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첫번째 주일 / 11월 다섯번째 주일
이사야서 64:1-9, 마가복음서 13:32-37
대림절,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정해빈 목사
이집트에서 노예생활 했던 히브리인들은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정의롭고 평등한 나라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 국가는 약소국가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왕이 죽고 난 후 나라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졌고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 제국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아시리아 제국은 사마리아 땅에 다른 민족들을 이주시켜서 서로 피가 섞이도록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펴서 우리 민족이 한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처럼, 아시리아는 혼혈정책을 통해서 북이스라엘의 전통을 말살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지 대략 135년이 지난 기원전 587년 바벨로 제국이 남유다를 멸망시켰습니다. 바벨론은 남유다의 중요한 사람들을 바벨론 제국으로 포로로 끌고가서 바벨론을 위해서 일하게 했습니다. 아시리아 제국의 식민지 정책이 혼혈정책이었다면 바벨론 제국의 식민지 정책은 포로정책이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인들은 나라가 망한 것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율법을 다시 공부하고 구약성경을 편집하면서 민족의 재건을 꿈꾸었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바벨론 제국에서 50년 동안 포로생활하면서 첫번째 좌절/고난을 겪었습니다.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 제국은 남유다에서 끌려온 포로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포로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고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꿈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와 보니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고향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타국에서 돌아온 자신들을 적극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향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타국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고, 타국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고향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무너진 공동체 재건의 꿈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남은 것은 서로에 대한 원망과 실망뿐이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희망은 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는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지고 공동체가 파괴된 모든 원인이 주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이고 주님께서 진노하신 이유는 우리가 오랫동안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진노하신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찌 구원을 받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부정한 자와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었으니 우리의 죄악이 바람처럼 우리를 휘몰아 갑니다” 고향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죄를 지었고 타국에서 돌아온 사람들도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보시고 크게 실망하셔서 우리의 고난을 외면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고난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보시고 진노하셨고 우리를 떠나셨습니다. “아무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굳게 의지하려고 분발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에게서 얼굴을 숨기셨으며 우리의 죄악 탓으로 우리를 소멸시키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이 많다면 더 간절하게 주님을 찾고 회개해야 하는데 주님을 간절하게 부르는 사람도 없었고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서 얼굴을 숨기셨으며 우리의 죄악 탓으로 우리를 소멸시키셨다고 이사야는 고백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나라를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두번째 좌절/고난을 겪었습니다.
토기장이는 진흙을 빚어서 좋은 그릇을 만듭니다. 그런데 토기장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좋은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 토기장이는 그릇을 깨트려서 다시 진흙을 만든 다음에 더 정성을 기울여서 그릇을 다시 빚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도 좋은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화가 난 토기장이는 자신의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본래 흙의 재질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 흙을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와 같다고 이사야는 고백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토기장이가 되시고 우리는 토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좋은 그릇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셨고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빚어주셨습니다. 좋은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을 때마다 참고 인내하시면서 우리가 좋은 그릇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시고 여러 번 실망하셨고 좋은 그릇을 만드는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주님께서 진노하시고 우리를 외면하신 것은 우리가 죄를 지어서 좋은 그릇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에 실망하시고 우리를 버리셨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님은 우리를 빚으신 토기장이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손수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주님,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 보십시오. 우리는 다 주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다 주님의 백성이오니 우리를 포기하지 마시고 우리가 주님께 쓰임받는 좋은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다시한번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코로나19 질병이 다시 확산되면서 전세계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1차 확산과 2차 확산과 3차 확산이 지나가야 전염병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합니다. 3차례의 확산 중에서 2차 확산이 가장 규모가 크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여러 회사들이 백신을 계발하고 있으므로 질병은 곧 물러갈 것입니다. 평생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인류가 자원을 낭비하고 자연을 훼손하고 동식물의 영역을 침범하고 창조질서를 어지럽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실망하시고 진노하시고 우리를 외면하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처럼 이 모든 일은 인류가 교만하였기 때문이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여러번 실망하시고 진노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죄악을 보며 실망하셨을지라도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금의 고통에서 인류를 다시 건져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 코로나로 죽어가는 사람들, 병원에서 치료받는 사람들, 격리생활하는 사람들,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들,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이 땅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마가복음 13장 말씀도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니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집주인이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잠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이럴 때일수록 더 간절히 주님을 찾고 더 간절히 기도하고 더 간절히 주님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향한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다 주님의 백성입니다. 다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회개의 기도를 드리오니 저희들의 기도를 받아 주시고 이 땅을 치료하여 주십시오.”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