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일곱번째 주일 / 10월 두번째 주일

추수감사절, 감사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시편 136:1-9, 23-26

정해빈 목사

 

오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세상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사 여기까지 인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풍성한 먹거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는 날입니다. 감사는 고백하고 표현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무엇을 사 주고 나서 say something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Thanks Mom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감사를 표현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보기에 좋아 보였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유교 문화에서 자라서 그런지 감정이나 표현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좋아도 좋다고 잘 말하지 않고 슬퍼도 슬프다고 잘 말하지 않습니다. 남에게서 도움을 받아도 고맙다고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는 고백하고 표현할 때 더 풍성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서 감사를 고백하고 표현할 때 더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36편은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감사를 고백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모든 주 가운데 가장 크신 주님, 홀로 큰 기적을 일으키시고 지혜로 하늘을 만드신 분, 낮을 다스릴 해를 지으시고 밤을 다스릴 달과 별을 지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이렇게 감사를 고백할 때 하나님은 영광받으시고 우리의 삶은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미국 하바드 의과대학 잡지에 “감사가 당신을 행복하게 합니다” 라는 글이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감사(gratitude)라는 말은 라틴어 gratia에서 왔는데 gratia는 은혜(grace)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감사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감사는 내 인생 대부분의 축복이 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내가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내 스스로 만든 것은 많지 않습니다. 나의 행복의 대부분은 외부에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셨고 자연이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이웃이 나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자연과 이웃을 나와 연결시켜 줍니다. 의과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감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고 더 긍정적이고 더 건강하고 더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더 좋은 이웃관계를 맺는다고 합니다. 감사하면 더 행복하고 더 긍정적이고 더 건강하고 더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더 좋은 이웃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감사노트”를 써 보라고 했더니 한 페이지도 채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트 전체를 다 채우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몸이 아프면 감사한 것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감사노트를 쓰려고 하면 처음에는 한 페이지도 채우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감사한 것이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감사한 것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셨고 내가 세상에 나올 때 할머니가 나를 받아 주었을 것입니다. 천천히 내 삶을 되돌아보면 내가 감사해야 할 일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감사가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감사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완전해지고 건강해지고 충만해집니다. 우리가 낮아졌을 때에 우리를 기억하여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에게서 건져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시는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감사를 통해서 더 행복하고 더 긍정적이고 더 건강하고 더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더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빕니다.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Giving thanks can make us happier

Psalms 136:1-9, 23-26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love endures forever. Give thanks to the God of gods. His love endures forever. Give thanks to the Lord of lords. His love endures forever. to him who alone does great wonders, His love endures forever. who by his understanding made the heavens, His love endures forever. who spread out the earth upon the waters, His love endures forever. who made the great lights, His love endures forever. the sun to govern the day, His love endures forever. the moon and stars to govern the night, His love endures forever. (Psalms 136:1-9), He remembered us in our low estate. His love endures forever. and He freed us from our enemies. His love endures forever. He gives food to every creature. His love endures forever. Give thanks to the God of heaven. His love endures forever. (Psalms 136:23-26)

 

Thanksgiving reminds us of what we can be thankful for and what we should be grateful for. We see everything ripens and all leaves turn yellow and red. The word “Gratitude” comes from the Latin word “gratia” which means grace or gratefulness. So thanksgiving or gratitude means that grace is everything we have and everything we received from God, nature, and neighbors. Some months ago, I have read the column "Giving thanks can make you happier" at Harvard Medical School magazine. It says gratitude makes people feel more positive emotions, relish good experiences, improve their health, deal with adversity, and build strong relationships. Gratitude is a way to appreciate what they have, instead of wanting something new in the hopes it will make them happier, or thinking they can't feel satisfied until the need is met. Gratitude makes people refocus on what they have, instead of what they lack. This article suggests to keep a gratitude journal and count your blessings that what you already have in order to live a full life. If someone tells us to write down what we have thanked so far in “Thank You Note”, we probably won't be able to fill one page at first. But when we start remembering all the things we thanked since we were youngest, we can realize how much we have to thank. For example, my parents gave birth to me, and when I came out, probably my grandmother accepted me first. Psalms 136 says “The Lord gives food to every creature. His love endures forever. Give thanks to the God of heaven. His love endures forever.” Truly giving thanks makes us happier. It brings us close to God and helps us live a full life. So I pray that may the grace of God, our creator, all the source of gratitude, come to you so that everyone lives a full life of joy and happiness.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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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여섯번째 주일 / 10월 첫번째 주일

창조절, 창조의 목적은 사랑

창세기 1:26-28, 29:18-20

정해빈 목사

 

 

 

우리는 요즘 9월, 10월, 11월 창조절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창조신앙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두 개의 단어로 요약한다면 “창조와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둘째로 그런데 이 세상에 죄와 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창조와 구원입니다. 창조절 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사느냐, 아니면 아무생각 없이 세상을 사느냐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창조절 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아름답고 신비롭고 감사하게 보입니다. 창조절 신앙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감사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도 감사하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것도 감사합니다. 창조절 신앙은 우리의 삶을 더 감사하고 더 기뻐하고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창조절 신앙을 갖지 않고 세상을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삶은 무미건조하고 메마를 것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와도 무덤덤하고,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무덤덤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낙엽이 떨어져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창조절 신앙이 없기 때문에 무덤덤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창조절 신앙이 있기 때문에 이름없는 꽃 한 송이를 봐도 놀랍고 신비롭고 감사하고, 작은 대추 도토리를 봐도 놀랍고 신비롭고 감사합니다. 창조의 신비를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매일매일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과 말씀과 빛으로 어둡고 무질서한 세상을 밝고 질서있는 세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골에 있는 오래된 집을 샀는데 집 안에 들어가 보니까 빛도 안 들어오고 무질서하고 먼지가 잔뜩 쌓여있습니다. 이 사람이 먼지를 털어내고 하나씩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질서하고 캄캄한 세상을 질서있고 아름답고 조화있는 세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일 년 사계절이 규칙적으로 돌아오고 지구가 365일 태양을 돌고 하루 24시간 한 바퀴를 도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질서있게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지구 온도가 들쑥날쑥하고 별들이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사람은 결코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질서있고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 나오는 “우리”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뜻한다고 보통 해석을 합니다. 26절 앞 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동물을 창조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 나오는 “우리”는 하나님과 동물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과 바다와 하늘의 동물들을 모아놓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동물의 형상을 합쳐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절반, 동물에게서 절반을 모아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동물의 모습과 하나님의 모습이 절반씩 들어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동물에게서 왔고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하나님과 동물의 중간이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물 사이에 서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섬기고 관리하라는 뜻에서 사람이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에게는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동물과 식물을 잘 관리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여라,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로 아래로는 동물을 잘 돌보고 이 땅을 잘 다스려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런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첫째날부터 다섯째날까지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셨다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게 세상만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을 만들고 사랑하기 때문에 인내하고 희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할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지 않고 영원히 홀로 사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시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세상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창조의 목적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상대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신 것이 바로 이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 번째로 읽은 창세기 29장 말씀은 야곱이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7년간 일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7년을 하루같이 일해서 라헬과 결혼하려고 하였더니 라반이 꾀를 부려서 결혼은 언니부터 해야 되니까 라헬과 결혼하려면 7년 더 일을 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이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서 14년을 종처럼 일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창세기 말씀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말씀 중 하나입니다. 야곱은 꾀가 많고 계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쟁취했습니다. 형 에서가 배가 고프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팥죽으로 장자권을 샀고 아버지가 눈이 잘 안 보인다는 것을 알고 형으로 변장을 했습니다. 그렇게 남의 약점을 이용했던 야곱은 자기보다 더 머리가 좋은 외삼촌 라반의 꾀임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사기꾼은 더 큰 사기꾼에게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야곱이 라반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야곱이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 모든 희생을 감수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만나면서 진정한 인생의 성공과 행복이 사랑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무리 성공하고 유명해도 사랑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평소 꾀가 많고 계산적이었던 야곱은 사랑이 가장 귀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기적인 야곱이 이타적인 야곱으로 변했습니다. 인생에 있어 사랑이 가장 귀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야곱은 그 가장 귀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 14년을 종처럼 일하며 참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창조의 목적도 사랑이고 인생의 목적도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최선을 다해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야곱도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 오랜 세월을 일하며 참고 기다렸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지 못해도 사랑을 얻은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창조의 목적이 사랑에 있음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사랑, 가족 사랑, 이웃 사랑, 자연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reation, love is the purpose of creation

Genesis 1:26-28, 29:18-20

 

Then God said, “Let us make humankind in our image, according to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birds of the air and over the cattle and over all the wild animals of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s upon the earth.” So God created humankind in his image,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the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birds of the air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moves upon the earth.” (Genesis 1:26-28), Jacob loved Rachel; so he said, “I will serve you seven years for your younger daughter Rachel.” Laban said, “It is better that I give her to you than that I should give her to any other man; stay with me.” So Jacob served seven years for Rachel and they seemed to him but a few days because of the love he had for her. (Genesis 29:18-20)

 

"Let us make humankind in our image, according to our likeness" (Genesis 1:26). Whom does God say "us"? The term “we” may refer to the Triune God, or to God and animals. If "we" indicates God and animals, it means that God made humans by combining the image of God and animals. Then the fate of humans lies between God and animals. This reminds us that the mission of humans is to connect God with animals, and to serve God above and to manage animals and plants below. The story of creation and Jacob in Genesis shows that both the purpose of creation and human life are in love. God so loved us that God created and gave everything to us. Had God not loved us, God would not have created the world. Jacob worked hard as a slave for 14 years to marry his beloved Rachel. He sacrificed everything to get a loved one. It was because he realized that the true happiness of life is in love. If we can give and receive love completely, our lives will be filled with happiness. Indeed, happiness in life depends on love. Without love, there would have been no creation and no life in the world. Today's scripture reminds us that the purpose of creation and life is love. We are called to witness this love to the world.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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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세번째 주일 / 9월 세번째 주일

창조절, 토기장이 하나님이 나를 만드시니

예레미야 18:6-8, 디모데전서 1:12-16

정해빈 목사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예레미야 18장 말씀은 토기장이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망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토기장이가 어떻게 토기를 만드는지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에 내려가서 보니까 토기장이가 물레를 돌리며 그릇을 빚고 있었는데 잘 되지 않으면 그릇을 깨트린 후에 그 흙을 다시 모아서 새로운 그릇을 빚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이 토기장이와 같이 너희를 다룰 수가 없겠느냐?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 안에 있듯이 너희도 내 손 안에 있다.” 진흙이 토기장이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포함해서 어느 민족이든지 주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멸망시키겠지만 죄악에서 돌이키면 재앙을 거두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으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토기장이가 되십니다.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기도 하고 깨트리기도 하고 다시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들기도 하시고 깨트리기도 하시고 다시 만들기도 하십니다. 저 사람을 깨트려야겠다고 생각하시면 저 사람을 깨트리실 것이고 저 사람을 깨트린 후에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시면 그 사람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말씀과 성령으로 다듬으셔서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작품,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때때로 인생을 살다보면 넘어지고 깨지고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께서 나를 깨트리신 후에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시는 구나 이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운명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파괴하는 분이 아니라 살리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이 잘 안 만들어졌을 때 포기하지 않고 흙을 모아서 다시 좋은 그릇을 만들 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망가졌을 때,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다시 빚어주십니다. 우리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십니다.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좋은 그릇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려 주십니다.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리시지 않고 우리를 심판하셨다면 우리들 중에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주 실수하고 실패하고 죄를 저지릅니다. 그래도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실수하고 실패하고 죄를 저질러도, 우리가 성숙할 때까지, 우리가 변화될 때까지 주님은 참고 기다리십니다. 참고 기다려주시는 것이 은혜요 자비입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디모데전서 1장 말씀은 사람을 깨트리시고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시는 토기장이 하나님을 잘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젊은 2세대 목회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는데 그러한 행동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끝없이 참아 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나에게서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박해자/폭행자였고 죄인의 우두머리였는데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나를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도덕적으로 방탕하고 타락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으로는 깨끗하게 살았지만 정통 유대교에 대한 확신이 지나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이 배타주의/우월주의, 독선과 아집에 빠진 죄인 중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바울을 자비롭고 너그러운 사람, 이방인을 사랑하는 사람, 생명과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토기장이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사도바울은 실패한 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를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훼방자/박해자/폭행자가 변해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주님을 만나서 변화되었으니 누구든지 주님을 만나면 새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디모데에게 말했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토기장이 하나님께 붙들려서 한번 깨진 후에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Amazing Grace,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를 작사한 존 뉴튼은 영국에서 태어나 1700년대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을 사고파는 노예무역 일을 했습니다. 1748년 5월 10일 노예를 수송하는 배를 탔다가 폭풍우를 만난 그는 만약 여기서 살려주시면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존 뉴튼은 과거를 청산하고 성직자가 되었고 찬송가를 작사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부자였던 록펠러는 한때 미국 석유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악덕 기업주였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잔인하게 경쟁회사를 짓밟았습니다. 그는 금욕생활을 했고 매일 회계장부를 기록하는 구두쇠였습니다. 55세 되었을 때 스트레스/우울증으로 입원했는데 1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그는 그때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액자가 병원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침례교 목사님이 찾아와서 당신이 죽으면 아무도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록펠러재단을 세우고는 전국에 고아원과 도서관과 대학을 세웠습니다. 55세에 죽을 뻔 했던 록펠러는 98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마지막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들은 인생을 살면서 자주 실수하고 실패하고 죄를 저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사람은 평생 3번 기회가 오고 3번 위기가 오고 3번 변화가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위기와 변화가 오는 순간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만들어 주시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만들어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희망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을 만나서 변화받고 전도자가 된 것처럼, 누구든지 토기장이 하나님을 만나면 변화될 수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나의 제자 디모데여,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목회하십시오. 아무리 나쁜 그릇도 하나님께서 만져주시면 얼마든지 좋은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을 부어주시면 아무리 형편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새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목회하십시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토기장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져주시면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창조절 절기를 묵상하면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한 마음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reation, the potter Lord made me

Jeremiah 18:6-8, 1 Timothy 1:12-16

 

“Can I not do with you, O house of Israel, just as this potter has done?” says the Lord. “Just like the clay in the potter’s hand, so are you in my hand, O house of Israel. At one moment I may declare concerning a nation or a kingdom that I will pluck up and break down and destroy it, but if that nation, concerning which I have spoken, turns from its evil, I will change my mind about the disaster that I intended to bring on it.” (Jeremiah 18:6-8)

I am grateful to Christ Jesus our Lord who has strengthened me because he judged me faithful and appointed me to his service, even though I was formerly a blasphemer, a persecutor, and a man of violence. But I received mercy because I had acted ignorantly in unbelief, and the grace of our Lord overflowed for me with the faith and love that are in Christ Jesus. The saying is sure and worthy of full acceptance, that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of whom I am the foremost. But for that very reason I received mercy, so that in me, as the foremost, Jesus Christ might display the utmost patience, making me an example to those who would come to believe in him for eternal life. (1 Timothy 1:12-16)

 

Jeremiah chapter 18, which we read today as the first scripture, illustrates the image of God as a potter. Just as a potter makes, breaks down, and reworks it into another vessel, God not only created us in the past but also is making us here and now. According to Genesis, God, our creator and potter, made a human out of dust and instilled spirit into his nose. But that does not mean God's work of creation stopped at once. Sometimes God breaks us down and makes us better people. When our lives are broken, God does not give up on us and builds us up again. We can have hope because the Lord builds us again. God refines us with the Word and the Holy Spirit and makes us new creatures. John Newton, who wrote the hymn “Amazing Grace,” met a storm in a ship carrying slaves. He pledged to leave the slave trade and become a new person if God would save him here. He later became a priest and wrote many hymns. Rockefeller, the richest man in American history, lived 55 years as a vicious entrepreneur and a sober miser. But he had to be admitted to the hospital with stress and depression and realized that his life so far was miserable. He has since established a foundation and lived a whole new life, a life of charity and relief, totally different from the past. The Apostle Paul confessed himself as a blasphemer, persecutor, and assaulter in the first chapter of 1 Timothy we read today. But God changed him into an evangelist who persecuted Christianity in the past. making him an example to those who would come to believe in Jesus for eternal life. Indeed, God does not give up on anyone. Anyone who meets the Lord can become a new person. The potter God who made us in the past still creates us. Sometimes we meet moments of falling and failing. But that may be the process by which God has broken us and made us better people. Meditating on the season of creation, we are called to look to God, who made humans out of dirt, who, even if we make a mistake or fails, does not give up and remakes us into a better person.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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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두번째 주일 / 9월 두번째 주일

창조절, 주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욥기 38:1 - 12

정해빈 목사

 

 

[기게스의 반지, Ring of Gyges]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국가]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나라에 양을 치는 목동 기게스가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졌는데 그 땅 속으로 큰 동굴이 보였습니다. 기게스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큰 거인의 시체가 있었고 그 시체 손가락에는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기게스가 반지를 빼서 자기 손가락에 넣고서 반지를 돌리니까 투명인간이 되었고 다시 반지를 돌리니까 정상이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투명인간이 돼서 나의 행동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다면 사람은 선한 행동을 하기보다는 대체로 나쁜 짓을 할 것입니다. 목동 기게스도 궁궐에 들어가서 왕비와 정을 통하고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제자들에게 만약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다면, 자기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물었습니다. 한 제자가 ‘도덕은 내가 무능하고 힘이 없기 때문에 지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약 그런 반지를 가지고 있다면 도덕을 지키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플라톤의 제자인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도덕이 자기에게도 이익이 되고 사회 전체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투명인간이 되어도 도덕을 지킬 것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얻는 이익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행복은 오직 도덕을 지킬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은 선하게 태어나는가 아니면 악하게 태어나는가 하는 질문을 떠오르게 합니다. 중국의 철학자 순자는 사람은 본래 악하게 태어난다는 성악설을 주장했고 맹자는 사람은 본래 선하게 태어난다는 성선설을 주장했습니다.

 

[기게스의 반지]는 한때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을 떠오르게 합니다. 주인공이 절대반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반지를 끼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 반지가 위험하고 세상을 파괴한다고 생각해서 이 반지를 용광로에 넣어서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그러자 악한 세력들은 이 반지를 빼앗으려고 하였고 선한 세력들은 주인공을 도와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악한 세력이든 선한 세력이든 누구든지 절대반지를 한번 보기만 하면 그 반지를 갖으려는 욕심을 갖게 됩니다. 주인공은 이 반지를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없애버릴까 갈등하다가 아주 힘들게 이 반지를 용광로 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절대권력/절대마법/절대과학을 차지하려는 이야기는 이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돈을 벌고 싶은 사업가가 코스타리가 서해안의 한 섬에 테마 파크 [쥬라기 공원]을 만들고 공룡을 최신 복제 기술로 살려냅니다. 일반 개장에 앞서서 과학자들을 초대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로 인해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공룡들이 인간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기게스의 반지], [반지의 제왕], [쥬라기 공원]이 우리에게 주는 질문이 있습니다. 절대반지를 가지면 사람은 행복할까? 투명인간이 되면 사람은 행복할까? 절대반지를 버리는 것이 행복할까 갖는 것이 행복할까? 유전자를 조작하는 과학기술을 갖고 있으면 사람은 행복할까?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세상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조작하면 사람은 행복할까? 초능력을 갖고 있으면 사람은 행복할까? 로또 복권에 당첨되면 사람은 행복할까? 사람이 하나님처럼 능력을 갖게 되면 사람은 행복할까? 이 이야기들은 이러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내가 무능력하다고 느낄 때, 나에게 하나님 같은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힘이 있다면 불공평한 세상을 더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나에게 힘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고쳐줄 수 있을 텐데, 나에게 돈이 있다면 자녀들에게 원하는 것을 사 줄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나오는 욥의 생각도 이와 같았습니다. 욥은 자신이 겪는 고난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세상이 불공평합니다. 이런 불공평한 세상을 왜 만드셨습니까?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내가 하나님이라면 당신보다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욥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괴팍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무능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새디스트처럼, 내가 고통받는 것을 즐기는 고약하고 괴팍한 분이거나, 둘째로 멀리 계셔서 나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셋째로 나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없는 무능력한 분이거나 셋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욥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못마땅할 때,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나에게 하나님과 같은 능력이 있으면 하나님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기게스의 반지에 나오는 목동처럼 그 초능력을 가지고 오히려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지는 않을까요? 과연 우리에게는 초능력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욥의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너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네가 아침에게 명령하여 동이 트게 해 본 일이 있느냐? 새벽에게 명령하여 새벽이 제자리를 지키게 한 일이 있느냐?” 네가 감히 나의 지혜를 의심하느냐? 너는 지금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말하지만, 이 세상을 만들 때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 세상창조가 이루어질 때 네가 한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괴팍하지도 않고 무관심하지도 않고 무능력하지도 않고 지금도 이 세상을 위해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구 나이 45억년을 하루 24시간으로 계산하면 최초의 원시생명체는 아침 6시에 시작되었고 최초의 동물은 밤 9시에 시작되었고 공룡은 밤 10시 45분쯤 시작되었고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밤 11시 59분 50초에 시작되었고, 인간문명은 밤 11시 59분 59초에 시작되었습니다. 인간문명이 만들어지기까지 지구가 11시 59분 59초를 기다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현대문명을 사용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불공평합니다. 먹고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한 자연과 질병을 무서워합니다. 하지만 지구역사를 되돌아보면 현재 우리들보다 더 부유하고 편리한 삶을 산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창조하셨고 지금도 창조하십니다. 아직 창조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불완전하고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비록 이 세상이 불완전하고 불공평하지만 우리는 지구 역사상,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축복을 누리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만약 이 세상이 망가진다면 그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자기 힘을 과시하는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일 것입니다. 절대반지가 있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감사하며 주님 뜻 안에서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할 것입니다. 창조절 절기를 묵상하면서 지금도 일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reation, when I laid the foundation of the earth

Job 38:1 - 12

 

Then the Lord answered Job out of the whirlwind: “Who is this that darkens counsel by words without knowledge? Gird up your loins like a man, I will question you, and you shall declare to me. “Where were you when I laid the foundation of the earth? Tell me, if you have understanding. Who determined its measurements—surely you know! Or who stretched the line upon it? On what were its bases sunk, or who laid its cornerstone when the morning stars sang together and all the heavenly beings shouted for joy? Or who shut in the sea with doors when it burst out from the womb? when I made the clouds its garment, and thick darkness its swaddling band, and prescribed bounds for it, and set bars and doors, and said, ‘Thus far shall you come, and no farther, and here shall your proud waves be stopped’? “Have you commanded the morning since your days began, and caused the dawn to know its place so that it might take hold of the skirts of the earth, and the wicked be shaken out of it? (Job 38:1 - 12)

 

Some of you may have heard of [the Ring of Gyges], [the Lord of the Rings], and [Jurassic Park]. These stories are all about people becoming invisible, gaining absolute power, or using new technology to pursue profits. These stories ask us the following questions: Will people be happy if they have a ring to do anything? or if they become invisible? Will they be happy if they throw away a ring or if they keep it? Will a person be happy if she or he has the technology to manipulate genes? Will people be happy if science and technology develop, control, and manipulate the world at will? Will people be happy if they have superpowers like God? When Job complained that the world was unfair, and pointed out God's indifference and inability, God asked Job, "Where were you when I laid the foundation of the world?" Of course, the world is incomplete and unfair. We are also afraid of natural disasters and diseases. But we should not forget that no one had lived a richer and more convenient life than we do now. We believe that God who created the world is also creating even today. If the world is broken, it would not be due to the inability of God, but because of foolish people who abuse their power and knowledge. Today's scripture reminds us of the fact that although human beings have infinite power in some fields, there are areas that we cannot fully understand, solely belonging to God's sovereignty. Celebrating the Season of Creation, we are called to live each day with humility, thanking the God who still creates the world for us.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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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첫번째 주일 / 9월 첫번째 주일

창조절,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누가복음 14:7 - 14

정해빈 목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의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는데 영화로도 상영되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과 반듯한 남편과 맨해튼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겉으로 보면 성공한 사람이었고 중산층/상류층에 속했습니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일하고 성공하고 연애하고 헤어지곤 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삶은 풍족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에 빠진 것, 필요한 것을 찾기 위해서 그녀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일 년 간의 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는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발리에서는 자유롭게 사랑하면서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책 제목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피자/스파케티를 먹으면서 행복을 경험합니다. 힘들 때는 잘 먹어야 합니다. 인도에서는 물론 기독교가 아니라 힌두교이겠지만, 요가를 하고 경전을 공부하면서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발리에서는 이혼한 엄마와 딸을 위해서 모금을 해서 집을 사 주기도 하고 상처많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 책과 영화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자신을 용서하고 믿고 사랑하라. 웃을 때는 심장도 웃고 위장도 웃고 간도 웃도록 온 몸으로 웃어라” 이 책과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실패가 있어도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과 진정한 축복은 이웃과 함께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이 여행을 통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축복을 이웃과 나눌 때 진정한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에 실패가 있어도 자신을 사랑할 때, 내가 받은 축복을 이웃과 함께 나눌 때, 진정한 행복이 온다는 것을 그녀는 이 여행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상생활에 지쳐서 무언가 새로운 변화와 활력이 필요다고 느낄 때 두가지 방법을 택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방법으로는 산속에 있는 기도원/수도원에 가서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화하고 기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을 떠나서 기도하는 것이 나에게 신앙적인 체험과 믿음과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옛날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는 무언가 변화가 필요할 때 기도원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상생활에 지쳐서 무언가 새로운 변화와 활력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할 수 있는 두번째 방법으로는 첫 번째와 정반대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 책 제목처럼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기도원에 가는 것보다 덜 거룩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사람과 함께 신나게 먹고 뜨겁게 기도하고 자유롭게 사랑할 때,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이웃과 함께 기쁘게 먹고 이웃과 함께 기쁘게 기도하고 이웃과 함께 기쁘게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내가 받은 축복을 이웃과 나눌 때, 누군가에게 내가 축복이 되어 줄 때, 사람은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데 필요한 첫번째는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 나라의 식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에서 식사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식사하러 들어가셨습니다. 바리새파는 평신도 지도자였는데 모든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고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사역을 존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식사 자리에 앉아서 초대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자리에 앉는지를 관찰하셨습니다. 식사자리는 흥겨운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식사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과 경쟁이 있었습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저마다 상석, 윗자리에 앉으려고 합니다. 자기 신분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거든 높은 자리에 앉지 말아라. 혹시 너보다 더 귀한 사람이 오면 주인이 너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차라리 너는 맨 끝자리에 앉아라. 그러면 주인이 와서 윗자리로 앉으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 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000년 전에는 식사자리가 자기 신분을 과시하고 경쟁하는 자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회 특권층/상류층의 행동을 책망하셨습니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고 했는데 오늘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신분과 재물이 자녀들에게 세습됩니다. 신분과 재물이 대대로 내려오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 상류층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부모를 잘 만나서 상류층이 되었으면 한편으로는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받은 사회적 혜택/축복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상류층이 존경을 받습니다. 부자가 정직하게 세금을 많이 내면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만일 상류층이 자기들끼리 장벽을 쳐서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하고 자기들 끼리만 축복을 즐긴다면 그들의 인생은 존경받지 못할 것입니다. 작년과 올 초에 방영된 한국 드라마 중에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저는 보지 않았는데 줄거리를 보니까 상류층 부모들이 자기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해서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낸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상류층 출신 사람이 상류층을 벗어나서 사회정의를 외치면 그 사람을 가만 나두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기들끼리의 장벽을 쌓아놓고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신분을 과시하고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상류층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더 놀라운 말씀은 13절-14절입니다.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불러라. 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들끼리만 식사하지 말고 보답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초대해서 식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던 주님의 마음,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를 설교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고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열린 식탁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차별없는 식사, 모두를 환영하는 식사에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서로 경쟁하면서 높은 자리에 앉으면 행복할까요? 상류층끼리만 어울리면 행복할까요? 받은 축복을 혼자 누리면 행복할까요? 당신은 한번이라도 누군가에게 축복이 된 적이 있습니까, 축복을 나누어 준 적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웃과 함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 이웃과 축복을 나누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창조절을 묵상하면서 누군가에게 축복이 되는 삶, 함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reation, eat, pray, love 

Luke 14:7-14

 

When he noticed how the guests chose the places of honour, he told them a parable. “When you are invited by someone to a wedding banquet, do not sit down at the place of honor, in case someone more distinguished than you has been invited by your host; and the host who invited both of you may come and say to you, ‘Give this person your place,’ and then in disgrace you would start to take the lowest place. But when you are invited, go and sit down at the lowest place, so that when your host comes, he may say to you, ‘Friend, move up higher’; then you will be honoured in the presence of all who sit at the table with you. For all who exalt themselves will be humbled, and those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exalted.” He said also to the one who had invited him, “When you give a luncheon or a dinner, do not invite your friends or your brothers or your relatives or rich neighbours, in case they may invite you in return, and you would be repaid. But when you give a banquet, invite the poor, the crippled, the lame, and the blind. And you will be blessed because they cannot repay you, for you will be repaid at the resurrection of the righteous.” (Luke 14:12-14)

 

In the film, "Eat, Pray, Love" (based on the book by Elizabeth Gilbert), a woman goes on a personal quest that takes her to Italy, India, and Bali, where she, well, eats, prays, and loves. Perhaps she appropriately begins her spiritual journey not with strict, ascetic practices but with consuming big plates of pasta with unreserved gusto. Eating--that most human and most necessary of activities--and all that we associate with it are entwined with our spiritual lives, so it's no surprise that meals and food are significant themes not just in the movies but in the Bible as well, including the Gospel of Luke. Sitting here at dinner in the home of a Pharisee, Jesus makes observations and gives advice that is really a clear instruction to us all about how to live in the reign of God: when making up our guest lists and deciding how to share the blessings we've received, don't be strategic. Don't go for reciprocity. Be extravagantly, forgetfully generous. Invite the most unlikely, most unexpected of guests into your home and share that most necessary, most enjoyable experience of eating together. "You will be blessed," Jesus says, repaid at the resurrection, for sure, but we sense that he's referring to more immediate blessings as well. Early in the film, "Eat, Pray, Love," the main character seems to realize that she's missing something in not being able to extend herself--to be present for--others. We might say that she hungers not just to count her blessings, but to be a blessing as well. In this week's reading, Jesus helps his followers understand where blessings are to be found, and how to live as a blessing as well.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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