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후 첫번째 주일 / 송년주일 / 12월 다섯번째 주일

마태복음 2:13-23

송년주일, 고난을 헤치고 미래를 향하여

정해빈 목사

 

 

 

2019년 송년주일예배를 드리며 지난 1년 동안 저희들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장 큰 은혜는 큰 행운이나 복권에 당첨된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일상의 삶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이 중단되지 않도록 지켜주셨습니다. 매년 그렇지만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 보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2019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3월과 4월 이와 관련된 여러 행사들이 있었습니다. 또 2월 달에는 미국과 북한 지도자가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났지만 회의가 결렬되어서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길이 오래 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월과 8월에는 한국 대법원이 일본 회사를 향해서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에 끌려간 생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판결을 내렸는데 일본정부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회사가 반도체 부품을 한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한국 국민들이 화가 나서 일본여행을 끊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10월에는 캐나다 연방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고 자유당이 계속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11월에는 우리 교회가 주최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술품 전시/판매” 행사가 있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께서 작품을 기증 및 구입해 주셨고 토론토 한인들이 많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우리교회의 노력을 토론토한인사회에 알릴 수 있었고 북한결핵환자를 돕는 유진벨재단과 경기도 철원에서 평화교육을 하는 국경선평화학교에 수익금을 기부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우리들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은혜를 높이 찬양합니다. 우리들의 가정과 교회와 캐나다와 모국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올 한해 교회를 사랑해주시고 예배/헌금/봉사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성탄절 때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영화 중 하나가 1946년에 개봉한 [It’s a Wonderful Life, 멋진 인생]입니다. 아주 오래된 영화인데 지금도 매년 성탄절이 되면 TV나 영화관에서 상영을 합니다. 사람들은 왜 성탄절 때 이 영화를 볼까요? 뉴욕에 사는 조지 베일리라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12살 때 연못에 빠진 동생을 구하다가 왼쪽 청력을 잃어버렸고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약사가 실수로 고객에게 독약을 주는 것을 막기도 했습니다. 조지는 고향을 떠나고 싶었지만 가족들 때문에 고향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생의 대학 학비를 보내주었고 저소득층 사람들이 주택을 살 수 있도록 융자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조지의 삼촌이 회사 자금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금융감독관이 조지를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조지는 신세를 비관하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다리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서 조지를 구해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지, 그대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대의 동생은 연못에서 빠져 죽었을 것이고, 약사는 고객에게 독약을 주어서 고객은 죽었을 것이고, 당신의 부인 메리는 결혼 상대자를 찾지 못해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빌리지 못해서 집을 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신은 평생 고향을 떠나지도 못했고 대학을 다니지도 못했고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당신은 연못에 빠진 동생을 구해 주었고 약사의 실수를 막아주었고 메리와 결혼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이 집을 구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꼭 태어나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가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조지는 자신이 인생의 실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조지에게 그대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대가 태어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내가 있음으로 해서 가정이 유지되고 교회가 유지되고 동문회/향우회/봉사단체/사회단체가 유지됩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있기 때문에 가정이 유지되고 지켜집니다. 아래로는 자녀나 손주를 돌볼 수도 있고 위로는 부모님을 돌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교회의 한 회원으로서 자리를 지키기 때문에 교회가 유지되고 발전됩니다. 내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자리를 지키고 예배를 드리는 것만으로도 교회는 큰 힘을 얻습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회원으로 있기 때문에 동문회/향우회/봉사단체/사회단체가 유지됩니다. 조지가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살면서 실패할 수도 있고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합니다.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2장 말씀을 보면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와 함께 헤롯왕의 위협을 피해서 이집트로 피난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야기를 자세히 보면 이 이야기가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태어나자마자 바로왕의 위협을 받아서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처럼 아기 예수도 태어나자마자 헤롯왕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옛날 이야기와 비슷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유대교의 미드라쉬 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모세 이야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모세가 히브리 백성들을 억압에서 구한 것처럼, 예수도 모세처럼 히브리 백성들을 죄와 억압에서 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의 일생과 예수의 일생도 비슷하지만, 모세의 부모와 예수의 부모의 역할이 더 비슷합니다. 모세의 부모도 바로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모세를 낳았고 3개월을 길렀고 어머니와 누나가 모세를 끝까지 보호했습니다. 예수의 부모도 헤롯왕의 위협을 피해서 아기 예수를 끝까지 보호했습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 중에 이집트로 피난가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요셉이 맨발로 어두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마태복음에 두 남자가 등장하는데 헤롯은 생명을 죽이려고 하였고 요셉은 생명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피난을 가면서도 아기 예수의 얼굴에는 광채가 빛나고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책임감 때문에 몹시 두렵고 초조했을 것입니다.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길을 걷고 있는 요셉의 발걸음, 두 다리가 인상적입니다. 요셉은 가는 길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에게는 가족을 보호해야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계속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이 고난 중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가족을 이끌고 길을 걸어갔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과거를 뒤로하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 중에 인생을 쉽게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고난이 있지만 고난을 헤치고 미래를 향해서 걸어갑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를 지켜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미래로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Year-end Sunday, to the future from the hardship

Matthew 2:13-23

 

Celebrating the last Sunday in 2019, we give thanks to God for having led us with love and grace over the past year. All of us have lived the year well, overcoming all the difficulties with the guidance of God. Praising the Lord, I would like to express my sincere gratitude to all of you who have loved and served the church this year. Thank God for leading us to this point! The story of Matthew 2 is based on the story of Moses in Exodus. As Moses was threatened by King Pharaoh, the baby Jesus was threatened by King Herod. What is noteworthy here is the role of Moses' and Jesus' parents. Just as Moses' parents rejected Pharaoh's orders and protected Moses, so did Jesus' parents, rejecting King Herod's orders and protecting the baby Jesus. As Joseph walked down the road to protect Mary and Baby Jesus, We too must continue on the path of life. We have to keep walking because there is a clear reason for us to live in. We are called to leave the past and walk forward, just as Joseph had led his family without frustration in the midst of suffering. May God's grace be on your step toward the futur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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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 2019년 12월 25일

누가복음 2:1-14

성탄절, 푸른 성탄절과 하얀 성탄절

정해빈 목사

 

 

 

지난 주일(12/22)은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 winter solstice)였습니다. 일 년 중에 가장 견디기 힘든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해가 떠서 따뜻해야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데 해는 일찍 떨어지고 날씨마저 춥다 보니 이때를 지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동지는 가장 어두운 날이고 가장 추운 날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날만 지나면 다시 해가 길어지기 때문에 희망을 갖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 모두 동지날 모여서 축제를 즐겼습니다. 동지만 지나면 해가 뜨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서로 잘 견디자는 뜻에서 함께 음식을 먹으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동지날은 해는 짧고 날씨는 춥고 시간적으로는 성탄절과 연말에 가깝습니다. 홀로 사시는 분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성탄절이나 연말이 더 힘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Blue Christmas 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영어에서 푸른색은 우울하고 힘든 날을 가리킵니다. 외롭고 가난하기 때문에 성탄절이 더 힘들다는 뜻에서 Blue Christmas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신없는 크리스마스는 우울한 크리스마스입니다. 당신없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당신”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크리스마스는 우울한 크리스마스가 됩니다. 하지만 성탄절에는 사랑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Blue Christmas는 “당신없는 크리스마스는 우울하다”고 노래했는데 여기 나오는 “당신”이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없는 크리스마스는 우울한 크리스마스입니다. 진실로 예수님 없는 크리스마스는 우울한 크리스마스입니다.”

 

우리에게 오늘은 우울한 성탄절이 아니라 기쁜 성탄절입니다. 푸른 성탄절이 아니라 하얀 성탄절입니다. Blue Christmas가 아니라 Merry Christmas입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혼자 있어도 우울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난해도 우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춥고 가장 해가 짧은 동지날 3일 후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12월 25일에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원래 12월 25일은 로마제국이 지키는 동지날 태양절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동지날 3일 후에 태어나셨다고 고백하는 것이 영적으로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춥고 가장 어두운 날, 어둠이 사방에 가득찬 날 3일 후에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님께서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성탄절 새벽에 집을 방문해서 새벽송을 불렀습니다. 새벽은 가장 캄캄한 시간이지만 동시에 조금만 지나면 해가 뜨는 시간입니다. 이와같이 이제 주님이 태어나셨으니 어둠이 물러갈 것을 미리 알리기 위해서 새벽송을 불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구세주께서 태어나셨습니다. 가장 어둡고 추운 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오늘은 슬픈 날이 아니라 기쁜 날입니다. Blue Christmas가 아니라 Merry Christmas입니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빛되신 주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다함께 외칩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아멘.

 

Last Sunday, December 22 was the winter solstice, the shortest day of daylight and the longest day of the night of the year. Imagine the day of the winter solstice. The sun disappears quickly in the afternoon, followed by the longest, darkest, and coldest winter day. Since the winter solstice is the longest, darkest, and coldest, it has been difficult to get through this time. However, Surprisingly, Christianity had begun to say that Jesus was born on December 25, 3 days after the winter solstice. We believe that Jesus was born today to bring the light of heaven and to save us from the darkness. To some people who do not have loved ones, Christmas may not be Merry Christmas but Blue Christmas. We know the famous song of Blue Christmas. But for us as Christians, Christmas is the day the light is born, the darkness has fallen, and salvation has begun. So for us, Christmas is not Blue Christmas, but White and Merry Christmas. Jesus, who is the light of the world, came to us to save us from sin, darkness, and cold. So today we rejoice, confess and shout not blue Christmas, but merry, white, and happy Christmas!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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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주일 / 12월 네번째 주일

이사야서 7:10-16, 마태복음 1:18-25

성탄주일, 그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정해빈 목사

 

 

 

대림절이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그 포로 생활 고달파, 메시야 기다립니다.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 오 임마누엘.” 구세주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우리는 또한 이렇게 찬양합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주님 강림하셔서, 죄에 매인 백성들을 자유 얻게 하시네, 주는 우리 소망이요 힘과 위로 되시니, 오래 기다리던 백성 많은 복을 받겠네.”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내전을 종식하고 로마제국에 평화를 가져왔을 때, 사람들은 그를 세상을 구원한 구세주, 평화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그는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로마황제가 아니라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구세주, 평화의 왕,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로마황제가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하늘로 올라간 황제를 경배하지 않고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 고통받은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땅으로 내려오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우리를 치료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예수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의 마음과 성품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시고, 우리의 고통에 무관심하시고, 우리의 삶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신 분이라고 오해를 합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죄가 하나님을 화나게 할 수도 있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리 떨어뜨려 놓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기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성경말씀은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 아니라 자비로운 분이시고,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와 가까이 계신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천사들의 음성을 듣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리아가 아이를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예수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이고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분도 아니고, 무관심한 분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구원과 평화가 성도님들의 삶에 언제나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very time the season of Advent comes to us, we sing and praise "O come, O come, Emmanuel, And ransom captive Israel, That mourns in lonely exile here, until the Son of God appears. Rejoice, Rejoice, Emmanuel Shall come to Thee, O Israel!" Waiting for the coming of our Lord, Saviour, we also sing and praise, “Come, Thou long expected Jesus, Born to set Thy people free, From our fears and sins release us; Let us find our rest in Thee. Israel’s strength and consolation. Hope of all the earth Thou art; Dear desire of every nation, Joy of every longing heart.” When the Roman emperor Augustus Caesar ended the civil war, and brought peace to the Roman Empire, people called him the King of Peace and Saviour. When he died, people sang that he ascended to heaven, and became the Son of God. But we are here today to confess not the Roman Emperor, but a baby Jesus born in a manger, as our King of Peace and Saviour. While the Roman emperor was believed to go to heaven to be the Son of God, we believe that Jesus descended to be the Son of God. We do not worship the emperor who ascended to heaven, but worship God in baby Jesus who was born in a manger and came down to be with the suffering. God in Jesus came down to save us from sin, heal us, and bring to the world God's justice and peace.

 

The Scriptures we read today states who God is and what God's character and heart are like. We often misunderstand God. Sometimes God looks scary, indifferent, or far away. Probably, our sins may upset God and separate us from God. Our selfish prayers may hinder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God. But nevertheless, today's Scripture teaches us that God is not scary, but merciful, not indifferent, but loving us, not far away, but close to us. Today we hear the voice of the angel says, “Joseph, son of David, do not be afraid. She will bear a son, and you are to name him Jesus, for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We also hear that his other name is Emmanuel, which means “God is with us.” Dear friends, we are here today to praise God in Jesus. We are here today to rejoice that God has come down to the earth to save us. We are here today to worship Jesus, whose name is “Emmanuel.” Indeed we are not alone. God is with us. May the love, grace, salvation and peace of Baby Jesus be with you. “You are to name him Jesus, for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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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세번째 주일 / 12월 세번째 주일

사무엘기상 2:1-10, 누가복음 1:47-55

대림절, 여성 예언자들의 노래

정해빈 목사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이렇게 어머니이자 여성 예언자인 3명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미래를 준비하는 여인들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언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꼭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메시야를 탄생시킨 어머니들입니다. 어머니가 없었으면 메시야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메시야의 어머니들이었고 어떤 면에서 보면 이들 자신들이 메시야이기도 했습니다. 메시야는 기름부음받은 자, 고난 중에 있는 백성들을 고난에서 구할 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보통 남자 왕이나 남자 제사장이나 남자 예언자를 가리켰습니다. 한나와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남자도 아니었고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고 기름부음도 받지 못했고 공식적으로 왕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선포한 숨어있는 예언자들이었습니다. 대림절을 맞아서 이들의 이름을 한번 더 기억하고자 합니다.

 

사무엘기상 2장에 나오는 한나는 엘가나의 첫번째 부인이었는데 자녀가 없었습니다. 둘째 부인인 브닌나가 아이를 갖고나서 한나를 업신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가 사무엘을 낳게 해 주셨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젖을 뗄 때까지 기른 다음에 그를 엘리 제사장에게 맡겼고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엘리 제사장 밑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한나의 찬양을 보면 그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예언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 올리셔서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주님께서 자신처럼 낮고 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큰일을 행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한나가 살았던 시대는 왕이 없고 재판관/사사들이 백성들을 통치하던 사사 시대였는데 재판관들이 자기 마음대로 재판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웠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메시야로 성장해서 세상을 바르게 통치하기를 기대했습니다. 오늘 말씀 10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땅 끝까지 심판하시고 세우신 왕에게 힘을 주시며 기름부어 세우신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실 것이다.”

 

여기 나오는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뜻하는 말이 “메시야”입니다. 한나가 메시야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습니다. 한나는 자신이 낳은 사무엘이 나중에 메시야가 되어서 이 세상을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통치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실제로 사무엘은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에 메시야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옛날 유대인들의 어머니는 자기 자식이 메시야가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단순히 내 자식이 성공하고 잘 되기를 기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을 일찍부터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뜻대로 교육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바르게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누가복음에는 엘리사벳과 마리아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이 주인공이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었고 마리아는 나이가 어린 상태에서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고 네 친척 엘리사벳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이를 가졌고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3개월간 함께 지냈습니다. 함께 지내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을 것입니다. 남자들은 모이면 할 이야기가 없는데 여자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들은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성들이 훨씬 더 공동체적이고 정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도 한나처럼 하나님의 구원능력을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한나의 노래와 마리아의 노래 모두 예언자적인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잘못된 권력자들을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시고 주린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실 것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를 라틴어로 하면 Magnificat anima mea Dominum 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마리아의 찬가를 라틴어 첫글자를 따서 “마그니피카트”라고 부릅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을 히브리어로 하면 “미리암”이 됩니다. 성경을 번역하면서 “미리암”이 “마리암”이 되었고 “마리암”이 “마리아”가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히브리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넜을 때 미리암이 다른 여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의 군대가 바다로 들어갔을 때 주님께서 바닷물을 돌이키셔서 그들을 덮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건넜다. 그 때에, 아론의 누이요 예언자인 미리암이 손에 소구를 드니 여인들이 모두 그를 따라 나와 소구를 들고 춤을 추었다. 미리암이 노래를 불렀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던져 넣으셨다."”

 

출애굽기는 미리암을 아론의 누이요 예언자라고 소개했습니다. 구약의 미리암과 한나, 신약의 엘리사벳과 마리아 모두 낮고 천한 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했습니다. 이들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사무엘/세례요한/예수, 역사를 구원하는 메시야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최근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한국소설이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30대 여성이 아이를 기르면서 겪는 어려움/차별을 잘 설명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성들이 차별을 당하는데 수천 년 전에는 더 했을 것입니다. 미리암과 한나 시대에는 왕과 재판관이 부패했고 엘리사벳과 마리아 시대에는 로마가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그들은 식민지 시대 고통받는 여성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통해서 새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가 되기를 노래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앞으로 태어날 아기들이 이 세상을 짊어지고 책임질 메시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래의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으면 누가 노인들을 봉양하고 누가 세상일을 맡아서 하겠습니까? 미래 세대가 등장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희망이 없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이 세상의 희망이요 메시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름없는 여성들/어머니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태어나는 미래 세대를 통해서 새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그렇게 낮은 곳에서 시작됩니다. 낮고 천한 사람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그들을 통해 새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용기를 갖고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Advent, songs of the female prophets

1 Samuel 2:1-10, Luke 1:47-55

 

My soul magnifies the Lord, and my spirit rejoices in God my Savior, for he has looked with favor on the lowliness of his servant. Surely, from now on all generations will call me blessed; for the Mighty One has done great things for me, and holy is his name. His mercy is for those who fear him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He has shown strength with his arm; he has scattered the proud in the thoughts of their hearts. He has brought down the powerful from their thrones, and lifted up the lowly; he has filled the hungry with good things, and sent the rich away empty. He has helped his servant Israel, in remembrance of his mercy, according to the promise he made to our ancestors, to Abraham and to his descendants forever.” (Luke 1:47-55). The book of Exodus, 1 Samuel and Luke testify to us the story of the female prophets who had lived faithfully in a time of suffering. Miriam and Hannah lived in an age of corrupt kings and judges, while Elizabeth and Mary lived in Roman colonial times. As women, they suffered from poverty and discrimination, but they did not yield to this. They prayed and sought God's power of salvation. God heard their prayers and made them give birth to Messiahs. If the Messiah refers to someone who saves the world, all the babies born through women would be the Messiahs. They are the ones who will take on and wrestle with the future world. If there is no future generation, there will be no hope in this world. God called suffering women as prophets and through whom the Messiahs were born. Indeed, God's work is done through the lowly. And we are called to testify to this fact.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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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두번째 주일 / 12월 두번째 주일

이사야서 11:1-9, 마태복음 3:7-12,

대림절,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정해빈 목사

 

 

 

요즘 12월 극장가에 가보면 겨울왕국2(Frozen)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첫번째 영화는 2013년에 나왔고 두번째 영화가 최근에 나왔습니다. 모든 극장들이 이 영화만 상영해서 다른 영화사들이 항의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두 자매가 주인공이고 화면이 아름답고 주인공들이 노래를 잘 부릅니다. 이 영화를 보면 Do you wanna build a snowman? 나랑 같이 눈사람 만들지 않을래요?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영화의 메시지에 생각할 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아렌달 왕국의 공주 엘사는 동생을 만지기만 해도 동생이 얼어붙는 것을 보고 괴로워한 나머지 왕국을 떠납니다. 엘사는 자신이 가진 초능력이 상대방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우리도 엘사처럼 때로는 내 안에 있는 능력으로 상대방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고, 내가 하는 사소한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으로 상대방을 얼어붙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뛰어난 능력이 세상을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잘 보여줍니다. 둘째로 엘사의 동생 안나는 백마 탄 왕자님과 결혼하려고 하였다가 이 왕자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멀리 떠난 언니를 찾기 위해서 여행을 하던 중에 얼음 배달부 크리스토프를 만나게 되고 함께 언니를 찾는 여행을 하면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라 함께 길을 걸어가는 사람, 같은 방향을 향해서 걸어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할 사람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잘 보여줍니다.

 

요즘 상영되고 있는 2편에도 생각해 볼만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저 멀리 있는 마법의 숲이 아렌달 왕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엘사와 안나는 그 이유가 할아버지가 원주민들에게 댐을 지어주겠다며 유혹한 후에 원주민들을 죽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엘사와 안나는 원주민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저주의 마법을 풀기 위해서 할아버지가 만든 댐을 무너뜨립니다. 원주민/환경파괴 같은 무거운 주제가 가족들이 보는 만화영화에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할아버지가 저지른 범죄를 손녀딸들이 사죄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댐을 허물어서 자연을 회복시켰습니다. 또한 언니 엘사는 자신은 숲이 더 좋다면서 왕의 자리를 동생 안나에게 물려줍니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초능력을 가진 엘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초능력은 없지만 마음이 따뜻한 동생 안나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은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초능력은 없지만 마음이 따뜻한 안나 같은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엘사와 안나 덕분에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었고 정착민과 원주민이 하나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11장 말씀이 이 영화의 배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11장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메시야가 나오고 지혜와 총명, 모략과 권능,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바르게 세워줍니다. 정의로 허리를 동여매고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습니다. 이새가 다윗의 아버지이니까 다윗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가 나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사야는 기원전 8세기에 살았는데 북쪽에서 앗시리아가 처들어와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이제 남유다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유다의 지도자들은 이사야가 보기에 나라를 바르게 통치할 능력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사야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영으로 충만한 메시야, 정의와 성실로 백성들을 통치하는 메시야를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믿습니다.

 

9절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메시야가 통치하는 세상이 오면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산은 넓게 말하면 온 세상을 가리키고 좁게 말하면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안전지대입니다. 교회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와서 안식을 누리고 은혜를 누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신앙이 뜨거운 사람과 차가운 사람, 젊은이와 노인, 건강한 사람과 병자, 부자와 가난한 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안전과 평화를 누리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입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와 가정과 나라가 안전지대가 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이리는 이리끼리, 양은 양끼리 사는 것은 쉽지만 이리와 양이 함께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따로따로 사는 곳이 아니라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사는 곳입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려면 이리가 바뀌어야 합니다. 강자가 바뀌어야 강자와 약자가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모양과 성격과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사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교회부터 먼저 이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모양과 성격과 개성이 서로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함께 신앙생활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마태복음 3장을 보면 세례요한이 사두개파 사람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꾸짖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성전을 이용해서 가난한 백성들을 착취했고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을 이용해서 가난한 백성들을 착취했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 안의 권력자들이었고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 바깥의 권력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였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이 보기에 그들 모두는 어린 양을 잡아먹는 뱀과 이리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사야도 메시야를 예언했고 세례요한도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메시야가 오셔서 이 세상을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사는 세상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안하고 메시야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작은 메시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작은 메시야가 되어서 이리와 양이 함께 사는 사회, 이리가 양들을 함부로 잡아먹을 수 없는 그런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이 주변을 얼어붙게 만들 수도 있고 따뜻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메시야 한명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작은 메시야들이 세상을 바꿉니다. 이 세상에는 초능력이 있는 엘사 같은 사람이 아니라 초능력은 없지만 이웃과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고 마음이 따뜻한 안나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비록 초능력은 없지만 주님의 영으로 충만해서 우리 주변을 따뜻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바꿀 때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이사야가 노래했던 것처럼,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고, 원주민과 토착민이 함께 살고,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사는 세상을 우리 주변부터 만들어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Advent, the wolf shall live with the lamb

Isaiah 11:1-9, Matthew 3:7-12

 

The movie "Frozen" shows us beautiful scenes, such as the two sisters melting the frozen kingdom with the power of love, apologizing to the natives, and letting the younger sister sit down as king. This film reminds us of Isaiah 11: 6. "The wolf shall live with the lamb, the leopard shall lie down with the kid, the calf and the lion and the fatling together, and a little child shall lead them." It will be more difficult for the wolf and the lamb to live together than for them to live separately. But today's scriptures testify to us that the Messiah will come and create a world where people of different shapes and personalities live together in peace. As Isaiah foretold the Messiah, John the Baptist also said, "He who comes after me will baptize with the Holy Spirit and fire." We are waiting for the Messiah to come and make a world where wolves and lambs live together. But we are also called to build a society where wolves and sheep live together. The story of Elsa in [Frozen] shows that we can freeze or warm our surroundings. Not one Messiah changes the world, but several small Messiahs would change the world. Although we have no superpower, the kingdom of God will begin with us when we a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transforming our surroundings into a warm and peaceful world.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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