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네번째 주일 / 6월 네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거북이 섬에 서서
신명기 8:6 – 11
정해빈 목사




2017년 6월 25일, 우리들은 6월 마지막 주일에 야외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2017년 상반기를 지내면서 우리들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7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한반도에서 다시는 민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지난 수요일 6월 21일은 일 년 중에서 해가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하지(夏至)였습니다. 요즘 기간이 해가 가장 깁니다. 밤 9시가 되어도 해가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는 매년 하지에 해당하는 날을 원주민의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수요일에는 캐나다 여기저기에서 원주민들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행사가 있었습니다. 영어로 하면 National Aboriginal Day가 되는데 저스틴 트루도 수상이 지난 수요일에 연설을 하면서 앞으로는 National Aboriginal Day 대신에 National Indigenous Peoples Day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Aboriginal이라는 말에는 식민지/원주민/토착민 이라는 부정적인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Aboriginal 이란 말 대신에 처음 사람들, 땅의 주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Indigenous 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UN에서도 가능하면 Indigenous 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은 7월 1일 캐나다 건국 1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6월 21일 하지(夏至) 및 원주민의 날과 7월 1일 Canada Day를 기억하면서 우리들에게 이 아름다운 땅을 물려준 원주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려면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물이 있어야 하고 흙이 있어야 하고 따뜻한 햇볕이 있어야 하고 신선한 공기/바람이 있어야 하고 동물과 식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순서대로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땅이 캄캄하고 어두우니까 빛이 있어라 말씀하셨고, 온 세상에 물만 있으니까 물이 물러가고 땅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물이 있었고 그 다음에 바람이 있었고 그 다음에 땅이 생겼고 그 다음에 식물과 동물이 만들어졌습니다. 물 – 바람 – 땅 – 식물 이런 순서로 세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창세기 1장 1절-2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서 움직이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맨 처음 세상은 혼란스럽고 어두웠습니다. 온 세상이 물로 가득 찼습니다. 온 세상이 어둡고 물만 있으니까 생명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바람이 수면 위에서 움직였습니다. 바람이 불면 물이 물러갑니다. 물이 없어지려면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불었더니 드디어 땅이 나타났습니다. 물은 물끼리 모여서 바다가 되었고 땅은 땅끼리 모여서 육지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육지에서 식물과 동물이 이 생겨났고 마침내 사람이 만들어졌습니다. 창조의 순서가 어둠에서 빛이 생겼고, 그 다음 물 – 바람 – 땅 – 식물/동물/사람 순서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맨 처음 세상에는 물만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물이 한쪽으로 보이니 바다와 육지가 생겼습니다. 그 육지에서 식물과 동물이 나왔고 마침내 사람이 출현했습니다. 지구상에 제일 먼저 출현한 사람들을 보통 원시인이라고 부릅니다. 원시인 이야기는 너무 먼 옛날 이야기이니까 제쳐두고 가까운 역사를 놓고 보면 이 땅에서 수 만년, 수 천 년 간 살아온 사람들은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이야 말로 이 땅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양 이민자들이 이곳에서 살게 된 것은 대략 300년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원주민들이 자기들이 사는 북아메리카 땅을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아십니까? 원주민들은 북아메리카를 가리켜서 “거북이 섬, Turtle Island”이라고 불렀습니다. 북미 지도를 잘 보시면 북아메리카 땅이 거북이가 팔과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8장 말씀은 모세가 죽기 전에 후세대들에게 전한 유언의 말씀입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젊은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고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하십시오.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여 주는 주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하고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잘 지키고 하나님을 섬기면 땅이 복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데리고 가시는 땅은 좋은 땅입니다. 골짜기와 산에서 지하수가 흐르고 샘물이 나고 시냇물이 흐르는 땅이며 밀과 보리가 자라고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며 올리브 기름과 꿀이 생산되는 땅이며 먹을 것이 모자라지 않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돌에서는 쇠를 얻고 산에서는 구리를 캐낼 수 있는 땅입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신 옥토에서 당신들은 배불리 먹고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땅이 기름지고 샘물이 흘러서 먹을 거리가 풍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풍성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입니다. 우리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 땅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수 만 년, 수 천 년 동안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았던 원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집시다. 요즘 캐나다연합교회, 영어예배를 가보면 예배를 시작할 때 맨 처음 순서로 “이 땅을 우리들에게 물려준 원주민 형제자매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 땅은 본래 여러분들의 땅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과 역사를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과거에 받았던 상처에 대해서 용서를 빕니다” 이렇게 고백을 한 후에 예배를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을 살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원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연의 풍성함으로 보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이 “거북이 섬, Turtle Island”에 살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원주민들에게 감사하고 캐나다에 감사하고 자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이 땅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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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세번째 주일 / 6월 세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갈릴리에서 로마까지

사도행전 1:6 - 11

정해빈 목사



신약성경 순서를 보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이런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누가라는 사람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썼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어떻게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는지를 기록했고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들이 어떻게 교회생활을 시작했고 어떻게 로마사회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켰는지를 썼습니다. 이렇게 누가가 2권의 책을 썼기 때문에 2권의 책이 붙어 있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신약성경 순서를 정할 때 요한복음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사이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아마 옛날 학자들은 마태/마가/누가/요한 이렇게 복음서끼리 붙여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서로 떨어져 있다 보니까 두 책이 같은 저자의 작품이라는 것을 자주 잊어먹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을 읽은 다음에 사도행전을 읽으면 두 책의 내용이 서로 잘 연결됩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해서 갈릴리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어떻게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거쳐서 로마의 수도 로마에 이르렀는지를 기록하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한 사람의 작품이기 때문에 두 권을 이어서 읽으면 많은 곳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령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거의 모든 장에서 성령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사도행전을 가리켜서 성령복음/성령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임하셔서 온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가 태어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광야에서 기도하시고 시험받으셨습니다. 맨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는 갈릴리 회당에 들어가셔서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취임설교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일하시는 매순간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셨습니다. 사도행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나서 교회생활을 시작하였고 함께 물질을 나눔으로서 가난을 극복했습니다. 사울은 성령체험을 하고나서 바울로 변화되어 로마 곳곳에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성과 신분과 인종의 장벽을 넘어서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러 면에서 볼 때, 누가복음을 성령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고,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사도행전에는 성령 외에도 공통점이 많이 있습니다. 치료, 물질,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두 책에서 많이 나옵니다. 누가는 의사였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병을 고치는 이야기를 두 책에 많이 기록했습니다. 동시에 누가는 물질의 바른 사용을 강조했습니다. 삭개오 이야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나사로 이야기, 초대교회의 공동생활을 통해서 성도는 물질의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초청해서 하나님 나라 잔치를 베푸셨고 예루살렘 교회는 가난한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을 교회의 중요한 사역으로 생각했습니다. 누가는 성령, 치료, 물질에 이어서 여성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리아를 통해서 시작되었고 마리아와 마르다 같은 여성들이 예수님을 후원하고 대접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12제자 외에도 예수님을 후원하는 많은 여성들이 있었고 그 여성들의 가정에서 초대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갈릴리를 출발해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거쳐 로마 사회로 확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가난한 사람들을 식탁에 초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땅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땅, 가장 가난하고 외딴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오랜 식민지 생활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잊어버렸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도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나서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웃의 손을 붙잡아주는 지파공동체/평등공동체를 다시 건설할 수가 있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 운동은 예루살렘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고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하셨고 부패하고 타락한 성전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헤롯왕/로마 총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운동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세웠고 이 교회를 통해서 많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교인들이 물질을 서로 나누고 과부를 구제하였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 도시를 변화시켰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이 예루살렘 전체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이 더 넓은 세계로 확산되도록 제자들을 깨우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박해 때문에 제자들이 세상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를 방문해서 그곳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미워하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이러한 장벽을 깨트리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성령체험하는 것을 목격한 빌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은 갈릴리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거쳐 로마의 수도 로마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마치 누룩이 밀가루를 부풀게 하고 아주 작은 겨자씨가 큰 덤불을 이루는 것처럼, 갈릴리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 운동은 로마 제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로마제국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따랐습니다. 우상숭배하지 않았고 황제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유흥과 방탕과 쾌락을 멀리하였고 경건하고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였고 가난한 성도들을 돌보았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인종과 성과 신분에서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을 하나님의 형제자매로 환영하였습니다. 로마제국에 흩어져 있는 초대 교회들은 작은 가정교회에 불과했지만 그 가정 교회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로마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켰습니다. 이 모든 일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제자들이 하늘로 승천하시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옵니까? 로마제국이 언제 무너집니까? 우리는 언제 독립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바 아니요, 다만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완성하시고 새하늘과 새땅, 더 좋은 미래를 만드실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때와 시기가 언제 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세상 곳곳으로 확산될 때, 이 땅은 변화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들을 통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적은 숫자의 초대 교회 교인들이 로마 사회를 변화시켰듯이, 우리들도 이곳을 변화시키고 이곳에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선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갈릴리에서 시작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이곳에서 선포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entecost, from Galilee to Rome

Acts 1:6 11


While the apostles were still with Jesus, they asked him, "Lord, are you now going to give Israel its own king again?" Jesus said to them, "You don't need to know the time of those events that only the Father controls. But the Holy Spirit will come upon you and give you power. Then you will tell everyone about me in Jerusalem, in all Judea, in Samaria, and everywhere in the world." After Jesus had said this and while they were watching, he was taken up into a cloud. They could not see him, but as he went up, they kept looking up into the sky. Suddenly two men dressed in white clothes were standing there beside them. They said, "Why are you men from Galilee standing here and looking up into the sky? Jesus has been taken to heaven. But he will come back in the same way that you have seen him go." (Acts 1:6 11)


According to Luke-Acts, the Kingdom of God was started by Jesus in Galilee and then it reached the peak in Jerusalem where Jesus was crucified by political and religious authorities. Jesus healed the sick and feed the hungry in Gailee and exposed Jewish leaders’ hypocrisy in Jerusalem. Luke shows in his books that the Holy Spirit came upon not only Gailee and Jerusalem, but also Samaria and all the Roman societies. The Kingdom of God which began in Galilee, finally reached Rome. Truly the Holy Spirit makes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preached throughout the world. When the kingdom of God is preached, the sick is healed, the demons are withdrawn, and the justice and equality of God is realized.


When disciples asked Jesus, "Lord, is this the time when you will restore the kingdom of God? When will the Roman Empire collapse? When can we be independent?” Jesus replied, “it is not for you to know the times or periods that the Father has set by God’s own authority. But if you receive the Holy Spirit,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God will bring to us new heaven and new earth in the future, but we do not know the times and periods. Instead we are called to proclaim the Kingdom of God. Just as a small number of early Churches has transformed Roman society, we are called to change our world and to proclaim the justice and love of God her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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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두번째 주일 / 6월 두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자유와 기쁨의 교회

사도행전 2:1-4, 14-18

정해빈 목사




성령강림절 두번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가장 큰 차이일 것입니다. 유대교는 예수님을 한명의 예언자로 생각하지 구세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하나 더 말하라면 유대교는 율법/말씀의 종교이고 기독교는 성령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에 이집트를 탈출해서 50일 만에 시내산에 도착해서 율법/십계명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오순절은 율법/십계명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날부터 유대교는 율법/말씀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율법을 읽고 낭송하고 외워야 하고 날마다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지켜야 하는 계명이 계속 늘어나서 613개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하라는 계명이 248개, 하지 말라는 계명이 365개, 그래서 총 613개 계명이 되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 중에는 우리가 613개를 지키는 것은 그것을 지켜야만 구원받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대교가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구약 백성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신약 백성들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 오순절에 구약 백성들은 율법을 받았고 신약 백성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구약 백성들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다면 신약 백성들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신약 백성들은 율법을 통하지 않고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613개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으니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613개의 율법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 하나로 요약하셨습니다. 복잡하게 613개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아무런 조건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됩니다. 그것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을 하려면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서로 사랑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으니까 서로 사랑하면 613개의 계명을 지킨 것이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성령의 9가지 은사를 주십니다. 갈라디아서 522,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받으면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서 첫번째 열매가 사랑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우리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게 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면 율법을 지킨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복잡한 율법을 억지로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해서 서로 사랑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성령께서는 율법의 족쇄로부터 우리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실 뿐만 아니라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십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서워하였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믿었고 두려움 때문에 율법을 지켰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교 지도자들이 심판을 피하려면 율법을 지키라고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를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무서운 영이 아니라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는 보혜사/변호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무서운 영이 아니라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료하는 영이십니다.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성령 체험을 하고 나서 더 이상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영이시고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고 양육하시고 보존하시는 아바/아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실 뿐만 아니라 죄와 편견과 차별로부터의 자유를 우리들에게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셔서 우리가 세상의 욕심과 죄악에 물들지 않도록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편견과 차별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는 중에 바람같고 불같은 성령을 체험하였고 다른 나라 말로 말하는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하는 말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고향 말로 알아듣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령께서 세상 모든 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서로가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00년 전에는 남자와 여자, 주인과 종, 유대인과 헬라인이 같은 자리에 앉지도 않았고 같이 밥을 먹지도 않았습니다. 성과 계급과 인종의 장벽은 너무 높아서 아무도 그 장벽을 넘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제자들이 3가지 장벽을 뛰어넘어서, 편견과 차별을 뛰어넘어서 서로 하나가 되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진실로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두 번째로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니다. 베드로는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2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나이에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꿈꾸게 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만드실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면 그 사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더 나은 꿈,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정의, 더 나은 평등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젊은이들이 꿈과 환상을 갖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들이 예언의 말, 바른 말을 하도록 역사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분의 차별을 없애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옛날에 종들은 사람 취급 받지도 못했고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남종과 여종들도 똑같이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도록 역사하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차별과 편견을 넘어서 모든 사람들이 환상을 보게 하시고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신분차별이 없어지고 편견이 없어지고 억압이 없어지고 정의와 평화와 평등이 일어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자유를 주시고 기쁨을 주십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캐나다연합교회 토론토연회는 지난 주에 있었던 정기 총회에서 Affirming Ministry를 선언했습니다. Affirming 이란 말은 모든 사람을 긍정/환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토론토연회는 행사를 열고 문서를 작성할 때, 단 한사람도 소외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소위 정상인들과 낮은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체장애인, 정신장애인, 유색인종, 성적 소수자, 가난한 사람들, 여성들, 노인들, 원주민들, 이런 사람들이 공식행사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고 문서를 작성할 때도 이런 사람들을 배려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진실로 성령은 자유와 기쁨의 영이십니다. 율법과 두려움과 죄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를 주실 뿐만 아니라 하늘의 기쁨을 주셔서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하고 꿈을 꿀 수 있도록 우리들을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교회가 비둘기처럼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세상에 자유를 선포하고 기쁨을 선포하는 교회,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복된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entecost, church of freedom and joy

Acts 2:1-4, 14-18


On the day of Pentecost all the Lord's followers were together in one place. Suddenly there was a noise from heaven like the sound of a mighty wind! It filled the house where they were meeting. Then they saw what looked like fiery tongues moving in all directions, and a tongue came and settled on each person there. The Holy Spirit took control of everyone, and they began speaking whatever languages the Spirit let them speak. Many religious Jews from every country in the world were living in Jerusalem. And when they heard this noise, a crowd gathered. But they were surprised, because they were hearing everything in their own languages. (Acts 2:1-4)


Peter stood with the eleven apostles and spoke in a loud and clear voice to the crowd: Friends and everyone else living in Jerusalem, listen carefully to what I have to say! You are wrong to think that these people are drunk. After all, it is only nine o'clock in the morning. But this is what God had the prophet Joel say, "When the last days come, I will give my Spirit to everyone. Your sons and daughters will prophesy.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and your old men will have dreams. In those days I will give my Spirit to my servants, both men and women, and they will prophesy. (Acts 2:14-18)


The Holy Spirit leads us to look at the vision of justice and equality, the world where all people are treated equally. If young people do not see a vision and are willing to adjust to a world already given, that society would not have a hope. The Spirit makes young people see better future, better justice, and better equality. They are encouraged to speak the words of justice and righteousness. Not only that, God also poured out the Holy Spirit on the male and female servants so that they will also prophesy. Once upon a time, servants were not treated as human beings and could not speak. However, the Holy Spirit leads them to do justice and speak the words of equality. Truly, the Holy Spirit makes all people see visions and dreams beyond discrimination and prejudice. When the Holy Spirit works, all discrimination, prejudice, and repression would disappear and justice, peace and equality would come into the world. Celebrating the season of Holy Spirit, we rejoice today that we are called to be the church of freedom and joy.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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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첫번째 주일 / 6월 첫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환영과 환대의 교회
누가복음 24:28 - 35

정해빈 목사



오늘부터 678월 여름이 시작되었고 동시에 성령강림절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체로 6월부터 8월까지 성령강림절 절기를 지킵니다. 제자들이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교회 생활을 시작했으니까 오늘은 교회가 시작된 날, 교회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2-3명이 모인 곳에 나도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3명이 모이면 주님께서 그 모임에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교회가 되려면 2명이 모여서는 안 되고 3명이 모여야 합니다. 물론 2명만 모여도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만 교회가 되려면 3명이 모여야 합니다. 2명이 모이는 것과 3명이 모이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2명이 모이면 사적인 모임이 되지만 3명이 모이면 교회가 됩니다. 2명 모이는 것은 쉽지만 3명 모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3명이 모이려면 2명이 새로운 사람을 환영해야 하고 그 새로운 사람과 대화하고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하고 서로 환영하고 환대함으로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24장 엠마오 이야기는 3명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명의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서 엠마오로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그네로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당신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왜 그렇게 어깨가 축 처지고 힘이 없어 보입니까?” 제자들은 나그네의 질문에 대답하였고 그렇게 해서 3사람의 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낯선 사람이 끼어드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 둘만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우리 대화에 끼어들지 마세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살다 보면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2명이 대화하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 되니까 편하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3명이 대화를 하면 기존의 2사람은 자신의 말을 줄여야 합니다. 2명이 대화할 때는 반반씩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3명이 대화할 때는 서로가 1/3씩만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나그네를 대화에 초대하였고 함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하나보니 나그네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그네와의 대화를 통해서 제자들은 성경의 지식을 알게 되었고 주님이 고난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제자들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내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불편할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우리들은 일단 경계를 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이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일까 아니면 나쁜 사람일까? 혹시 우리를 해치려고 온 사람은 아닐까? 이 사람 혹시 강도가 아닐까? 제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인해서 모임이 더 잘될 수도 있고 더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낯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들은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면 본능적으로 일단 경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동체가 새로운 사람을 배척하고 끼리끼리만 지내게 되면 그 공동체는 폐쇄적인 공동체, 발전도 없고 성장도 없는 공동체가 되기가 쉽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환영한다는 것이 조심스럽고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사람을 환영해야만 공동체는 더 밝고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나그네와 대화함으로써 이전에 알지 못했던 신앙의 깊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야 내 신앙이 풍성해지고 깊어집니다. 낯선 사람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진리,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환영할 때 교회는 더 풍성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만남은 양쪽 모두에게 큰 혜택을 가져다줍니다. 나그네는 함께 지낼 수 있는 공동체를 알게 되었으니 좋고 공동체는 새로운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배움을 얻게 되었으니 좋습니다.

 

제자들은 나그네를 통해서 성경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의 고난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그네를 통해서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제자들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그네를 자신들이 집에 초대해서 함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함께 떡과 잔을 나누는 순간 제자들은 바로 이 나그네가 부활하신 주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처음 만난 사람을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나누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나그네에게 환영과 환대를 베풀었습니다. 이 환영과 환대가 있었기에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잃어버렸던 신앙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고 거기서 기도하는 중에 성령을 받고 교회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엠마오 이야기가 교회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환영과 환대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는 2명이 3명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낯선 사람을 환영하고 그 낯선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날에도 낯선 사람, 나그네를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레티 러셀(Letti M. Resell)이라는 여성 신학자는 그의 책, [공정한 환대]라는 책에서 환대란 위기에 처한 우리 세계를 치유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하나님과 함께 참여하기 위해서 차이를 넘어서 낯선 자들과 연대함으로서 하나님의 환영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의가 무엇이냐? 큰 일을 해야만 정의를 실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낯선 자들을 환영/환대함으로서 우리는 이 세상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게 됩니다. 중동 지방에서는 먼 길가는 나그네를 대접하지 않으면 나그네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3명의 나그네가 자신의 집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그 환대를 통해서 나그네들이 하나님의 천사라는 것을 깨달았고 자녀를 얻을 것이라는 축복을 받았고 소돔과 고모라에 있을 일을 미리 알게 되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나그네를 학대/폭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도 위험에 처한 나그네를 환영/환대하는 이야기입니다. 환영/환대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만약 제자들이 나그네를 환영하지 않고 배척하였더라면 제자들은 나그네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2명이 3명이 되었을 때, 나그네를 대화에 초대하고 나그네를 환영하고 환대하였을 때, 그들은 나그네를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깨달음과 은혜와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엠마오 이야기는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명이 2명으로 끝나면 안 되고 2명이 3명이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도 3명이 모여서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음식을 대접하고 서로 환영하고 환대할 때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일어날 것입니다. 바로 그 때 거기에서 교회는 시작될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환영하고 환대할 때 우리의 신앙은 더 풍성해지고 우리의 교회는 더 건강해 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새로운 사람을 환영하고 환대하는 교회, 그래서 더 건강해지고 더 풍성해지는 복된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entecost, church of welcome and hospitality

Luke 24:28 35


Then Jesus asked the two disciples, "Why can't you understand? How can you be so slow to believe all that the prophets said? Didn't you know that the Messiah would have to suffer before he was given his glory?" Jesus then explained everything written about himself in the Scriptures, beginning with the Law of Moses and the Books of the Prophets. s) When the two of them came near the village where they were going, Jesus seemed to be going farther. They begged him, "Stay with us! It's already late, and the sun is going down." So Jesus went into the house to stay with them. (Luke 24:25 29)


After Jesus sat down to eat, he took some bread. He blessed it and broke it. Then he gave it to them. At once they knew who he was, but he disappeared. They said to each other, "When he talked with us along the road and explained the Scriptures to us, didn't it warm our hearts?" So they got right up and returned to Jerusalem. The two disciples found the eleven apostles and the others gathered together. And they learned from the group that the Lord was really alive and had appeared to Peter. Then the disciples from Emmaus told what happened on the road and how they knew he was the Lord when he broke the bread. (Luke 24:30 35)


If the disciples did not welcome the stranger, the disciples would not have met Jesus who came to them as a stranger. When they invited a stranger to their conversations and welcomed him, they were able to meet the resurrected Jesus through the stranger, and to experience new enlightenment, grace and joy. The Emmaus story shows us how and when the church was able to start its gathering. As the disciples did, we would also meet the Lord when we welcome others and engage in deep conversation with them. Today’s story shows that att that very moment when the disciples welcomed a stranger, the church of Jesus started. When we meet and welcome new people, our faith and church will become richer and healthier. We pray that our church be a church of welcoming people. The Holy Spirit always invites us to open our heart and work together with “unfamiliar” people. There is a church when there is a welcome and hospitality.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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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여섯번째 주일 / 5월 세번째 주일
부활절, 우리가 실망할 때
누가복음 24:13 - 24
정해빈 목사




우리는 요즘 4월 5월 부활절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부활절 기간에 제일 많이 읽는 말씀 중 하나가 누가복음 24장에 나오는 엠마오 이야기입니다. 지난 4월 30일, 우리 교회 창립50주년감사예배에서 폴 허치슨 노회장 목사님께서 엠마오 이야기를 가지고 설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처형되시고 나서 2명의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삼십리, 12km 떨어져 있는 엠마오를 향해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난 것은 예수님에게 실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영광을 되찾고 권력과 명예와 영광을 가져다주실 것을 기대했는데 주님은 너무도 허무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19절과 21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분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이 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이스라엘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니 실망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들도 제자들처럼 인생을 살면서 실망스러운 일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실망의 연속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살면 살수록 실망스러운 일들이 더 많아지는지도 모릅니다. 인생에서 실망스러운 순간은 일일이 예를 들기가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손에 물 안 묻힌다고 했는데 결혼하고 나서 고생만 시키니까 아내는 남편에게 실망합니다. 남편은 결혼하기 전에는 착하고 얌전했는데 결혼하고 나서 부인이 사나워진 것을 보고 아내에게 실망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보면서 내가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키웠는데 자녀가 기대만큼 자라지 못할 때 부모는 자녀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때로는 내가 다니는 직장에게 실망하고 내가 사는 나라에게 실망하기도 합니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할 때, 국민은 이게 나라냐, 이런 나라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망스러운 일을 만나면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몸과 마음이 지치게 됩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 중의 하나가 무언가에 실망할 때입니다. 무엇인가에 실망할 때, 그 순간을 지혜롭게 잘 넘겨야 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내가 왜 실망하는지, 무엇 때문에 실망하는지, 내가 실망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에게 실망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실망시켰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실망한 것은 예수님이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잘못된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실망할 때, 그 실망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잘못해서 내가 실망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잘못된 기대를 했기 때문에 실망하는 것인지, 실망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는지 아니면 나에게 있는 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잘못된 기대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몇 번에 걸쳐서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적인 명예와 영광과 권력과 재물을 얻고자 했습니다. 무언가 화끈하게 세상을 바꿀 줄 알았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니 그들은 예수님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실망한 것은 그들 스스로가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잘못해서 실망할 수도 있고, 우리가 잘못된 기대를 했기 때문에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실망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실망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부족하고 불완전합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은 온전하시고 완벽하시고 흠이 없으시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는 흠이 있고 불완전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지만 사람들이 모인 교회와 사람들이 만든 예배/조직/제도는 불완전합니다. 교회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하신 하나님을 100% 다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목회자도 불완전하고 예배도 불완전하고 조직과 제도도 불완전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100% 만나기 위해 교회를 찾아왔는데 하나님을 50%만 경험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교회에 대해서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하시지만 교회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려고 노력할 때 우리 교회는 50%, 60%, 70% 하나님을 더 많이 닮아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또 교회를 처음 다니는 분들 중에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하나님께 실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실망하게 됩니다. 마귀 중에 제일 큰 마귀가 섭섭마귀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한 사람도 섭섭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 교회는 따뜻한 교회이구나, 이 교회는 나를 환영하는 교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환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마치 요술 방망이나 슈퍼맨처럼 생각해서 내가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것을 주는 분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내가 이것이 필요하니 이것을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 하나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저희들을 진리로 인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신앙이 참된 신앙입니다. 비록 고난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신 분임을 믿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자 하는 신앙이 참된 신앙입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새로 취임한지 열흘 된 대통령의 행보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비서관들과 함께 잔디밭에서 커피를 마시고 구내식당에서 똑같이 줄을 서서 밥을 먹고 기자들에게 정책을 설명하고 질문을 받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세월호 희생자 부모, 5.18 유족들을 따뜻하게 껴안아주었습니다. 국민들의 87%가 새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대답한 것을 보았습니다. 1.4 후퇴 때 부모님이 흥남을 떠나 미군 화물선을 타고 거제도에 도착했는데 대통령이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가끔 왜 한국에는 오바마 대통령이나 트루도 수상 같은 따뜻한 지도자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우리도 그런 지도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 국민들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지도자를 뽑았고 나라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실망스러운 일이 많아서 이런 세상 살아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조용하게 새로운 희망, 새로운 미래를 우리들에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제자들이 실망해서 엠마오로 길을 떠났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그들과 대화하시고 모세와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해서 성경 전체에 기록된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를 내어주는 메시야, 그런 메시야만이 참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나그네로 오신 주님께서는 말씀을 전하시고 떡과 잔을 나누어준 후에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성찬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죽으셨으니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실망한 마음으로 길을 떠났지만 부활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주님이 왜 고난받아야 하는 지를 설명해 주셨고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을 지라도 우리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조용히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시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aster, when we were disappointed
Luke 24:13 – 24

Now on that same day two of them were going to a village called Emmaus, about seven miles from Jerusalem, and talking with each other about all these things that had happened. While they were talking and discussing, Jesus himself came near and went with them, but their eyes were kept from recognizing him. And he said to them, ‘What are you discussing with each other while you walk along?’ They stood still, looking sad. Then one of them, whose name was Cleopas, answered him, ‘Are you the only stranger in Jerusalem who does not know the things that have taken place there in these days?’ He asked them, ‘What things?’ They replied, ‘The things about Jesus of Nazareth, who was a prophet mighty in deed and word before God and all the people, and how our chief priests and leaders handed him over to be condemned to death and crucified him. (Luke 24:13 - 20)

But we had hoped that he was the one to redeem Israel. Yes, and besides all this, it is now the third day since these things took place. Moreover, some women of our group astounded us. They were at the tomb early this morning, and when they did not find his body there, they came back and told us that they had indeed seen a vision of angels who said that he was alive. Some of those who were with us went to the tomb and found it just as the women had said; but they did not see him.’ Then he said to them, ‘Oh, how foolish you are, and how slow of heart to believe all that the prophets have declared! Was it not necessary that the Messiah should suffer these things and then enter into his glory?’ Then beginning with Moses and all the prophets, he interpreted to them the things about himself in all the scriptures. (Luke 24:21 – 27)

When the disciples were disappointed and left the road to Emmaus, the resurrected Jesus appeared to them as a stranger, talked with them, and taught them the scriptures about the messiah. "Christ should not enter into his glory after experiencing such suffering." He taught his disciples that only the messiah, who is obedient to God's will and sacrifices himself to the will of God, can become a true Savior. The Lord of resurrection may not be visible to us. But we do not worry, since the Lord is with us through the word and the sacrament. Although there are many hardships in the world, we are not disappointed, because the Lord has risen from the power of death. Truly darkness can not beat the light. Thanks be to God. Amen.

Posted by 정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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