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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04 3.1운동과 기독교 신앙
- 2018.02.25 사순절, 형제증오와 유다의 회개
- 2018.02.19 사순절, 사랑의 능력을 주셨으니
- 2018.02.11 주현절, 회개와 기쁜 소식2
- 2018.02.04 주현절, 회개와 기쁜 소식1
사순절 첫번째 주일 / 2월 세번째 주일
사순절, 사랑의 능력을 주셨으니
요엘 2:12-14, 요한복음 15:9-14
정해빈 목사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부활절 40일 전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수요일 토론토 대학 임마누엘 신학교에 가서 아시아신학센터가 주관하는 설날점심식사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재의 수요일 채플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는 저녁에 교회당으로 와서 랜싱연합교회와 함께 재의 수요일 예배를 한 번 더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이면서 동시에 Valentine Day 였습니다. 재의 수요일과 발렌타인 데이가 같은 날에 있는 경우가 거의 희박한데 올해는 같은 날에 있게 되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는데 젊은이들이 손을 잡고 꽃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식당마다 자리가 꽉 차고 꽃집과 초콜릿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일 년에 두 번 2월 발렌타인 데이와 10월 할로윈 데이 때 사탕과 초콜릿이 제일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이런 문화들이 자본주의 문화의 한 단면일 수 있습니다. 무언가 이런 이벤트가 있어야 장사가 잘 됩니다. 물론 이런 이벤트를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선물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발렌타인 데이나 재의 수요일 모두 기독교 문화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로마 황제가 군인들이 군 복무 중에는 결혼하지 못하게 했는데 발렌타인이라는 신부가 황제의 명을 어기고 결혼하는 싶어하는 사람들을 결혼시켜 주어서 순교를 당했는데 여기서 발렌타인 데이가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두가지 상반된 얼굴을 보았습니다. 한쪽에서는 젊은이들이 꽃과 선물을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이 보였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표시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발렌타인 데이는 인생의 가장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재의 수요일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면을 보여줍니다. 우리들은 서로 사랑할 때 인생이 너무 아름답고 기쁘다는 것을 깨닫고 반대로 우리 몸이 재로 변하게 되는 것을 볼 때 인생이 허무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은 인생의 가장 밝은 모습과 가장 어두운 모습 그 중간 어딘가에서 지금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재의 수요일에서 부활절까지 40일간은 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이었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금식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고난은 부활과 함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 기독교 신앙의 절반을 차지한다면 부활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기독교 신앙에서 고난을 빼버린다면 기독교 신앙은 반쪽짜리 신앙이 되고 말 것입니다. 고난을 회피하고 축복만 생각하는 신앙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물론 기독교는 고난을 찬미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아픔과 죄와 죽음은 극복되고 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가 올 때까지 고난의 순례의 길을 걸어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것처럼,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고 영광도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사순절을 지내면서 죄 없으시고 의로우신 예수님이 왜 고난받으셨는지를 묵상하고 이 땅에서 억울하게 고난받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사순절을 지내면서 인생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프고 어두운 면도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인들은 40일 동안 매일 성경을 읽고 구제와 봉사를 하고 유흥과 오락을 줄이며 경건한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전통을 따라서 40일 동안 매일 성경을 읽고 이웃을 위해 중보기도를 한다든지, 하루에 1달러씩 모아서 구제헌금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한다든지, 자녀들 컴퓨터 사용 시간을 1시간 줄인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경건의 시간을 보내면 사순절이 뜻 깊게 다가올 것입니다. 사순절은 우리들의 인생을 더 의미있고 진실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재의 수요일이 되면 이마에 재를 바르는 의식을 행합니다. 보통 재와 씨앗과 기름을 섞어서 만드는데 재는 우리 죄악을 가리키고 씨앗은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가리키고 기름은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름 바르셔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재의 수요일은 첫째로 우리들이 흙에서 왔으니 때가 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리켜 줍니다. 우리들이 흙에서 왔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을 가리켜서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라고 부르는데 우리들은 어머니 자연에서 왔기 때문에 때가 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들은 재를 이마에 바르는 의식을 통해서 내가 자연에서 왔음을 깨달으며 겸손을 배우고 자연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기독교 영성 훈련 중에 “촉루관 체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촉루(髑髏)는 백골/해골을 뜻합니다. 옛날 수도사들은 장례를 치르지 않고 버려진 시신을 산으로 가져가서 시신의 살이 없어지고 뼈가 바람에 날리고 완전히 자연으로 스며들 때까지 6개월 혹은 1년 동안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을 묵상했습니다. 지금도 신학교에 가면 관 속에 들어가서 내가 죽었을 때를 묵상하는 훈련을 하게 합니다. 죽음을 소홀히 하면 삶을 소홀히 하게 되고 죽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삶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관 체험을 통해서 내가 때가 되면 흙이요 먼지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동시에 나도 그리스도처럼 겉사람이 죽고 속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재를 이마에 바르는 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묵상하고 우리의 삶을 더 진실하게 살도록 인도해 줍니다.
둘째로 우리는 재를 이마에 바름으로서 우리의 죄악과 욕심과 탐욕을 회개합니다. 재를 뒤집어쓴다는 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엘서 말씀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지금이라도 너희는 진심으로 회개하여라. 금식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요엘은 옛날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져 있을 때 남유다의 선지자였는데 남유다의 왕 요아스가 우상을 숭배하고 부패하게 된 것을 보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순절은 회개의 기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의롭고 진실하게 살지 않은 것과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과 자연을 남용하고 오용한 것을 회개하는 기간입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 사이에서 “Me Too”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아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옛날에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성추행을 당해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말하고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겠다는 운동이 Me Too 운동입니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고백과 회개가 있어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너무 빨리 용서를 말하면 안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으면 피해자가 용서할 때까지 가해자는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2018년 사순절에는 남자들이 많이 회개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일본 아베 총리가 한국에 와서 소녀상을 다 철거하라고 요구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독일은 일본과 같은 가해자이지만 전 세계에 있는 유대인 학살 기념관을 철거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그만 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계속 사과를 합니다. 일본은 독일의 이런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올림픽 잔치에 와서 일어나지도 않고 박수도 치지 않습니다. 지도자가 그런 행동을 하니까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재를 이마에 바른다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님과 이웃들 앞에서 한 잘못된 행동들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 너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늘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으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기도 하신다.” 우리 주님께서는 진정으로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하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재를 이마에 바른다는 것은 우리가 먼지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질그릇 속에 사랑의 능력을 불어넣어주셨으니 남은 인생 사랑하며 살겠다는 고백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흙에서 왔을 지라도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사랑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친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함께 아파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사람이 남겨준 사랑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주님 주신 사랑의 능력으로 우리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Lent, the power of love
Joel 2:12-14, John 15:9-14
Yet even now, says the Lord, return to me with all your heart, with fasting, with weeping, and with mourning; rend your hearts and not your clothing. Return to the Lord, your God, for he is gracious and merciful,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steadfast love, and relents from punishing. Who knows whether he will not turn and relent, and leave a blessing behind him, a grain-offering and a drink-offering for the Lord, your God? (Joel 2:12-14)
As the Father has loved me, so I have loved you; abide in my love. If you keep my commandments, you will abide in my love, just as I have kept my Father’s commandments and abide in his love. I have said these things to you so that my joy may be in you, and that your joy may be complete. ‘This is my commandment, that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No one has greater love than this, to lay down one’s life for one’s friends. You are my friends if you do what I command you. (John 15:9–14)
Last Wednesday was Ash Wednesday. After the Epiphany, 40 days of Lent, began on Ash Wednesday. Ash Wednesday is the first day of Lent, which is six weeks of repentance before Easter. It drives its name from the placing of repentance ashes on the foreheads of participants to either the words "Repent, and believe in the Gospel" or the dictum "Remember that you are dust, and to dust you shall return." The ashes may be prepared by burning palm leaves from the previous year's Palm Sunday celebrations. Among Roman Catholics, Ash Wednesday is usually observed by fasting, repentance, or abstinence from particular foods. Ashes Wednesday first indicates that we have to return to the soil again because we have come from the nature. Second, we repent of our iniquities and greed by applying ashes on our foreheads. Third, it indicates that God loves us for the rest of our life since God has blessed us with the power of love even though we are dust. Although we came from the dust, we are called to live the life of love that God has given us. Although our bodies will return to the earth, the love that we left behind will not disappear. We are called to make our life more beautiful with the power of love that we have been given by God. Amen.
주현절 여섯번째 주일 / 2월 둘째 주일
주현절, 회개와 기쁜 소식2
마태복음 5:3-9, 9:14-15
정해빈 목사
요즘 한국 평창에서는 지난 금요일 개막된 2018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1988년에 하계 올림픽, 2002년에 월드컵이 열렸는데 하계 올림픽이 열린지 30년 만에 동계 올림픽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토론토총영사관과 민주평통토론토협의회와 조성준 장로님(주의원)이 주최하는 “올림픽기 게양식 및 선수단 응원식”이 온타리오 주 의사당에서 있었습니다. 개막식을 보다가 아리랑 노래가 울리면서 남북한 선수들이 공동 입장하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울컥하고 뜨거워졌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팅을 타면서 성화 봉송하는 장면도 아름다웠습니다. 토론토 스타(Toronto Star) 신문을 보니까 평창 올림픽의 문제는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완벽한 개막식이었다고 쓴 글을 보았습니다. 올림픽 뉴스를 보다가 반가운 얼굴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캐나다 출신 여자 아이스하기 선수(캐롤라인 박, 박은정)가 지금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팀에서 뛰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박재선 장로님의 손녀딸입니다. 토론토 서쪽 브램튼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을 했습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 아이스하키 선수로 전액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고 졸업 후에는 콜롬비아 의대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팀 선수로 뛰게 되었습니다. 제가 브램튼에서 교육목사할 때 캐롤라인을 가르쳤는데 한국 팀에서 뛰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박재선 장로님이 저 장면을 보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스하키 경기는 5명씩 나와서 경기를 하는데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1분마다 선수를 교체한다고 합니다. 1조 5명이 1분간 뛰고 뒤로 빠지면 2조 5명이 나와서 1분간 뛰고 이어서 3조 5명이 1분간 뛰고 이어서 4조 5명이 1분간 뜁니다. 1조부터 4조까지 1분씩 뛰면 다시 1조가 경기에 투입됩니다. 1조부터 4조까지 5명씩 총 20명이 경기에 참가하는데 그중 한국 선수가 17명 북한 선수가 3명이라고 합니다. 한국 선수와 북한 선수와 캐나다 한인 선수가 한 팀이 되어서 같이 뛰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가득했습니다.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으로 고국 뉴스를 보았고 CNN 같은 방송국은 내일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뉴스 속보를 보여주었습니다. 다행이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과 북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번 평창 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되어서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남과 북이 만나고 북한과 미국이 만나서 하나씩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해외 한인 교회들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갈등을 부추기는 곳이 아니라 평화와 화해와 용서를 위해서 일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말씀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를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믿는다고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일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갈등과 싸움을 부추기는 사람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평화를 위해서 일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러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8복 선언을 하시면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것이요, 슬퍼하는 사람은 위로를 받을 것이요, 온유한 사람은 땅을 차지할 것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배부를 것이요, 자비한 사람은 자비를 받을 것이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복과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복을 선언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것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그 말씀은 아마도 마음을 비우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비움이라면 재물은 집착입니다. 비움과 집착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비움을 붙들면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고 집착을 붙들면 비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무언가에 집착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명예나 권력이나 재물일 수도 있고 지식이나 도박이나 취미일 수도 있고 배우자나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 좋고 재미있고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집착하는 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 집착을 내려놓아야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집착하지 않는 사람, 마음을 비운 사람, 마음이 맑고 깨끗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번째 메시지로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회개와 기쁜 소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가 필요한 사람은 회개하고 기쁜 소식이 필요한 사람은 기쁜 소식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을 때 누가 회개해야 하는지는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예수님은 8복 선언을 통해서 마음이 가난하고, 슬퍼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자비롭고, 마음이 깨끗하고, 평화를 위해 일하고,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슬퍼하는 사람들, 마음이 온유하고 자비로운 사람들은 들으십시오. 비록 세상은 여러분이 힘이 없다고 해서 무시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으니 기뻐하십시오.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제일 먼저 찾으실 것입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사람들은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팔복을 행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마태복음 9장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예수님께 따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 당시 정통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목요일 올라갔다가 월요일 내려왔다고 해서 목요일과 월요일 금식을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 아니라 자기들이 정한 규칙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을 자세히 보면 원래는 일 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금식하도록 되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금식하는 날짜가 계속 추가되어서 예수님 당시에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결혼식을 하는 일주일 동안에는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하늘에서 신랑이 왔기 때문에 지금은 금식할 것이 아니라 잔치를 벌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금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잔치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금식하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먹이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으니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의 식탁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금식이 아니라 잔치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건강을 위해서 금식/단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고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더 낫습니다. 우리들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우리들은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세상을 부러워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 만들어 가면 우리들은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음식을 나누면 기쁨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의 것입니다. 지금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piphany, repentance and good news2
Matthew 5:3-9, 9:14-15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will be filled.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receive mercy.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will see God.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children of God. (Matthew 5:3-9)
Then the disciples of John came to him, saying, ‘Why do we and the Pharisees fast often, but your disciples do not fast?’ And Jesus said to them, ‘The wedding-guests cannot mourn as long as the bridegroom is with them, can they? The days will come when the bridegroom is taken away from them, and then they will fast. (Matthew 9:14-15)
Jesus said, "Blessed are those who work for peace, and they will be children of God." When religious leaders protested, "Why do not your disciples fast?" Jesus said that since bridegroom came, now is the time to rejoice rather than fast. In God's kingdom, not a fast, but a feast will happen and everyone will be fed. In the kingdom of God, the poor will be blessed, those who mourn will be comforted, and those who work for peace will become children of God. We can rejoice here and now to hear the kingdom of God Jesus promised for us. Jesus blessed us by having showed how the kingdom of God permeated the world through the Beatitudes. We can rejoice here and now in the midst of affliction since we believe the realm of God. We are called to live out kingdom of God without envying the wrong world. Jesus taught us that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down to us when we love each other and share open table with strangers. We are called to proclaim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Amen.
주현절 다섯번째 주일 / 2월 첫째 주일
주현절, 회개와 기쁜 소식1
마가복음 1:14-15, 2:18-22
정해빈 목사
우리는 지난 1월 첫째 주일부터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을 묵상하는 주현절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때가 되었을 때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으시고 세례요한과 같이 활동하시다가 요한이 잡힌 뒤에 갈릴리로 오셔서 본격적으로 공생애, 하나님 나라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1장 14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가장 먼저 선포하신 메시지가 나옵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은 3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둘째, 회개하여라, 셋째,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의 메시지를 다시 두가지로 요약하면 “회개와 기쁜 소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가 필요한 사람은 회개하고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음(福音)이란 복될 복자, 소리 음자, 기쁜 소식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하나님의 정의가 바로서는 나라를 가리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그 나라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회개가 필요한 사람은 회개해야 하고 기쁜 소식이 필요한 사람은 기쁜 소식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회개해야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기쁜 소식을 믿어야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회개”란 단순히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과 태도를 바꾸는 것을 가리킵니다. “회개”를 헬라어로 메타노이아(metanoia)라고 부르는데 삶의 방향과 태도를 저쪽에서 이쪽으로 바꾸는 것을 가리킵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회개해야 하는데 말로만 회개할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과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거짓과 불의와 죄악 가운데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거짓과 불의와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 쪽으로 삶의 방향과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경제/종교 지도자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경제/종교 지도자들 때문에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유대와 갈릴리를 지배한 로마제국과 헤롯 집안을 가리키고 경제 지도자들은 부유한 지주들을 가리키고 종교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 같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첫번째로 회개해야 할 사람들은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 지도자들입니다. 정치 권력자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자유를 억압하면 사람은 기쁨이 없는 억압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시라고 믿었고 모세와 엘리야가 물려준 정의롭고 평등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자기들 땅을 차지하려는 것에 분노하였고 이에 저항했습니다. 유대인 역사를 보면 갈릴리 사람들이 로마제국과 헤롯에 저항해서 봉기를 일으켰던 예가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당시 갈릴리는 저항과 분노의 땅이 되었습니다. 독재자가 횡포를 부리면 국민들은 정서적인 불안과 억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귀신 들린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자들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외치셨고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근에 청년들과 함께 “1987” 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87년에 있었던 일들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권력을 잡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실내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으려고 합니다. 대학생들이 이에 저항하다가 서울대생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죽고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저도 대학생이었는데 영화를 보다가 그때 일이 다시 떠올라서 영화를 보다가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이고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권력자가 대통령 직을 이용해서 횡포를 부리고 돈을 뒤로 빼돌리고 자기 이익을 취하면 나라 살림은 거덜나고 나라의 질서는 무너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니 정직하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 부유한 사람들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에는 경제적인 불평등이 극심해서 땅이 있는 사람들은 과도한 세금을 바쳐야 했고 땅이 없는 사람들은 일용직 노동자가 되거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비유들을 자세히 보면 포도원 농장, 일꾼들에 대한 비유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포도원 농장, 일꾼들에 대한 비유들은 그 당시 갈릴리 사람들이 경제적인 불평등과 차별로 인해 얼마나 심하게 고통당하고 있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재지주를 대신해서 농장을 관리하는 청지기/중간관리자(옛날에는 그런 사람을 “마름”이라고 불렀습니다)가 있었는데 주인의 재산을 뒤로 빼돌리다가 적발이 되어서 주인으로부터 해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합니다.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주인에게는 해고당했고 소작인들에게는 인심을 잃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소작인들, 빚진 자들의 인심을 얻어야만 앞으로 살 길이 열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빚진 자들을 불러서 빚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증서를 써 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주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문서를 위조해서 빚을 절반으로 줄이도록 잔꾀를 부렸을 수도 있고 주인에게 쫓겨나기 전에 회개하는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농사꾼들에게 호의를 베푼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부재지주들과 지주 밑에서 일하는 나쁜 중간 관리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자들을 향해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번째로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치/경제 권력자들이 악을 행하면 종교 지도자들만큼이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야 하는데 종교 지도자들도 부패하고 타락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잘못된 정치와 경제가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때로는 잘못된 종교가 사람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하였고 성전에 세금을 바치라고 강요하였고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말씀처럼 왜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주님께 따졌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들을 향해서는 몸이 아픈 것은 당신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종교는 강요하고 정죄하고 증오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하고 용서하고 기뻐하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예수님 당시 종교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삶을 더 무겁고 힘들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지 않고 백성들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으니 회개하고 삶의 방향과 태도를 바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개와 기쁜 소식을 동시에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가 필요한 사람은 회개하고 기쁨이 필요한 사람은 기쁜 소식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회개만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기쁨도 선포하셨습니다. 세상이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해서, 세상 살기가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우리가 슬퍼하면서 살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닮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닮으면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돌보면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기뻐해야 하는지는 다음 주일에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오면 하나님의 정의가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 주의 날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잘못된 삶의 태도와 방향을 바꾸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piphany, repentance and good news1
Mark 1:14-15, 2:18-22
Now after John was arrested, Jesus came to Galilee, proclaiming the good news of God, and saying, ‘The time is fulfilled, and the kingdom of God has come near; repent, and believe in the good news.’ (Mark 1:14 – 15)
According to the Gospels of Mark, Jesus was baptized by John the Baptist in the Jordan River and when John was arrested, he came to Galilee and began his public ministry for the Kingdom of God. In Mark 1:14, which we read today, Jesus proclaimed. “The time has come. The kingdom of God is near. Repent. Believe in the Gospel.” If we summarize Jesus' message in two ways, it would be "repentance and good news." Since the time at which God rules over the world with justice comes near, Jesus said, those who need repentance should repent and those who need good news hear that news. Then who did Jesus urge to repent and to hear good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