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후 네번째 주일 / 2월 첫번째 주일

미가서 6:6-8, 마태복음 5:1-12

주현절,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정해빈 목사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5장 말씀은 유명한 산상수훈 말씀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가르친 것처럼 예수님도 산에서 올라가셔서 산상수훈을 가르치셨습니다. 십계명이 세례받고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배워야할 말씀이라면 산상수훈은 제자들이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이 초급과정이라면 산상수훈은 중급/고급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이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노예생활을 떠나서 자유인으로 부름받았을 때 주어진 것이라면, 산상수훈은 자유인들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될 때 주어진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십계명에서 시작해서 힘들더라도 산상수훈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학자들은 마태복음 5장, 6장, 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이 기독교의 가장 수준높은 핵심 가르침이라고 말을 합니다. 성경 66권 1189장 중에서 딱 3장을 가지고 무인도에 가라면 마태복음 5장, 6장, 7장 산상수훈을 가지고 가겠다고 말하는 학자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도 산상수훈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닮으려면 산상수훈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산상수훈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이 말씀이 가난/억압/차별로 고통받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들이 가난하고 슬퍼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시고 그들을 위로/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슬퍼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복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첫번째 말씀으로 팔복을 말씀하셨고 그 팔복의 첫번째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이름을 종이에 쓰는 것이 불경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쓴 마태는 하나님나라를 하늘나라로 표현을 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죽어서 천당에 가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나라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크게 3가지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첫째로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마음이 아프고 허전하고 답답하다, 상처와 아픔이 많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오랫동안 억압/수탈/차별을 겪어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열심히 찾고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지만 갈릴리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가난하기 때문에, 마음에 아픔과 상처가 많기 때문에, 마치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찾으러 다니듯이 더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아픔과 상처가 없는 하나님나라를 더 열심히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픔과 상처가 많은 갈릴리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이 하나님을 열심히 찾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장먼저 그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내가 부족하고 허물이 많고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가리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내 삶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건강을 잃거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시련을 맞았을 때 우리는 무기력함과 내 마음의 가난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가 내 삶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마음의 가난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가난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입니다. 나에게 오셔서 내 영혼을 풍성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의 반대말은 마음이 부유하다 입니다. 마음이 부유하다는 말은 마음이 자기생각이나 욕심으로 꽉 차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반대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마음이 비어있기 때문에,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려면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가면 다이어트를 해서 체중을 줄이듯이 내 마음이 세상적인 생각으로 너무 많이 꽉 차 있으면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마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셋째로,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세상 욕심이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기쁘고 단순한 삶을 산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세상을 복잡하게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루하루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권력도 없고 재물도 없습니다. 그들은 외딴 곳 북쪽 변두리에서 살았습니다. 몸도 가난하고 마음도 가난했습니다. 그들은 남에게 해를 끼칠 줄 모르는 양처럼 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단순하게 사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깨끗한 사람이 오래살고 장수합니다. 대체로 건강하게 장수하시는 분들을 보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기쁘고 단순하고 겸손하게 사시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부유한 것이 좋습니까? 가난한 것이 좋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한 것이 좋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가난한 것이 좋습니다. 복잡하게 세상을 살 필요도 없고 복잡하게 고민하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유혹이나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비교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이웃을 사랑하며 기쁘고 감사하게, 깨끗하고 단순하게 사는 사람이 가장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한국 기독교 사상가인 다석(多夕) 류영모 선생은 세 끼를 합쳐서 하루에 한번 저녁을 먹는다는 뜻으로 저녁 석자 3개를 모아서 호를 다석이라고 지었고 매일 사는 날을 계수했습니다. 류영모 선생이 자주 쓰시는 말이 “제나”와 “얼나”입니다. “제나”란 인간의 욕망과 죄악의 근원이 되는 육체적인 나를 가리키고 “얼나”는 육체가 아닌 얼/정신, 참된 나를 가리킵니다. 사람이 제나를 떠나려면 욕망을 죽여야만 얼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석은 동물들 중에 오직 사람만이 직립보행 두 다리로 땅을 걷고 머리로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머리가 위에 있다는 말은 사람은 하늘/하나님을 쳐다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머리로 하늘/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미가서 6장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소나 양이나 올리브 기름이나 심지어 자식을 바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첫째 공의를 실천하고, 둘째 자비를 사랑하고, 셋째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과 뜻이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아픔과 슬픔이 많은 갈릴리 사람들을 위로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찾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더 겸손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기쁘고 감사한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piphany,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Micah 6:6-8, Matthew 5:1-12

 

The poor in spirit refers to a person who is lonely, empty, and in pain and hurt. Such people have so much pain and hurt not only economically but also spiritually that they have no choice but to find God's grace and love more earnestly. As a hungry person finds food, the poor in spirit seek a kingdom of God full of love and joy. So Jesus said they were blessed. Second, being poor in spirit means to realize that we are weak, defective, and we cannot control our lives. Only when we feel that we are vulnerable can we rely on God. Those who feel being poor in spirit will pray, “God, I am a weak and lonely person. Come to me and enrich my soul.” Jesus said that the blessings of the kingdom of God will come to those who confess their poorness and weakness. Third, being poor in spirit means to live a happy and simple life without being overwhelmed by greed or temptation. Such people do not live in a complicated world, but love God and neighbours, and live the world with joy and appreciation every day. They do not worry about what people say or compare. Joyfully, gratefully, and simply, they love to live with God and their neighbours. Micah 6 says that what God wants us is not to offer lots of cattle, sheep, or olive oil, but to do justice, love mercy and walk humbly with God. Surely being poor in spirit will do justice, love mercy and walk humbly with God. When our heart is poor in spirit, we can find more God and be humbler before God. We are called to live a joyful and thankful life with God by being poor in spirit.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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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세번째 주일 / 1월 네번째 주일

마태복음 4:12-23

주현절,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정해빈 목사

 

 

 

성도님들 중에 우리가 사는 북미 캐나다 땅에 사람들이 언제부터 살기 시작했는지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캐나다연합교회 예배를 참석해 보면 예배 첫 순서에 우리가 사는 이 땅과 이 땅에서 제일 먼저 살았던 원주민들에게 감사를 고백하는 시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As we gather together, we acknowledge this sacred land. It has been a site of human activity for 15,000 years. This land is the territory of the Huron-Wendat and Petun First Nations, the Seneca and, most recently, the Mississaugas of the Credit River. Today, the meeting place of Toronto is still the home to many indigenous people from across Turtle Island and we are grateful to have the opportunity to gather in the community, on this territory."

 

"우리는 모일 때마다 거룩한 이 땅에 감사드립니다. 이곳은 15,000년 동안 인간 활동의 장소였습니다. 이 땅은 Huron-Wendat, Petun First Nations, Seneca, 가장 최근에는 Credit River Mississaugas의 영토였습니다. 오늘날 토론토, 만남의 장소는 지금도 거북이 섬이라 불리는 곳에 사는 많은 원주민들의 고향입니다. 우리는 이 영토에서 공동체로 모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이 땅에 제일먼저 살았던 원주민들에게 감사를 고백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우리들 같은 이민자들이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설날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조상들에게 감사드리는 것처럼, 이 땅에 제일먼저 살았던 이들을 기억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또 오늘 [이상철 목사님 3주기 추모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이 1988년 캐나다연합교회 총회장 하실 때 원주민들의 권익을 위해서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으셔서 [명예 무지개 추장]이라는 이름을 받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예수님은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오랫동안 세례요한을 따라다니셨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요한이 헤롯왕에게 붙잡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대신해서 갈릴리로 가셔서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요한이 사람들을 요단강으로 불러서 회개의 세례를 주었다면 예수님은 갈릴리로 들어가셔서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을 불렀고 예수님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갈릴리 지역에는 3가지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아픔은 경제적인 착취입니다. 이스라엘 지도를 보면 대부분 사막으로 되어있는데 북쪽 갈릴리 호수가 있는 지역만 물과 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지역은 농산물/해산물을 기르고 잡을 수 있는 축복된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제국은 주민들을 동원해서 로마식 신도시를 건설했고 농산물/해산물에 높은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는 옛날부터 착취가 심하고 저항운동을 많이 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오랫동안 억압과 수탈이 없는 세상, 경제적으로 빼앗기지 않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갈릴리의 두번째 아픔은 외적의 침입니다. 마태복음은 갈릴리 땅을 스불론과 납달리 땅이라고 말했는데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가장 북쪽에 정착한 지파가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였습니다. 갈릴리 지역은 가장 북쪽, 외진 곳, 변방지역, 소외된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장 북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북쪽에서 외적이 쳐들어오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은 오랫동안 억압과 폭력이 없는 평화를 꿈꾸었습니다.

 

세번째 아픔은 인종차별입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과 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남쪽 예루살렘 사람들은 북쪽 갈릴리 사람들을 가리켜서 사투리를 쓰고 피가 섞였고 농사짓고 물고기 잡는 사람들이라고 차별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릴리 사람들은 인종차별과 지역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갈릴리 사람들은 경제적인 착취를 경험했고, 군사적인 억압을 경험했고, 인종적인 차별을 경험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경제적/군사적/인종적으로 억압받고 차별받는 갈릴리에 들어가셔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사랑과 용서와 치유와 나눔을 실천하셨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안드레, 배에서 그물을 만지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고 그들을 향해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사기치는 것을 fishing 이라고 합니다. 낚시로 물고기를 잡듯이 사람을 속여서 이득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fishing 이라는 말을 씁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에게 사람을 속이고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 가난과 질병과 억압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살리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위로하고 치료하고 일으키는 사람, 오늘날의 갈릴리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사람을 살리는 어부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과 우리 교회가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인 줄로 믿습니다.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님의 10가지 생활 좌우명이 있습니다.

 

1.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2. 대인 관계에서 의리와 약속을 지킨다.

3. 최저 생활비 이외에는 소유하지 않는다.

4. 버린 물건, 버려진 인간에게서 쓸모를 찾는다.

5. 그리스도의 교훈을 기준으로 '예'와 '아니오'를 똑똑하게 말한다. 그 다음에 생기는 일은 하나님께 맡긴다.

6. 평생 학도로서 지낸다.

7. 시작한 일은 좀처럼 중단하지 않는다.

8. 사건 처리에는 건설적, 민주적 질서를 밟는다.

9. 산하(山河)와 모든 생명을 존중하여 다룬다.

10.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배려한다.

 

목사님은 네번째 좌우명, “버린 물건, 버려진 인간에게서 쓸모를 찾는다”는 계명대로 버려진 사람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시고 많은 제자들을 큰 인물로 키우셨습니다. 목수는 나무를 볼 때 그 원목에서 작품을 본다고 했는데 이상철 목사님이 젊은 시절 가족을 홀로 남겨두고 남쪽으로 내려왔을 때 김재준 목사님께서는 키도 작고 부모와 형제들과도 이별했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털이 청년 이상철이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을 보시고 그를 제자와 사위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도 갈릴리 바닷가에서 어부들을 보시고 비록 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무식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가능성을 보시고 그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제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장점보다는 결점이 많은 사람들이고 쓸모없고 버려진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교회 성도로 불러주시고 자녀삼아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도록 제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통해서 우리들의 인생은 의미있고 풍성하고 은혜로운 인생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생명을 일으키고 살리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주님의 부름을 받은 인생이 가장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미국의 작가 윌리암 아서는 ”평범한 교사는 잔소리를 하고, 좋은 교사는 설명을 하고, 우수한 교사는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교사는 영감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꿈과 영감을 주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교사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젊은이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꾼, 사람을 살리는 어부가 되라는 영감을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인생이 가장 최고의 인생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 인생은 의미있고 풍성한 인생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어부가 되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우리들,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piphany, I will make you fish for people

Matthew 4:12-23 

 

"As we gather together, we acknowledge this sacred land. It has been a site of human activity for 15,000 years. This land is the territory of the Huron-Wendat and Petun First Nations, the Seneca and, most recently, the Mississaugas of the Credit River. Today, the meeting place of Toronto is still the home to many indigenous people from across Turtle Island and we are grateful to have the opportunity to gather in the community, on this territory." According to Matthew, Jesus called Simon, Andrew, James, and John at the shore of the Sea of Galilee and said to them, “Follow me. I will make you fish for people.” Generally speaking, the term "fishing" has two meanings. The first meaning is to take advantage in the sense of deceiving, lying, and cheating people. The second meaning is to support, heal and raise people. Jesus told them to be fish in the sense of saving those who suffer in poverty, sickness, and oppression in Galilee. American writer William Arthur said, “Normal teachers nag, good teachers explain, good teachers set an example, and great teachers inspire.” We believe that Jesus, the person who dreams and inspires people, is the greatest teacher in the world. Jesus called the young people of Galilee and inspired them to work for the kingdom of God and to be fish for people. Jesus also calls us to be His disciples and transforms our lives into more meaningful and joyful lives. We are all called to be the ones who heal the world and raise the suffering. The Lord says to us today. "Follow me, and I will make you fish for peopl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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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두번째 주일 / 1월 세번째 주일

이사야 49:1-7, 요한복음 1:35-39

주현절, 내가 한 것이 모두 헛수고 같았고

정해빈 목사

 

 

 

영어 표현 중에 분리/차별/격리를 뜻하는 segregation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87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거의 100년 동안 미국 남부 주들은 백인과 흑인을 분리하는 segregation 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흑인들은 백인들이 가는 식당에 갈 수 없었고 백인들이 가는 학교에 갈 수 없었고 백인들이 가는 극장에 갈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인들이 만든 KKK 라는 집단이 흑인들을 폭행하고 죽이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1910년부터 1950년대까지 많은 흑인들이 남부 주들을 떠나서 미국 대도시로 도피하거나 캐나다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래서 이 기간을 흑인 대이동(Great Migration)이라고 부릅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떠난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더 정확하게는 분리주의와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떠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950-1960년대 인종차별반대운동을 펼친 두 명의 지도자가 있었는데 한 명은 마틴 루터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였고 또 한명은 로자 팍스(Rosa Parks) 였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리더쉽과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였다면 로자 팍스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평범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조용하고 내성적인 여성을 통해서 인종차별반대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955년 12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백화점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로자 팍스는 퇴근 버스 뒤쪽에 있는 흑인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 몽고메리에서는 버스 앞 네 줄은 백인들만 앉을 수 있었고 흑인들은 뒤쪽에 있는 흑인 전용 자리에만 앉을 수 있었습니다. 로자 팍스가 탄 버스에 백인들이 들어왔는데 백인들이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버스 운전수는 흑인석에 앉아있는 로자에게 백인석이 모자라니 뒷자리로 가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하지만 로자는 이를 거부하였고 결국 이 때문에 경찰에 체포 수감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382일 동안 버스타지않기운동이 일어났고 당시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 운동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오늘 1월 세번째 주일을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버스 운전수가 뒤로 가라고 말했을 때, 로자는 조용히 “No, I'm tired, I do not have any reason to stand up.”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몸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이 사회의 차별에 지쳤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도 있었을 것입니다. 1862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으로 시작된 인종차별철폐운동은 로자 팍스와 마틴루터 킹 목사를 거쳐서 150년 동안 계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로자는 인종차별을 받으면서 재봉사로 일을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지치고 피곤하고 오늘 설교 제목처럼 “내가 한 모든 것이 헛수고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조용하고 성실한 사람이 세상을 바꿉니다. 때로는 실패할 때도 있지만 큰 눈으로 보면 결국 역사는 자유와 정의를 향해서 앞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첫 번째로 읽은 이사야 49장은 남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을 때 쓰여진 말씀입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 받았지만 우상을 숭배하였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였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남유다 백성들은 BC 587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름에 실패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모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태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아, 너는 내 종이다. 네가 내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에는 내가 한 것이 모두 헛수고 같았고 쓸모없고 허무한 일에 내 힘을 허비한 것 같았다.”

 

히브리 백성들이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고 쓸모없고 허무한 일에 힘을 허비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과거는 수치와 헛수고가 되었습니다. 7절 말씀처럼 그들은 지금 남들에게 멸시받는 사람이 되었고 여러 민족들에게 미움받는 사람이 되었고 통치자들에게 종살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다시 불러주셨습니다.

 

“네가 내 종이 되어서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고 이스라엘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네게 오히려 가벼운 일이다.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미치게 하려고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실패한 히브리 민족을 다시한번 불러 주셨습니다. 그들을 다시 일으켜서 모든 민족의 빛으로 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을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 뜻은 알지만 뜻대로 살고 싶지 않거나 하나님 뜻대로 살다가 힘들어서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뜻을 알지 못했거나 뜻은 알아도 싫어했거나 뜻대로 살다가 포기하거나 셋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다보니까 우리 인생은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됩니다. 이사야가 고백한 것처럼 가만히 내 인생을 돌아보니 9절 말씀처럼 내가 한 것이 모두 헛수고처럼 보이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서 살았나, 내 인생에 소득이나 남는 것이 없구나, 내 인생이 참 허무하구나 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들을 주님의 종으로 다시한번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를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 이것이 복음이요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장에서 요한에게 속한 두 제자에게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와서 보아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시간이 오후 4시였다는 말은 그들이 요한의 제자이기는 했지만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대는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그대의 인생 목적은 무엇입니까? 만약 그대의 인생이 헛수고 같다면 그것은 그대가 잘못된 것을 찾고 있거나 참된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자들은 다 나에게로 오십시오. 나에게로 오면 기쁨과 생명과 치료와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내 인생이 헛수고가 되지 않으려면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여러분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내 인생이 헛수고 같은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온유하시고 자비로우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후 4시라도 괜찮습니다. 주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참 진리이신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세월 내 인생이 헛수고 같을 때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사명과 시간과 기회를 주셨습니다. 로자 팍스처럼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로자 팍스 같이 조용하고 성실하고 용기있는 사람을 통해서 새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와서 보라, 내가 너를 택하였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제 인생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에 빛을 전하는 의미있는 인생이 되도록 제 인생을 채워주옵소서” 응답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piphany, everything I did seems to be in vain
Isaiah 49:1-7, John 1:35-39

 

This week’s reading from Isaiah is the second Servant Song. The servant here is the prophet, or perhaps Judah itself. It is a story of call – being called and known, failure to live up to the call, hope remaining strong, and being called again with a greater purpose. Regardless of the people’s early success or failure, God is faithful. The servant maintains hope in God. God offers a purposeful call to the people from the very depth of God and invites the people to shine bright and to be a light for all the nations. The words recorded in the book of Isaiah remind us of our failure to call on God. We may not know God's will, or we may know God's will but not want to live it. We may have given up because we had difficulty fulfilling God's will, or lived up to our stubbornness, not obeying God's Word. Yet God did not give up on us but called us once again as His servants. According to John 1, Jesus invited two disciples of John to him by saying, “What are you looking for? Come and see.” The fact that they came to Jesus at 4 pm indicates that although they were John's disciples, they still did not find the answer to their problems in life. Jesus showed them the mystery and joy of being one with God and taught them the way to eternal life. Today's passage teaches us that we must be attached to the Lord like vines and branches so that our lives are not in vain. Looking back over the years, our lives sometimes seem in vain. The life that is not following the Lord who is merciful, true, and loving will be in vain. Rosa Parks, a quiet black woman, first started a march against racism. God accomplished a new history through a quiet, sincere, and courageous person. Likewise, God wants to make a new history through us. So the Lord comes to us today and says, "What are you looking for, come and se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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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후 첫번째 주일 / 1월 두번째 주일

여호수아 14:6-10, 마태복음 3:13-17

주현절, 갈렙의 헌신과 예수의 세례

정해빈 목사

 

 

 

지난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 때 갈렙처럼 밝고 건강하게 장수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하자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여호수아 14장 말씀에 의하면 갈렙은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모세와 함께 백성들을 이끌었고 40세 때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12명이 정탐했는데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그 땅에 들어가자고 말했고 나머지 10명은 가나안 족속이 힘도 세고 키도 크니까 포기하자고 말했습니다. 결국 히브리 백성들은 다시 광야로 돌아가서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한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지만 아직 산간지방에 정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산간지방은 살기도 힘들고 농사짓기도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갈렙이 비록 자신의 나이가 85세가 되었지만 나는 오늘도 여전히 건강하니 산간지방에 가서 땅을 차지하고 정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갈렙을 축복하고 헤브론 지방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갈렙은 본래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이었는데 본래 히브리 사람이 아니라 에돔 사람이었는데 히브리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그들을 따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본래 변두리 이방사람이었지만 성실했기 때문에 유다 지파의 지도자가 되었고 모세의 부하가 되었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갈렙은 나이는 많았지만 밝고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밝고 건강한 노인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새해가 되어서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을까요?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나이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어른들 중에 나이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새해가 되어서 기쁘고 감사하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으니 내가 늙어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해지고 더 여유로워지고 더 완전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의 인생은 더 깊어지고 더 풍성해지고 더 사랑이 많아지고 더 완전해집니다. 시간과 여유가 많기 때문에 더 많이 가족과 손주들을 사랑할 수 있고 더 많이 지역사회에서 봉사할 수 있고 더 많이 취미생활을 할 수 있고 더 많이 보람있고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인생을 30/30/40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태어나서 30세까지가 키가 크고 공부하고 기술을 배우는 기간이고 30세부터 60세까지가 가정을 이루고 직장생활하고 돈을 버는 기간이라면 60세부터 100세까지는 자유롭고 풍성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태어나서 30세까지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공부하고 기술배우는 재미가 있고 30세부터 60세까지는 가정을 이루고 사회생활하고 돈 버는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인생의 황금기는 60세부터 100세까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인생에서 가장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시간과 여유가 많기 때문에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섬기고 가정에서 자녀손주들을 돌보고 사회에서 봉사할 수 있습니다. 갈렙은 85세가 되었지만 자신은 아직도 건강하고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좋은 가정을 만들어야 하고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 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새해를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 번째로 읽은 마태복음 3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때가 되어서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생애를 시작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왕이나 제사장이 궁궐에서 취임식을 할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메시야라는 말이 기름부음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취임하면서 궁궐에서 기름부음을 받지 않고 진흙이 있는 더러운 요단강에서 가난한 백성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회개의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지만 백성들과 하나되기 위해서 그들과 똑같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궁궐이 아니라 요단강에서 세례받으시는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의 마음이 가난한 일반 백성들에게 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이 움직이는 곳에 몸도 같이 움직입니다. 마음이 궁궐에 있는 사람은 몸도 궁궐에 가 있고, 마음이 가난한 백성들에게 있는 사람은 몸도 가난한 백성들 속에 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요단강에서 백성들과 똑같이 세례를 받으심으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비둘기 같은 성령이 내려왔습니다. 비둘기는 생명과 평화를 상징합니다. 노아의 홍수 때 노아가 비둘기를 세상으로 보내니까 비둘기가 잎을 물고 왔습니다. 비둘기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로마를 상징하는 새는 독수리입니다. 그래서 제국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독수리를 나라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독수리는 힘이 세고 남을 공격하고 물어뜯습니다. 예수님이 비둘기 같은 성령을 받으셨다는 말은 예수님의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하시고 예수님이 생명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시고 백성들을 먹이시고 치료하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우셔서 “내가 너를 기뻐한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님을 보시고 기뻐하셨을까요? 첫째로, 화려한 궁궐이 아니라 요단강에서 백성들과 함께 세례받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이웃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아파하며 함께 사시는 모습을 보시며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과 함께 살 때 우리를 보고 기뻐하십니다. 둘째로, 남을 공격하고 빼앗는 독수리 같은 악령이 아니라 비둘기 같이 부드럽고 온유한 성령, 생명과 평화의 영을 받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명과 평화의 영을 받을 때 우리를 보며 기뻐하십니다. 셋째로, 때가 되어서 세례를 받고 공적인 삶, 공공의 삶,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시작하시는 것을 보고 기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삶, 공공의 삶,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살 때 우리를 보고 기뻐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갈렙처럼 85세에 부름을 받을 수도 있고 예수님처럼 30세에 부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갈렙처럼 늦게 부름받을 수도 있고 예수님처럼 일찍 부름 받아서 불꽃같은 인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일찍 부름 받았느냐 늦게 부름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를 향해서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신다면 그 사람은 최고로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비결은 세가지입니다. 이웃과 함께 살고, 평화의 성령을 받고, 공공의 선을 위한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2020년 새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사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piphany, Caleb’s dedication and Jesus’ baptism

Joshua 14:6-10, Matthew 3:13-17

 

According to the book of Joshua, Caleb led the people with Moses as the Hebrews lived in the wilderness. When they finally settled in the land of Canaan, Caleb was faithful to God and had an exemplary mission to the end. According to Joshua chapter 14, he pioneered the Canaanite mountains despite being 85 years old. He seems to represent a bright, positive and healthy elderly generation. The Caleb story reminds us of life in old age. If the period from birth to age 30 is of growing up as an adult and learning skills, and from 30 to 60 is of social life, it can be said that between 60 and 100 is the freest and relaxed period. During this time we can serve the church, love home, and care for society. The Caleb story teaches us that getting older is not decaying, but getting richer. Today's second text, Matthew chapter 3, describes the scene of Jesus' baptism. God was pleased to see Jesus being baptized with the common people, receiving the Holy Spirit like a dove, symbolizing life and peace, not an eagle-like spirit, and commencing a public life. When Jesus was baptized and ascended onto the water, God said, “This is my Son, the Beloved, with whom I am well pleased.” Today's scriptures remind us that we can be called as late as Caleb or as early as Jesus. Yet, it is not important to be called early or late but to live a life that pleases God. When we live with neighbours, receive the Holy Spirit like a dove, and live for the good of the public, God will say to us, "You are my beloved, with whom I am well pleased." All of us, regardless of age, are called to live a life that is pleasing to God.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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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주일/주현절/1월 첫번째 주일

마태복음 2:1-12

신년주일, 동방박사들이 주는 평화

정해빈 목사

 

 

 

2020년 경자년(庚子年) 하얀 쥐띠 새해가 밝았습니다. 성도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성도님들의 삶에 기쁘고 감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올해부터 2000년 이후 세 번째 10년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가 첫번째 10년, 2010년부터 2019년까지가 두번째 10년이라면, 2020년부터 2029년까지가 세번째 10년이 됩니다. 2020년부터 2029년까지 앞으로 10년 동안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자가용은 전기자동차로 바뀌고 집집마다 로봇이 있어서 주인이 집에 들어오면 “주인님,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렇게 말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인공장기가 발명되어서 사람의 수명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은 더 좋아지고 편리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더 평화롭고 더 정의롭고 더 풍성하고 자연이 덜 오염되기를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아무리 전기자동차와 로봇과 인공장기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우리 삶에 평화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요즘 새해가 되자마자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평화에는 여러 종류의 평화가 있습니다. 로마의 평화가 있고 예수님의 평화가 있습니다. 로마의 평화가 전쟁승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평화라면 예수님의 평화는 정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평화입니다. 상대방을 억압하고 굴복시켜서 찍소리 못하게 만드는 평화는 거짓된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주시는 평화, 모든 사람과 소외된 사람을 사랑하고 환영하고 공평하게 대하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입니다. 새해는 예수님의 평화가 가정/교회/캐나다/모국에 이루어지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2장을 보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와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헤롯왕이 2살 이하 아기들을 죽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1-2년이 지났을 때 찾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박사를 헬라어로 마고스(μάγος)라고 하는데 점성가/천문학자/제사장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들이 동쪽에서 왔기 때문에 동방박사라고 부릅니다. 예수님 당시 동쪽은 옛날 바벨론/페르시아 제국 지역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제국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별을 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고 별을 통해서 새로운 왕/메시야가 태어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로마황제가 살아있었고 유대지역에는 헤롯왕이 있었지만 동방박사들은 로마황제나 헤롯왕에게 경배하지 않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로마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별을 연구하면서 전쟁승리를 통한 로마의 평화가 아니라 정의를 통한 하나님의 평화를 꿈꾸었습니다. 세상을 정의롭게 구원하실 참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마태복음 2장 말씀은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장면 자체가 하나님의 평화가 얼마나 아름답고 정의롭고 평등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베들레헴에는 창칼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선물과 기쁨과 감사와 희망만 있었습니다. 종교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지만 그 날 그 자리에는 기쁨과 감사와 희망이 넘쳤습니다. 어른들이 아기에게 절을 하고 최고의 선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어른이 아기에게 절을 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선물을 드렸고 요셉과 마리아는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온 집 안에 가득했습니다.

 

“흙, 씨알의 바탕인 흙이 무엇입니까. 바위가 부서진 것입니다. 바위를 부순 것이 누구입니까. 비와 바람입니다. 비와 바람은 폭력으로 바위를 부순 것 아닙니다. 부드러운 손으로 쓸고 쓸어서, 따뜻한 입김으로 불고 불어서 그것을 했습니다. 흙이야말로 평화의 산물입니다. 평화의 산물이기에 거기서 또 평화가 나옵니다. 씨가 부드러운 흙 속에 떨어질 때 거기서 노래와 춤이 나옵니다. 새로 돋아나는 싹처럼 아름답고 위대한 예술이 어디 있습니까.”

 

함석헌 선생님이 [씨알의 소리] 잡지에 쓰신 글입니다. 평화는 흙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따뜻한 바람이 바위를 부수어서 흙을 만들고 그 흙에서 씨앗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평화에는 이렇게 생명이 자라고 씨앗이 자랍니다.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자라게 하는 평화가 참된 평화입니다. 평화가 오려면 딱딱한 바위가 부서져야 합니다. 또 1964년 새해를 맞이해서 이런 글도 쓰셨습니다.

 

“뜻은 우주와 인생을 꿰뚫는 것입니다. 뜻은 맨 첨이요 나중이요 또 지금입니다. 모든 것은 뜻에서 나왔고 뜻으로 돼가고 돌아갑니다. 뜻을 깨닫는 것은 생각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삽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서 인생을 살려면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역사를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동쪽에서 온 박사들이 별을 따라서 왔다고 했는데, 뜻을 따라서 걸어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고 바위를 녹여서 흙을 만드는 새로운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이었고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올해부터 2020년대 새로운 1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2020년대에는 세상이 더 풍요로워지고 더 따뜻해지고 더 평화로워지기를 소망합니다. 동방박사들이 보여주었던 환대와 나눔의 기쁨, 평화로운 세상을 고대하는 꿈이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폭력/전쟁/승리를 통한 평화가 아니라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아기를 축복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함석헌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바위가 부서져서 흙이 되고 흙에서 씨앗이 자라는 평화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베들레헴에서 일어났던 기쁨과 평화가 2020년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새해에는 더 기쁘고 평화롭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평화를 위해서 일하게 하옵소서, 간구하며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New Year, peace of wise men from the East

Matthew 2:1-12

 

Matthew chapter 2 shows the story of the wise men from the East who worshipped the baby Jesus in Bethlehem. The wise men in Greek are called Magos (μάγος), which means astrologers, astronomers, and priests. They worshiped the baby Jesus, not the Roman Emperor or King the Herod. This indicates that they dreamed of a new world in which God's will be done, not a world dominated by Rome. They dreamed of God's peace through justice, not Rome's peace through war. The story of Bethlehem shows how beautiful God's peace and joy are, in contrast to Herod's violence. Instead of violence, Bethlehem was overflowing with gifts, joy, thanksgiving, and hope. This story shows that God is with us when we celebrate new babies, welcome each other regardless of race and religion, and dream of a new future filled with God's justice and peace. Celebrating the new decade of the 2020s, we hope that the hospitality, sharing, joy, and peace that the wise men had demonstrated will be fulfilled in our lives, our homes, and our church this year. We hope that peace will not be made through violence, war, and victory, but peace through justice, love, and hospitality. We are called to begin the New Year following the life of peace and hospitality of the wise men from the East.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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