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3.30 고난, 주님을 따라갑니다
  2. 2015.03.23 까마귀와 백합꽃을 보십시오
  3. 2015.03.02 참사람은 이웃을 섬긴다

종려주일/고난주일
고난, 주님을 따라갑니다
요한복음 17:11 - 19
정해빈 목사



기독교 신앙의 특징 중 하나는 고난을 피하지 않고 고난과 적극적으로 씨름한다는 데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많은 종교들이 고난을 피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불교의 경우에 아집과 집착을 벗으면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어리석음과 집착에서 벗어나 해탈하면 세상의 고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고난을 피하는 길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고난과 씨름을 합니다. 고난에 맞서 씨름함으로서 고난을 통과하려고 합니다. 고난과 씨름하고 통과해야만 참다운 구원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고통받는 우리를 돕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슬픔은 함께 나누면 줄어들고 기쁨은 함께 나누면 커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겪는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고 가르쳐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면 죄 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죄 값을 치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루셨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꼭 그렇게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하나님은 죄를 지었으면 죄 값을 요구하는 무서운 하나님이 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이 땅에서 죄와 불의와 폭력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고 당신의 아들을 우리 곁에 보내셨습니다. 이 땅에서 고난당하는 우리를 돕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고난 받으신 것은 죄 값을 치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스스로 가난해 지셨습니다.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스스로 아픈 몸이 되셨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겪는 모든 고통들, 굶주림, 목마름, 아픔, 슬픔, 외로움, 폭력, 배신, 죽음을 모두 다 겪으셨습니다. 모든 고통을 다 겪으심으로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우리의 위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겪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모두 다 겪으셨습니다. 사람이 힘들 때 곁에 있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주님께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난 2월에 고토 겐지 라는 일본 기독교인이 친구가 이슬람 국가에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중동 지방에 갔다가 붙잡혀서 처형된 일이 있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친구 곁에 간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친구가 되어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같이 나누어지심으로 우리의 고통을 줄여 주셨습니다. 고통을 당할 때, “내가 겪는 이 고통은 아무도 모르지, 자식들도 모르고 친구도 모르지” 라고 생각하시면 예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혼자 고통 중에 신음할 때 예수께서 내 곁에 계셔서 함께 고통을 받으심으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절대로 나 혼자서 고통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주는 두 번째 메시지는 이 땅에서 고난받는 사람들을 기억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 중에서 가장 고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들이 고난을 피하라고 가르친다면 기독교는 고난받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 사고와 재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기억하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 주님께서 그와 같은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희생자들, 약자들을 대표합니다. 예수께서 타락한 국가 권력과 종교 권력에 의해 매를 맞으시고 잔인하게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절기에 사순절이 있는 것은 주님의 고난을 묵상함과 동시에 오늘날 예수님처럼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잊혀집니다. 억울한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함께 합니다.

셋째로 고난이 주는 세 번째 메시지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고난이 있을 때에 그것을 피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고난과 씨름함으로서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무게를 짊어지고 인생을 살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이 있습니다.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현실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항상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을 피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없습니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는 내가 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날씨가 추운데 지난 2월에는 한달 내내 영하의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습니다.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은 캐나다 겨울을 십자가로 알고 견디며 살아야 합니다. 부모는 부모로서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가 있고 가장은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교통이 편리해서 그런지 자녀들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학교나 학원도 걸어갈 수 있고 학원 버스가 집 앞까지 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합니다. 학교도 데려다주어야 하고 학원도 데려다주어야 합니다. 어린 자녀는 집에 혼자 놔두면 안 되고 어른이 같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가장은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모시는 분들은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큰 기쁨이지만 때로는 힘든 십자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몸이 아픈 분들은 그 아픈 몸을 십자가로 여기고 그 아픈 몸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각자가 짊어져야 하는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고 주님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고난을 통과하는 사람만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주는 3가지 메시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고난을 나누기 위해 우리와 함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외로울 때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우리가 고난받을 때 주님이 내 곁에 계십니다. 둘째,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할 때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 말씀을 기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7장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면서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으나 그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제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내가 세상에서 이것을 아뢰는 것은 내 기쁨이 그들 속에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고난받을 때 아버지 그들을 지켜 주십시오. 제자들이 고난받을 때에 그들의 마음속에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해 주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우리가 고난받을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지켜주시고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걸어가신 주님을 바라보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과 씨름하고 고난을 통과하는 복된 여러분 되시기를 빕니다. 아멘.

Suffering, we follow the Lord
John 17:11 - 19

Holy Father, I am no longer in the world. I am coming to you, but my followers are still in the world. So keep them safe by the power of the name that you have given me. Then they will be one with each other, just as you and I are one. While I was with them, I kept them safe by the power you have given me. I guarded them, and not one of them was lost, except the one who had to be lost. This happened so that what the Scriptures say would come true. I am on my way to you. But I say these things while I am still in the world, so that my followers will have the same complete joy that I do. I have told them your message. But the people of this world hate them, because they don't belong to this world, just as I don't. Father, I don't ask you to take my followers out of the world, but keep them safe from the evil one. They don't belong to this world, and neither do I. Your word is the truth. So let this truth make them completely yours. I am sending them into the world, just as you sent me. I have given myself completely for their sake, so that they may belong completely to the truth. (John 17:11 - 19)

Today we commemorate Palm Sunday, the triumphal entry of Jesus into Jerusalem, the week before his death and resurrection. Palm Sunday, often referred to as Passion Sunday, marks the beginning of Holy Week, which concludes on Easter Sunday. The gospels record the arrival of Jesus riding into the city on a donkey, while the crowds spread their cloaks and palm branches on the street and shouted "Hosanna to the Son of David" and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to honor him as their long-awaited Messiah and King. The significance of Jesus riding a donkey and having his way paved with palm branches is a fulfillment of a prophecy spoken by the prophet Zechariah.

Christianity does not try to deny or escape suffering. Rather Christian faith strives to pass it through by facing it and wrestling with it. We can find this attitude from Jesus' earthly life. Although Jesus was innocent and righteous, Jesus underwent all kinds of suffering of life, such as starving, thirsting, loneliness, betrayal, wounded, tortured, and killed, because Jesus resisted evil, the corrupt earthly powers, and stood with those groaned with suffering. Spiritually speaking, God sent Jesus down to help us, when we are struggling with hardships. Jesus came to us in order to unite with us and to share our joys and sorrows together. So we are not alone when we are under a pain, because Jesus is with us.

Jesus prayed to God when he was about to leave his disciples, "Holy Father, I am no longer in the world. I am coming to you, but my followers are still in the world. So keep them safe by the power of the name that you have given me. Then they will be one with each other, just as you and I are one. Father, I don't ask you to take my followers out of the world, but keep them safe from the evil one." Jesus prayed for us not to be afraid of the world. Rather Jesus called us out to participate in the suffering of the marginalized. We are called take up our cross and follow Jesus. The suffering of Jesus reminds us of those who suffer from violence and injustice in the world. We take up the cross to walk together with social victims, in solidarity with them, and to share their social grief.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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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다섯번째 주일
까마귀와 백합꽃을 보십시오
누가복음 12:22 - 32
정해빈 목사

 

 1. 지난 주에 일주일 기도 휴가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는데 이번에 그런 시간을 가졌습니다. 리치몬드 힐에 있는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L'Arche Daybreak) 공동체에 갔더니 조그만 방 하나를 내 주었습니다. 약간의 경비를 내고 음식은 주방에서 해먹으면서 며칠 동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요일에 예배가 있다고 해서 예배당에 가 보았습니다. 그곳에 사는 장애인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 30-40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당에 조용히 앉아 있는데 어떤 젊은 친구가 제 머리에 손을 얹고 Hello 하고 인사를 합니다. 예배 중 성찬식을 하는데 장애인들이 배찬 위원을 했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몸이 아프고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지만 예배를 드리는 그들의 모습이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그곳에 있는 분들의 마음이 평화로운 것은 그곳을 품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라르쉬 공동체는 본래 프랑스인 쟝바니에 신부가 2차 대전 후에 장애인과 함께 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라르쉬는 방주(ark)를 뜻하는데 정상인과 장애인이 함께 생활하는 가정을 가리킵니다. 헨리 나우엔도 그곳에서 아담이라는 중증 장애인과 같이 생활하면서 [아담]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처음에 헨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담을 자신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아담과 같이 생활하면서 자신이 아담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헨리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담은 마음 속으로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와 함께 있으십시오. 이곳이 당신과 함께 할 장소라고 믿으십시오.’ 점점 아담이 내 선생이 되어가고 있었고 내가 삶의 광야를 헤매며 혼란 가운데 있을 때 아담은 나와 함께 걷고 있었으며 나를 이끌어 주었다. 아담은 사랑을 표현할 수도 없었고 마음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처럼 나는 그에게서 신성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깊은 침묵 가운데서 아담의 마음 속에 거하셨다고 믿는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는 동안 아담은 나를 마음 속 깊은 장소로 인도해 주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손을 댄 모든 사람을 치료해 주신 예수님에게서 나타나는 신비로운 사랑과 같았다. 아담과 함께 나는 거룩한 존재의 현존을 알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 아담은 내게 행위보다 존재가 더 중요함을, 사람들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중요함을, 혼자서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게 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들을 붙드시고 그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고 그들을 통해 우리들을 깨우쳐 주십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고 그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러시아의 작가인 톨스토이는 40대 이후에 기독교 신앙을 아들이고 회심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부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기독교 메시지가 들어있는 책을 많이 썼습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농부들이 비록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지만 수백 년 동안 내려오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해서 정직하고 순수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톨스토이는 그들의 삶을 흠모한 나머지 말년에 시골로 내려가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그가 러시아 농부들 사이에 전해지는 민담을 엮어서 만든 책이 [바보 이반]이라는 책입니다. 어느 나라에 군인, 장사꾼, 바보 이반 이렇게 3 형제가 살았습니다. 마귀들이 형제들을 가난하게 만들면 서로 싸울 것이라고 생각해서 첫째 아들은 전쟁터에서 지게 만들고 둘째 아들은 장사하다가 빈털터리로 만들고 막내는 배를 아프게 만들었는데 막내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열심히 농사를 짓습니다. 바보 이반은 시골로 쫓겨온 첫째와 둘째 형을 받아주고 형들을 위해 집을 지어 줍니다. 이반에게 붙잡힌 마귀가 볏 집단으로 군대를 만드는 기술과 나뭇잎으로 금화를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이반은 볏 집단으로 군대를 만들어서 노래를 부르게 하고, 나뭇잎으로 금화를 만들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3형제는 나중에 서로 다른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큰 형은 군인들을 시켜서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혼내주고 둘째 형은 백성들에게 각종 세금을 부과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이반의 나라로 도망쳐 옵니다. 이반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누구나 살 수 있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누구나 일을 해야 합니다. 손에 굳은살이 박힌 사람은 식탁에 앉아 식사할 수 있지만 굳은살이 없는 사람은 남이 먹다 남은 것을 먹어야 합니다. [바보 이반] 이야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우직하고 바보 같지만 그 바보 이반이 다스리는 나라가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2.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갈릴리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이나 창고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으냐?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의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 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을 소재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가 자라서 새들이 그곳에 머무는 것과 같고 여인이 밀가루에 누룩을 집어넣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언급하신 까마귀, 백합꽃, 겨자씨, 누룩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사소하고 더러운 것들입니다. 까마귀의 반대는 독수리입니다. 독수리는 강하고 용맹해서 로마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까마귀에 비교하셨습니다. 마태는 까마귀가 너무 촌스럽다고 생각해서 까마귀를 삭제하고 그냥 새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까마귀는 색깔이 까맣기 때문에 불결하고 더러운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까마귀는 갈릴리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정결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집 안에서 매일 목욕을 하고 깨끗하고 좋은 것만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갈릴리에는 목욕탕도 마을에 1개 있었을 것이고 우물가도 마을에 1개 있었을 것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깨끗하고 좋은 것만 먹을 수가 없고 아무거나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하면 정결법을 지킬 수가 없고 정결법을 지킬 수가 없으면 죄인이 됩니다. 가난하면 죄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보잘 것 없는 까마귀를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백합꽃은 길가에서 자라는 민들레/잡초/엉겅퀴를 가리킵니다. 예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솔로몬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자씨는 다 크면 1미터 정도 자라 덤불을 이루는데 쓸데없이 아무데서나 자란다고 해서 잡초 취급을 받았습니다. 겨자씨의 반대는 키가 크게 자라는 백향목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혼자만 키가 크게 자라는 백향목이 아니라 비록 작게 자라지만 새들을 품어주고 새들이 와서 알을 낳는 겨자나무가 하나님 나라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룩도 마찬가지입니다. 누룩은 음식을 부풀게 하는데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발효 혹은 부패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몸에 이로운 유산균이 활동하면 김치/된장 같은 발효 식품이 되고 몸에 해로운 유산균이 활동하면 음식이 썩고 곰팡이가 핍니다.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음식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누룩을 멀리했습니다. 누룩도 부정하고 그 누룩을 만지는 여인도 부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할 때 빨리 탈출하기 위해서 누룩을 넣지 않는 빵/무교병을 먹었습니다. 그것이 전통이 되어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누룩을 넣지 않는 빵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여인이 빵에 누룩을 넣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빵에 누룩을 넣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먹을 수가 없습니다. 빵에 누룩을 넣어야 빵이 부풀어 오르게 되고 그래야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먹을 수가 있습니다.

“비록 여러분이 까마귀처럼 지저분하고 겨자씨처럼 작을 지라도, 누룩없는 비싼 빵이 아니라 누룩 있는 값싼 빵과 같을 지라도 스스로 자책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먹이시고 입히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새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혼자서만 높게 자라는 백향목이 아니라 겨자씨가 자라 작은 나무가 되어 새들을 품어주는 겨자나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나무가 작은 새를 품어주고 작은 새가 작은 나무를 품어줄 때 하나님 나라는 거기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통 작은 자들이 모여서 큰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교회에서 말합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꼭 큰 일을 안해도 좋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은 자들이 모여서 작은 일을 할 때 시작됩니다. 그렇게 작게 천천히 하나님 나라는 자라게 될 것입니다. 성도님들 중에는 이곳에 살다가 이곳을 떠나는 분들도 계시고 이곳에서 살고 공부하기 위해 이곳에 오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까마귀를 먹이시고 백합화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작게 시작하는 나라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고난 중에도 용기를 갖는 여러분 되시기를 빕니다. 아멘.

Look at crows and wild flowers
Luke 12:22 - 32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 tell you not to worry about your life! Don't worry about having something to eat or wear. Life is more than food or clothing. Look at the crows! They don't plant or harvest, and they don't have storehouses or barns. But God takes care of them. You are much more important than any birds. Can worry make you live longer? If you don't have power over small things, why worry about everything else? Look how the wild flowers grow! They don't work hard to make their clothes. But I tell you that Solomon with all his wealth wasn't as well clothed as one of these flowers. God gives such beauty to everything that grows in the fields, even though it is here today and thrown into a fire tomorrow. Won't he do even more for you? You have such little faith! Don't keep worrying about having something to eat or drink. Only people who don't know God are always worrying about such things. Your Father knows what you need. But put God's work first, and these things will be yours as well. My little group of disciples, don't be afraid! Your Father wants to give you the kingdom. (Luke 12:22-32)

Henri Nouwen met Adam Arnett, a young resident of the community who was gripped by frequent seizures and could neither speak nor move without assistance. Nouwen assisted Adam with morning bathing, dressing, eating and preparing for the day. But his relationship with Adam opened Nouwen to a new awareness of self, a transformation of his faith, and what it means to be Beloved of God. He said in his book, [Adam: God's Beloved, 1997], "here is the man who more than anyone connected me with my inner self, my community, and my God. Here is the man I was asked to care for, but who took me into his life and into his heart in such an incredibly deep way. Adam was my teacher, my friend, my guide... he was the one who more than any book or professor led me to the person of Jesus."

Jesus said, "look how God cares for crows and wild flowers." These terms symbolize those poor and weak in Galilee. They were like crows not eagles, since they were called dirty sinners. They were so poor that they could not cleanse themselves required by the Holy Code. They were like weeds not roses, since they were called vulnerable and worthless. But Jesus said, "Look at the crows! They don't plant or harvest, and they don't have storehouses or barns. But God takes care of them. You are much more important than any birds. Look how the wild flowers grow! They don't work hard to make their clothes. But I tell you that Solomon with all his wealth wasn't as well clothed as one of these flowers."

Jesus also said, "What is God's kingdom like? What can I compare it with? It is like what happens when someone plants a mustard seed in a garden. The seed grows as big as a tree, and birds nest in its branches. It is also like what happens when a woman mixes yeast into three batches of flour. Finally, all the dough rises." God's world is like mustard seeds grow into small bushes and have birds rest there. The Kingdom of God, Jesus said, is like small birds and small trees hold each other. It is not  necessarily big start or big success. God's world starts small and grows slowly. Jesus said to his people in Galilee, "Do not be afraid, do not compete each other, do not disparage yourselves. Instead believe that God loves you. God works with you, although you are like crows and wild flowers. Jesus said, "Love and cherish each other. Then the Kingdom of God dwells and grows among you."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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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두번째 주일
참사람은 이웃을 섬긴다
마태복음 20:20 - 28
정해빈 목사

 


1. 인간과 동물, 자연과 환경, 생명의 변화와 발전을 연구하는 사람을 생태학자 혹은 진화생물학자라고 부릅니다. 최근에 진화생물학자가 생명의 변화와 발전에 대해서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 의하면 지금 지구상에는 4 종류의 동물, 인간/개미/꿀벌/돌고래가 가장 머리가 좋고 잘 산다고 합니다. 인간/개미/꿀벌/돌고래가 가장 머리가 좋고 잘 사는 이유는 그들이 서로 협력하며 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수컷 돌고래가 짝짓기를 하려면 암컷을 만나야 하는데 넓은 바다에서 암컷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컷 돌고래들은 두세 마리씩 짝을 지어서 암컷을 찾아다닙니다. 암컷을 찾으면 첫 번째 수컷이 짝짓기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수컷들은 다시 암컷을 찾아다니고 두 번째 암컷을 찾으면 두 번째 수컷이 짝짓기를 합니다. 수컷들이 두세 마리씩 같이 다니면서 서로 협력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도와주었으니까 이번에는 네가 나를 도와다오 이렇게 서로 약속을 하고 협력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얌체 수컷 한 마리가 다른 동료의 도움을 받아서 짝짓기를 하고난 후에 다른 동료를 도와주지 않고 멀리 도망가면 그 얌체 수컷은 돌고래 세계에서 따돌림을 받는다고 합니다. 자기 욕심만 챙기고 도망갔기 때문에 다시 돌아와도 동료들이 친구로 받아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돌고래들은 이렇게 넓은 바다에서 짝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서로 협력을 하면서 짝을 찾는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예는 꿀단지 개미입니다. 개미들이 식물에서 꿀을 채취해 오는데 그걸 담아둘 항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개미들 중 일부가 자발적으로 천장에 올라가 입을 벌리고 매달립니다. (사진). 그러면 다른 개미들이 그 개미 뱃속에 꿀을 집어넣게 되는데 나중에는 천장에 매달린 개미 배가 100배까지 커지게 됩니다. 많은 개미들 중에 어떤 개미가 천장에 매달릴까 궁금해서 천장에 매달린 개미들을 치워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몇몇 개미들이 또 자발적으로 천장에 올라가서 입을 벌리고 매달리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밑에서 놀고 있을 때 천장에 매달린 개미는 공동체를 위해서 식량을 저장하고 가만히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들 생각에는 나는 천장에 매달려 있는데 아래에서는 놀고 있으면 화가 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천장에 매달린 개미들은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미들이 자발적으로 꿀단지 개미가 된다는데 있습니다. 만약 힘센 개미가 힘이 약한 개미한테 가서 천장에 매달려 있으라고 말하면 그것은 강요하는 것이 됩니다. 누군가는 공동체를 위해서 음식을 저장하는 꿀단지 개미가 되어야 하는데 누가 그 역할을 할 것이냐? 그런데 개미들은 아무나 자발적으로 꿀단지 개미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개미들은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데 사람들은  강자가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옛날의 제국주의 나라들이 해외에 식민지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물자와 자원을 자기 나라로 빼돌렸습니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약소국가들을 강제로 꿀단지 개미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개미들이 공동체를 위해서 스스로 꿀단지 개미를 자원하는 모습은 우리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 잠언서도 개미한테 가서 그들이 사는 것을 배우라고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개미/꿀벌/돌고래가 가장 머리가 좋고 잘 사는 이유는 서로 협력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협력을 잘하기 때문에 짝도 찾을 수 있고 음식도 더 많이 저장할 수 있고 어려움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협력을 잘하는 동물은 공동체에서 인정받지만 협력하지 않는 동물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인간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짧게 보면 이기적이고 약삭빠른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길게 보면 그런 사람은 오래 성공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너그럽고 협력을 잘하는 이타적인 사람들이 마지막에 성공하고 가장 오래 살게 된다고 진화생물학자는 말합니다. 다윈이라는 학자가 진화론을 말하면서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가장 강한 생물이 살아남는다는 뜻인데 요즘 학자들은 이 말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자연을 깊게 조사해 보니까 힘센 동물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남들보다 약해도 환경에 잘 적응하면 살아남게 됩니다. 그런데 진화생물학자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 중에서도 누가 끝까지 살아남느냐? 어려울 때 서로 협력하는 동물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서로 협력하면 오래 살지만 협력하지 않으면 빨리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자연 연구를 통해서 밝혀졌습니다.

2. 오늘이 3.1절 96주년인데 동아시아 역사를 보아도 서로 협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저 옛날 안중근 의사는 오늘날로 말하면 유럽이 EU를 만들고 미국/캐나다가 경제 공동체로 함께 번영하듯이 동아시아가 함께 협력하고 번영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글을 읽어보면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해서 대단히 식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중/일 세 나라가 오늘날의 유럽처럼 화폐도 같이 만들어서 큰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거기에 반해서 조선 총독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했습니다. 일본이 서양 문물을 제일 먼저 받아들였고 조선과 중국은 미개하니까 일본이 동아시아를 지배하면 동아시아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자고 말했는데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이 지배하면 잘 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500년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세계가 일본/중국/인도 3나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중국과 인도를 정복하기 위해서 임진왜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100년 전 이토 히로부미는 역시 세계가 일본/중국/서양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중국과 서양을 정복하기 위해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렇게 일본은 기회만 있으면 세상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남을 지배하려는 목표를 바꾸지 않는 한 일본은 나른 나라들부터 인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진화생물학자의 주장처럼 서로 협력하면 모두가 잘 살게 되지만 지배하고 억압하면 망하게 된다는 것을 인류 역사는 가르쳐 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20장 말씀을 보면 제자의 가족들이 예수께 와서 우리 자식들을 나중에 높은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너희가 정말 나의 오른 편과 왼편에 앉고 싶으면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셔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 이 말씀처럼 인류 역사를 보면 오랫동안 힘 있는 사람들이 힘 없는 사람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이 백성을 마구 내리눌렀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예수님 당시의 로마 제국을 가리킵니다. 힘센 제국이 힘이 없는 나라를 쳐들어가서 식민지를 만들고 백성들을 마구 내리눌렀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자는 지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인자/사람의 아들/참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삶을 통해서 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제까지의 인간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참 인간성, 사람다운 사람, 진짜 사람,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 이전의 인간상은 힘을 숭배하는 인간상이었습니다. 힘으로 남을 정복하고 지배하려고 하였습니다. 다윈으로 말하면 적자생존, 힘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인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지배하는 문화를 섬기는 문화로 바꾸셨습니다. 힘으로 남을 지배하는 것은 통쾌하고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남을 섬기는 것은 힘이 듭니다. 힘들고 지칩니다. 그래서 남을 섬기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진화생물학자의 말을 인용하면 그렇게 남을 섬기고 협력하는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까지 살아남게 됩니다. 하늘의 복을 받습니다. 가장 오래 사는 복을 받습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을 참사람, 진실한 사람, 섬기는 사람으로 고백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도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섬김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True person serves neighbour
Matthew 20:20-28

According to the research in Ecology and Evolutionary Biology, some creatures can survive better by cooperating and caring each other. For example, researchers have discovered that male dolphins form social alliances with one another. One team of dolphins will recruit the help of another team of males to gang up against a third group, a sort of multi-tiered battleplan that scientists said requires considerable mental calculus to work out. Males collude with their peers as a way of stealing fertile females from competing dolphin bands. And after they have succeeded in spiriting a female away, the males remain in their tight-knit group to assure the female stays in line. Two or three males will surround the female, leaping and bellyflopping, swiveling and somersaulting, all in perfect synchrony with one another.

Another example is found in the life of honeypot ants, also called honey ants, who are specialized to be gorged with food by workers to the point that their abdomens swell enormously. They function as living larders. Honey ants are unique in using their own bodies as living storage, but they have more function than just storing food. Some store liquids, body fat, and water from insect prey brought to them by worker ants. They can later serve as a food source for their fellow ants when food is otherwise scarce. When the liquid stored inside a honeypot ant is needed, the worker ants stroke the antennae of the honeypot ant, causing the honeypot ant to regurgitate the stored liquid.

The mother of James and John came to Jesus with her two sons. She knelt down and started begging him to do something for her. Jesus asked her what she wanted, and she said, "When you come into your kingdom, please let one of my sons sit at your right side and the other at your left." Jesus answered, "Not one of you knows what you are asking. Are you able to drink from the cup that I must soon drink from?" James and John said, "Yes, we are!" Jesus replied, "You certainly will drink from my cup! But it isn't for me to say who will sit at my right side and at my left. That is for my Father to say." When the ten other disciples heard this, they were angry with the two brothers. But Jesus called the disciples together and said: You know that foreign rulers like to order their people around. And their great leaders have full power over everyone they rule. But don't act like them. If you want to be great, you must be the servant of all the others. And if you want to be first, you must be the slave of the rest.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a slave master, but a slave who will give his life to rescue many people. (Matthew 20:24-28)

Jesus said, "foreign rulers like to order their people around. And their great leaders have full power over everyone they rule." Probably, foreign rulers here might indicate the Roman Empire who had controlled people in Galilee by force. Jesus said, "But don't act like them. If you want to be great, you must be the servant of all the others. And if you want to be first, you must be the slave of the rest." Jesus said, "I,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a slave master, but a slave or servant who will give his life to rescue many people." Jesus showed us the true humanity, totally different from the life of foreign rulers. In Jesus life, we see true humanity, image of God. As a true human of human, Jesus lived to serve others, giving his life to rescue many people in the world.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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