열심히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창조신앙과 더불어 구원신앙을 믿습니다.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억압해서 해방시켜 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옛날 노예로 고통받는 히브리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시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제국에서의 해방, 노예에서의 해방에서 기독교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부르는 합창곡 중에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3막에 나오는데 가사의 내용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아 황금 빛 날개로,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 아름답고 정다운 내 고향, 산들바람 불어 주는 내 고향, 요단강 강물에 인사하고, 시온성 벽에 입 맞추게, 오 내 조국 빼앗긴 내 조국, 내 마음 속에 사무치네, 운명의 신의 하프소리, 그리운 가락을 울려다오” 히브리인들이 출애굽을 해서 나라를 세웠다가 나중에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겼는데 그때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아픔을 노래한 곡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노예 해방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들보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함께 아파해야 합니다. 17세기-18세기 서양 역사를 보면 서양 기독교 국가들이 아프리카 노예를 사고 팔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원 전 1000년 경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받았던 히브리인들에 의해서 시작된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노예해방으로부터 시작된 기독교가 17세기-18세기 노예무역을 했다는 것은 기독교의 수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 교회들은 출애굽기를 마음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왜 출애굽기를 마음대로 읽지 못했을까요? 출애굽기를 읽으면 모세가 동포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킨 이야기가 나옵니다. 출애굽기를 읽으면 당연히 “하나님, 우리 민족에게도 모세같은 지도자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일제에서 해방시켜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제는 독립과 해방을 이야기하는 출애굽기 같은 책을 읽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백성들을 억압에서 구해주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호렙산에 도착했을 때 그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10가지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자유와 계명을 동시에 주셨습니다. 왜 자유와 계명을 동시에 주셨을까요? 왜 자유에 계명이 필요할까요? 자유롭게 살려면 계명이 없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은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를 더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소개하시면서 나는 너희를 억압하는 신이 아니라 너희를 종살이에서 해방시킨 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자유와 해방의 신이다, 내가 너희에게 계명을 주는 것은 너희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계명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누구나 교통법규를 지켜야 합니다. 파란 불에 가고 빨간 불에 정지하고 좌회전/우회전 하는 법만 지키면 어디든지 운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통법규가 내 운전을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자기 마음대로 운전한다면 그 사람은 사고를 만나게 될 것이고 목적지까지 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계명의 역할이 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유가 지켜지려면 자유를 지켜줄 수 있는 계명이 필요합니다. 자유를 지키고 자유를 더 튼튼하게 하려면 자유를 도와주는 계명이 필요하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십계명은 노예를 자유인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교육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예생활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자유인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노예는 아무생각 없이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복종하면 되지만 자유인은 스스로 자립할 줄 알아야 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과거의 종살이로 돌아가지 않을 만큼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사람은 영적인 노예가 되기가 쉽습니다. 무언가에 붙잡혀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적인 노예상태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영적으로 깨어있어야만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기 위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자유인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계명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십계명의 첫번째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창조의 하나님, 우리를 억압에서 해방시키시는 구원의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종교를 믿을 때 그 종교가 사람을 기쁘고 자유롭게 하는 종교인지, 아니면 사람을 억압하는 종교인지를 잘 보라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을 때 그 지도자가 국민들을 기쁘고 자유롭게 하는지 아니면 사람을 억압하는지 잘 보라는 것입니다. 교회 다닐 때 그 교회가 사람을 기쁘고 자유롭게 하는 교회인지 아니면 자유를 억압하는 교회인지를 잘 보라는 것입니다. 오직 창조와 자유의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에서 첫번째 계명을 주셨습니다. 두번째 계명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큰 우상/동상을 만드는 종교는 잘못된 종교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이집트 종교와 이집트 왕을 위해서 뜨거운 햇볕 아래서 동상/우상을 만드는 강제 노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동상/우상 만드는 것이 지긋지긋했을 것입니다. 큰 동상/우상을 만드는 종교를 멀리해라,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라, 큰 성전도 세우지 말고 오직 말씀만을 사랑하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잘못된 권력과 잘못된 종교에서 자유, 우상에서 자유, 과거의 실패나 아픈 기억에서의 자유, 집착과 중독에서의 자유, 욕심에서 자유, 죄에서 자유, 이 모든 것에서 자유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고 참 자유인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odus4, be free
Exodus 20:1 - 11


Then God spoke all these words. 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the land of Egypt, out of the house of slavery.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You shall not make for yourself an idol, whether in the form of anything that is in heaven above, or that is on the earth beneath, or that is in the water under the earth. You shall not bow down to them or worship them; for I the Lord your God am a jealous God, punishing children for the iniquity of parents, to the third and the fourth generation of those who reject me, but showing steadfast love to the thousandth generation of those who love me and keep my commandments. You shall not make wrongful use of the name of the Lord your God, for the Lord will not acquit anyone who misuses his name. Remember the sabbath day and keep it holy. For six days you shall labour and do all your work. But the seventh day is a sabbath to the Lord your God. You shall not do any work—you, your son or your daughter, your male or female slave, your livestock, or the alien resident in your towns. For in six days, the Lord made heaven and earth, the sea, and all that is in them, but rested the seventh day; therefore the Lord blessed the sabbath day and consecrated it. (Exodus 20:1-11)


The Christian faith can be summarized by two words, the faith of creation and the faith of salvation. The faith of creation refers to the confession that God has created this world with wonder and beauty, and the faith of salvation indicates that God delivered people from oppression and evil. Mostly creation story is recorded in Genesis, the first book of the Bible, and salvation story is found in Exodus, the second book of the Bible. According to today’s scripture, God gave the Hebrews both freedom and the Ten Commandments. Why did God give liberty and commandment at the same time? Would not it be better not to have a commandment to live freely? Yet, God of liberty and freedom gave them a commandment not to limit freedom, but to secure and support their freedom. God gave them the Ten Commandments to make slaves free and to educate them. The first rule is not to serve other gods besides God of Hebrew. God told them to serve only God who created the world with wonder and beauty and delivered them from oppression. God said, "Far from the false religion, keep away the religion of oppression, only serve God of liberty and freedom." The second rule is not to make big idols or statues. The Hebrews had to make statues or idols under the hot sun for the Egyptian nation and religion. Indeed God has called us to be free from any corrupt power, free wrong religion, free from idolatry, free from past failures, and free from sin, greed and any addictions. Truly, we are called to believe in only God of creation and salvation.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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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아홉번째 주일 / 7월 세번째 주일
출애굽기3, 지팡이와 뱀

출애굽기 3:12, 4:1-5

정해빈 목사 



모세는 이집트 제국이 히브리 백성들을 학대하는 것과 같은 히브리 백성이 약한 동포를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 악과 폭력의 문제를 경험한 모세는 광야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양을 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오랫동안 씨름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고 마침내 이집트로 돌아가서 바로 왕과 담판을 벌였습니다. “우리들은 당신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을 놓아 주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조상의 땅, 자유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우리를 떠나게 해 주십시오 모세가 바로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왕이 모세의 말을 쉽게 들어 줄 리가 없습니다. 출애굽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모세가 바로를 9번 이상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는 모세를 문전박대하거나 거부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회유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이것들이 배가 불렀구나 지금보다 더 가혹하게 일을 시켜라, 너희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으면 하루 이틀 휴가를 줄 테니까 광야에 가서 예배하고 돌아와라, 정말 떠나고 싶으면 가족들과 가축들은 남겨두고 남자들만 떠나라바로는 이런 식으로 모세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모세와 바로가 만나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모세는 바로와 직접 싸우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옛날 같았으면 그는 아마도 히브리 백성들을 선동해서 이집트 사람들과 전쟁을 하자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집트 사람들과 전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이니까 히브리 백성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대신 모세는 바로와 9번 이상 만나면서 담판을 벌였습니다. 만나서 말로 싸우는 것이 만나지 않고 전쟁하는 것보다는 더 낫습니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는데 서로 언성을 높였습니다. “핵무기 해체와 정전선언을 같이 합시다. 정전선언은 나중에 할 테니까 우선 핵무기부터 해체하시오, 우리가 핵무기를 해체했는데 당신들이 정전선언을 안하면 어떻게 합니까? 당신들이 확실하게 핵무기를 해체하면 정전선언을 해 줄 테니까 우리를 믿으시오 이렇게 양쪽이 서로 언성을 높이면서 회담을 했습니다. 양쪽이 힘으로 싸우는 것보다는 말로 싸우는 것이 더 낫습니다. 출애굽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이집트 사람들과 히브리 사람들이 직접 싸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났을 때 바로의 군대가 쫓아왔다가 홍해 바다에 빠진 적은 있었지만 양쪽 사람들이 직접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출애굽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인 모세는 바로와의 끈질긴 만남과 협상을 통해서 출애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모세는 계속되는 자연재해가 하나님의 싸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로가 모세 말을 안 들으니까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이 내렸습니다. 강물이 피로 변하고, 개구리가 올라오고, 먼지가 이로 변하고, 파리가 들끓고, 집짐승이 죽고, 피부병이 생기고, 우박이 내리고, 메뚜기가 올라오고, 어둠이 땅을 덮고, 처음 태어난 생명이 죽었습니다. 자연재해는 항상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재해가 계속 일어나면 거기에 하나님의 싸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고와 재해가 계속 일어나면 그것은 국가가 정의롭지 못하거나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왕이 히브리 백성들을 괴롭히니까 땅이 그것을 알고 이집트 국가에 재앙을 내렸습니다. 바로는 계속되는 자연재해를 통해서 히브리 백성들을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회가 정의로우면 땅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고 사회가 정의롭지 않으면 땅도 우리에게 나쁜 것을 줍니다. 땅과 사람은 연결되어 있어서 사람이 행복하면 땅도 행복하고 사람이 불행하면 땅도 불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설득하기 위해 4가지의 증거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해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광야에서는 떨기나무/덤불이 있는데 햇빛이 뜨거우면 스스로 불이 붙었다가 꺼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꺼지지 않고 계속 불이 붙었습니다. 모세는 이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떨기나무에 붙은 불은 하나님의 능력과 소명을 상징합니다. 통나무를 겉에서 보면 에너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통나무에 불을 붙이면 뜨거운 불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가슴에 불을 붙여 주셨습니다. 이대로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살다가 죽을 것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내 동포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재능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다보면 자녀들도 다 키웠고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겠다, 악기를 연주하겠다, 글을 쓰겠다, 가난한 나라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겠다,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소명을 실천하려면 소명을 위한 준비가 있어야 하고 주변의 동의와 지지가 있어야 하고 자신이 이 일을 하겠다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쳤기 때문에 광야의 지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목자로서 성실하게 살았기에 주변의 동의와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소명에 가장 중요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일을 꼭 해야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는 또한 히브리 백성을 가리킵니다. 떨기나무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계속 불타고 있는 것처럼, 내가 히브리 백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겠다는 뜻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 주셨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이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모세가 이렇게 말하니까 하나님께서 나는 나다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나는 고통받는 자와 항상 함께할 것이다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들이 매주일 고백하는 캐나다연합교회 새신조의 첫 문장이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좋은 말들이 많은데 왜 첫 문장이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라고 되어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동역자로 모세의 형 아론을 붙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 하시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함께 상의하고 협력할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더구나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모세가 이렇게 말하니까 하나님께서 형 아론을 동역자로 붙여주셨습니다.

 

네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뱀이 지팡이가 되는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떨기나무, 하나님의 이름, 아론은 이해하기가 쉬운데 뱀이 지팡이가 되는 증거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모세가 이렇게 말하니까 지팡이 기적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뱀처럼 살 것인지 아니면 지팡이처럼 살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뱀처럼 땅을 기어 다니면서 노예처럼 살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지팡이로 살겠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백성들이 깨달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로에게 가서 계속 뱀처럼 악독한 왕/독재자로 살겠습니까? 아니면 지팡이 같은 왕으로 살겠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바로 왕도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 세상에서 뱀은 가장 징그럽고 지팡이는 가장 귀합니다. 뱀으로 살 것인가 지팡이로 살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뱀 같은 삶이 아니라 지팡이 같은 삶을 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odus3, a cane and a serpent

Exodus 3:1-2, 4:1-5


Moses was keeping the flock of his father-in-law Jethro, the priest of Midian. He led his flock beyond the wilderness and came to Horeb, the mountain of God. There the angel of the Lord appeared to him in a flame of fire out of a bush. He looked and the bush was blazing, yet it was not consumed. Then Moses said, ‘I must turn aside and look at this great sight and see why the bush is not burned up.’ When the Lord saw that he had turned aside to see, God called to him out of the bush, ‘Moses, Moses!’ And he said, ‘Here I am.’ (Exodus 3:1-4)


Then Moses answered, ‘But suppose they do not believe me or listen to me, but say, “The Lord did not appear to you.” ’ The Lord said to him, ‘What is that in your hand?’ He said, ‘A staff.’ And he said, ‘Throw it on the ground.’ So he threw the staff on the ground and it became a snake and Moses drew back from it. Then the Lord said to Moses, ‘Reach out your hand, and seize it by the tail.’ So he reached out his hand and grasped it and it became a staff in his hand so that they may believe that the Lord, the God of their ancestors,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has appeared to you.’ (Exodus 4:1-5)

 

According to the book of Exodus chapter 3 and 4, God appeared to Moses and said, "Free my people from oppression." God gave him four signs or miracles to support his mission. First, God appeared to Moses through a burning bush. The bush was lit but it kept on burning. The fire on the bush symbolizes God's power and passion to save the suffering. The burning bush also refers to the Hebrew people. As the spirit of God came upon the bushes and the fire continued to burn, God promised to hold the Hebrews so that they would not perish. Second, God gave Moses the name of God, "Emmanuel, I will be with you." This name indicates that God will be with those who are suffering. Third, God gave Aaron the brother of Moses as a co-worker. Fourth, the last but not the least, God showed Moses a miracle that the snake became a staff. A burning bush, the name of God, and Aaron are easy to understand, but the miracle of a cane and a serpent is difficult to understand. “What if the Hebrews do not listen to me?” When Moses asked, God told Moses to show them the miracle of a cane asking whether they would live like a snake that crawls around the ground or live like the staff of God. Likewise, God instructed Moses to go to the King Pharaoh and to ask him if he would live as a serpent-wicked king or live as a king like the staff of God. Today’s scriptures remind us of the fact God calls us to live as the messengers and staffs of God. Truly, we are called to be the agents and staffs of God.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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