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후 세번째 주일 / 1월 네번째 주일

주현절, 혼인잔치를 축복하다

요한복음 2:1-12

정해빈 목사

  

 

 

 

1.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2장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7가지의 기적을 행하셨는데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나서 가장 먼저 행하신 기적이 바로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 첫 번째 기적 속에 여러 가지 영적인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혼인잔치를 보통 일주일간 했는데 삼일 째 되는 날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가족/제자들과 함께 잔치에 참석한 예수님은 처음에는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시고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가 나중에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시고 그 돌항아리 여섯 개에 담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은 혼인잔치를 더 빛내고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술이 떨어진 잔치에 술을 만드심으로 잔치를 더 빛내 주셨습니다. 잔치를 연 주인, 신랑과 신부, 손님 모두를 기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쁨이 떨어진 곳에 기쁨을 주고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예수님이 포도주 술을 만드셨다는 이야기가 여러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7가지 기적 중에서 첫 번째 기적으로 혼인 잔치에서 기적을 행하신 것 까지는 좋은데 하필 술을 만드셨습니다. 기독교인은 절대로 술을 가까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요한복음 말씀이 당혹스럽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설명한 책들을 보면 예수님이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주스를 만들었다고 설명하거나 혼인잔치에 쓰인 포도주는 알콜이 살짝 들어간 음료수라고 설명한 책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장 좋은 포도주 술을 만드셨습니다. 성경은 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한 부분도 있고 긍정적으로 말한 부분도 있습니다. 잠언서 201, “포도주는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고, 독한 술은 사람을 소란스럽게 만든다. 이것에 빠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혜롭지 않다.” 잠언서 2331, 잔에 따른 포도주가 아무리 붉고 고와도, 마실 때에 순하게 넘어가더라도, 너는 그것을 쳐다보지도 말아라. 그것이 마침내 뱀처럼 너를 물고, 독사처럼 너를 쏠 것이며, 눈에는 괴이한 것만 보일 것이며, 입에서는 허튼 소리만 나올 것이다.” 잠언서는 자녀들에게 주는 교훈의 말씀이기 때문에 술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신약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518,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술 취해서 방탕하게 살지 말고 대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술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긍정적으로 표현한 부분도 있습니다. 신명기 1426, 그 돈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사십시오. 소든지 양이든지 포도주든지 독한 술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온 가족이 함께 먹으면서 즐거워하십시오.” 명절날에 온 가족이 고기와 술을 사서 즐겁게 먹고 마시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256,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 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하나님 나라 잔치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디모데전서 52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병 치료를 위해서 포도주를 마시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술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음식입니다. 무엇을 먹고 마시든지 주님을 위해서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마실 수도 있고 약으로 마실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7장에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술은 음식이기는 한데 위험한 음식입니다. 술 속에 이 세상의 온갖 나쁜 문화가 다 들어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죄를 짓고 도덕이 마비되고 여성을 비하하고 실수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죄 짓는 곳에는 늘 술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데서나 술을 살 수 있고 아무데서나 술을 마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아무데서나 술을 살 수 없고 길거리에서 술을 들고 다니면 안 됩니다. 한국 사람들이 양주/위스키를 제일 많이 마신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자기 돈으로 마시지 않고 회사 접대비로 마십니다. 한국에 가보면 왜 이렇게 술집이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술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음식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마시면 복이 되지만 분별없이 마시면 독이 됩니다. 술 속에 이 세상의 온갖 나쁜 문화가 다 들어있습니다. 이런 나쁜 문화를 멀리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마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 요한복음이 쓰여질 당시 기독교와 경쟁하는 두 개의 종교가 있었는데 첫 번째 종교는 유대교였고 두 번째 종교는 술의 종교였습니다. 유대교는 아무 맛이 없는 맹물을 가리키고 술의 종교는 처음 잔치에 나온 포도주를 가리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그 돌항아리 여섯 개에 담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돌항아리 여섯 개는 유대교의 정결 예식에 쓰이는 물을 가리킵니다. 유대교 법에 의하면 돌항아리에 물을 채워서 손과 발을 닦아야 합니다. 손과 발을 닦는 것은 좋지만 그 외에도 지켜야 할 규정이 너무 많았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그 모든 규정을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죄인이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교 법이 너무 많고 엄격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종교는 사람을 억압하지 말고 사람을 자유하게 하고 깨달음과 기쁨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 하지 마라 저것 하지 마라 이거 하면 죄 짓는 것이다 자꾸 이런 식으로 사람을 억압하면 안 됩니다. 딱딱한 돌항아리는 딱딱한 유대교를 가리키고, 그 돌항아리에 들어 있는 맹물은 아무 맛도 없고 감동도 없고 기쁨도 없는 유대교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맹물과 같은 유대교를 포도주 같은 종교로 변화시켜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유대교는 맹물과 같고 예수님은 포도주와 같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첫 번째 메시지였습니다.

 

요한복음이 쓰여 질 당시 기독교와 경쟁하는 두 번째 종교는 술의 종교였습니다. 지중해 지방에는 포도 생산이 많아서 포도주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포도주 신을 믿었습니다. 그리스 말로 하면 디오니소스(Dionysus), 로마식으로 하면 바카스(Bacchas)가 술의 신이었습니다. 바카스 드링크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 바카스가 고대 지중해의 술과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포도주 철이 되면 바카스 무당이 여기 있는 포도를 포도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사람들은 바카스 신이 포도주를 만들어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바카스가 만들어준 포도주가 삼일 만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전 포도주 보다 더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카스가 만든 첫 번째 포도주 보다 예수님이 만드신 두 번째 포도주가 더 맛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우리들에게 참 기쁨을 주는 분은 바카스가 아니라 예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요한복음이 쓰여질 당시 많은 사람들이 바카스 종교를 따라갔습니다. 거기에 가면 술이 나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참된 기쁨은 바카스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만들어 주신 성찬식,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 속에 참 기쁨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카스 종교에는 술과 쾌락만 있고 그 이상의 것이 없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마실 때는 좋지만 그 다음 날 속이 쓰리고 머리가 아픈 것처럼 바카스 종교에는 처음에는 즐겁지만 나중에는 허무함만 남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고 떡과 잔으로 성찬식을 했습니다. 성찬식을 하면서 주님의 사랑과 헌신을 기억했습니다. 주님의 잔치에는 사랑과 기쁨, 나눔과 감사가 넘칩니다. 요한복음은 디오니소스/바카스가 주는 포도주는 사람을 타락하게 만들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포도주는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안식을 준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요한복음을 쓴 요한 교회는 예수님을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참 자유와 기쁨을 주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참 포도주와 같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진리와 자유와 기쁨을 주는 종교가 참된 종교입니다. 유대교 같이 너무 엄격하고 무섭고 무겁고 사람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종교, 맨날 너는 죄인이니까 죄사함 받으라고 말하는 종교도 잘못된 종교이고, 반대로 바카스 종교 같이 사람을 유혹시키고 흥분시키고 타락시키는 무당 같은 종교도 잘못된 종교입니다. 참된 신앙은 우리의 삶을 더 진실되고 더 기쁘고 더 풍요롭게 만듭니다. 참된 신앙은 우리를 감동시켜서 맹물 같은 사람을 포도주 같이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따라가면 거기에 은혜와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처럼 기쁨이 사라지고 슬픔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럴 때일수록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잃어버렸던 기쁨을 다시 찾아주시고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맹물같은 우리의 인생을 포도주 같은 향기나는 인생으로 바꾸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Epiphany, Jesus blessed the wedding

John 2:1 11

 

On the third day, there was a wedding in Cana of Galilee, and the mother of Jesus was there. Jesus and his disciples had also been invited to the wedding. When the wine gave out, the mother of Jesus said to him, ‘They have no wine.’ And Jesus said to her, ‘Woman, what concern is that to you and to me? My hour has not yet come.’ His mother said to the servants, ‘Do whatever he tells you.’ Now standing there were six stone water jars for the Jewish rites of purification, each holding twenty or thirty gallons. Jesus said to them, ‘Fill the jars with water.’ And they filled them up to the brim. (John 2:1-7)

 

He said to them, ‘Now draw some out, and take it to the chief steward.’ So they took it. When the steward tasted the water that had become wine and did not know where it came from (though the servants who had drawn the water knew), the steward called the bridegroom and said to him, ‘Everyone serves the good wine first, and then the inferior wine after the guests have become drunk. But you have kept the good wine until now.’ Jesus did this, the first of his signs, in Cana of Galilee, and revealed his glory; and his disciples believed in him. (John 2:8-11)

 

The second chapter of John begins with the miracle of Jesus turning the water into wine at a marriage at Cana. According to John, this was his first miracle among seven miracles. He is attending a wedding with his disciples and the hosts run out of wine. His mother is also there and asks him to help. Yet he seems annoyed and says that it is not his time yet. Nevertheless, she still tells the servants to do whatever he asks, so he tells them to fill up the empty containers with water. Afterward, the headwaiter of the wedding tastes it and remarks to the groom that they have saved the best wine for last. John tells his audience that the water was there for the Jewish rite of purification. This story shows that Jesus came to bless the feast which symbolizes our life. By turning the water into wine, Jesus had all the people in the wedding feast including the host, bride, groom, and guests, rejoice together.

 

The water in the container symbolizes the Jewish traditional stern religion. It does not have any good taste since it oppresses people with very strict order and custom. The wine which lasted for three days indicates the religion of pleasure, Dionysus or Bacchas. It gives people joy and pleasure, but it lasts only three days. It cannot provide them with eternal and whole satisfaction. The community of John confessed that Jesus, the true wine, came to bless our life. They confessed that Jesus brings new joy and meaning to us when we feel a lack of life, just as Jesus made new fresh wine when the wine in the wedding feast run out on the third day. They proclaimed that Jesus came to us to enrich our lives and fulfill our needs. If you find out that the wine of your life run out of if you feel you need to change the way of life to live a more meaningful life, welcome Jesus and ask him to turn you into a new being like new wine. Jesus will come to enrich and bless your life.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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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두번째 주일 / 1월 세번째 주일

주현절, 제자를 부르다

마가복음 1:14 - 20

정해빈 목사



  



1. 우리는 요즘 예수님의 공생애를 묵상하는 주현절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마태/마가/누가/요한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나온 후에 바로 공생애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이전 30년 동안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누가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12살 되었을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율법학자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도 소년 예수는 크고 화려한 성전과 매일 동물을 불태우는 제사를 보면서 궁금한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크고 화려한 성전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율법박자들과 토론하다가 가족들이 고향으로 떠난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 대부분은 공생애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요즘은 30세가 청년이지만 옛날에는 오늘날로 말하면 40대나 50대와 비슷합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많은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직접 목수 노동도 하셨을 것이고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백성들이 얼마나 고달프게 사는지 보셨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따라다니면서 훈련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충분한 공부/훈련을 받으시고 나서 준비가 되었을 때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3년 공생애를 위해서 30년을 준비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을 성취하려면 10배의 준비 기간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가장 먼저 3가지를 하셨는데 첫째 세례를 받으시고 둘째 광야에서 기도하시고 셋째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먼저 광야에서 온 세례요한을 찾아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세례요한의 가르침을 이어받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원래 유대교 전통에서는 회개나 헌신을 하려면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가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패하고 타락한 성전 제사장 대신에 세례요한을 찾아갔고 예수님도 세례요한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깨끗하고 정의로우며 가난한 백성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하려면 부패하고 타락한 제사장이 아니라 세례요한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제물을 가지고 자기들한테 와야 장사가 되는데 사람들이 세례요한한테 몰려가니 그를 몹시 미워했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부패하고 타락한 귀족/제사장/왕/로마 군인들을 꾸짖고 하나님의 공의를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으로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려면 제일 먼저 세례요한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요단강에 가서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불의가 아니라 공의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새 출발해야 합니다. 신앙의 출발은 회개의 세례를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깊이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간에 3가지 시험을 받으셨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3가지 문제를 가지고 깊이 씨름하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탄이 예수께 와서 하나님 나라 일을 하지 못하도록 3가지 유혹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려면 3가지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돌로 빵을 만들어서 굶주림을 해결해라” 이것은 잘못된 경제를 가리키고, “성전 위에서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종교를 가리키고, “나에게 절하면 세상 나라를 주겠다” 이것은 잘못된 권력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잘못된 경제, 잘못된 종교, 잘못된 정치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경제와 종교와 정치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무조건 빵을 많이 만들어서 굶주림을 해결하자, 하지만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은 빵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빵을 말씀대로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오병이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5000명 먹을 음식을 혼자서 다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기적을 행하면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적을 행해서 사람을 쉽게 모으지 않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셨습니다. 나에게 머리 숙이면 세상 권력을 주겠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 권력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정의와 섬김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기도하시면서 잘못된 경제/종교/정치와 씨름하시고 그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잘못된 경제/종교/정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2. 요한에게서 세례받으시고 광야/사막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은 이제 갈릴리로 가셔서 함께 일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오늘 말씀 마가복음 1장을 보면 예수께서는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맨 처음에 부른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는 배를 타지 않고 직접 그물을 던지는 것으로 보아 가난한 사람들로 보입니다. 두 번째로 부른 야고보와 요한은 배 안에서 일을 하고 일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사람들은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부들을 불러서 이제부터 나와 함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나와 같이 합시다,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병자를 고쳐주고 죄를 용서해 주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식탁을 나눕시다, 나와 함께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같이 합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말씀하시자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다고 했는데 아마도 실제로는 여러 번의 만남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부름을 받았다고 해서 즉시 따라나설 수는 없습니다. 서로 묻고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청을 받고나서 따라갈 것인지 따라가지 않을 것인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베드로를 비롯한 젊은이들을 길게 설득하시고 대화하셨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예수님은 4명의 제자를 얻으셨습니다.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그물과 배와 아버지와 일꾼들을 뒤로 남겨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물, 배, 가족, 일꾼 다 가지고 예수를 따를 수는 없을까요? 하지만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얻고 다른 것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를 얻으려면 다른 것을 최소 한 가지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예수를 얻고 다른 것을 버리는데 있습니다. 옛날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목사님들이 그런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예수를 얻고 다른 것을 버리십시오. 그냥 공짜로 쉽게 예수 믿으면 안 됩니다. 최소한 한 가지를 버리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이웃에게 나쁜 짓 한 사람은 그 죄를 버리고 예수를 믿으십시오. 도박/노름하는 사람은 도박/노름을 끊고 예수를 믿으십시오. 술/담배에 찌든 사람은 술/담배를 버리고 예수를 믿으십시오.”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맨 처음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를 따르려면 최소 한 가지를 버리고 예수를 따라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를 진정으로 따르려면 나쁜 것을 버릴 뿐만 아니라 좋은 것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자랑하고 싶은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자랑하고 싶은 지식/재산, 명예/자존심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젊은 시절 정통 유대교 엘리트였던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과거에 자랑했던 것들, 가문/종교/지식/명성을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 가장 귀합니다. 그 분의 삶과 가르침이 나를 구원했습니다. 진리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은혜받고 위로받고 치료받았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얻으려면 과거의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가장 귀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출발은 버릴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데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따르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겠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들은 영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어부들입니다. 사람의 일생 중에서 사람을 살리는 어부로 사는 삶이 가장 귀합니다.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삶이 가장 귀합니다. 제가 잘 아는 선배님 중에 일찍 은퇴하셨지만 아직 건강하셔서 야간에 대학교에서 청소하는 분이 계십니다. 성실하게 일해서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청소 회사가 근로 조건을 잘 지키지 않는 것이 보였습니다. 야간에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최저 임금만 주고 복지 혜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2-3명과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고 3개월 동안 연구를 했습니다. 정부가 규정한 근로 조건은 어떻게 되는지,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연구하고 회사 사장을 만났습니다. 회사 사장이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대학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3개월 후에 회사가 모든 요구 조건을 다 들어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2-3명의 노력 덕분에 80명 전체 직원들이 큰 혜택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인 일을 할 수도 있고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을 도와주는 육적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사람을 살리고 치료하고 위로하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은 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우리들 모두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서 가는 곳마다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piphany, Justice called disciples

Mark 1:14 – 20


After John was arrested, Jesus went to Galilee and told the good news that comes from God. He said, "The time has come! God's kingdom will soon be here. Turn back to God and believe the good news!" As Jesus was walking along the shore of Lake Galilee, he saw Simon and his brother Andrew. They were fishermen and were casting their nets into the lake. Jesus said to them, "Come with me! I will teach you how to bring in people instead of fish." Right then the two brothers dropped their nets and went with him. Jesus walked on and soon saw James and John, the sons of Zebedee. They were in a boat, mending their nets. At once Jesus asked them to come with him. They left their father in the boat with the hired workers and went with him. (Mark 1:14 – 20)


According to the Gospel of Mark, Jesus was baptized by John the Baptist in the Jordan river, then prayed for 40 days in the desert, and called some fishermen to follow him as his disciples, when Jesus began his public ministry for the Kingdom of God. In the original Jewish tradition, people had to go to the Jerusalem temple to repent their sins and to give sacrifice to God. But people came to not the temple but John the Baptist in the Jordan river because they knew that those priests in Jerusalem were morally ruined and corrupt. They knew that John the Baptist was a true prophet who claimed justice before God. This story shows us that the beginning of faith must start with a baptism of repentance.


After being baptized, Jesus fasted for 40 days in the wildness. While Jesus prayed there, Satan came to tempt Jesus. “If you are the Son of God, command that these stones be made bread.” The first temptation was about the economy of greed. “If you are the Son of God, jump off. God will send his angels to catch you in their arms, and you won't hurt your feet on the stones.” The second temptation was about the religion of luck and chance. “I will give all this to you, if you will bow down and worship me.” The third temptation was about the politics of power. But with the Word of God, Jesus resisted these three temptations. This story shows us that those who work for the kingdom of God should not surrender to the erroneous economic, religious, political temptations.

Finally Jesus called some fishermen to follow him as his disciples. “‘Come with me! I will teach you how to bring in people instead of fish.’ At once Jesus asked them to come with him. They left their father in the boat with the hired workers and went with him.” They left something valuable to follow Jesus! This story reminds us of the first principle of Christian life. Following Jesus starts with discarding one’s way of old living and thinking. Jesus wants us to leave behind not only unnecessary things but also valuable things such fame or private pride. "Follow me.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Being a disciple of Jesus means to work in order to save and enrich all the life in the world. We are called to be the disciples of Jesus. As Jesus healed the sick, feed the hungry and forgive sinners, we are also called to take over the work of Jesus. We are called to be fishers of peopl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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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첫번째 주일 / 1월 두번째 주일

공의와 인자함,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

미가서 6:6 - 13

정해빈 목사


 




1. 새해를 맞이해서 미가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읽고 묵상하고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보통 수련회를 하거나 교회 모임을 할 때 오늘 말씀을 많이 묵상합니다. 그만큼 오늘 말씀의 내용이 참 좋습니다. 새해를 시작할 때 1년 동안 묵상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례교육 받을 때 공부하는 장로교 교리 문답 11항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나는 불행해도 괜찮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우리도 영화로워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우리의 삶도 기뻐집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으로서 우리의 삶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부터 2700년 전 미가 선지자가 남유다에 살았던 시절에 어떤 사람이 바로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수천 마리의 송아지나 양, 기름을 드리거나 맏아들을 바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옛날에는 동물을 불에 태워서 번제 제사를 드렸는데 동물을 많이 바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크고 화려하게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미가 선지자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3가지 있는데 첫째는 공의를 실천하고 둘째는 인자(자비)를 사랑하며, 셋째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공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제사를 크고 화려하게 드려도 공의, 자비, 주님과의 동행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첫번째 방법은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미가가 살았던 시대에 불의와 부패가 많았습니다.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백성들을 동원해서 대규모 토목건축사업을 벌였고 예루살렘 귀족들은 호화스러운 생활을 즐겼습니다.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했고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하나님께 제사만 잘 드리면 된다고 하나님을 잘못 전했습니다. 미가는 선지자들 중 최초로 부패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첫번째 방법은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바른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억울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주의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죽음도 없고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하늘 나라에는 정의와 평화와 안식이 있습니다. 문제는 땅에 있습니다. 이 땅에 불의와 고통과 눈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첫번째 방법은 공의를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2. 전 세계를 대표하는 기독교 구호단체로 [월드 비전]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밥 피얼스 박사와 한경직 목사가 만들었는데 한국에서는 보통 [선명회]라고 부릅니다. 이 단체의 회장인 리처드 스턴스(Righard Stearns)원래 미국 최고급 식기 회사 레녹스의 최고 경영자였는데 [월드 비전]측으로부터 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여러 번 사양 끝에 회장으로 취임을 합니다. 그 후로 그는 대기업 CEO의 경험을 살려 [월드 비전]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구제/빈곤 퇴치 활동을 하는 단체로 만들었습니다. 리처드 스턴스 회장이 2010년에 [구멍난 복음, the Hole in our Gospel]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성경에서 가난과 정의를 다룬 구절을 찾아보았더니 약 2,000개 구절을 찾았습니다. 이 구절들을 오려내면 성경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됩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읽은 미가서를 비롯해서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아모스, 하박국 같은 책들은 대부분 공의와 인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가난과 정의에 대한 말씀들을 잘 읽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공의를 외치는 말씀보다는 부드럽고 은혜롭고 위로가 되는 말씀들을 주로 읽습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라,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여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아라, 이런 말씀들을 읽는 것이 부담이 됩니다. 거친 세상 살기가 힘드니까 일주일에 한번 예배드릴 때는 부담되는 말씀보다는 부드럽고 은혜롭고 위로가 되는 말씀들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보통 사회 정의에 대한 설교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첫번째 삶은 공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오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두번째 방법은 인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자는 자비/친절을 가리킵니다. 영어로 하면 Love kindness and be merciful이 됩니다. 한자 성어에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자한 사람에게는 적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인자하고 자비롭고 친절한 사람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그 사람을 좋아합니다. 사회 정의를 외치다 보면 자칫 거칠어지기가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 다음에 자비가 와야 합니다. 공의를 실천할 때 인자와 친절과 자비를 가지고 공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무서운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 벌주는 하나님,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리켜 자비로운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자비로운 사람들이 모인 곳이 되어야 합니다. 회와 회사는 서로 다릅니다. 보통 회사는 경쟁을 하고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자비로운 사람, 자비로운 교회, 따뜻하고 친절한 교회를 만들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세번째 방법은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걸어갈 때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걸어갈 때 바른 길을 갈 수 있고 지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공의를 행하는 것도 지치고 자비를 실천하는 것도 지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겸손히 걸어가면 지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길을 따라갈 때 겸손하게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가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에 많은 제사장들이 겸손하게 신앙생활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하게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 할 때는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해야 합니다. 기도원이나 수도원에 가면 원을 따라 걸으면서 묵상하는 미로(Labyrinth), 기도 서클(Prayer Circle)이 있습니다. 동그라미 안에 그려진 길을 따라 조용히 걸으면서 기도를 합니다. 그렇게 천천히 기도하면서 걸어가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고 기쁘시게 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영화롭고 기쁘시게 하려면 첫째 공의를 행하고 둘째 자비를 사랑하고 셋째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늘 뜻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히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하십시다. 공의/친절/겸손의 마음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하십시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늘 함께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Justice, Kindness, and walking humbly with God

Micah 6:6 13


With what shall I come before the Lord, and bow myself before God on high? Shall I come before him with burnt-offerings, with calves a year old? Will the Lord be pleased with thousands of rams, with tens of thousands of rivers of oil? Shall I give my firstborn for my transgression, the fruit of my body for the sin of my soul?’ God has told you, O mortal, what is good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but to do justice, and to love kindness,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Micah 6:6-8)


The voice of the Lord cries to the city. Hear, O tribe and assembly of the city! Can I forget the treasures of wickedness in the house of the wicked, and the scant measure that is accursed? Can I tolerate wicked scales and a bag of dishonest weights? Your wealthy are full of violence; your inhabitants speak lies, with tongues of deceit in their mouths. Therefore I have begun to strike you down, making you desolate because of your sins. (Micah 6:9-13)


"What is the chief purpose of a person? The chief end of person is to glorify and please God," This is the first question and answer we are supposed to say when we enter Baptism Class as the first step for being Christians. We confess and believe that God created human being to glorify and please God. Then this confession leads us to ask next question. What should we do to glorify and please God? This was exactly what people asked to God when prophet Micah had lived 2700 years ago. “What offering should I bring when I bow down to worship the LORD God Most High? Should I try to please God by sacrificing calves a year old? Will thousands of sheep or rivers of olive oil make God satisfied with me? Should I sacrifice to the LORD my first-born child as payment for my terrible sins?”


“The LORD God has told us what is right and what he demands: "do justice, let mercy be your first concern, and humbly obey your God." According to Micah, God is pleased when we do justice, love mercy, and humbly walking with God. It is nothing to do with giving to God tons of offerings or building a luxurious temple. Rather it is something to do with working for social justice, showing others kindness, and living humbly with God. Jesus also taught us the Lord's Prayer. "Your kingdom come and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n heaven.“ We do not worry about heaven but earth where many people are suffering from war, poverty, and injustice. Many Christians come to church to get personal comfort and blessing from God. But God wants us to live with justice and kindness. May you walk humbly with God this year! May you serve the world with justice and kindness!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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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주일 / 1월 첫번째 주일

신년주일,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서 40:26 - 31

정해빈 목사





 

스페인 산티아고에 가면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순례길이라는 유명한 순례 길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9세기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알려진 이후 유럽 전역에서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적으로는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이슬람 군대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의 남쪽 이베리아 반도를 지키고자 했던 목적이 있었습니다.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중세시대에 기독교 순례자들이 걷고 싶은 3대 순례길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산티아고로 가는 여러 가지 길 중에서 프랑스 남쪽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가는 800km 여정이 가장 유명합니다. 하루에 20km씩 한 달을 걸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매년 10만 명 이상이 이 길을 걷기 위해 몰려들고 있습니다. 하루에 20km씩 한 달을 걸어가려면 중간에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빨리 가는 것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800km 순례 길을 걸어가는 이유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을 걸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하기 위해서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예전에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길을 걷는 것이 육체적으로도 중요하고 영적으로도 중요합니다.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오랜 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길을 걸으면 소화도 잘되고 다리도 튼튼해지고 몸도 건강해집니다. 또 조용히 묵상하면서 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회복되고 Healing이 됩니다. 예전에 깨닫지 못했던 영적인 진리,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사람의 몸에서 좋은 에너지/호르몬이 나와서 두뇌가 활성화되고 영적으로 맑아집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길을 걸으면서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건강해 집니다. 길을 걷다 보면 평탄한 길을 걸을 때도 있고 숲길과 자갈길을 걸을 때도 있습니다. 날씨가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습니다. 길을 걷는 것이 인생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좋은 길을 갈 때도 있고 어려운 길을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들은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길을 걸으면서 깨닫고 변화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도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이기적이고 꾀가 많았던 야곱도 길을 걸으면서 겸손한 사람으로 변해 갔습니다. 예수님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걸어가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바울도 로마의 여러 도시들을 걸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엠마오로 걸어가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걸어가던 중에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 기억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이고 둘째는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바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그가 나를 푸른 초장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주님께서 나를 푸른 초장,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을 따라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죄의 길이 아니라 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악의 길이 아니라 선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불의한 길이 아니라 정의로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성실하게 길을 걸어야 합니다. 빨리 가는 것보다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등산을 해보면 목적지에 빨리 오르기 위해 앞만 보고 빨리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변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올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적지에 빨리 오르기 위해 앞만 보고 올라가는 사람은 얼마못가서 몸과 마음이 지치게 되고 그런 사람에게는 등산이 괴로운 일이 됩니다. 등산을 해보면 처음부터 빨리 올라가는 사람이 정상에 가장 먼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걸어도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올라가는 사람이 가장 먼저 정상에 도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지치지 않고 성실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빨리 갑니다. 등산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무조건 빨리 올라가지 않습니다. 천천히 올라가면서 뒤도 돌아보고 옆도 돌아보면서 꽃이 피어있는 것도 구경하고 나무도 보고 돌도 봅니다. 산을 오르는 과정을 즐기면서 올라가는 사람이 등산을 제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실하고 꾸준하게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길을 걸어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우리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800km 산티아고 순례길을 언제 다 걸어가나 생각하면 그 길을 걷지 못합니다. 하지만 길을 걷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면서 산과 들과 나무와 꽃을 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우리의 발걸음은 재미있고 의미있는 발걸음이 되고 그렇게 걷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산악인들이 등산을 하는 목적은 산 정상에 빨리 올라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등산을 하면서 걸어가는 삶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동료들과 함께 흙을 밟으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것 자체가 의미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등산을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떤 목적/성과를 달성해야만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하루하루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대화하고 서로 삶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아파하면서 사는 삶 자체가 가장 의미있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갈 때 주님과 함께 바른 목적지를 향해서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걸어가는 과정 그 자체를 기뻐하며 성실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첫째 독수리가 날개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 갈 것이고, 둘째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셋째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적지에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독수리처럼 날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놀라운 기적을 가리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가르고 출애굽을 하였듯이 인생을 살다보면 한두 번 놀라운 기적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자주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복권에 당첨되거나 놀라운 기적이 나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인생을 살면서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합니다. 두 번째 경우는 뛰어도 지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을 날지는 못하지만 뛸 수 있다면 남보다 빨리 목적지에 빨리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빨리 뛰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빨리 뛰어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 대부분의 경우에는 뛰어가는 것보다 천천히 걸어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세 번째 말씀,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인생의 길은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뛰어가는 것도 아니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기적이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천천히 앞을 향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뛰어가거나 날아가지 않아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새로운 시간을 주셨습니다. 바른 목적지를 향해서 성실하게 걸어가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빨리 걸어가기 보다는 걸어가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성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서로 대화하고 서로 삶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아파하면서 사는 삶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걸어도 피곤하지 않는 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인생의 무거운 짐 때문에 지치고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지치지 않도록 그 사람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천천히 그리고 성실하게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Isaiah 40:26 31

They shall walk and not faint


Look at the evening sky! Who created the stars? Who gave them each a name? Who leads them like an army? God is so powerful that none of the stars are ever missing. You say, "God pays no attention to us! He doesn't care if we are treated unjustly." But how can you say that? Don't you know? Haven't you heard? God is the eternal God, Creator of the earth. He never gets weary or tired; his wisdom cannot be measured. God instead gives strength to those who are weary. Even young people get tired, then stumble and fall. But those who trust God will find new strength. They will be strong like eagles soaring upward on wings; they will walk and run without getting tired. (Isaiah 40:26-31)


Life is similar to walking the new road. Walking the way of life, we learn to live the world, love others, and know God deeply. Walking leads us to think deeply about our life. According to the scripture, many people experienced life-changing events or God experience when they walked down the new road of life. Abraham, the ancestor of faith, met God when he walked toward the land of promise. Jacob who was born selfish became a humble person when he walked through many hardships. Jesus also marched from Galilee to Jerusalem, proclaiming the kingdom of God. Paul visited many Roman cities to preach about the Gospel. The disciples met the risen Christ on the road to Emmaus. When we walk the road of life, we need to remember two things. The first is to walk the right path in accordance with God. The second is to walk with integrity. Walking earnestly is more important than walking fast.


Today’s scripture says that those who walk with God shall mount up with wings like eagles, they shall run and not be weary, and they shall walk and not faint. The fastest way to go to a destination is to fly like an eagle. This indicates some amazing miracles. For example God set the Hebrew people free from the Egyptian slavery. Many people hope for an incredible miracle such as winning the lottery. But that miracle does not come often to us. That miracle may come only once in one’s life. The second case is to run without being weary. If you can run, you are able to go quickly to the destination faster than others. So many people pray to jump quickly as much as they can. Sometimes we need to run to win a race. But life in most cases has something to do with, not running, but walking slowly and continuously. That is why today’s scripture says that those who walk with God shall not faint.


Walking slowly with God without faint is more important than running or flying without God! Although we shall not mount up with wings like eagles and we shall not run quickly, our life shall be prosperous and joyful if we are able to walk with God continuously without being weary. Life is similar to walking. Stepping into the new life, we learn to live the world, love others, and know God deeply. Our life would become meaningful when we encourage, share, and walk together because life is given for this purpose. Do not fly or run quickly, rather try to walk with God humbly. A royal crown shall be given to those who walk sincerely rather than fly or run once for all. God gave us new year and new opportunity. Truly time is one of the many blessings of God given to us. May God bless your new journey of life!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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