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네번째 주일 / 9월 네번째 주일
창조절, 불의한 세상과 풍성한 삶
창세기 1:27-31, 마태복음 6:30-34
정해빈 목사

 

   

 

 


1. 창조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여러 번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을 만드신 후에도 보시기에 좋았다, 땅과 바다를 만드신 후에도 보시기에 좋았다, 식물과 나무를 만드신 후에도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씀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보시기에 좋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쓸모가 있기 때문에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 그 자체가 보기 좋다는 뜻입니다. 회사가 사람을 뽑을 때는 회사에 필요한 사람을 뽑고 나라가 이민지를 뽑을 때는 그 나라에 필요한 사람을 이민자로 뽑습니다. 회사나 나라가 필요한 사람을 뽑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 점점 이런 식으로 그 사람이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로 사람을 평가한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건강하고 똑똑하고 젊은 사람만 쓸모있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가치로 보지 않으시고 존재가치로 보십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그 사람이 쓸모 있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냥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관점으로 보면 길가에 있는 돌멩이, 이름 없는 들꽃, 작은 나무는 쓸모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이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시기에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돌멩이가 아름다운 것은 그냥 돌멩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똑똑하지도 못하고 젊지도 못하고 건강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준으로 우리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열등감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습니다. 나를 보시며 보시기에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내가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 중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과 생육하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옛날 고대 종교들을 보면 왕이나 황제만이 하나님의 형상/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이나 황제를 가리켜 신의 아들이다, 신의 아들로 입양되었다, 천자(天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저 옛날 수천 년 전 아직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그때에 창세기는 이미 천부인권선언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차별하면 그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향해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여라, 채소와 나무 열매를 먹어라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풍성하고 행복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이야기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똑같이 평등하게 지으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먹거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한 삶을 살라고 이 세상을 지으셨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에 풍성함이 사라졌습니다. 풍성함 대신 차별과 억압과 빈곤이 찾아왔습니다. 정의로운 세상이 아니라 불의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유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말이 달콤하게 들렸습니다. 나도 하나님처럼 높은 사람이 되어서 세상을 다스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과 권력을 쥐고 세상을 내 마음대로 통치하겠다는 욕망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욕망 때문에 세상은 뒤틀리게 되었습니다. 풍성함과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다툼과 갈등과 불의와 빈곤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2.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문학 베스트셀러 중에 [총,균,쇠]라는 책이 있습니다. 영어로 하면 [Gun,Germ,Steel]이 됩니다. 저자가 젊은 시절 태평양 뉴기니 섬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원주민 지도자가 “왜 우리 흑인들은 당신 백인들처럼 기계를 만들지 못하는가?" 질문을 했습니다. 저자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는데 총과 세균과 쇠가 인류 역사를 바꾸었다고 말합니다. 맨 처음 인류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농경생활을 시작했는데 아시아와 유럽은 가로로 붙어 있어서 농경문화가 쉽게 전파될 수 있었지만 아메리카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서 문화가 쉽게 전파될 수 없었습니다. 농경생활을 하면서 가축을 길렀는데 가축을 통해서 천연두, 결핵 같은 세균이 사람에게 전염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축을 가까이 한 아시아/유럽 사람들은 면역력이 생겨서 세균을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했을 때 자기 몸에 세균도 같이 가지고 왔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세균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서 순식간에 병균에 감염되어 죽게 되었습니다. 면역력도 강하고 거기에 더해서 쇠가 발견되고 총이 발명되면서 유럽 사람들은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명의 스페인 군대가 2000만 명의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것도 총과 균과 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 세상을 내 마음대로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아름다운 세상을 불의한 세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누구는 지배하고 누구는 지배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요즘 뉴스에 쿠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교황이 방문했고 미국과 수교를 정상화했습니다. 스페인이 아프리카에서 100만 명의 노예를 데리고 왔는데 그 사람들의 후예들이 오늘날의 쿠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경제를 봉쇄해서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평균 수명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합니다. 가난한 나라인데 왜 평균 수명이 높을까, 첫째는 날씨가 따뜻하고 의료 기술이 발달해서 동네마다 가정의가 있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건강을 체크합니다. 둘째는 국가에서 밀가루, 기름, 커피 같은 생필품을 공급합니다. 셋째는 성격이 긍정적이어서 늘 노래와 춤을 춥니다. 넷째는 유기농 농사를 지어서 무공해 과일과 야채를 즐겨 먹습니다. 비료가 부족하니까 비료 대신 지렁이를 이용해서 천연 비료를 만들고 여러 작물을 같이 심어서 병충해가 헷갈리게 만듭니다. 쿠바에서 만든 천연건강식품과 약품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어느 나라든지 완벽한 나라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해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부자 나라라고 해서 다 행복한 것도 아니고 가난한 나라라고 해서 다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비료와 고기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유기농 농사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것이 유명해져서 유기농 농사법을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멕도날드 헴버거를 먹지 않아서 쿠바 사람들이 건강한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꼭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살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살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삭개오가 돈은 많이 벌었지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와 함께 식사하시며 풍성한 삶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삭개오가 지금까지 부정한 방법으로 번 돈을 다 돌려주겠다고 말했을 때 예수께서는 지금 이 집에 구원이 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유한 사람은 물질에 집착하기 때문에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웃과 물질을 나누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면 지금보다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풍성한 삶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풍성한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불행한 것은 세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내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이 세상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여기서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해도 얼마든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웃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원수를 사랑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면 얼마든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 때 지금 여기서 풍성한 삶은 시작될 줄로 믿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주님의 말씀따라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Unjust world and abundant life
Genesis 1:27-31, Matthew 6:30-34

So God created humans to be like himself; he made men and women. God gave them his blessing and said: Have a lot of children! Fill the earth with people and bring it under your control. Rule over the fish in the ocean, the birds in the sky, and every animal on the earth. I have provided all kinds of fruit and grain for you to eat. And I have given the green plants as food for everything else that breathes. These will be food for animals, both wild and tame, and for birds. God looked at what he had done. All of it was very good! Evening came and then morning--that was the sixth day. (Genesis 1:27-31)

God gives such beauty to everything that grows in the fields, even though it is here today and thrown into a fire tomorrow. He will surely do even more for you! Why do you have such little faith? Don't worry and ask yourselves, "Will we have anything to eat? Will we have anything to drink? Will we have any clothes to wear?" Only people who don't know God are always worrying about such things. Your Father in heaven knows that you need all of these. But more than anything else, put God's work first and do what he wants. Then the other things will be yours as well.  Don't worry about tomorrow. It will take care of itself. You have enough to worry about today. (Matthew 6:30-34)

Jared Diamond explains in his book [Guns, Germs, and Steel] why some societies are more materially successful than others. He attributes societal success to geography, food production, immunity to germs, the domestication of animals, and use of steel. Major portions of Eurasia had a natural advantage in developing agriculture and domesticating animals because of geography and the presence of plants. The landmass of Eurasia, laid out on an east-west axis, allowed for the sharing of crops, animals, and ideas. The Americas, stretched out on a north-south axis, traverse various climate zones and geographic boundaries that discourage trade. The diversity and density of Eurasian populations created an immunity to germs that would later wipe out the more isolated populations of the Americas.

According to Genesis, God created all creatures and said, "Be fruitful, multiply, and fill the earth." God made human beings, man and woman, with God's image. God values us, not because we are more beautiful and useful than others, but because we are made up of God's image. God loves us as we are. Although God created the world good to God, this world has become the land of injustice and unequality, mainly due to human beings' desire to rule over the world as they want. But Jesus showed us how to live an abundant life in this world. Jesus taught the rich that abundance comes when they share their wealth with neighbours. Jesus also said, when the poor welcome each other and love their enemies, the abundance of life comes to them. Instead of being attached to wealth or blaming the unjust world, we are called to live an abundant life. This life is nothing to do with how much we have or not. It depends on our attitude of life. It comes when we long for the Kingdom of God, loving and blessing each other, sharing foods, and believing in all abundance coming from God.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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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세번째 주일 / 9월 세번째 주일

창조절, 빛이 있어라 말씀하셨다

창세기 1:1-3, 잠언서 8:22-27

정해빈 목사


 


 


1. 성령강림절이 지나고 9월부터 창조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세상 달력이 있듯이 교회에는 교회 달력이 있습니다. 대림절/성탄절/주현절/사순절/부활절은 성자 예수님을 묵상하는 절기이고 성령강림절은 성령 하나님을 묵상하는 절기이고 창조절은 창조주 하나님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앞으로 9월부터 11월까지 창조, 자연, 생태계, 역사, 인간, 하나님 나라, 종말 등의 주제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 기록/고백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 속에 우리 삶의 모든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라 고대인들의 신앙고백을 기록한 책입니다. 가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했으니까 하루를 천년으로 계산해서 지구가 6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조롱합니다. 성경이 과학책이라면 학교 과학(Science) 수업 시간에 성경을 공부해야 하지만 과학 수업 시간에 성경을 공부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과학책이 아니라 고대 신앙인들의 신앙고백을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과학이 성경보다 더 중요하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은 우리에게 지식을 가르쳐 주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의미와 목적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과학책보다 성경책이 우리의 삶에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지식도 필요하지만 삶의 지혜와 의미와 목적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신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진실되고 의미있고 풍성한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일종의 옛날 역사책인데 사람들이 역사책을 쓰는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라가 발전할 때 역사책을 쓰거나 아니면 나라가 망했을 때 역사책을 씁니다. 나라가 발전할 때는 자기 나라를 자랑하기 위해서 역사책을 씁니다. 반대로 나라가 망할 때는 국민들을 위로하고 잘못된 과거 역사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역사책을 씁니다. 일제 시대에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라는 책에서 조선의 지도층이 고대 만주에서 활동했던 조상들의 진취적인 기상을 잃어버리고 한반도에 안주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수탈하고 중국 사대 사상에 젖어들면서 스스로 왜소해졌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썼습니다. 조선 백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조선상고사]를 썼습니다. 마찬가지로 히브리 백성들은 나라가 망해서 바벨론 포로가 되었을 때 성경책을 써서 백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제국에 포로로 끌려와보니 바벨론 사람들이 마르둑이라는 최고 신을 믿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창조 신화에 의하면 최고신 마르둑과 바다를 관리하는 신 티아맛(Tiamat)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마르둑이 티아맛을 죽여서 그 반쪽을 위로 휘어서 하늘을 만들고 나머지 반쪽을 아래로 휘어서 땅을 만들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마르둑은 자기와 함께 싸운 신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서 인간을 만들어 신들을 섬기게 했습니다. 바벨론의 창조 이야기는 전쟁으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끝이 납니다. 창조 이야기를 보면 그 나라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은 창조 이야기를 통해서 자기 나라가 얼마나 힘이 쎈 나라인지를 과시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히브리 백성들은 이런 창조 이야기를 믿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인들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히브리인들이 고백한 창조 이야기는 아름답고 평화스럽습니다. 거기에는 전쟁도 없고 갈등도 없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혼돈, 공허, 어둠, 깊은 물 같은 말이 나오는데 모두가 부정적인 말들입니다. 이런 말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 백성들의 어려운 상황을 가리킵니다. 세상에 어둠이 가득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온 세상을 다스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둠이 깊음 위에 있다는 말은 당시 세상에 물이 많아서 물이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당시 바벨론 제국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어서 자주 물이 범람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어둠/혼돈/공허/깊음이 많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빛을 만드시고 질서를 세우시고 사람이 살기에 좋은 세상을 만드셨다고 그들은 고백했습니다.


2. 맨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이 있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빛이 있어라가 아니라 반드시 빛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이 어두운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그냥 놔두지 않고 반드시 밝은 세상으로 바꾸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인들은 고백하기를 하나님은 어두움에서 빛을 만드시고 우리를 밝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고 있지만 반드시 우리를 포로에서 구해주실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빛을 만드신 주님께서는 이어서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말씀하셨습니다. 물과 육지의 경계를 정해서 물이 육지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물이 땅을 삼키는 경우가 많아서 물을 무서워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고백하기를 우리 하나님은 물을 붙잡아두셔서 물과 육지의 경계를 정하신 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물을 붙잡아두니 땅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으로 하여금 동물과 식물과 나무와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구약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기쁨과 감사와 생명이 넘칩니다. 바베론에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하며 고난을 견뎠습니다. 어두움에서 빛을 만드신 주님, 물에서 땅이 솟아나게 하신 주님, 땅에서 먹거리가 나오게 하시는 주님, 그 주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이 세상을 좋은 세상으로 만드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시골에 가보면 100년, 200년 된 오래된 집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집을 지어도 사람이 살고 있느냐 살고 있지 않느냐에 따라서 집이 달라집니다. 집이 사람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집에 사람의 기운이 있으면 오래가지만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곧 폐허가 되고 흉가가 됩니다. 집을 크게 고친 것도 아니고 그냥 열심히 쓸고 닦은 것이 전부인데 그런 집은 수백 년을 가지만 그렇지 않은 집은 몇 십 년을 가지 못합니다. 어떤 집은 아내가 집을 쓸고 닦지만 어떤 집은 남편이 집을 쓸고 닦습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그렇게 쓸고 닦아야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도 이와 같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한번 창조하시고 그 다음부터는 나는 모른다고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마치 집주인이 집을 지은 다음에 집을 쓸고 닦듯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세상을 유지하고 관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신 다음에 가꾸지 않고 내버려 두셨다면 이 지구는 바로 폐허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둠이 찾아오고 물이 육지를 덮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구가 매일 한번 씩 도는 것을 자전이라고 부르고 1년에 한번 씩 태양 주변을 도는 것을 공전이라고 하는데 만약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멈추면 지구 위 생물은 그 순간 살 수가 없게 됩니다. 태양과 조금만 가까워지면 지구는 뜨거워지고 조금만 멀어지면 지구는 추워집니다. 지구의 각도가 1도만 틀어져도 지구는 살 수 없는 곳이 됩니다. 무엇인가 보이지는 영적인 힘이 이 세상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아름답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창조하시며 관리하시고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늘 우리가 두 번째로 읽은 잠언서 8장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던 그 태초에 주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계셨다. 아직 깊은 바다가 생기기도 전에, 물이 가득한 샘이 생기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여기서 말하는 나는 지혜를 가리킵니다. 태초에 지혜가 제일 먼저 태어났다는 말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지혜가 가장 먼저 필요하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고 했습니다. 잠언서와 요한복음이 말하는 말씀과 지혜는 하나님의 오른팔과 왼팔을 가리킵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과 지혜가 필요하셨습니다. 어둠은 물러가고 빛이 있어라, 바다는 육지를 침범하지 말아라, 땅과 바다에 먹거리가 풍성해져라 말씀하셨습니다. 동시에 이 세상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서 지혜를 사용하셨습니다. 말씀과 지혜는 세상 창조의 원동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지혜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신 것처럼 우리들도 말씀과 지혜로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새학년 새학기를 맞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것은 주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삶의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주의 지혜가 내 삶을 이끌게 하옵소서, 그래서 주님께서 아름답게 만드신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더 조화롭게 더 풍성하게 만들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Let there be light 2015년 9월 20일

Genesis 1:1-3, Proverbs 8:22-27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The earth was barren, with no form of life; it was under a roaring ocean covered with darkness. But the Spirit of God was moving over the water. God said, "I command light to shine!" And light started shining. God looked at the light and saw that it was good. He separated light from darkness and nam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Night." Evening came and then morning--that was the first day. (Genesis 1:1-5)

 

From the beginning, I was with the LORD. I was there before he began to create the earth. At the very first, the LORD gave life to me. When I was born, there were no oceans or springs of water. My birth was before mountains were formed or hills were put in place. It happened long before God had made the earth or any of its fields or even the dust. I was there when the LORD put the heavens in place and stretched the sky over the surface of the sea. I was with him when he placed the clouds in the sky and created the springs that fill the ocean. I was there when he set boundaries for the sea to make it obey him, and when he laid foundations to support the earth.(Proverbs 8:22-29)

 

The story of creation is so familiar that we have become accustomed to mining it for historical accuracy or scientific insight. However, its original use was likely liturgical, addressing a community of exiles. It came out of the priestly tradition and was written during the Babylonian exile when Hebrew exiles longed to be assured that God would find order out of their chaos. God would create order illuminating the darkness and separating day from night, land from water. Here the Creator is described as sweeping over the chaos and setting everything in its place. In the midst of despair or hopelessness, when a people feel that God is too absent or too far from their cries, this text of proclamation assures that the Creator has created and continues to do so in the face of chaos or the formless void.

 

God does not make something that is simply there. Rather, everything comes alive with God’s very word and wisdom, and continues to burst forth with life. The Gospel of John 1 and Proverbs 8 describe word and wisdom as God's agents who create the world. God ordered creation with word and made the world harmonious with wisdom. The word symbolizes the power of God and the wisdom indicates the workmanship of God. We are blessed to live out this world that God made with word and wisdom. Although the world is not perfect and struggles with injustice, this world is beautiful and sustainable because God holds the world and is still creating the world. We are called from God to make this world more right and equitable. Let your word and wisdom shine upon us and this world!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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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두번째 주일 / 9월 두번째 주일

창조절, 폭력의 하나님과 자비의 하나님

요나서 4:9-11, 마태복음서 16:1-4

정해빈 목사

 

 


 

1. 창조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성경은 히브리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고백을 기록한 책인데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하나님을 만났는지를 잘 기록해 놓았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히브리 사람들이 고백한 두 종류의 하나님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메시야 하나님 이미지이고 두 번째는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불행하게도 성경에는 두 번째 이미지보다 첫 번째 이미지가 훨씬 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보다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이미지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메시야 하나님이 아니라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메시야 하나님을 따르면 안 됩니까? 이렇게 질문하실 수 있습니다.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메시야 하나님을 따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힘과 능력을 좋아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폭력적인 하나님을 따르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쉽게 남을 정죄하고 이웃에게 말과 행동으로 폭력을 행사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이미지가 여러 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출애굽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노예로 고통받는 히브리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 사람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 재앙으로 인해 이집트의 첫 번째 자식/동물들이 죽임을 당했고 각종 자연재해와 전염병이 닥쳤습니다. 물론 이 일들은 바로 왕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메시야가 되셔서 상대방을 향해 폭력을 휘두른 것은 분명합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하나님이 전쟁 용사가 되셔서 상대방을 폭력으로 부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폭력을 써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폭력을 메시야 하나님의 구원하는 폭력이라고 부릅니다. 옛날에도 그렇고 오늘날에도 이런 하나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에게 무서운 벌을 내려 주십시오. 그들을 모두 전멸시켜 주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선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두 번째 이미지는 우리를 처벌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지켜주시기 때문에 절대로 나라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바벨론이 남유다를 멸망시켰을 때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해석해야 할 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때 일부 사람들은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외적의 힘을 빌려서 자신들을 처벌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이미지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미지라면 두 번째 이미지는 우리를 처벌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했을 때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젊은이들은 포로가 되어 다른 나라로 끌려갔습니다. 이 모든 끔찍한 일들이 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해석을 하게 되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처벌하는 무서운 하나님이 됩니다. 일제가 35년 동안 한국을 지배한 것도,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강제로 군인으로 끌려가고 노동자로 끌려가고 수많은 어린 딸들이 종군 위안부로 끌려간 일도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처벌하신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폭력으로 처벌하시는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세 번째 이미지는 마지막 종말에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마지막 종말에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진노의 포도주 틀에 가두어넣고 다 죽이는 이야기가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 제국 치하에서 끝까지 핍박을 견디는 사람은 영광의 면류관을 받지만 로마 제국은 심판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는 이런 부분을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세상에 악인들이 득세하고 의인들이 고난받는 것을 보면서 이런 신앙이 생겨났습니다. 너무 세상이 불공평하니까 하나님께서 지금은 참고 계시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 폭력을 행사하셔서 악인들을 다 죽이고 심판하실 것이라는 신앙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신앙 이미지를 가리켜 폭력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미지라고 합니다.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출애굽기), 당신의 백성을 처벌하시는 하나님(바벨론 포로), 마지막에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요한계시록), 이 3가지 신앙은 모두 폭력을 행사하시는 하나님 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이미지를 좋아하다 보면 이런 3가지의 하나님 신앙을 갖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뜻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아픈 자들을 일으키시고 우리에게 새 힘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고 힘과 능력이 많으시다는 것을 폭력을 행사하신다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어느 날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기적을 보여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날씨의 징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기적을 요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기적밖에는 아무 기적도 받지 못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쓰실 때가 언제입니까? 구원하는 폭력이든지, 처벌하는 폭력이든지, 아니면 마지막 때 일어날 심판하는 폭력이든지,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셔서 저 원수들을 다 쳐부수고 악인들을 심판하실 날이 언제입니까? 사람들이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요나의 기적 밖에는 보여줄 기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통 요나의 기적이라고 하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견디다 다시 살아난 것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요나 한사람이 죽었다 살아난 것도 기적이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요나서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큰 성읍 니느웨” 사람들을 용서하신 것이 더 큰 기적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심판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요나의 기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품에 안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기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적 중의 기적은 사랑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기적이지만 저 원수, 원수가 가족(남편, 아내)일 수도 있고 가까운 이웃일 수도 있고 다른 민족일 수도 있지만, 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원수를 쳐부수자가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자가 되어야 합니다. 악에 저항하되 폭력이 아닌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폭력의 하나님을 믿지 말고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따라 자비로운 삶을 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가끔 신문 방송을 보면 나이 드신 노인들이 군복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면서 원수를 쳐부수자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막상 전쟁나면 자기들이 전쟁터에 나갈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꽃다운 청년들이 죽습니다. 보통 청년들은 젊어서 그런지 인생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사고도 안 나고 죽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차 보험회사가 청년 운전자들에게 가장 높은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청년들이 겁이 없어서 사고를 많이 내기 때문입니다. 군인들 나이가 20살, 21살 인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때 나이는 용감해서 그런지 물불을 안 가립니다. 전쟁이 나면 아직 피어나지도 못는 우리 아들들이 제일 먼저 죽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경을 들여다봅니다. 비록 성경에는 폭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미지가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바로 본래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면 그것은 폭력을 사용하셔서가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새 힘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창조하시는 하나님,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상한 갈대를 꺼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인줄로 믿습니다. 연약한 생명을 붙드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따라 사랑과 자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God of violence and God of compassion

Jonah 4:9-11, Matthew 16:1-4


During the day the LORD sent a scorching wind, and the sun beat down on Jonah's head, making him feel faint. Jonah was ready to die, and he shouted, "I wish I were dead!" But the LORD asked, "Jonah, do you have the right to be angry about the vine?" "Yes, I do," he answered, "and I'm angry enough to die." But the LORD said: You are concerned about a vine that you did not plant or take care of, a vine that grew up in one night and died the next. In that city of Nineveh there are more than a hundred twenty thousand people who cannot tell right from wrong, and many cattle are also there. Don't you think I should be concerned about that big city? (Jonah 4:8-11)


The Pharisees and Sadducees came to Jesus and tried to test him by asking for a sign from heaven. He told them: If the sky is red in the evening, you say the weather will be good. But if the sky is red and gloomy in the morning, you say it is going to rain. You can tell what the weather will be like by looking at the sky. But you don't understand what is happening now. You want a sign because you are evil and won't believe! But the only sign you will be given is what happened to Jonah. Then Jesus left. (Matthew 16:1-4)


God of violence and God of compassion, they are the images of God mainly confessed in the scripture. Both images are incompatible and opposite in terms of character and nature. But the scripture shows both images as if God is sometimes violent and sometimes compassionate. God of violence is expressed in three images in detail; first is messianic violence. God uses God's power to save God's people. According to the book of Exodus, God slaughtered Egyptian people to set God's people free from slavery. Second is punishing violence. When Hebrew people were conquered by the foreign Empires, they thought that it was God's punishment because they did not follow God's law. Third is apocalyptic violence which God will do in the final day of the world. According to the book of Revelation, God is supposed to come down to the world to judge the evil with violence.


Jesus preached, taught, and healed people based on God of compassion, not of violence. When people asked Jesus for a sign from heaven, probably saying, "when will God punish the evil? is it the right time to anticipate God's messianic violence?," Jesus mentioned the miracle of Jonah. According to the book of Jonah, God forgave and spare more than a hundred twenty thousand people who cannot tell right from wrong and many cattle in the city of Nineveh. Loving enemies and resisting evil with nonviolence, Jesus said that is the true miracle that God wants to give us. We are called to believe in God in Jesus who has created and is creating the world, loves all lives, raises those in despair, and reconciles all the creatures with God.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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