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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31 성령강림절, 야곱과 돌베개
- 2017.07.23 성령강림절, 성령은 숨과 바람
- 2017.07.16 성령강림절, 72명이 성령을 받다
- 2017.07.09 성령강림절, 엘리에셀과 리브가
- 2017.07.03 성령강림절, 지금까지 보호해주셨습니다
성령강림절 여덟번째 주일 / 7월 네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성령은 숨과 바람
창세기 2:5-7, 사도행전 2:4
정해빈 목사
우리들은 요즘 계속해서 6월 7월 8월 성령강림 절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주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시고 세상 역사를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들이 힘들고 외로울 때 우리들을 위로해 주시고 우리들이 지쳐 쓰러질 때 우리들을 일으켜 주십니다. 주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이 망가지지 않도록 이 세상을 보존하시고 유지하십니다. 성령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에 이 세상, 이 지구가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나실까요? 가장 쉽게 예를 든다면 성령께서는 우리들에게 숨으로 나타나시고 역사의 새바람으로 나타나십니다. 첫째로 성령은 하나님의 숨/생기/호흡입니다. 창세기 2장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당신의 숨/생기/호흡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숨/생기/호흡을 주셨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과 소통하고 대화하고 기도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숨이 들어갔기 때문에 사람이 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서 숨을 쉽니다. 하지만 숨을 쉰다는 것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 이상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숨을 쉴 때 그 숨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것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호흡을 통해서, 숨을 통해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몸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시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십니다.
사람이 숨 쉬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건강을 알 수 있습니다. 숨을 길게 쉬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고 짧게 쉬는 사람은 약한 사람입니다. 숨은 본래 배에서 쉬어야 하는데, 몸이 약해지면 점점 위로 올라가서 가슴으로 쉬다가 마지막에는 코로 쉬다가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성악하시는 분들은 복식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배가 나와야 하고 내쉴 때는 배가 들어가야 합니다. 데이비드 아브라함 이라는 신학자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이름, 야훼(YHWH)가 본래 숨을 쉬면서 하나님을 부르면서 이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야훼라는 이름은 본래 “꼭 있어야 할 것을 있게 만드시는 분, 언제나 일하시는 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학자는 더 근본적으로 야훼라는 이름은 숨을 가리킨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한글 성경은 야훼를 여호와로 표현했는데 본래 히브리어는 야훼가 맞습니다. 성도님들, “야훼”를 길게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야(Yah) 하고 부르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훼(Weh) 하면서 숨을 내쉬시기 바랍니다. 야훼라는 말 자체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자체가 숨 쉬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숨/생기/호흡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숨/생기/호흡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좀 더 넓게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자연을 창조하셨고 자연은 성령을 사람에게 전달해 줍니다. 그러면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과 자연과 사람이 성령을 통해서 서로 교류하고 소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또 호흡을 통해서 자연과 소통합니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다음에 그것을 산소로 바꾸어서 세상에 내보내고 동물/사람은 반대로 산소를 흡수한 후에 산소를 이산화탄소로 바꾸어서 세상에 내보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식물은 이타적이고 동물은 이기적입니다. 식물은 산소를 만들고 동물/사람은 이산화탄소를 만들어 냅니다.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는 식물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렇게 산소를 호흡하며 살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매일 식물/나무를 보면서, 산소를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해야 하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산소를 마시면서 매일 호흡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평균 하루에 2만 리터의 공기를 호흡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몇 주를 살 수 있고 물을 마시지 않아도 며칠을 견딜 수 있지만 숨을 쉬지 않으면 불과 몇 분밖에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숨 쉬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50편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호흡을 주셨기 때문에 호흡을 할 때마다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편안하게 숨 쉬는 것이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숨이 가쁘고 숨 쉬는 것이 힘들게 됩니다.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들에게 평안과 안정과 건강과 기쁨을 주십니다. 예수께서도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성령을 받아라’”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워 떨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숨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성령께서는 숨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야) 내쉬면(훼)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주님 주시는 성령의 숨을 받아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성령은 바람입니다. 숨이 커지면 바람이 됩니다. 바람은 바람인데 그냥 바람이 아니라 세상과 역사를 변화시키는 새바람입니다. 성령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루하흐”는 바람을 가리킵니다.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물이 가득찼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일으키셔서 물을 말려버리셨습니다. 바람이 불어야 땅이 드러나고 땅이 드러나야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바로가 하나님 뜻을 거역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일으키셔서 바로를 심판하셨고, 히브리 백성들이 홍해 바다에 가로막혀 있을 때 바람을 일으키셔서 바다를 둘로 나누어서 그들이 바다를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일으키셔서 그들에게 메뚜기 떼를 주셨습니다. 또 엘리야가 가뭄을 해결해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바람을 일으켜서 이스라엘 땅에 단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바람을 일으켜서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려 주시고 생명의 물이 흘러가게 하십니다. 성령은 자연의 바람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바로를 심판하셨고 이스라엘의 권력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바람이 불면 역사가 바뀌고 정권이 교체됩니다. 우리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바람을 일으키셔서 세상 역사를 바꾸어 주십니다.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새바람을 일으키셔서 동서냉전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 심코 호수 구세군 수양관에서 여름 캠프를 진행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거닐면서 성령의 숨과 성령의 바람을 체험했습니다. 꽃으로 “알파한인연합교회” 글자를 만들어서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숨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역사의 새바람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생명의 숨과 변화의 바람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이여 오셔서 나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옵소서, 내 숨이 끊어지거나 약해지거나 거칠어지지 않도록 내 숨을 지켜주시고 성령의 숨을 불어넣어 주옵소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 변화의 바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이 땅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전쟁과 폭력과 갈등을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바람을 보내주옵소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이 땅을 새롭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숨과 성령의 바람을 사모하며 날마다 성령님과 소통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entecost, Holy Spirit is a breath and wind
Genesis 2:5-7, Acts 2:1-4
So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everything else were created. By the seventh day God had finished his work, and so he reste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made it special because on that day he rested from his work. That's how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no grass or plants were growing anywhere. God had not yet sent any rain, and there was no one to work the land. But streams came up from the ground and watered the earth. The LORD God took a handful of soil and made a man. God breathed life into the man, and the man started breathing. (Genesis 2:5-7)
On the day of Pentecost all the Lord's followers were together in one place. Suddenly there was a noise from heaven like the sound of a mighty wind! It filled the house where they were meeting. Then they saw what looked like fiery tongues moving in all directions, and a tongue came and settled on each person there. The Holy Spirit took control of everyone, and they began speaking whatever languages the Spirit let them speak. (Acts 21-4)
Holy Spirit is God's breath. According to Genesis 2, God made human of clay and breathed God’s breath into human’s nostrils. Because God has given God’s breath to human, he or she has become a spiritual being, communicative and prayerful presence with God. God enters us through our breath as we breathe. Some people feel this and some people do not. Holy Spirit comes to us through our breath to cleanse our bodies and to refresh our bodies and minds. Holy Spirit comes to us not only through the breath of life but also the wind of history. God sent God’s spirit to judge the corrupt king of Egypt and the mighty men of Israel. When God's wind blows, history is changed and the regime is replaced. Holy Spirit, come in the breath of life and heal our bodies. Holy Spirit, come in the wind of change and renew the earth. Amen.
성령강림절 일곱번째 주일 / 7월 세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72명이 성령을 받다
민수기 11:16-17, 24-30
정해빈 목사
우리들은 지금 6월, 7월, 8월 성령강림절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 11장 말씀은 성령에 대해 기록된 구약 성경의 대표적인 말씀 중 하나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성령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히브리/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떠나 시내산에 도착해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려면 노예근성을 버려야 하는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내산에서 1년 정도 머물면서 말씀으로 훈련받았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성경공부를 한 후에 광야로 출발을 했는데 광야에서는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음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식물성 음식 만나를 보내주셨는데 백성들은 거기에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살 때는 자유는 없었지만 고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광야에서는 자유는 있지만 고기가 없었습니다. 자유가 더 중요하냐 빵이 더 중요하냐, 우리들이 가끔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배가 조금 고프더라도 자유롭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자유가 뭐가 중요하냐, 노예로 살지라도 지금 당장 배부르게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히브리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가면서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불어서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게 고기가 먹고 싶으냐, 그럼 내가 너희에게 메추라기를 보내주겠다, 한번만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보내주겠다, 너희가 앞으로 한 달 내내 고기만 먹을 것이다, 냄새만 맡아도 지겨울 정도로 너희가 고기를 먹을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겠다고 불평하니까 하나님께서 화가 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의 문제는 단순히 먹을 것이 없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광야를 지나면서 힘들 때마다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 11장 말씀을 보면 백성들이 하도 불평하고 원망하니까 모세가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은 백성들을 이끌고 가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을 이렇게도 괴롭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이 모든 백성을 저에게 짊어지우십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마치 유모가 젖먹이를 품듯이 그들을 품에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 백성은 저를 보고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달라!’ 하고 외치는데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저 혼자서는 이 모든 백성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 무겁습니다.” 모세가 자기 짐이 너무 무겁고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지도자 70명을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2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의 체험이 있어야만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율법/십계명을 받았고 1년간 열심히 성경공부를 했지만 여전히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습관/이기심/욕심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아서 몸과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지도자들에게 먼저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지도자 70명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셔서 그들을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모세 혼자서는 백성들을 이끌고 갈 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짐을 나누어지고 함께 백성들을 이끌고 가야 합니다. 모세가 자기 짐이 너무 무겁다고 말하니까 하나님께서는 70명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모세를 돕도록 했습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모범을 보이려면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셔서 그들을 변화시켜 주셨고 그리고 나서 그들을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모세가 백성들의 지도자를 불렀더니 70명이 모였고 그들이 성령을 받았는데, 그때 바깥으로 나오지 않은 2명의 지도자가 텐트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2명에게도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저 2명이 성령을 받지 못하도록 징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나는 오히려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 모두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그들 모두가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어쩌면 모세는 12지파에서 6명씩 72명을 지도자로 세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70명은 모세 앞에 모였지만 2명은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넓은 마음으로 그 두 사람을 포용했습니다. 나 혼자는 백성들을 이끌고 갈 수 없으니까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지도자/예언자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뜻대로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조금 삐딱한 사람에게도 당신의 영을 불어넣어 주셔서 그들도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성령은 자유의 영입니다.
오늘 말씀과 비슷한 말씀이 요한복음 14장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내가 떠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하니까 제자들이 두려워서, “주님이 떠나시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내가 없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호하시고 은혜주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 할 때는 모세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72명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셔서 그들이 백성들을 이끌도록 하셨고,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는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령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 역사를 보면 모세처럼 교회를 이끄렸던 목사님들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이 교회에 계시기만 해도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로 영적인 영향력이 크셨습니다. 김재준, 정대위, 이상철, 김익선, 조경자 목사님, 모두 탁월한 리더쉽으로 캐나다 토론토 한인 사회를 이끄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영웅의 시대는 더 이상 오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교회를 이끌고 갈 수 없습니다. 72명이 성령을 받고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변화되어 지도자가 되어 교회를 위해 일할 때 우리 교회는 튼튼하고 안정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토론토 대학에서 토론토한국영화제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주제의 단편 영화들이 상영되었는데 어제 영화 중에 이런 문장이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대통령 한 사람 뽑아놓고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뒤에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만 성령을 받으면 안 되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서 함께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성경에는 대략 2000명의 사람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들은 그들 중에서 아주 소수의 사람 이름만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사람 이름이 이렇게 많이 기록되어 있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사람들의 헌신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주님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는 튼튼하게 성장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저희들 모두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셔서 저희들 모두가 다함께 주님의 일을 하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entecost, 72 people received Holy Spirit
Numbers 11:16-17, 24-30
I am your servant, LORD, so why are you doing this to me? What have I done to deserve this? You've made me responsible for all these people, but they're not my children. You told me to nurse them along and to carry them to the land you promised their ancestors. They keep whining for meat, but where can I get meat for them? This job is too much for me. How can I take care of all these people by myself? If this is the way you're going to treat me, just kill me now and end my miserable life! The LORD said to Moses: Choose seventy of Israel's respected leaders and go with them to the sacred tent. While I am talking with you there, I will give them some of your authority, so they can share responsibility for my people. You will no longer have to care for them by yourself. (Numbers 11:11-17)
The LORD spoke with him. Then the LORD took some authority from Moses and gave it to the seventy leaders. And when the LORD's Spirit took control of them, they started shouting like prophets. But they did it only this one time. Eldad and Medad were two leaders who had not gone to the tent. But when the Spirit took control of them, they began shouting like prophets right there in camp. A boy ran to Moses and told him about Eldad and Medad. Joshua was there helping Moses, as he had done since he was young. And he said to Moses, "Sir, you must stop them!" But Moses replied, "Are you concerned what this might do to me? I wish the LORD would give his Spirit to all his people so everyone could be a prophet." Then Moses and the seventy leaders went back to camp. (Numbers 11:25-30)
Today’s scripture shows why, not just one leader, but as many as people should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Moses was tired of being unable to lead the Hebrew people by himself, God gave the Holy Spirit to the 72 leaders and led them to lead the people. When Jesus was leaving the world, He also promised his disciples that God would give them the Holy Spirit the Comforter. The Holy Spirit touches as many people as possible and establishes them as leaders. When many people, not one leader, receive the Holy Spirit and become leaders, the kingdom of God will expand. Let us remember that all of us are called to receive the Holy Spirit to be the leaders and serve the church together. May God will pour out the Holy Spirit on all of us. Amen.
성령강림절 여섯번째 주일 / 7월 두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엘리에셀과 리브가
창세기 24:42 – 49
정해빈 목사
2017년 7월 두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이삭과 리브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민 1세대라고 말한다면 이삭과 리브가는 이민 2세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하나만 믿고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정착했지만 그들에게는 부모도 없었고 형제도 없었고 땅도 없었고 자식도 없었습니다. 그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두 사람은 낯선 곳에서 외롭게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녀를 주셨고 그 덕분에 그들은 낯선 곳에서 계속 집안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서 사라가 127세로 죽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막벨라 굴을 사서 사라를 장사지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땅을 샀는데 그 땅은 사라를 장사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무덤이었습니다. 무덤을 샀다는 말은 우리 가족이 이곳에서 정착하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가족의 무덤이 있는 곳이 내 땅이고 내 고향입니다. 아브라함 집안이 가나안 땅에서 조금씩 정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라가 죽고 나서 아브라함은 자신도 살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침 그에게는 자신이 친자식처럼 사랑하는 노종, 엘리에셀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불러서 아들 이삭의 배우자를 찾아서 데리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가나안 땅 여자를 찾지 말고 내가 두 온 고향 땅으로 가서 우리 집안 친척 중에서 며느리가 될 만한 사람을 찾아오라고 말했습니다. 사라가 죽었으니 이제 사라를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집안에 주신 사명을 잘 계승할 수 있는 믿음 있는 안주인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셨습니다. 본토와 친척을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혈연과 지연에 얽매이지도 말고 우상을 섬기지도 말고 폭력과 약탈을 일삼지도 말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베푸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소명을 따라서 고향을 떠났고 그래서 이민 1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민 1세대가 믿음의 조상, 복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민 1세대는 정착하는 것이 가장 급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 줄 여력이 없습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일하고 아끼고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아끼는 것은 잘하지만 나누고 베푸는 것은 잘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삶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2013년에 우리 곁을 떠나신 Marion Current 구애련 선교사님 가족들이 지난 2016년 12월에 한국에서 37년간 일하셨던 연세대학교에 6만 불을 기증하셨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 교회에 만불, 캐나다연합교회 남북한 평화선교에 만불을 헌금하셨습니다. 세상적은 기준으로 보면 대단한 액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님은 한국을 사랑하셔서 당신께서 가지고 계셨던 모든 것을 한국에 기부하셨습니다. 서양 기독교가 쇠퇴한다고는 하지만, 선교사님 같은 분을 보면 기독교 정신이 서양 사람들의 삶속에 깊이 뿌리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애련 선교사님은 아브라함처럼 한평생 복을 나누고 베풀면서 인생을 사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낯선 땅에 왔지만 여전히 생존에 대한 불안이 남아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렇게 질문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필요한 것은 내가 다 채워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나를 믿고 믿음의 조상이 되어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을 베풀어 주어라,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 사랑과 은혜를 나누어 주어라”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을 믿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자신이 세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빨리 배우자를 찾아서 자신의 뒤를 이어서 믿음의 조상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엘리에셀을 고향으로 보내서 이삭의 아내가 될 만한 사람을 찾아서 데리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이민1세대는 2세대가 부모의 전통/문화/가훈을 잘 계승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집안에 주신 사명을 자녀들이 잘 계승하기를 원합니다. 부모는 항상 그런 걱정을 하면서 자식을 바라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드신 성도님들은 젊은 성도들이 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잘 계승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떠나도 젊은 성도들이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계속해서 잘 걸어가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계속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나이드신 성도님들은 젊은 성도님들을 아끼고 사랑하고 젊은 성도님들은 나이드신 성도님들을 존경할 때, 우리 교회는 변함없이 잘 유지되고 발전할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의 친척이 살고 있는 하란까지 600km를 낙타를 타고 갔습니다. 그는 먼 길을 가면서 기도했습니다. 성경이 있으신 분은 창세기 24장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오늘 일이 잘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여기 나오는 “은총”은 히브리어로 “헤세드”를 가리키는데 헤세드는 변함없는 사랑, 신실한 사랑을 가리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 집안에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아브라함 집안을 잘 계승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에셀은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라고 싸인을 알려주실 때까지 참고 기다렸습니다. 목이 마른 낙타에게 물을 먹여줄 수 있는 사람,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고 아브라함이 자비롭고 이삭이 자비로운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에셀이 1세대와 2세대를 연결하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신중하고 예의바르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동생의 손녀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리브가는 엘리에셀이 낙타를 타고 우물가에 온 것을 보고는 낙타들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낙타는 보통 50리터의 물을 몸 안에 저장한다고 합니다. 엘리에셀이 타고 온 낙타가 10마리였습니다. 리브가는 500리터의 물을 길어서 낙타를 먹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낙타에게 물을 먹일 만큼 마음이 착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주 건강하고 힘이 쎈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리브가는 엘리에셀을 집으로 초청하였고 엘리에셀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그와 함께 아브라함의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난 것처럼, 리브가도 친척과 본토와 아비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는 이삭과 결혼하였고 사라의 뒤를 이어서 아브라함 집안의 안주인이 되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평생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옛날에는 남편들이 여러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이삭은 다른 부인을 두지 않고 평생 리브가만 사랑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집안에 주신 사명이 엘리에셀을 거쳐서 리브가로 이어지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신앙이 어떻게 아랫사람에게로 이어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엘리에셀처럼 조용히 기도하며 아랫사람을 친절하게 대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될 때, 우리들이 리브가처럼 목마른 자에게 물을 먹이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우리들의 신앙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아브라함처럼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베풀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의 신앙이 1세대에서 2세대로 계속해서 아래로 흐르고 계승되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entecost, Eliezer and Rebecca
Genesis 24:42 - 49
When I came to the well today, I silently prayed, "You, LORD, are the God my master Abraham worships, so please lead me to a wife for his son while I am here at the well. When a young woman comes out to get water, I'll ask her to give me a drink. If she gives me a drink and offers to get some water for my camels, I'll know she is the one you have chosen." Even before I had finished praying, Rebekah came by with a water jar on her shoulder. When she had filled the jar, I asked her for a drink. (Genesis 24:42–45)
She quickly lowered the jar from her shoulder and said, "Have a drink. Then I'll get water for your camels." So I drank, and after that she got some water for my camels. I asked her who her father was, and she answered, "My father is Bethuel the son of Nahor and Milcah." Right away I put the ring in her nose and the bracelets on her arms. Then I bowed my head and gave thanks to the God my master Abraham worships. The LORD had led me straight to my master's relatives, and I had found a wife for his son. Now please tell me if you are willing to do the right thing for my master. Will you treat him fairly, or do I have to look for another young woman? (Genesis 24:46-49)
Just as Abraham had left the mainland and relatives, Rebekah also left them. She became the successor of the family of Abraham by having married with Issac. He loved Rebekah all his life without having another wife. God made the mission of Abraham go down to Rebekah through Eliezer. Today's scripture shows how God's faith is delivered to the next generation. Like Eliezer, when we pray quietly, kind to young people, and seek God's wisdom, and life Rebekah, when we give water to those who are thirsty and respond to God's call, our faith will continue. Let us pray that our church, like Abraham, will share God's blessings throughout the world. Let us pray that the faith of our church will continue to flow down from one generation to the next. Amen.
성령강림절 다섯번째 주일 / 7월 첫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지금까지 보호해주셨습니다
창세기 21:1 – 7
정해빈 목사
오늘은 여러가지로 뜻깊은 날입니다. 오늘은 2017년 후반기가 시작되는 7월 첫번째 주일이고 어제는 7월 1일, 캐나다 건국 1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여기저기에서 있었습니다. 여러분 Canada Day 잘 보내셨습니까? 우리 교회와 캐나다 역사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캐나다 건국 100주년이 되는 1967년에 우리 교회가 토론토 최초의 한인 교회로 세워졌습니다. 이제 50년이 흘러서 캐나다는 건국 150주년이 되었고 우리 교회는 50주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는 캐나다와 역사를 같이 할 것입니다. 지난 50년 전 낯선 곳에 오셔서 이민의 삶을 시작하시고 처음 교회를 세우신 초창기 성도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성도님들이 계셨기에 오늘날 우리들의 삶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7월 첫번째 주일을 보리 맥(麥), 추수할 추(秋), 보리를 추수하고 감사드린다고 해서 맥추감사절이라고 불렀습니다. 보통 이모작 농사를 지으면 전반기 보리 수확을 할 때는 맥추감사절이라고 불렀고 후반기 쌀 수확을 할 때는 추수감사절이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보리 수확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맥추감사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6개월을 돌아보고 감사드린다는 점에서 7월 첫번째 주일을 맥추감사절로 지키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인데, 오순절의 다른 이름이 맥추절입니다. 오순절/칠칠절/맥추절/성령강림절이 다 같은 이름입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유월절이 지나고 50일째 되는 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고 신약 백성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원래 보리 추수를 감사하는 맥추절이기도 했습니다. 구약 성경 룻기서를 보면 남편을 잃은 모압 여인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왔다가 보리를 수확하는 맥추절에 보리밭에 나가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나게 되었고 나중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룻기의 배경이 맥추절이기 때문에 오늘 같은 맥추감사절 기간에 룻기를 읽는다고 합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온 착한 며느리 룻은 보리 추수하는 맥추감사절에 좋은 사람, 새신랑을 만났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날이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날이고 감사하고 기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6개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 가운데서도 우리들을 지켜주셨고 우리들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감사를 드립시다. 우리 주님께서 이제까지 지켜주셨던 것처럼, 앞으로의 삶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말씀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자녀를 갖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믿음 있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사라는 100세, 90세가 될 때까지 자식이 없었습니다. 옛날에는 집안을 보전하려면 땅과 후손이 있어야 했는데, 아브라함에게는 땅과 후손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아브라함과 사라, 먼저 죽은 아들 하란이 낳은 아들, 손자 롯을 이끌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이라는 곳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서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여기저기 떠돌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외로움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너희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을 것이다, 너는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이다, 너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정착할 땅도 없었고 후사를 이를 자식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땅도 없고 자녀도 없는데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약속은 정말 이루어질까? 이렇게 살다가 외롭게 죽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런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내가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도 교통과 통신이 발달해서 내가 혼자 살고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못합니다. 문자를 보내면 1초 만에 한국 가족들이 문자를 받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사라는 낯선 땅에서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땅도 없고 자녀도 없이 홀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낯선 땅에서 외로움과 불안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한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다만 약속을 늦게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다만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힘이 듭니다. 그래도 참고 인내하며 약속을 기다리면, 하나님께서는 오래전에 한 약속을 이루어주십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100세, 90세에 자식을 낳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늘 말씀이 강조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도저히 자녀를 낳을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셔서 기적적으로 자식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걱정과 불안 속에서 살던 노부부에게 기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마침내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이름을 웃음(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외로움과 불안 속에서 살던 한 가정을 지켜주셨습니다. 이 고백이 히브리/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고백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었으면 우리들은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우리들이 이 땅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으면 우리들도 역사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반도 지도를 놓고 보면 어떻게 우리 민족이 5000년 동안 다른 나라에게 흡수되지 않고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우리 민족은 인류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지지난 주 청년들과 함께 “대립군”이라는 한국 영화를 함께 보았습니다. 잔인한 전쟁장면이 있어서 조금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이 벌어지자 선조 임금은 신의주로 도망하고 열 몇 살 밖에 안 되는 어린 광해군에게 나라를 지키는 책임을 맡겼습니다. 그때 양반들을 대신해서 군대에 끌려간 노비들을 대립군이라고 불렀는데 그 대립군들을 만나면서 광해군이 백성들이 전쟁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는지를 깨달으면서 점점 훌륭한 임금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임금을 상징하는 깃발에 쌍둥이 용이 그려져 있는데 첫번째 용은 임금을 가리키고 두번째 용은 백성들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이 수백 번 침략을 받고도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만나서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남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주변 나라들이 지혜를 모아서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북한은 체제수호를 위해서 핵무기를 만들고 있고 미국은 한국에 계속 새로운 무기를 갖다 놓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신무기가 계속 쌓이면 전쟁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쿠바나 베트남 같은 나라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핵무기 없이도 경제를 개방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핵무기를 만드는 북한도 잘못이지만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서 전쟁무기를 팔아먹는 미국 군수업체들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들을 지켜주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민족을 지켜달라고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서 낯선 땅 가나안에 정착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조카 한명을 제외하고는 친척도 없었고 땅도 없었고 자녀도 없었습니다. 외로움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웃고 싶어도 웃을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 부부를 지켜 주셨고 마침내 자녀를 주셨습니다. 덕분에 아브라함과 사라는 불안해하지 않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웃을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들을 지켜주시고 우리들에게 웃음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 7월 첫번째 주일, 맥추감사절을 지키면서 지금까지 저희들을 지켜주신 주님, 저희 가정과 교회를 지켜주시고, 저희 민족을 지켜주옵소서,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entecost, God has protected us so far
Genesis 21:1 - 7
The LORD was good to Sarah and kept his promise. Although Abraham was very old, Sarah had a son exactly at the time God had said. Abraham named his son Isaac, and when the boy was eight days old, Abraham circumcised him, just as the LORD had commanded. Abraham was a hundred years old when Isaac was born, and Sarah said, "God has made me laugh. Now everyone will laugh with me. Who would have dared to tell Abraham that someday I would have a child? But in his old age, I have given him a son." The time came when Sarah no longer had to nurse Isaac, and on that day Abraham gave a big feast. (Genesis 21:1 – 7)
Today we gather to celebrate the 150 anniversary of Canada Day, the beginning of the second half of 2017, and also the Feast of Weeks. Described in Leviticus 23, The Feast of Weeks is the second of the three “solemn feasts” that all Jewish males were required to travel to Jerusalem to attend (Exodus 23:14–17; 34:22–23; Deuteronomy 16:16). This important feast gets its name from the fact that it starts seven full weeks, or exactly 50 days, after the Feast of Firstfruits. Since it takes place exactly 50 days after the previous feast, this feast is also known as “Pentecost” (Acts 2:1), which means “fifty.” When celebrating this festival, many Jewish people recall one of the greatest events in history, God’s revealing of the law at Mount Sinai.
According to the book of Genesis chapter 21, which we read today, Abraham and Sarah were called by God and settled in Canaan, a strange land. They had no relatives, no land, no children. So they had to live day and night in loneliness and anxiety without any joy or hope. But God recalled the promise that God had given them before, and at last gave them a child as promised. Thanks to God's protection and grace, they could laugh and continue the mission given by God, which means to bless the world. Just as God had kept them and gave them joy and thanksgiving, I believe that only God can protects us and leads us in the future. On the first Sunday in July and the Feast of Weeks, I pray that God protect our family, church, and the Korean Peninsula, and lead our life into the second half of 2017 with justice and peace. Amen.