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후 다섯번째 주일 / 야외예배

흙과 바람과 물과 불

시편 139:13-18, 예레미야 18:1-8

정해빈 목사

 

 

 

1. 오늘 2015년 6월 마지막 주일은 야외 예배를 드리는 날인데 비가 와서 야외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비가 와야 생명이 살 수 있으니까 비 오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올해 캐나다 날씨는 여름에도 쌀쌀한 것 같습니다. 오늘 설교는 야외예배를 염두해두고 준비했는데 야외예배는 아니지만 그냥 준비한 대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옛날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연의 근본 물질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자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자연의 근본 물질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인류 최초의 철학자, 자연철학자라고 부릅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은 인간/사회/윤리에 대해 관심을 보였는데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활동했던 사람들이 바로 자연철학자들이었습니다. 인류에 맨 처음 등장했던 자연철학자들 중에 엠페도클레스라는 철학자는 세상 만물이 4가지 원소, 흙과 바람과 물과 불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4가지가 서로 얼마만큼 끌어당기고 섞이느냐에 따라서 세상 만물이 다르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재료들을 쪼개고 분해해 보면 결국 4가지, 흙과 바람과 물과 불만 남게 된다, 그래서 바로 이 4가지가 세상 만물을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재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스 철학자가 말한 이 4가지 재료가 성경에도 이와 비슷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성경은 4가지 재료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4가지 재료를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도 4가지 재료를 가지고 창조하셨고 당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실 때도 4가지 재료를 사용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실 때 이 4가지 재료를 결정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은 결국 이 4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 이 4가지를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왜 이 4가지 재료가 사람에게 중요한지 하나씩 하나씩 생각해 보겠습니다. 4가지 재료의 순서가 중요한데 첫째는 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는 것은 우리가 자연의 일부요, 피조물이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맨 처음 흙에서 나왔습니다. 흙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흙에서 난 것을 먹고 흙을 밟아야 건강합니다. 바울은 흙에서 난 몸을 첫 번째 몸이라 부르고 부활할 때 갖게 되는 영적인 몸을 두 번째 몸이라고 불렀습니다. 부활할 때 갖게 되는 두 번째 몸은 죽은 다음에 갖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갖게 되는 몸은 흙으로 된 몸입니다. 흙은 겉으로 보기에 더럽고 약하고 깨지기 싶습니다. 우리의 몸은 약합니다. 하지만 그 흙에 다른 것이 더해지면 흙은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여기에 창조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흙으로 만드셨지만 우리를 흙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새로운 존재, 영적인 존재, 아름다운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 단계가 두 번째 바람의 단계입니다.

 

맨 처음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두 번째 단계로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생기가 바로 바람입니다. 하나님의 숨결, 생기, 히브리어로 루하흐, 하나님의 영, 성령입니다. 사람 모양의 흙에 바람이 들어가자 진짜 사람이 되었습니다. 흙과 바람이 만나야 사람다운 사람이 됩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짐승은 본능대로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바람이 들어갔기 때문에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갈대인 것은 사람의 코에 하나님의 영/바람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있는 사람은 동물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있는 사람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 도덕적인 사람, 종교적인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은 동물처럼 행동합니다. 짐승과 사람의 차이점은 하나님의 바람, 영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생기/영/바람이 우리 안에 들어와야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고 양심과 도덕이 살아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야 공기가 통하고 공기가 통해야 생명이 살 수 있습니다. 흙으로 된 우리 몸에 바람이 들어가야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바람/생기를 불어넣으신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로 우리에게 물을 채워주셨습니다. 사람 몸의 70%는 물/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살려면 흙과 바람 외에 물이 있어야 합니다. 물은 첫째로 생명을 낳고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맨 처음 생명이 물에서 나왔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생명은 항상 물에서 나옵니다. 지구에 생명이 사는 것은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곳도 물입니다. 아기 생명을 감싸는 물을 양수라고 합니다. 물/오하시스가 있어야 거기에서 생명이 나오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물은 둘째로 생명을 씻겨주는 역할을 합니다. 흙과 바람으로 지어진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죄를 짓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선과 악 중에서 악을 선택할 수도 있고 점점 몸과 마음에 때가 묻어서 하나님과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생명수로 우리를 씻겨 주셔서 우리가 새로운 삶, 거듭난 삶, 중생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물은 창조와 재창조, 중생, 깨끗함, 거듭남을 가리킵니다. 물을 통해서 우리는 깨끗해집니다. 예를 들어서 눈에서 나오는 물을 눈물이라고 부르는데 사람은 눈물을 흘릴 때 몸과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또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하는 세례/침례 의식이 있습니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영적인 거듭남이 일어날 때 항상 물이 사용되었습니다. 물이 더러운 것을 씻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물을 통한 세상 정화/청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러워지고 부정하게 되었을 때 생명의 물로 우리를 씻겨주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만들어주십니다. 우리는 물에서 나왔고 물을 통해서 생명을 유지하게 되고 물을 통해서 더러워진 몸과 마음을 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 번째 재료는 물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4번째 재료는 불입니다. 우리 몸이 흙과 바람과 물로 되어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쉬운데 불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몸과 불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불은 사랑의 에너지, 공동체의 에너지입니다. 불은 우리를 서로 묶어주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우리의 삶을 진실하게 만들고 의미있게 만들어 줍니다. 공동체를 세워주는 불,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불입니다. 두려움에 떨던 초대 교회 제자들이 오순절에 용기를 내서 교회를 세운 것도 성령의 불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본의 사회철학자 이마무라히토시(今村仁司)는 “의미는 불을 피울 때 만들어진다”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불을 피우는 순간 경건해지고 진실해지고 따뜻해집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야외로 캠핑을 가는 것입니다. 도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캠핑을 갈 수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로는 불을 피우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옛날 원시인들이 서로 모여서 불을 피웠던 경험이 우리 유전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불을 피우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공동체를 세워나갔습니다. 원시인들이 동그랗게 불을 피우고 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간의 오해도 풀리고 공동체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불가에 앉으면 질투심도 사라지고 마음도 부드러워집니다. 그래서 그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은 불을 발견한 것인데 단순히 음식을 익혀먹고 추위를 이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불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공동체를 세워주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류의 종교도 불이 있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저렇게 촛불을 피우는 것도 불이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불을 피우는 순간 사람은 진실해지고 거룩해집니다. 중년 남자들이 캠핑장에서 불을 피우고 싶은 것은 잃어버렸던 삶의 의미를 되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불을 피우면서 나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흙/바람/물/불을 통해서 우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비록 더럽고 약한 흙에서 나왔지만 그 흙에 바람/물/불이 더해질 때 우리의 몸은 아름다운 그릇이 되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 18장에서 우리를 흙으로 비유하셨습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빗다가 그릇이 좋지 않으면 그릇을 다시 만들 듯이 좋은 그릇이 되지 못한 유다 백성들을 다시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시편 139편 말씀처럼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부드러운 흙과 하나님의 생기, 깨끗한 물과 뜨거운 불을 가지고 사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풍성해집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바람과 물과 불을 통해 우리를 더 좋은 그릇,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흙과 바람과 물과 불을 통해 좋은 그릇이 되어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고 사랑의 공동체/교회를 세워나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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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두번째 주일 / 캐나다연합교회창립90주년기념주일
캐나다연합교회, 예수의 얼굴이 되어
마태복음 5:14-16, 고린도후서 3:18, 4:6
정해빈 목사

 

 

 


1. 올해 캐나다 날씨는 이상해서 계절이 바뀌어도 여전히 쌀쌀합니다. 오늘부터 6월, 7월, 8월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2015년 6월 첫째 주일은 캐나다연합교회 창립90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 토론토 연회가 열려서 창립90주년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 다른 교단이 연합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속한 캐나다연합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슬라이드를 보면서 지난 9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으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148년 전인 1867년 7월 1일 여러 주가 합쳐서 캐나다라는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1876년 소위 원주민 보호법에 따라서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원주민 기숙 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1896년 벤쿠버에서는 일본 감리교회가 있었고 1902년 연합운동이 시작되었지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연합운동이 보류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25년 6월 10일 토론토 다운타운 경기장에서 캐나다장로교, 캐나다감리교, 캐나다회중교회가 모여서 캐나다연합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카톨릭이 하나인 것처럼 개신교도 서로 연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연합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장로교와 감리교와 회중교회가 하나로 합친 것은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비둘기, 성경, 떨기나무, 알파와 오메가 그림을 넣은 교단 상징 문장이 만들어졌습니다. 1930년대에도 여전히 기독교가 운영하는 기숙사 학교가 있었고 1935년에 벌써 중국연합교회가 50주년 축하행사를 가졌습니다. 1936년 여성이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39년부터 1965년까지 목회자들이 전쟁 반대 운동을 벌였습니다. 1946년 캐나다연합교회와 캐나다성공회 사이의 연합 운동이 있었고 1948년 비로소 원주민 기숙 학교가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연합교회는 1952년 사스카츄완 주의 수상인 Tommy Douglas가 시작한 공공의료제도를 적극 지지/후원하였습니다. 이것이 발전해서 오늘날 캐나다 시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의료혜택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62년 전국여신도회가 창립되었고 1968년 복음형제교단이 캐나다연합교회에 합류했습니다.

1968년 최초로 평신도 총회장이 선출되었고 해외 선교를 후원하기 위해 Mission and Service Fund가 만들어졌으며 우리가 매주일 고백하는 새신조(New Creed)가 만들어졌습니다. 1971년 캐나다연합교회와 캐나다성공회와 캐나다제자교회의 연합운동이 시도되었다가 1975년 중단되었습니다. 1974년 최초로 흑인 총회장이 선출되었고 1978년 교단 안에 있는 소수민족교회(중국인연합교회, 일본인연합교회, 한인연합교회 등)를 위해서 일하는 전국소수민족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옛날 우리 교회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1980년 최초로 여성 총회장이 선출되었습니다. 1986년 총회장이 원주민들에게 처음으로 사과를 했고 1986년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1988년 이상철 목사님께서 아시아 사람으로는 최초로 총회장에 당선되셨습니다. 처음에는 백인들이 총회장이 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평신도, 흑인, 여성, 아시아 사람들이 총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88년 성적 취향이 다른 사람을 교회가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서가 만들어졌고 1992년 총회장이 재차 원주민들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1994년 원주민 기숙 학교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펀드가 모금되었고 1998년 원주민들에게 드리는 공식 사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2000년 인종차별 정규정이 만들어졌고 2004년 남아시아 수나미 희생자들을 위한 기금을 전달했습니다. 2005년 동성 결혼을 지지하였고 2007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2011년 세계자본주의가 점점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것을 목격하고 1%의 탐욕에 반대하고 99%의 입장을 대변하는 Occupy Movement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환경오염을 반대하고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교회 상징 문장을 수정해서, 비둘기, 성경, 떨기나무, 알파와 오메가에 더해서 원주민들을 상징하는 글자와 색깔이 추가되었습니다. 노란색, 검정색, 빨간색, 흰색이 추가되었고 모학(Mohawk) 원주민들이 항상 쓰는 말, 아퀘 니아테테와네렌(Akwe Nia’Tetewá:neren), “모두가 연결되어 있습니다”(All my relations)이라는 글자가 추가되었습니다. 그 옆에 있는 라틴어 글자도 같은 뜻입니다. 우트 옴네스 운음 신트(ut omnes unum sint),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That all may be one, John 17:21). 2006년 믿음의 노래(Song of Faith)라는 신앙고백서가 발표되었고 2015년 8월 뉴펀들랜드에서 제 42차 전국 총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2. 캐나다연합교회는 창립90주년을 축하하면서 올해의 주제를 “그리스도의 얼굴이 되어”(Being the face of Christ)로 정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얼굴이 되자 그런 의미에서 이런 주제를 잡은 것 같은데 나름대로 적절한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모름지기 그리스도의 얼굴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교회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얼굴이 나타나야 합니다. 지난 과거 역사를 보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따뜻한 얼굴이 되기보다는 무서운 얼굴이 된 적이 많았습니다. 교회가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억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5만 명의 원주민 자녀들이 대여섯 살 어린 나이에 강제로 기숙 학교에 보내졌고 이중 6000명이 질병/자살 등으로 죽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강제로 부모 곁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갔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부모를 보고 싶어했을까요? 약 8만 명의 생존자들이 2007년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냈고 이를 계기로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만들어져서 지난 6년간의 활동을 모은 보고서를 지난 주에 제출했습니다. 대부분의 기숙 학교를 카톨릭이 운영했지만 캐나다연합교회도 이에 동참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원주민 말살 정책에 참여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얼굴이 나타나는 교회가 아니라 다른 얼굴이 나타나는 교회일 것입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볼 때 교회가 예수님의 얼굴이 아니라 다른 얼굴이 되는 때가 많았습니다. 돈과 권력을 손에 쥐고 국가 교회, 부자 교회인 것을 자랑스러워할 때도 있었고 유럽의 서양 문화를 원주민들에게 강제로 주입할 때도 있었습니다. 캐나다연합교회는 이런 과거를 회개하고 이제는 Intercultural 교회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서로 배우고 교류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백인 문화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 같은 유색 인종 교회들이 더 많이 참여하는 교회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때로는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착한 행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세상 사람들이 너희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여라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바르게 신앙생활하면 할수록 주님을 닮아가게 되고 주님을 닮아가면 갈수록 우리의 얼굴에 주님의 얼굴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이 나타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얼굴을 본적은 없지만 예수님의 얼굴은 분명 자비롭고 따뜻하고 긍휼이 풍성한 얼굴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비로우시니 예수님의 얼굴도 자비로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가난한 자들과 식사하시며 정의와 자비가 풍성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얼굴이 나타나는 교회에는 분명 따뜻한 사랑과 용서와 자비가 풍성할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과 찬양이 넘칠 것입니다. 낯선 사람들과 나그네들을 따뜻하게 환영하는 교회일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편안하게 올 수 있고 나이든 사람도 편안하게 올 수 있는 교회일 것입니다. 과거를 묻지 않고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교회일 것입니다. 누구나 와서 예배드리고 은혜받는 교회,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교회, 사람을 꾸짖거나 정죄하지 않는 교회, 성도님들이 은혜받아서 점점 예수의 얼굴을 닮아가는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얼굴이 나타나는 은혜롭고 따뜻하고 개방적인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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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첫 번째 주일 / 5월 다섯번째 주일
진실과 회개와 화해, 캐나다 원주민
사도행전 2:36 - 42
정해빈 목사

    

 

 


1.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로버트 하디 선교사(Robert Hardie)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로버트 하디는 우리들에게 친숙한 사람입니다. 토론토 대학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연합교회의 전신인 캐나다감리교에서 한국으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하디는 1900년 경 함경도 원산에서 선교와 의료 활동을 했는데 의료 활동도 신통치 않았고 선교 활동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성령이 내게 오셨을 때 성령의 첫 번째 요구는 교인들 앞에서 내 과거의 실패와 원인을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사람을 감동시킬 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없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영적인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을 미개하고 무지한 백성들로만 생각했을 뿐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양 선교사의 눈에 비친 구한말 조선 사람들은 그저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로 보였을 것입니다. 성령을 체험하기 전 하디 선교사는 환자들이 기피하는 권위적이고 엄격하고 쌀쌀맞은 의사였습니다. 하디는 1903년 8월 30일 원산감리교회 주일 예배 시간에 자신이 그동안 교만했던 것과 조선 사람들을 멸시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서양 선교사가 조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교만함을 고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소식이 원산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하디를 따라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디에 의해 시작된 회개가 널리 퍼져서 1907년 있었던 평양대부흥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되고 사랑과 나눔이 일어납니다. 막혔던 장벽이 무너지고 서로의 언어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외국 사람과 조선 사람이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제자들이 성령 받고 방언을 했을 때 해외에서 온 교포들이 제자들이 하는 말을 자기 모국어로 알아들었습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알게 하시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도록 역사하십니다.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고 상대방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흔히 성령받았다고 하면 방언을 떠오르는데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의 역사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진짜로 성령받은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은 성령이 주시는 9가지 열매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9가지 열매를 맺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받을수록 사랑과 기쁨, 친절과 선함, 온유와 절제가 넘치게 됩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많은 일들 중에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진실을 말하고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기쁘게 만드시지만 동시에 진실을 말하고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도록 만드십니다. 저 옛날 하디 선교사는 성령을 받고 자신이 교만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고백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한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시편 51편을 보면 다윗이 부하 우리야의 아내를 범한 후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한 기도가 나옵니다. “주님,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의 눈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주님의 판결은 옳으시며 주님의 심판은 정당합니다.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이 고백이 정말 다윗이 진심으로 회개하며 쓴 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시인은 주님 나의 죄를 회개하오니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 이사야 6장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을 환상으로 본 후에 주님은 거룩하신데 자신은 입술이 너무 부정하다는 것을 깨닫고 부정한 사람이 주님을 보았으니 나는 이제 죽었구나 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게 만드십니다.

2.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회개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입니다. 개인의 잘못을 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을 넘어서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잘못을 회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흔히 성령 받았다고 하면 방언 하고 눈물 흘리는 것을 연상하게 되는데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회개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거기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속된 말로 하면 질질 짜는 것에 멈추면 안 됩니다. 내가 과거에 나쁜 짓 하고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을 눈물로 회개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다음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는 이 사회가 성령님이 역사하는 바른 사회가 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거기까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개인적인 회개를 넘어서서 우리 사회가 정직하고 진실된 사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 제자들은 개인적인 회개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사회와 종교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는 유대 사회의 지도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유대 지도자들을 향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밖은 것을 회개하라고 말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걷어 부를 축적하고 로마와 타협하며 권력을 유지하고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 것을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개인의 죄를 회개하게 만드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의 죄를 회개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오늘은 모든 캐나다연합교회가 “캐나다 원주민들을 위한 진실과 화해 예배”로 드리는 날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캐나다 정부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Canada’s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를 만들어서 지난 과거에 있었던 원주민 기숙 학교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그동안 기숙 학교에서 살아남은 7000명의 생존자들을 인터뷰해서 내일 모레 6월 2일 오타와에서 최종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입니다. 18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120년 동안 약 15만 명의 원주민 자녀들이 부모 곁을 떠나 강제로 기숙 학교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난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부모를 그리워했을까요? 원주민 자녀들을 캐나다 시민으로 양성한다는 취지 아래 캐나다 정부는 어린 자녀들을 부모에게서 빼앗아  기독교가 운영하는 기숙 학교로 보냈습니다. 마치 100년 전에 하디 선교사가 조선 사람들을 무시했듯이 캐나다 정부도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원주민들은 미개하니까 그 자녀들을 부모에게서 떼어서 따로 교육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기숙 학교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정신적/육체적/성적 학대를 받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살을 하거나 약물 중독에 빠졌고 정상적인 어른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진12). 놀라운 것은 정부가 그런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이 인권 침해, 아동 학대이고 원주민 가정과 사회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반대를 해야 할 종교 단체가 그 기숙 학교의 운영을 맡았다는 데 있습니다. 기숙학교의 60%을 카톨릭 교회가 운영했고 30%을 캐나다연합교회가 운영했습니다. 기독교가 기숙 학교를 운영했다는 것은 캐나다 사회의 수치이고 캐나다 기독교 사회의 수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캐나다연합교회의 모든 교회들이 화해/회개의 예배를 드리고 오타와에서 하는 최종 행사에 참석하고 각 지역 별로 다양한 행사를 벌입니다.

진실로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열게 하시고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셔서 우리의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든지 과거에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도덕적으로 완벽한 민족이나 국가는 없습니다. 과거에 잘못을 했을 때 그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한국도 6.25 전쟁은 물론이고 베트남 전쟁에서 나쁜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최근 일본 아베 수상이 미국 의회당에서 연설을 했는데 일제의 침략이나 정신대 문제를 회피하고 남 이야기 하듯이 넘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거에 잘못된 행동을 한 것도 나쁘지만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더 나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여서서 우리의 허물을 보게 하시고 그 허물을 인정하도록 역사하십니다. 과거의 행동에서 벗어나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들의 개인적인 삶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성령의 9가지 열매, 사랑과 기쁨, 화평과 인내, 친절과 선함, 신실과 온유와 절제가 풍성하게 맺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Truth, repentance and reconcilation
Acts 2:36 - 42

Jesus was taken up to sit at the right side of God, and he was given the Holy Spirit, just as the Father had promised. Jesus is also the one who has given the Spirit to us, and that is what you are now seeing and hearing. David didn't go up to heaven. So he wasn't talking about himself when he said, "The Lord told my Lord to sit at his right side, until he made my Lord's enemies into a footstool for him." Everyone in Israel should then know for certain that God has made Jesus both Lord and Christ, even though you put him to death on a cross. When the people heard this, they were very upset. They asked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Friends, what shall we do?" (Acts 2:33-37)

Peter said, "Turn back to God! Be baptized in the name of Jesus Christ, so that your sins will be forgiven. Then you will be given the Holy Spirit. This promise is for you and your children. It is for everyone our Lord God will choose, no matter where they live." Peter told them many other things as well. Then he said, "I beg you to save yourselves from what will happen to all these evil people." On that day about three thousand believed his message and were baptized. They spent their time learning from the apostles, and they were like family to each other. They also broke bread and prayed together. (Acts 2:38-42)

Today is the Truth and Reconciliation Sunday of the United Church of Canada. When European settlers first came to Canada there were already people here, Indigenous peoples. Settler Canadians have worked to make all the Indigenous Nations more like Europeans. For over 100 years, Aboriginal children were removed from their families and sent to institutions called residential schools. The government-funded, church-run schools were located across Canada and established with the purpose to eliminate parental involvement in the spiritual, cultural and intellectual development of Aboriginal children. The last residential schools closed in the mid-1990s. During this chapter in Canadian history, more than 150,000 First Nations, Méétis, and Inuit children were forced to attend these schools some of which were hundreds of miles from their home. The cumulative impact of residential schools is a legacy of unresolved trauma pass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and has had a profound effect on the relationship between Aboriginal peoples and other Canadians.

Lately, Canada has been trying to say sorry. Part of saying sorry is to really listen to the person we hurt about how we hurt them. Canada government has had six years of meetings called the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all over the country to listen to Indigenous people about how we hurt them. Now the meetings are over, but that doesn’'t mean the apology is over. we have to stop hurting Indigenous peoples. We need to respect all different Nations, all different peoples. Peter said to the Jewish authorities in Acts chapter 2, "Everyone in Israel should then know for certain that God has made Jesus both Lord and Christ, even though you put him to death on a cross. Turn back to God! Be baptized in the name of Jesus Christ, so that your sins will be forgiven. Then you will be given the Holy Spirit." Truly Holy Spirit leads us to confess our wrongdoings and bear good fruits such as loving, happy, peaceful, patient, kind, good, faithful, gentle, and self-controlled. (Galatians 5:22).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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